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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성옥 | 2017.02.15 20:22 | 조회 5823

    2017212일 주일오전말씀

    말씀: 40:1~23

     

    마음을 꺾으면 하나님과 하나가 돼

     

    신앙생활을 하면서 신앙은 어려운 것이 아닌데도 신앙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 있습니다. 신앙은 참 쉬운 것이고 믿음을 가지는 것도 쉬운 것인데 사단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믿음과 신앙을 하지 못하도록 어렵게 만든 것이 바로 마음을 꺾지 못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 했습니다. 복음서에 동일하게 강조되는 부분이 자기를 부인하라 합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은 하나님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성경이기 때문에 자기를 부인하고 나를 좇으라 하신 말씀이 없는 것은 당신이 하나님이시기에 결코 부인하시면 안 되기 때문에 그렇고, 누가 복음은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라 합니다. 인간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날마다 자기를 꺾으면 신앙이 재미있고 믿음을 배우는 것이 너무 쉽습니다. 마음을 꺾지 못하도록 사단이 사용하는 방법이 단순하고 어렵지 않습니다. 마음을 높여 놓습니다. 마음이 낮은 사람이 마음을 꺾는다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마음이 잘 꺾이지 않는다는 것은 그 만큼 마음이 많이 높아져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잘못되었고 이 길을 가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길을 가는 것은 마음이 높아져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일날 저녁에는 마음을 꺾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암논이 그 누이 다말을 사랑하였는데 마음을 꺾지 못하니까 다말을 강제로 취하게 되고 이로 인해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그 후로도 암논을 죽인 압살롬으로 인해 계속해서 나라에 혼란과 큰 불행이 오게 됩니다. 아합의 마음에 나봇의 포도원을 사서 나물 밭으로 삼기 원했고 그 마음을 꺾지 못하니까 나봇을 죽이면서까지 그 밭을 취합니다. 마음을 꺾을 줄 모를 뿐만 아니라 자신이 마음을 꺾은 줄 알고 사는 사람이 굉장히 많습니다.

    지난 한 주간에는 마음을 꺾는 삶이 어떤 삶인지에 대해서 단계별로 설명을 해 드렸습니다. 수 없이 마음을 꺾었다고 생각하지만 제대로 한번 마음이 꺾이지 않은 모습을 보게 됩니다. 마음을 꺾으라는 소리가 스트레스로 들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방 청소를 하라고 늘 잔소리를 하는 이유, 제대로 방 청소를 해 놓지 않고 치웠다고, 청소를 했다고 아이들은 생각합니다. 제대로 마음을 꺾은 적이 없기 때문에 계속해서 마음을 꺾으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마음을 많이 꺾었다고 착각을 하고 삽니다. 첫 번째 단계는 자기 마음을 버리는 단계이며, 두 번째 단계는 주님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단계, 그리고 세 번째 단계는 주의 마음이 내 마음에 정착이 되어 주의 마음과 내 마음이 하나가 되는 단계입니다.

     

    임플란트가 없을 때는 치과 치료의 가장 원시적인 단계, 아프리카에서는 치아가 아프면 뽑는 것 말고 없습니다. 한국 같으면 충치가 있으면 치료를 해서 때울 수도 있고 크라운을 씌울 수도 있는데 아프리카는 돈도, 장비도 없기에 그냥 뽑아 버립니다. 옛날에는 이 하나가 없으면 멀쩡한 이 양쪽을 갈아 내어 고정합니다. 지금은 성한 이를 그대로 두고 임플란트로 고정합니다. 이를 뽑아내고, 보형물을 심어 놓아 3~4개월 정도 정착되어 기존 턱뼈와 하나가 되면 임플란트를 심어 고정을 합니다. 사람들은 제대로 마음을 꺾어 본 적이 없으면서 마음을 꺾었다고 합니다. 가인과 에서가 그러합니다.

