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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성옥 | 2018.06.01 14:32 | 조회 3772

    2018527일 주일오전말씀

    말씀: 4: 1~13

     

    참된 안식에 들어가서

     

    우리 선교회에서 1986년도에 부산 무궁화관에서 대전도 집회를 했습니다. 그전까지는 교회 별로 부흥성회, 집회를 하다가 처음으로 큰 홀을 빌려서 대전도 집회를 했는데 복음의 새로운 장이 열렸습니다. 저도 그 현장에 있었습니다. 85년도에 구원을 받고 86년도에 무궁화관 집회에 참석하여 말씀을 들었습니다. 말씀을 마치고 죄 사함을 받기 원하는 사람 손을 들고 일어나라고 했습니다. 당시에 강당의 의자가 접이식 의자였는데 한 사람이 일어날 때마다 자동으로 접히면서 소리가 나는데 여기저기서 두두두두, 의자 접히는 소리가 났기에 눈을 뜨고 보니까 많은 분들, 수백 명의 사람들이 손을 들고 일어났습니다. 한 손에는 성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교회를 다녀보지 않았기 때문에 성경에 대해서, 하나님과 교회에 대해서 잘 몰랐습니다. 구원을 받고도 집 앞에 있는 교회에 나가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 때 내가 받은 구원이 이렇게 귀한 것이구나, 성경 책을 들고 일어나는 분들, 나름대로 교회를 열심히 다니던 분들이라 여겨졌습니다. 저는 교회도 안 다녔고 처음 만난 교회가 복음이 있고 죄 사함을 받도록 인도해 주는 교회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집회에 참석을 해서 수 많은 사람들이 죄 사함을 받지 못해서 죄 사함을 받고 싶다고 손을 들고 일어나는 것을 보며 내가 받은 구원이 정말 이렇게 귀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 세계를 다니며 평신도만이 아니라 목회자들과 만나도 우리가 알고 있는 복음의 진리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부 다 행위와 율법 아래 있는 것을 봅니다. 인간의 열심과 행위에 매여 있지 거듭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믿음으로 사는 삶을 배우지 못한 것을 보며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가장 불쌍한 나라의 사람들, 한국 사람들이라 볼 수 있습니다. 해외 목회자 분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기 주장을 펼치다가도 말씀을 보며 말씀이 맞다고, 거듭나지 못했다고, 어떻게 거듭나야 하느냐며 듣고 배우려고 합니다. 복음의 말씀을 듣고 이제 내가 거듭났다고, 이제 참된 죄 사함을 받았다고 솔직히 말합니다. 그런데 한국교회만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이번에도 많은 목사님들이 집회에 참석을 했습니다. CLF 모임을 해 보니까 공식적인 모임에는 오기를 꺼려 했습니다. 혹시라도 알려지면 은퇴한 목사님도 후원이 끊어지기 때문에 오기를 두려워하는데 이번에 다른 교단의 많은 목사님들이 오셨습니다. 전에는 박옥수 목사님을 배척하고 비난을 하다가 목사님 재판 이후에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사람들이 자기 교단의 목회자들이 얼마나 부패했는지, 자기 교단의 지도부가 얼마나 부패하고 썩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그 목회자들이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으면서 박옥수 목사님도 당연히 유죄 판결을 받으리라 생각했는데 완전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잘못이 있어서 재판을 받은 것이 아니라 억울하게 모함을 받았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박목사님의 말씀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인천에 있는 수 백 군데 교회에 주간 기쁜소식지를 우편으로 보내고 있는데 한 분도 왜 보내느냐고 항의하지 않습니다. 선교회의 소식을 읽으면 매주 새로운 복음의 역사가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목사님의 말씀에 관심을 가지고 읽어 보면서 지금까지 자기가 알고 있는 성경과 다르게 믿음의 말씀을 접하면서 직접 목사님의 메시지를 들어 보고 싶어서 홈페이지에 와서 주일 낮 설교를 듣는 분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한국 교계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 고 있습니다.

