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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성옥 | 2018.06.12 20:17 | 조회 3793

    201863일 주일오전말씀

    말씀: 출애굽기38:18

     

    믿음의 삶에 날개를 다는 번제단 신앙과 물두멍 신앙

     

    오늘 여러분들에게 말씀 전할 주제는 번제단 신앙과 물두멍 신앙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구원을 받고 난 이후 번제단 신앙과 물두멍 신앙을 배워야 구원을 받고 난 이후에 자유롭게 신앙을 할 수 있고 주님을 섬길 수 있는데 그것이 어떤 것인지 한 부분, 한 부분 자세히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이 시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에 어떻게 전할 것인 것 할 일들이 정말 많습니다. 오늘 저녁에 밤 비행기로 인도의 비제와나 지역에 목회자 모임을 가지러 갑니다. 최근에는 전 세계 많은 목회자들이 CLF에서 복음을 통해 많은 변화를 받고 있는데 작년 한 해만 24,800명의 목회자들이 함께 했습니다. 작년 3월에 뉴욕에서, 10월에 홍콩에서 그리고 월드 캠프를 하면서 각 나라에서 CLF 모임을 가졌습니다. 이번에 인도에서 500명 가량이 초교 파 모임으로 CLF모임을 가지게 되는데 그보다 더 기대가 되는 것은 청년 선교단을 창립하고 설립해서 인도의 많은 젊은 이들을 가르쳐서 복음을 전하는 선교 일꾼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지난 금요일부터 3일 동안 대덕에서 굿뉴스코 훈련을 하고 있는데 전 세계 100개 지부에서 요청하는 필요한 인원만큼을 못 보내고 있는데 부족한 인원을 인도 젊은이들을 훈련시켜서 한국에도 데려오고 해외 선교사로 파송도 해서 장기 선교사로 보내면 좋겠다는 소망이 생겼습니다. 인도가 영국의 지배를 받으면서 전 세계에 인도 사람들을 보내어 일을 시키고 나라를 지배 했습니다. 우리는 노동력이 아니라 전 세계에 선교사로 보내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기에 발을 내딛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한 만가지를 다 준비해 놓으신 것을 봅니다. 믿음이 없으면 일이 갖추어지고 난 다음 발을 내딛지만 믿음을 있으면 하나님의 뜻이기에 종 앞에 나아가서 물어 보고 조율을 해 봅니다. 인도는 남쪽에 기독교인들이 많이 있고 위로는 힌두교들이 대부분입니다. 힌두 시에 기독교인들이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선교라 생각하는데 이들의 방향을 돌이켜 전 세계로 보내어 복음의 일꾼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500, 5000명도 수용할 수 있는 많은 복음의 일들이 있습니다. 발을 내딛고 나아가보면 늘 하나님이 새로운 소망과 기쁨을 주십니다. 옛날 이야기 가운데 맹꽁이와 두꺼비가 있었습니다. 두꺼비가 벌 집 앞에서 앉아 벌이 나오면 낼름 혀를 내밀어 삼키는데 벌의 독 때문에 움찔합니다. 맹꽁이가 물었습니다. “벌을 잡으면 벌이 쏘는데 왜 잡아 먹습니까?” “야이, 맹꽁아 톡톡 쏘는 맛으로 잡아 먹는 거야.”

     

    다음 주에는 볼리비아에 가야 합니다. 해발 4000미터가 넘는 도시입니다. 한 번은 공항을 경유하면서 들렀는데 숨을 쉬기가 어려웠습니다. 제 아내가 그곳에 왜 가느냐고 하는데 어렵기에 가야 하고, 열악한 환경이기 때문에 가는 것이라 했습니다. 인도는 월드 캠프를 못 하고 있습니다. 인도 중앙 정부가 막강한 힌두 정부이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을 추방하고 NGO 단체를 추방하고 있으며 그라시아스 합창단의 공연도 못 하게 하고 있습니다. 방향을 돌려 CLF를 하는데 목회자 500명이 모인다는 것은 월드캠프 5000명이 모이는 것보다 큰 역사입니다.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이들 교회의 젊은이들을 훈련시켜 선교사로 만들어 준다고 했을 때 다들 환영을 했습니다. 지난 번 케냐에서 키통가 목사님, 탄자니아 대표되는 목사님이 오셨을 때 자기 나라에서 목회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는데 선교사를 보내는 것을 굉장히 어려워하면서 우리 선교회에서 어떻게 이렇게 많이 보내었냐고 물었습니다. 삼성 보다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곳이 우리 굿뉴스미션입니다. 100개 나라에 선교사님과 현지 목회자들을 합치면 1500명이 됩니다. 선교사를 보낸다는 것이 쉬운 일이고 너무 쉽게 보내고 있습니다. 이미 기반이 다 되어져 있습니다. 젊은 일꾼들을 길러서 전 세계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데 쓸 것이 너무 소망스럽고 목사님과 조율했을 때 목사님도 너무 기뻐하셨니다. 계획된 것이 아무 것이 없어도 창단식을 하고 믿음의 발을 내딛고 가면 하나님이 만가지로 돕게 되어 있습니다.