     

    오늘은 창세기 40장에서 마음을 제대로 꺾은 사람과 마음을 꺾지 않은 사람의 차이를 정확하게 비교를 하고 있습니다. 떡 굽는 관원장과 술 맡은 관원장, 떡 굽는 관원장은 자기가 잘못된 것을 뉘우치고 알지만 그 마음에 왕의 마음이 받아들여지고 정착이 되고 하나가 되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술 맡은 관원장은 왕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정착이 되고 하나가 되어 왕의 마음으로 살았기에 그 전직이 회복이 되고 왕을 섬기면서 살았습니다. 왜 마음을 꺾어야 합니까? 내 마음대로 살고 싶은 마음, 마음을 꺾은 삶과 꺾지 아니한 삶의 차이는, 마음을 꺾는 사람은 어떤 형편과 위치에 가든지 그곳에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마음을 꺾지 못하는 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불평, 불만, 짜증, 고통, 근심, 염려, 이 두 부류의 삶으로 나뉘어집니다. 창세기 39장에서는 요셉이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는 장면이 나오고 보디발의 집에서 잘 살고 지내다가 누명을 써서 감옥에 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요셉이 고통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복된 삶을 삽니다. 억울함, 한을 품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면서 살아갑니다. 마음을 꺾었기에 복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마음을 빨리 꺾을수록 복됩니다. 마음을 빨리 꺾을수록 믿음이 자랍니다. 마음을 꺾지 못하면 오히려 있던 믿음도 깎아 먹습니다. 똑 같은 쇠를 불에 벌겋게 달구어서 물이나 기름에 급냉을 시키면 강해지지만 반대로 서서히 공기 중에 식히면 쇠가 물러집니다. 마음을 빨리 꺾으면 믿음이 자라지만 마음을 빨리 꺾지 못하면 오히려 있던 믿음도 약해집니다. 신앙은 마음을 빨리 꺾을수록 복이 됩니다. 마음을 꺾는 가치, 내 마음대로 살고 싶어하지 마음을 꺾는 것이 얼마나 복인지 모르고 살아갑니다. 자동차와 기차가 있다면 자동차는 핸들을 마음대로 꺾어서 방향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지만 기차는 정해진 선로대로 갈 수 밖에 없고 또한 기차가 유턴을 하려면 먼 거리를 돌아야 하기 때문에 앞뒤로 기관차를 달아서 운행을 합니다. 마음을 꺾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준비해 놓은 많은 축복과 은혜의 세계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여러분 마음의 세계에 하나님이 예비해 놓은 풍성한 세계가 있는데 마음을 꺾지 못하면 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아합처럼, 암논처럼 마음을 꺾지 못하니까 그 인생 전체를 불행하게 만들고 망하게 만듭니다. 어제가 정월대보름이었는데 제 아내는 강원도 사람이라서 나물과 찰밥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아합이 아무리 나물을 좋아했어도 하나님의 뜻과 나봇을 죽여가면서까지 포도원을 취하여 나물 밭을 삼아야 합니까? 하나님 앞에 악을 저지르면서까지, 주변 사람을 불행하게 하면서까지 그 길을 갑니다. 마음을 꺾어 보지 아니한 사람은 마음을 꺾는다는 것이 너무 어렵습니다.

     

    떡 굽는 관원장이 죽임을 당한 것이 잘못해서가 아니라 마음을 꺾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술 맡은 관원장이 마음 하나 꺾음으로 인해서 그 인생 전부를 복되게 할 뿐만 아니라 요셉을 세우고 그로 인해서 세상을 구원하는 일에 쓰임을 받습니다. 시작의 출발, 똑같았습니다.

     

    그 후에 애굽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그 주 애굽왕에게 범죄한지라 바로가 그 두 관원장 곧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노하여 그들을 시위대장의 집 안에 있는 옥에 가두니 곧 요셉의 갇힌 곳이라”(40:1~3)

     