    한 목사님이 참석을 하셔서 목사라는 것을 밝히지 않고 개인 상담을 했습니다. 나중에 자신이 목회자라고 밝혔습니다. 개척을 하다 실패하고, 물질적으로 손해를 보고 어려움도 많이 겪었는데 마음에 풀리지 않는 진리에 대해서 찾고 다녔습니다. 늘 고민이었는데 같은 노회의 목사님 한 분이 박옥수 목사님에 대해서 소개를 해 주었습니다. 그 교회는 어떻게 알았느냐고 묻자 자기가 아는 다른 목사님이 소개해주면서 전해 준 메시지가 있었다고 합니다. 말씀이 좋아서 녹음한 것을 들려 주었습니다. 들어보니까 성경의 정확한 진리에 대해 말씀하는 것을 보며 성경을 연구하고 있다가 박목사님의 말씀에 힌트를 얻었다고 합니다. 첫날은 그렇게 말씀하시다가 둘째 날은 건너 들었던 말씀도 저희에게서 배운 말씀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4:12)

     

    영적인 세계와 혼적인 세계, 많은 사람들이 영과 혼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영적인 것과 육신적인 것은 구분을 하는데 영과 혼은 추구하는 방향이 같아 보이니까 혼돈을 합니다. 그런데 영과 혼을 찔러 쪼개는 이유, 영적인 세계에 혼적인 것이 들어가면 타락하게 되어 있습니다. 다시 율법의 행위 가운데 들어가고 타락하기 때문에 영과 혼을 정확하게 찔러 쪼개어야 합니다. 식육점에 고기를 사러 가면 비계 덩어리를 자르고 달라 할 때가 있습니다. 살과 비계를 확실하게 분리해주는 것을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아프리카에서 고기를 팔 때 부위 별로 정확하게 파는 것이 아니라 대충 잘라서 줍니다. 러시아는 더 심한데 오는 순서대로 고기를 잘라 주어서 복불복입니다. 아프리카에서는 고기를 팔 때 무게가 많이 나가게 해야 하니까 고기를 저울에 얹을 때 손으로 잡아 당깁니다. 영적인 세계는 영과 혼을 정확하게 찔러 쪼개지 않으면 사람들은 혼적인 것을 좋아합니다. 혼에는 감정이 속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이 그 쪽으로 흘러 갑니다. 이것을 이용하는 것이 종교입니다. 참된 신앙은 정확하게 영적 세계에 들어가서 믿음으로 사는 삶을 가르칩니다. 혼적인 세계를 추구했던 교회들은 다 타락하고 무너지는 것을 봅니다. 아프리카 케냐에 가면 수도 나이로비 시의 한 중심에 우르로파크라는 공원이 있습니다. 개발을 하려고 했는데 여성 단체가 싸워서 지켜 내었습니다. 지금도 공원이 있는데 공원에서 대형 집회를 했습니다. 전에는 몇만 명이 모여서 큰 집회가 되었는데 이제는 사람들이 모이지 않습니다. 예전에 몇 만명씩 모여서 한다고 하기에 제가 그 집회 방송하는 것을 눈여겨보았는데 몇 백 명 되지 않았습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감정적이고 혼적인 것을 좋아합니다. 처음에는 부흥되는 것처럼 보여도 믿음이 아니기 때문에 다 무너집니다.

     

    영적 세계, 영과 혼을 찔러 쪼개는 부분, 정확한 죄 사함을 받은 이후에 믿음으로 사는 삶에 대해 정확하게 인도를 해 줍니다. 영어를 빨리 배우기도 하고 늦게 배우기도 합니다. 인도의 한 자매가 통역을 합니다. 한국말을 하면 영어로 통역을 잘 하는데 한국 말을 어디서 배웠느냐고 하니까 한국에서 6개월 있으면서 배웠다고 합니다.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선교사님들이 영어 감각이 뛰어나서 통역을 잘한다고 했습니다. 언어 감각이 뛰어나다고 해서 한국 말 6개월을 배웠는데 통역을 한다?,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미얀마에 가면 한 형제님이 미얀마 말로 통역을 합니다. 나중에 그 비결을 알았습니다. 언어 감각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어순의 차이입니다. 한국말은 전 세계 언어하고 대부분 어순이 틀립니다. 한국말을 빨리 배우는 사람들, 한국말과 어순이 같은 사람들이 빨리 배웁니다. 미얀마 언어와 한국 말 언어의 어순이 같습니다. 인도의 자매는 한국말을 어떻게 그렇게 빨리 통역합니까? 엄연히 한국말과 영어는 어순이 다른데, 인도 사람들이 영어가 공용어이지만 자기들이 사용하는 부족어가 있는데 어순이 같습니다. 그래서 인도 사람들은 영어를 배우기가 어려워서 서민들 가운데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제가 처음에 인도에 갔을 때 말씀을 전하는데 아무래도 반응이 좋지 않아서 영어를 알아 듣느냐고 물었습니다. 삼중 통역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물었는데 다 알아듣는다 했습니다. 둘째 날이 지나서 다시 분류를 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일어나서 힌두어 쪽으로 갔습니다. 영어를 알아 듣기는 들어도 성경의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자기들이 편한 부족말로 들으니까 훨씬 알아듣기 편해졌습니다.