    과감하게 믿음의 발을 내딛고 가는 것을 사단이 가장 싫어하기에 하는 일이 있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메이게 만듭니다. 형편에, 자기 자신에 메여서 믿음의 발을 내딛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사단이 자기라는 올무에 묶어 놓고 담대히 나가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번제단 신앙과 물두멍 신앙에 대해서 알려 드리려고 합니다. 성막은 동쪽에 문이 있고 화려하게 장식이 되어져 있습니다. 홍색, 청색, 자색실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누구든지 문을 쉽게 찾을 수 있게 해 놓았습니다. 문을 통과하고 나면 불이 활활 타고 있는 것이 번제단이고 그 뒤에 물두멍이 있습니다. 오늘은 번제단과 물두멍 신앙에 대해서 알려드리겠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10:1)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10:9)

     

    예수님이 내가 문이라 하셨습니다. 성막의 안과 밖을 구분 짓는 것이 문이 있어서 들어갔느냐, 들어가지 않았느냐로 구분을 합니다.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왔느냐, 들어가지 않았느냐를 구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구원의 문을 통과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간 사람은,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8:1)

     

    구원의 문을 정확하게 통과한 사람은 정죄함이 없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예배당 안에 앉아 있을 수 있어도 예수님 안에 들어온 사람이 아닙니다. 죄사함을 받고 구원의 문을 통과하여 들어온 사람은 정죄함이 없습니다. 성막의 문을 통과하여 들어오면 번제단이 있습니다. 번제단은 정사각형으로 만들어져 있고 중앙에 놋 그물이 있고 그 끝에 번제단 뿔이 있고 이동하기 위해서 고리가 있으며 채가 끼워져 있습니다. 번제단에서는 모든 것이 다 불탑니다. 다 불태워지고 재만 남습니다. 번제단 신앙은 성경 창세기 13장을 통해서 그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아브람이 애굽에서 나올새 그와 그 아내와 모든 소유며 롯도 함께 하여 남방으로 올라가니 아브람에게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더라 그가 남방에서부터 발행하여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그가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13:1~4)

     

    아브라함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가나안 땅에 와서 처음으로 단을 쌓았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곳에 단을 쌓고 거기서 벧엘 동편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는 벧엘이요 동은 아이라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12:7~8)

     

    그리고 다시 단을 쌓은 곳으로 가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 의미는, 여호와의 이름의 뜻은 스스로 있는 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당신은 스스로 계신 분입니다.” 스스로의 의미,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실 때도 인간의 어떤 도움도 필요치 않았고 어떤 조건도 필요치 않으셨습니다. 스스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믿음의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시작부터 삐걱 되기 시작합니다. 믿음으로 달려가는 것 같지만 믿음 없이 인간적인 방법을 써서 애굽으로 내려가 아내를 누이라고 속입니다. 창세기 12장 전반부에는 아브람이 어느 누구보다 힘 있게 믿음을 향해서 달려갑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12:1)

     

    내가 네게 지시할 땅, 그곳이 어딘지 몰랐습니다. 그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갔습니다. 굉장히 놀라운 믿음의 삶을 살았지만 그것이 얼마 못 갔습니다.

     

    그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우거하려 하여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를 때에 그 아내 사래더러 말하되 나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고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원컨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대로 인하여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인하여 보존하겠노라 하니라”(12:10~13)

     

    아브라함이 구차히 인간적인 방법을 쓰면서 누이라 하라 합니다. 믿음이 전혀 없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내가 하나님으로 인하여 안전하고 보존되리라 했을 것입니다. 믿음 없는 아브라함의 소리, 계획은 그러했지만 실제 형편은 전혀 달랐습니다. 바로가 그 아내를 취해가면서 아내를 잃어 버립니다. 인간적인 방법과 믿음 없는 모습의 아브라함 이후에 그가 13장에서 어떤 길을 가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번제단 신앙을 발견하고 자기에게서 벗어납니다.