    좋다, 안 좋다 이게 아니라 마음을 꺾느냐 안 꺾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어른들이 아무리 좋은 것을 주려고 해도 젊어서 마음을 꺾지 못하면 인생이 망하는 길로 가면서도 그 길을 갑니다. 우리는 지금 70~80세의 인생을 사는데 옛날에는 900년의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 당시에 얼마나 뛰어난 지혜를 가졌겠습니까? 인간이 연구하고 개발하는 것이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을까? 옛날에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기술들이 지금도 끊임없이 나오고 있습니다. 900년을 살았던 그 시대보다 아담과 화와가 범죄하기 전의 지혜는 얼마나 뛰어났겠습니까? 아인슈타인, 천재 물리학자, 여러 가지 이론을 내어 놓았는데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40년 동안 연구를 하고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서 시도를 했습니다. 연구 결과, 아인슈타인의 이론대로 맞아 떨어졌습니다. 인간의 지혜보다 좀 더 뛰어난 사람, 그의 머리로 상상해서 이론을 펼쳐서 주장을 했는데 실제로 과학 기술이 발전이 되어 시험을 해보니 정확히 맞아 떨어졌습니다. 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았습니까? 보통 사람보다 뛰어난 지혜를 가지고 있었기에 해 보지 않고, 가보지 않고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지혜를 배우게 합니다. 가 봐야 아는 것이 아니라 안 가보고도 그 인생길이 복된 길이 될 지, 망하는 길이 될 지 알 수 있습니다. 40년 뒤에 내가 참 어리석었구나, 깨달아 보면 이미 늦어졌습니다. 인생은 두 번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술 맡은 관원장의 길, 떡 굽는 관원장의 길, 내가 가보지 않고 그 길을 가기 전에 미리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내 마음을 버리고 그 말씀을 받아들이면 그 길이 너무 복되며 행복한 삶이 될 수 있습니다. 똑 같은 범죄, 무슨 죄인지 모르지만 하나 알 수 있는 것은 왕의 마음과 달랐기에 그들을 향하여 진노하고 그들을 감옥에 넣었습니다. 왕의 마음과 다른 마음, 결과적으로 가 보면 술 맡은 관원장은 전직을 회복했고 떡 굽는 관원장은 매어 달려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전직을 회복했다는 것은 왕의 마음과 같아졌다는 것이고 죽임을 당하였다는 것은 여전히 그 마음이 왕의 마음과 달랐다는 것입니다. 무슨 잘못이 아니라 마음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똑 같이 꿈을 꾸었습니다. 요셉의 해몽 속에 그 비밀이 담겨 있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이 꿈을 꾸었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이 그 꿈을 요셉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가 꿈에 보니 내 앞에 포도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에 세 가지가 있고 싹이 나서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었고 내 손에 바로의 잔이 있기로 내가 포도를 따서 그 즙을 바로의 잔에 짜서 그 잔을 바로의 손에 드렸노라 요셉이 그에게 이르되 그 해석이 이러하니 세 가지는 사흘이라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당신의 전직을 회복하리니 당신이 이왕에 술 맡은 자가 되었을 때에 하던것같이 바로의 잔을 그 손에 받들게 되리이다”(40:9~13)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술 맡은 관원장은 술에 대해서 박사가 되어야 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어느 술이 좋은 술인지, 포도주를 맛을 보면 좋은 지, 얼마나 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포도주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 맛을 알고 그 가치를 알 것입니다. 좋은 포도주는 수 백 만원에서 수 천 만원까지 하고 오래되어서 구하기 어려운 포도주는 부르는 것이 값입니다. 천차만별인 포도주, 술 맡은 관원장은 포도주의 향과 맛을 음미하면서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왕의 잔치에 포도주를 가지고 갈 때 최상의 포도주를 왕 앞에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바로는 취향이 참 특별합니다. 포도가 익었는데 포도를 짜면 이는 포도주가 아니라 포도즙입니다. 특별한 수고도, 노력도 아니었습니다. 반대로 떡 굽는 관원장도 술 맡은 관원장의 꿈 해몽이 길함을 보고 얼른 요셉에게 구합니다.

     

    떡 굽는 관원장이 그 해석이 길함을 보고 요셉에게 이르되 나도 꿈에 보니 흰떡 세 광주리가 내 머리에 있고 그 윗광주리에 바로를 위하여 만든 각종 구운 식물이 있는데 새들이 내 머리의 광주리에서 그것을 먹더라 요셉이 대답하여 가로되 그 해석은 이러하니 세 광주리는 사흘이라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끊고 당신을 나무에 달리니 새들이 당신의 고기를 뜯어 먹으리이다 하더니”(40:16~19)

     