     

    살아오면서 그 마음 안에 언어의 어순이 같은 사람은 굉장히 빨리 배웁니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스페니쉬를 빨리 배웁니다. 이미 어순이 같아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교회를 다니든, 안 다니든 신앙의 순서가 행위 쪽에 가 있습니다. 영적 신앙을 하려면 다시 바꾸어야 합니다. 여러분 안에서 그 구조가 바꾸어지는데 있어서 복음을 깨달았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을 받고 난 이후에 신앙을 배우지 못하면 여전히 혼적인 신앙을 합니다. 마음에서 충만하게 일어나 가지만, 안 일어나면 주저앉아 버리고또 어떤 사람은 자기 열심에 취해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육에 머물러 육으로 살아갑니다. 마음의 구조가 바뀌기까지 영적 말씀을 계속 들으면서 바꾸어 주어야 합니다. 언어를 배우는데 있어서 어순이 같으면 그 나라 말을 빨리 배우는 것이 이미 50%는 배웠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영적인 말씀을 계속 듣고 바뀐 사람이 있고 바꾸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 10, 20년이 지나도 그 순서가 바뀌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신앙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교회를 시들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구원받은 분들이 이를 배우면 신앙이 굉장히 복되게 될 수 있습니다. 마음에 말씀을 듣다 보면 내 마음이 행위 가운데 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자주 자주 말씀을 들으면서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내 마음을 옮깁니다. 내 마음을 옮겨서 신앙의 구조가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바뀌었을 때 신앙이 굉장히 쉬워집니다. 앞으로 여러분 신앙에 중요한 부분, 어떻게 다른 것인지 구분을 짓고 어떤 길을 가야 하는 지 인도를 해 주려 합니다.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았든지 이 부분을 정확하게 발견하고 배우게 되면 여러분 인생에 놀라운 변화가 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 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4:1~2)

     

    유익이 되고, 되지 못하는 차이,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했느냐, 말씀을 행위로 받아서 말씀대로 내가 살려고 노력했다면 결국 실패하게 됩니다.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하면 그 사람은 안식에 들어갑니다.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4:3)

     

    똑같이 말씀을 들었는데 들은 말씀이 유익되는 사람이 있고 유익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유익되지 못하는 사람은 말씀대로 내가 행하고, 살려고, 노력을 하려고 합니다. 믿음을 화합한 것이 아니라 행위에 화합한 사람이기에 안식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두 가지 길, 행위의 길과 믿음의 길이 있습니다.

    그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4:35)

     

    예수님이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놓고 히브리서 말씀과 연관을 지어 보면 듣는 자가 믿음으로 화합하느냐, 아니면 그 말씀을 듣고 내가 하려고 하느냐 입니다. 마가복음 4장에서 제자들은 믿음으로 화합하지 못했기에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믿음이 아닌 행위로 받았습니다. 영적인 것은 믿음으로 화합하는 것이며 혼적인 것은 그 말씀을 받아 내가 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저 편으로 건너가고자 노를 젓고 있습니다. 어부들에게 노를 젓는 것은 그다지 힘든 일이 아닙니다. 그러다가 풍랑을 만납니다. 죽을힘을 다해서 노를 저었습니다. 배에 물이 들어와서 물을 퍼내고 죽을 지경까지 왔습니다. 힘을 다하여, 온 마음을 다하여, 목숨을 다하여 풍랑을 이겨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듣는 자가 믿음으로 화합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오늘 날 저희가 내 음성을 들을 때에 믿음으로 화합하면 안식에 들어가고 그렇지 못하면 안식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저 편으로 건너가자고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은 그 말씀대로 살려고 열심히 노력을 했고 그 삶에 안식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혼적인 신앙이며 영적인 신앙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셨고 구원을 받고 난 이후에 배워야 할 중요한 부분입니다. 여러분들도 이 부분을 배워서 명확하게 선이 그어진 사람과 그렇지 아니한 사람, 신앙을 하려고 할 때마다 자기가 그 말씀대로, 예수님의 뜻대로 자기가 하려고 하지 믿음에 화합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셨을 때 제자들은 믿음으로 말씀에 화합하지 않았습니다.