     

    아브람이 애굽에서 나올새 그와 그 아내와 모든 소유며 롯도 함께하여 남방으로 올라가니 아브람에게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더라 그가 남방에서부터 발행하여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그가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13:1~4)

     

    그가 애굽에 갔다가 나올 때에 그와 그의 아내와 모든 소유와 롯도 함께 하였으며 그 소유도 풍부했습니다. 그가 잃어버린 것이 하나도 없이 오히려 모든 것이 풍성해져 있습니다.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에 가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하나님, 당신은 스스로 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는 형편없는 길로 갔는데 내 조건과 형편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두고,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했습니다.” 번제단 신앙, 번제단 위에서는 모든 것이 다 불태워집니다. 잘한 것도, 못한 것도 다 불태워지고 여호와만 남습니다. 자기가 잘하면 잘한 것에 기대를 두고, 못하면 못한 것에 정죄와 자책을 두고 있습니다. 번제단 신앙과 반대되는 삶을 살았던 사람,

     

    우리가 어떤 자기를 칭찬하는 자로 더불어 감히 짝하며 비교할 수 없노라 그러나 저희가 자기로서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로서 자기를 비교하니 지혜가 없도다”(고후10:12)

     

    자기를 칭찬하는 자로 더불어 감히 짝하며 비교할 수 없다 합니다. 잘한 것에 마음을 두며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자기를 믿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과 교류 없이 마음을 나누지 못해 불행한 신앙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자기가 잘못되면 자기를 정죄하면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자라 여깁니다. 번제단 위에는 다 불태워지고 재만 남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믿음으로 살았다 할찌라도, 또 믿음으로 살지 못했다 하더라도 번제단에서 다 불태워지고 하나님의 섭리와 뜻과 계획이 중요합니다. 아브라함은 이것을 발견했습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섭리가 있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습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 열국의 아비로 삼으셨고 사라를 통해서 이삭을 낳을 계획을 하나님이 가지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엘리에셀도, 이스마엘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연약함까지도, 아브라함이 반대되는 길을 가도 다시 돌려 사라를 통해 이삭을 낳게 하셨습니다.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으로 돌아와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내 조건과 상관없이 하나님 당신의 뜻과 계획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셨습니다. 스스로 일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에 여러분의 어떤 조건도 필요치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번제단 신앙을 발견하고 나서도 여전히 실수를 하지만 그 어떤 허물에도 메이지 않고 자기를 책하고 정죄하고 있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열국의 아비가 되고 하나님의 복을 받는데 있어서 아브라함의 조건이 전혀 필요치 않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에게 인간의 어떤 조건도 필요치 않으시며 이 시대 우리에게도 어떤 조건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내가 잘한 것 때문에 마음을 높이는 것도 교만이며, 내 잘못한 것 때문에 자기에 메여 있는 것도 교만입니다. 이 번제단 신앙을 발견할 때 잘한 것도, 못한 것도 다 불태워지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의 뜻과 계획대로 이루어지는 복된 삶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물두멍 신앙, 물을 담는 큰 놋 그릇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물두멍을 놋으로 만들고 그 받침도 놋으로 만들어 씻게 하되 그것을 회막과 단 사이에 두고 그 속에 물을 담으라 아론과 그 아들들이 그 두멍에서 수족을 씻되 그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 물로 씻어 죽기를 면할 것이요 단에 가까이 가서 그 직분을 행하여 화제를 여호와 앞에 사를 때에도 그리 할찌니라 이와 같이 그들이 그 수족을 씻어 죽기를 면할찌니 이는 그와 그 자손이 대대로 영원히 지킬 규례니라”(30:17~21)

     

    제사장의 손발을 씻도록 만들어 놓은 곳이 물두멍입니다. 놋으로 물두멍을 만들 때 중요한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가 놋으로 물두멍을 만들고 그 받침도 놋으로 하였으니 곧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의 거울로 만들었더라”(38:8)

     

    물두멍을 만드는데 있어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그 재료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의 거울로 만들었습니다. 옛날에는 유리 거울이 없어서 놋으로 만든 거울, 동경을 사용했습니다. 그 거울을 다 모아서 물두멍을 만들었습니다. 회막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들에게는 거울이 없습니다. 이 여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을 상징합니다.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거울을 다 모아서 물두멍으로 만들어집니다. 회막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에게서 거울을 제외시켜 버렸습니다. 자기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는 것이 거울입니다. 굴뚝 청소부가 있는데 한 사람은 얼굴에 검댕이가 묻어 있고 한 사람은 묻어 있지 않았는데 거울 없이 서로의 얼굴을 보니까 깨끗한 사람이 씻으러 갑니다. 거울이 있으면 검댕이가 묻어 있는 사람이 보고 씻으러 갈 것입니다. 거울을 제한 이유, 사단이 여러분에게 여러분 자신의 거울로 자신을 보도록 거울을 하나씩 다 주었습니다. 자기 거울로 자기를 비추어 보면 잘했냐, 못했냐, 하나님은 이것을 제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하나님의 거울로 자기를 비추어 보도록 하셨습니다.