    각종 구운 식물, 많은 수고와 노력이 들어가야 합니다. 수고하고 노력했는데 왜 저주를 받아야 합니까? 가인과 아벨의 제사, 에서와 야곱의 축복에서 누가 저주를 받습니까? 무엇인가 열심히 하고 저주를 받습니다. 수고하고 땀을 흘려 가지고 나간 땅의 열매, 열심히 뛰어다니면서 사냥을 하고 열심히 별미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아벨과 야곱은 수고 없이 그들이 축복을 받는 것을 봅니다. 율법 아래 있는 자는 저주 아래 있다고 신약에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행위 아래 있는 자들, 인간은 범죄를 하고 난 이후에 종의 멍에를 메어서 잘하면 뿌듯하고 잘못하면 불편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끊임없이 행위에 속한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성경은 율법에 속한 자들, 행위에 속한 자들은 한번도 복을 받지 못하고 저주를 받았습니다. 창세기 40장은 복음적으로 연결해 놓은 이야기는 잘 알 것입니다. 성찬식 때 포도주와 떡을 대합니다. 포도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며 떡은 예수 그리스도의 찢기신 몸을 의미합니다. 뭔가 부족해서 구원을 못 받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열심과 수고를 예수 그리스도 위에 올려놓았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그렇기에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인간의 수고, 열심, 행위를 제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믿음만으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성경 구석구석에 하나님이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구원의 그림자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흰 떡 세 광주리 위에 각종 구운 식물이 있는데 새들이 와서 그것을 먹었다고 합니다. 씨 뿌리는 비유, 길 가에 씨를 뿌리매 새들이 와서 먹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그 뜻을 해석해 주시면서 악한 자, 사단이 먹고 빼앗아 갔다 합니다. 복음적인 뿐만 아니라 마음을 꺾는 부분에 이 부분을 연결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왕의 진노, 둘 다 잘못을 해서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잘못했다는 것은 둘 다 가지고 있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은 이것만을 깨달은 것이 아니라 왕의 마음을 받아들입니다. 그 마음을 받아들여서 왕의 마음과 하나가 됩니다. 그렇게 왕의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이것이 마음을 꺾은 사람입니다. 떡 굽는 관원장, 자기 마음을 버리고 감옥에 왔지만 왕의 마음을 받아들여서 하나가 되지 않으니까 왕을 섬기는데 또 다시 자기 마음과 기준으로 섬기고 자기가 왕을 기쁘게 하려 합니다. 왕이 진노하는 것, 흰 떡 세 광주리에 각종 구운 식물로 인해 다시 감옥에 넣는 것이 아니라 죽이라 명합니다.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끊고 당신을 나무에 달리니 새들이 당신의 고기를 뜯어 먹으리이다 하더니 제 삼일은 바로의 탄일이라 바로가 모든 신하를 위하여 잔치할 때에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으로 머리를 그 신하 중에 들게 하니라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은 전직을 회복하매 그가 잔을 바로의 손에 받들어 드렸고 떡 굽는 관원장은 매달리니 요셉이 그들에게 해석함과 같이 되었으나”(40:19~22)

     

    떡 굽는 관원장에게 준 기회, 결국 그는 왕의 마음을 모른 체 그 기회를 잃어버리고 다시 감옥에 간 것이 아니라 죽임을 당합니다. 각종 좋은 포도주를 원하였지만 왕은 포도즙을 원하였습니다. 좋은 포도주를 왕의 잔에 채워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왕이 원하는 포도즙, 좋은 포도주를 구하려면 어렵지만 포도만 있으면 되는 일, 얼마나 쉽습니까?

     

    지난번에 피지 장관님이 오셨을 때 박목사님이 한국 사람들은 마누라보다 김치를 더 좋아한다고 하였습니다. 마누라 없이 사는 사람은 많이 있어도 김치 없이 사는 사람은 없다고 하는데 맞는 말씀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김치를 좋아합니까? 묵은지, 겉절이?. 부인들 가운데 남편이 겉절이나 갓 담은 김치를 좋아하는 사람은 엄청 힘들어 합니다. 저는 묵은 지, 쉰 김치를 좋아합니다. 바로가 포도즙을 원하면 그것으로 대접을 하면 되는데 자기 마음을 따라 좋은 것으로 섬기려 했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의 마음, 그 악함과 어리석음을 빼어 냈습니다. 왕이 원하는 포도즙, 아무리 가치가 없어도 왕이 원하는 것을 가지고 나가면서 마음이 꺾이고 자기 마음이 버려지고 왕의 마음을 받아들여 하나가 된 모습을 보면서 왕이 그의 전직을 회복해 줍니다. 그러나 떡 굽는 관원장은 여전히 자기의 잘한 모습으로 왕 앞에 나아가려 했습니다. 신앙과 연결해 보면 하나님은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고 하셨습니다. 로마서 4장의 말씀에 하나님은 일하는 자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일을 아니할찌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를 의롭게 여기셨습니다.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율법대로 살려 합니다. 마치 떡 굽는 관원장처럼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구원의 관한 부분뿐만 아니라 신앙에 관해서도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이 떡 굽는 관원장처럼 살아갑니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딤전1:12)