     

    저희가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부딪혀 배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4:36~38)

     

    제자들은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말씀을 듣는 자가 믿음으로 화합하면 안식에 들어가고 믿음으로 화합하지 못하면 안식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셨습니다. 우리라는 말에는 제자들이 주인이 아니라 그 주체, 그 주어는 예수님입니다.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셨을 때 우리가 있고 그 안에 전능한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주님이 우리를 저편으로 건너가게 해 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주의 말씀을 들을 때 듣는 자가 믿음으로 화합한다는 것은 주님의 뜻이고 주님이 말씀하셨으면 저편으로 건너가게 해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주님이 저 편으로 건너가게 해 주실 것을 믿었다면 제자들은 안식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고물에서 누워 주무실 때 제자들이 노를 젓고 풍랑과 싸워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도 예수님과 같이 잠을 자야 했습니다. 주님이 저편으로 건너가자 말씀하셨으면, 그 말씀을 믿으면, 말씀의 능력에 의해서 천지를 창조하신 말씀의 능력으로 저편으로 건너가게 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해야 할 것은 그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자신이 저편으로 건너가려고 했기에 실패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자들이 저편으로 건너가자 했을 때 열심히 노를 저었습니다. 사람들이 볼 때는 충성스러운 것처럼 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으니까 내가 예수님께 충성된 삶을 산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내가 하려고 하면 실패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주님은 혼적인 것을 빼어 냅니다. 그래서 안되게 하고 실패하게 합니다. 믿음의 세계로 옮기기 위함입니다.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다 주를 버릴찌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베드로가 가로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찌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26:31~35)

     

    영입니까? 혼입니까? 내가 죽어도 부인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세 번씩이나 노력하고, 노력하고, 노력합니다. 결국 예수님을 저주하고 부인했습니다.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고 신앙의 실패를 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에 내가 주를 부인하지 않고, 주님 앞에 충성된 삶을 살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 길은 반드시 실패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신앙 가운데 철저하게 혼적인 것을 제합니다. 영적인 세계, 믿음의 세계입니다. 주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 말씀의 판단을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주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 말씀의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 말씀대로 일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혼적인 것에 인간의 각오와 충성, 열심이 들어갑니다. 이것이 좋은 것이라 여깁니다. 그렇게 주의 말씀에 충성하고 말씀을 따르려고 노력을 하는데 결국 실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안식에 들어가지 못할 뿐더러 그 신앙은 실패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날 한국 교회에서 서로 사랑하라 가르칩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하고 오른 뺨을 치면 왼 뺨을 대라 합니다. 그런데 한국 교단들이 서로 사랑합니까? 비판하지 말고 비난하지 말라 했는데 한국 교단이 그러합니까? 원수도 사랑하라 하는데 자기 교단과 다르면, 자기 교파와 다르면 비난하고 원수로 여깁니다. 다 무너져 버립니다. 베드로가 죽어도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다 했을 때 주님은 그 마음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마치 헌신짝 버리듯이 버리는 것처럼 베드로의 충성된 마음, 진실된 마음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나는 부인하고 버릴 것이라 그 생각을 받아주지 않습니다. 인간에게서 나온 도금한 반지처럼 얼마 지나지 않으면 드러나고 벗겨질 것입니다. 여러분 방문 손잡이 문고리가 어떻게 생겼으며 어떤 색인지 기억이 납니까? 고장이 나서 바꿀 것 같으면 화려하고 빛나는 것으로 바꾸지 마십시오. 차리라 은 색깔이 나는 스텐레이스 재질로 사십시오. 그것이 변하지 않고 제일 오래 갑니다. 우선은 좋아 보이지만, 인간의 열심, 인간의 충성, 다 도금한 반지처럼 벗겨집니다. 네가 지금 충성된 마음으로 나를 사랑한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합니다. 주님은 혼적인 것이 아닌 영적인 세계로 베드로를 주님이 이끌어 주십니다. 베드로의 의지와 각오, 열심이 다 벗겨지고 난 후에 예수님은 주의 일을 맡기며 내 양을 먹이라 하시고 치라 합니다.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21:15~17)

     

    예수님을 부인하고 고기 잡으러 간 베드로, 예수님이 그에게 나타나셔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 치라, 먹이라 하시며 주의 일을 맡기셨습니다. 죽어도 주를 부인하지 않겠다는 베드로에게 맡기신 것이 아니라 자기가 다 무너지고 실패한 베드로에게 주의 일을 맡기셨습니다. 자기의 열심과 수고로 주를 섬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베드로, 믿음의 세계로 들어간 베드로를 들어서 쓸 수 있었습니다. 처음 마태복음 26장에서의 베드로처럼, 내가 주를 사랑하는 것은 혼적인 것입니다. 내가 주를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혼적이며, 감정적인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주를 사랑한다고 합니다.

     

    처음 구원을 받고 나서 내가 주님을 따르려고 했습니다. 내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주를 위하여 충성된 삶을 살려고 했습니다. 죽어도 주를 부인하지 않고 죽는데도, 감옥에도 가겠다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저주하고 부인하고 물고기 잡으러 갔습니다. 그 베드로를 예수님이 찾아와서 처음과 같이, 베드로의 모습과 상관 없이 베드로에게 똑같이 역사하셨습니다. 주님의 뜻과 섭리에 의해서 주님을 떠난 베드로에게 찾아오셔서 베드로를 만들어 가셨습니다. 나는 주님을 떠났지만 처음과 동일하게, 진실하게 베드로에게 주님이 역사를 하셨습니다. 내 모습과 상관 없이, 내 행위와 상관없이 주의 말씀을 따라서 발을 내딛으면 주님은 처음과 동일하게 베드로를 사랑하시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탕자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사랑을 발견했습니다. 탕자는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먼 나라에 가서 허랑방탕하며 재산을 다 허비했습니다. 이런 내가 아버지에게로 돌아가면 아버지가 뭐라 할까? 먼 나라에서 아버지에게 돌아가니까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측은히 여기 달려와 입을 맞추었습니다.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아버지의 아들이라 감당치 못하겠다는 탕자에게 아버지는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고 살찐 송아지를 잡습니다. 내가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말은 내 각오나 의지가 아닙니다. 이런 아들이 돌아왔는데도 처음과 동일하게 받아주시는 아버지를 사랑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베드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과 동일하게 베드로를 사랑하시는 주님, 역사하시는 주님을 만나면서 내가 어떻게 주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자, 충성하자는 것은 혼적인 신앙입니다. 영적인 세계는 내가 주를 부인하지 않을 수 있고 내가 충성되게 살 수 잇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이 해 주실 것을 믿는 믿음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고 하셨을 때 마음이 영적인 길로 나 있는 사람은 주님이 저편으로 건너가게 해 주실 것을 믿는 믿음의 길을 갑니다. 구원을 받고 처음에는 내 마음에 행위의 길이 나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행위로 받았습니다. 주님이 하게 해 주실 것을 믿기보다는 내가 하려고 했습니다. 구원 받고 난 이후에 성경을 많이 읽으라 하면 전부 다 행위로 받습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서 말씀을 배우며 주님이 해 주실 것을 믿는 사람으로 만들어져 갑니다. 모든 신앙이 그렇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뜻이면 주님이 해 주실 것을 믿는 사람은 되게 됩니다.

     