     

    내가 충성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충성되이 여기시기에 이를 믿으면 하나님은 충성된 자라 합니다. 행위 가운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충성된 삶을 살지 못했지만 하나님이 충성되이 여기시기에 이를 믿으면 나는 충성된 자입니다. 굿뉴스코 단원들이 단기 선교사로 활동하고 마음을 써서 일을 하고 온 사람들이 있고 농땡이 피면서 놀다 온 학생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돌아와서 또 부류로 나누어집니다. 믿음을 가진 자와 믿음을 가지지 못한 사람, 꼭 충성된 삶을 살지 못하여도 믿음을 가지니까 하나님이 충성되이 여깁니다. 일반인이 생각할 때 조각이라는 것은 돌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조각가는 불필요한 것을 제하는 일이 조각이라 합니다. 미켈란젤로, 한 소녀의 질문에 바위 속에 감추어진 천사를 꺼내려 한다고 합니다. 그 조각상이 다비드 상입니다. 일반인이 볼 때는 돌이고 그것을 깎아서 조각상을 만든다고 생각하지만 조각가의 눈에는 이미 그 안에 천사가 들어 있고 그 불필요한 것을 제하는 일을 합니다. 우리는 이미 영적인 사람이기에 불필요한 것을 제해야 합니다. 윤두서, 조선 시대의 시인이었습니다. 옥에 흙이 묻어 길 가에 버려지매 가는 이, 오는 이 다 흙으로 여겨, 그렇다고 옥이 흙이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 중에 육신적인 사람, 옥에 흙이 묻은 사람, 우리는 이미 영적으로 신령한 사람인데 육이 묻어 있고 덮여 있을 뿐입니다. 육을 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내 영을 덮고 있는 육을 제하면 영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심홍섭 전도사입니다. 매일 소주 6병을 먹으면서 알코올 중독자, 술 주정뱅이로 살았는데 어느 날 흙을 제하니까 옥으로 나타났습니다. 변화라는 것이 흙을 옥으로 바꾸어야 하는 것이 아니고 이미 옥이고 신령한 영이 있기에 흙을 제하듯이 육을 제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꺾는 것이 제하는 일입니다. 내 생각을 꺾고, 내 판단을 꺾으면 육이 제해지고 영이 나타나서 영적인 사람으로 나타납니다.

     

    떡 굽는 관원장, 자기 생각을 꺾었다면, 왕의 마음을 받아들였다면 흰 떡 세 광주리를 들고 나아가면서 각종 구운 식물을 제하였을 것입니다. 왕이 원하는 것만을 들고 나가야 합니다. 자기 마음을 버리고 왕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왕의 마음과 하나가 되는 것을 마음 꺾었다고 합니다. 왕의 마음을 받아들이니까 자기의 마음을 버리고 나아갔습니다. 각종 구운 식물을 얹어 놓고 가는 것이 충성된 삶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로 충성되이 여겨서 직분을 맡기시고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지혜와 총명을 주셨기에 충성된 삶을 살았다고 사도 바울이 말합니다. 오늘 여러분의 마음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여러분의 생각을 빼어 내고 하나님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그 마음과 하나가 되어서 충성되이 여겨서 직분을 맡기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담금질, 급냉을 시켰을 때 쇠가 강해지는 것처럼 빨리 인정을 해야 합니다. 요셉이 그러한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면 어디가서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마음을 꺾으면 형들에게 억울하게 팔려 노예 생활을 해도 평생을 살 수 있고, 감옥에서도 평생을 살 수 있습니다. 억울하고, 분해서 못 살겠다 하는 사람은 마음을 꺾지 않고 살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억울하고 원통하고 분해서 못 살겠다 하지 않습니다. 그가 노예로, 감옥에서도 평생을 살 수 있는 것은 마음을 꺾고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 하나님과 동행하는 복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나아만 장군의 계집 종, 마음이 꺾인 자의 모습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마음에 하나님은 똑 같이 범죄를 했어도 왕의 마음으로 살아갈 때에 하나님은 그를 축복하고 모든 것을 다 주시는 것처럼 여러분의 마음을 버릴 뿐 만 아니라 술 맡은 관원장처럼 하나님의 마음을 받아들여 하나가 될 때에 찾아오는 그 복이 여러분의 마음에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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