    교회를 나오는 것을 예로 들겠습니다. 행위로 받는 사람은 내가 신앙생활을 잘하려고, 말씀을 많이 들으려고 하다가 안 되는 형편과 어려운 형편이 있으면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고 더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다시는 부인하지 않으려고, 죽어도 부인하지 않으려고 세 번째 부인할 때까지 쫓겨 갑니다. 말씀을 깨닫기 전까지 가다가다 결국 물고기를 잡으러 세상으로 갑니다. 행위 아래로 들어간 사람은 횟수의 차이입니다.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똑같고 결국 실패하는 것은 똑같습니다. 영의 길을 가는 것이 주님의 뜻이면 주님이 하게 해 주실 것을 믿으라 합니다. 교회를 잘 나오고 말씀을 듣는 것이 중요하다면 주님이 그렇게 하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주님이 지혜와 마음을 주시고 이끌어 주시는 세계가 있습니다. 저는 구원을 받고 나서 교회 가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평소 교회를 안 다녀 보았기 때문에 교회를 가는 것이 어색하고 교회 가도 아는 사람이 없고, 아는 사람은 만들면 아는 사람이 생깁니다. 그 때는 교회가 작을 때였는데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문제는 교회에 제 또래도 없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이었는데 남학생이 없고 여학생만 있었습니다. 기도가 되었습니다. 동기가 한 명 있었으면 좋겠는데, 주일 낮 예배만 보고 학생회에 참석하지 않고 도망을 갔습니다. 2부 시간을 가지고 가라는 것을 계속 핑계를 대고 갔습니다. 매주마다 붙잡는데 한 달쯤 핑계를 대니까 핑계 댈 것이 없고 미안하기도 하고 2부 시간 앉아 있는데 그 자리가 불편했습니다. 12월 달에 구원을 받았기에 2월 달에 졸업을 하는데 수도 전기 공고에 다니던 구원 받은 형제들이 고향으로 내려왔습니다. 중학교 3년 동안 친구였는데 그 친구는 서울에 가서 고등학교를 나왔고 저는 울산에 계속해서 있었는데 중학교 동창들이 구원을 받아서 고향에 내려와 같이 신앙을 하게 되었습니다. 전도할 줄도 모르고 전도하라고 해도 안 할 사람이었었는데 서울에 가서 구원 받고 온 형제들이 전도를 가자고, 성경을 찾는데 너무 말씀을 많이 알고 성경 구절을 정말 잘 찾아내었습니다. 따라 다니면서 옆에서 구경을 했습니다. 제가 기도를 하니까 친구들을 보내 주시고, 한 동안 교회 가기도 싫을 때가 많았고 쉬고 싶다는 생각에 쉴 때도 있었는데 피곤하지만 교회 갈 때와 비교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오늘 교회에 가기 싫은데 교회를 갔을 때 하나님이 어김없이 제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오늘 이 말씀을 듣게 하려고 나를 오게 하셨구나 마음이 들었습니다. 교회 가기 싫어도 교회를 가서 말씀을 들으면 교회 오기 너무 잘했다는 마음이 생겨서 교회 가기 싫은 마음을 이기고 가게 되었습니다. 내 의지와 각오가 아닌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깨달음이 내가 가기 싫고 쉬고 싶어도 이기고 갈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나는 할 수 없는 사람인데 하나님이 하나하나 인도해 주시는 것을 봅니다.

     

    복음 전도자의 길을 가는 것도 그렇습니다. 저는 죽어도 복음 전도자의 길을 갈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희 형제간이 14녀였고 제가 아버지를 섬겨야 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제 각오와 결심으로 이 길을 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길에도 하나님의 손길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제가 부모님을 모셔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 내가 옆에 있다고 해서 부모님을 모실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을 하나님이 보여 주었습니다. 어느 날 학교를 다녀왔는데 어머니가 쓰러져 누워 계셨습니다. 어떠냐고 물으니 괜찮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졌습니다. ‘내가 부모님을 모셔야 한다고 했지? 지금 네가 옆에 있는데 네가 해 줄 것이 무엇이 있느냐고 제 마음에 들렸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 모든 것을 더해 주시겠다는 말씀이 저를 선교학교로 이끌어 주었습니다. “제가 복음을 위해 살겠습니다. 주님이 모든 것을 더해 주시는지, 그렇지 않은 지 보겠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정년퇴직을 하시고 대학교 앞에 하숙 하는 집을 사셨습니다. 하숙 치는 것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처음이다 보니 학생들의 요구 조건을 다 들어주고 생일잔치까지 해주니까 식구 밥 먹고 사는 것 외에 남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숙집을 뜯어 고쳐 분식점을 했습니다. 어머니는 늘 아프고, 아버지가 서빙을 하고, 그렇게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두고 대학교를 졸업한 내가 선교학교를 간다는 것이 마음이 편치 못했습니다. 마음을 정하고 선교학교를 가게 되었는데 재개발이 되면서 대학 후문 쪽에 2층 집을 사게 되었고 고생하지 않고 살아가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희 누님이 대전 이남권 아동복 총판을 했는데 어느 날 집에 가보면 새로운 것이 들어와 있어서 부족함 없이 하나님이 챙겨 주셨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겠다고 했는데 내가 모시는 것 이상으로 하나님이 더 복되게 하셨습니다. 내가 의지와 각오로 복음을 위해 살아야겠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도하시면서 믿음의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내 마음을 믿음 편으로 옮기는 것 말고는 없었습니다. 내 마음을 믿음 편에 옮기고 내 마음은 안식 가운데 들어갔습니다. 주님은 어김없이 그 말씀대로 일하시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대전도 집회 기간에 출판 기념회를 하면서 환영사를 하라고 하는데 무슨 이야기를 할까 싶었습니다. 창세기는 성경에만 기록된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간증으로 기록된 말씀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이 해와 달과 또 별을 만드셨는데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둠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암담한 상황 가운데 들어가도 말씀의 약속이 있기에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둠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셨던 하나님의 말씀, 처음에 그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안 될 것처럼 보인 것에 마음을 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짜장면, 짬뽕 말씀 하나가 있어서 마음 바꾸는 것이 너무 쉽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마음을 얼른 바꾸었습니다. 내 앞에 태산과 같은 문제를 하나님이 옮기시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내 앞에 가장 큰 산, 아버지가 구원 받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를 수양회에 초청을 했을 때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오는데 좌절이 되지 않고 절망이 되지 않았습니다. 약속의 별이 있어서 칠흑과 같은 어둠이 있어도 별이 있으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순간 아버지의 마음을 바꾸셨고 수양회 오셔서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으셨습니다. 올 해 나이가 90인데도 혼자서 버스를 타고 교회를 다니십니다. 하나님 보시기 좋았더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안 좋은 것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것으로 바꾸셨다는 박 목사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일을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에 매달려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구경하며 살아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상여를 멜 때 키 큰 사람 중간에 있으면 키 작은 사람이 매달려 가듯이 하나님의 섭리에 매달려서 구경하면서 살아오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구경하며 사는 것입니다. 내가 일하고, 내가 신앙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4:9~10)

     

    내가 저 편으로 건너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저편으로 건너가게 하시는 것을 믿는 것이고 내가 부인하지 않으려고 하는 삶이 충성된 것처럼 보여도 자기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잘못된 신앙이며 실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안식에 들어간 자는 말씀을 들을 때에 믿음으로 화합하는 자는 안식에 들어가게 되어 있고 안식에 들어간 자는 쉬게 됩니다. 여러분 차가 있습니까? 자동차가 있습니까? 내 차이니까 내가 운전을 합니다. 가난해서 그렇습니다. 부자들은 자기 차를 자기가 운전하지 않고 운전수를 따로 둡니다. 부자들이, 회장들이 자기 차를 자기가 운전하지 않습니다. 내 차라서 내가 운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운전사가 운전을 해 줍니다. 참된 신앙은 내 신앙을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쉬는 것입니다. 내 신앙이니까 내가 하려고 애를 써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자기 일을 쉬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면 누가 합니까? 주님이 하실 것을 믿고 자기 일을 쉬는 것입니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가는 자는 하나님 자기 일을 쉬시는 것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1:31~2:2)

     

    여러분의 삶 속에 내가 만족한다고 충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위치 가운데로 갈 때까지 주님이 일을 하시고 주님이 안식합니다. ‘그럭저럭 괜찮네’, 하나님이 일을 그만두지 않습니다. 우리가 보기에 괜찮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모양까지 하나님이 일을 하시고 안식하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멈추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는 말씀이 이루기까지 멈추지 않습니다. 이런 하나님이 계시는데 내가 일을 합니까?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할 만큼 주님이 베드로를 만들어 갑니다. 그렇게 베드로가 순교를 당할만큼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삶으로 그를 이끌어 가셨습니다. 내 신앙을 내가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에 믿음으로 화합하는 것입니다. 내가 해야겠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해 주실 믿음의 세계에 들어가서 나는 안식하고 주님이 보시기에 좋은 모양으로 만들어 가기 까지 나를 붙들고, 나를 이끌고, 나를 만들고 있기에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삶 속에 믿음의 삶을 배우며 히브리서 4장의 말씀처럼 참된 안식에 들어가서 열심히 하려고 해도 안 되었던 것을 믿으니까 내 삶도 복되게 하시고 내 인생도 복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와 능력을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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