     

    주께서 그날에 그들의 장식한 발목 고리와 머리의 망사와 반달 장식과 귀고리와 팔목 고리와 면박과 회관과 발목 사슬과 띠와 향합과 호신부와 지환과 코 고리와 예복과 겉옷과 목도리와 손주머니와 손 거울과 세마포 옷과 머리 수건과 너울을 제하시리니”(3:18~23)

     

    이들의 장식 중 하나가 손거울인데 모든 장식이 제대로 되어 있는지 안 되어 있는지 살펴 볼 것입니다. 여러분도 손거울을 가지고 다니십니까? 여자분들은 적어도 손거울 하나씩은 들고 다닙니다. 화장을 고치고, 음식을 먹고 나서 립스틱이 지워졌는지, 늘 자기를 보는 손거울이 있습니다. 사단이 그 마음에 손거울을 하나씩 다 주었습니다. 손거울로 자기를 보면 내가 믿음 없이, 형편없이 기근이 왔다고 애굽으로 내려 가버리고 아내를 누이라 속이고’, 자기를 정죄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거울로 자기를 보지 않고 하나님의 거울로 자기를 봅니다.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의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책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14:22)

     

    자기의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책하는 것을 자책이라 합니다. 정죄가 있고 자책이 있습니다. 정죄는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했습니다. 정죄함이 없는 신앙을 살면 되는 것이 아니라 사단은 정죄는 아니지만 자책 속에 빠트려서 자기 속에 메여 있게 만듭니다. ‘내가 왜 그리 했던가? 기근이 왔어도 애굽에 내려가지 말아야 했었는데, 애굽에 내려갔더라도 아내를 누이라 속이지 말아야 했었는데’, 수 없이 많은 자책들, 그러나 아브라함은 번제단 신앙과 물두멍 신앙을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를 뿐만 아니라 어떤 연약함과 허물에 메이지 않은 것은 자기 손거울이 제하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거울이 아닌 자기 거울로 자기를 보니까 믿음으로 살지 못합니다. 그래서 적당히 신앙을 하지 하나님의 뜻이 보여도, 하나님이 마음을 주어도 과감하게 믿음의 발을 내딛지 못합니다. 자기 거울로 자기를 보고, 내가 나를 보니까 믿음의 삶을 산다든지, 복음을 위해 전폭적으로 살지 못하고 적당히 살아갑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연고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바로가 아브람을 불러서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대접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고하지 아니하였느냐 네가 어찌 그를 누이라 하여 나로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게 하였느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려가라 하고”(12:17~19)

     

    바로가 아브라함에게 계속해서 하는 이야기, 네가 어찌하여, 계속해서 아브라함을 정죄합니다. 아브라함이 바로의 이야기를 듣고 정죄하지 않습니다. 자책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번제단 신앙,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고 물두멍 신앙을 합니다.

     

    아브라함이 거기서 남방으로 이사하여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우거하며 그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보내어 사라를 취하였더니”(20:1~2)

     

    또 아브라함이 자기 아내 사라를 누이라 합니다. 처음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에게 믿음이 없어서 누이라 속였다면 창세기 20장에서는 믿음으로 말할 수 있을텐데, 또 누이라 속입니다.

     

    아비멜렉이 그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모든 신복을 불러 그 일을 다 말하여 들리매 그 사람들이 심히 두려워하였더라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불러서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리 하느냐 내가 무슨 죄를 네게 범하였관대 네가 나와 내 나라로 큰 죄에 빠질뻔하게 하였느냐 네가 합당치 않은 일을 내게 행하였도다 하고 아비멜렉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가 무슨 의견으로 이렇게 하였느냐 아브라함이 가로되 이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내 아내를 인하여 사람이 나를 죽일까 생각하였음이요 또 그는 실로 나의 이복누이로서 내 처가 되었음이니라”(20:8~12)

     

    네가 어찌하여, 네가 무슨 의견으로 이렇게 하였느냐고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강하게 정죄하고 있는데 아브라함은 영적 세계 속에 들어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초기 신앙만이 아니라 믿음이 삶이 나오기 직전까지도 여전히 연약한 모습이 보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물두멍 신앙입니다. 자기로써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의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책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책하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의 거울을 제하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볼 때 어떻게 보시느냐가 중요합니다. 아비멜렉이 하나님께 묻습니다. “하나님이 의로운 백성도 멸합니까? 나는 잘못한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누이라 저를 속였습니다.”

     

    아비멜렉이 그 여인을 가까이 아니한고로 그가 대답하되 주여 주께서 의로운 백성도 멸하시나이까 그가 나더러 이는 내 누이라고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 여인도 그는 내 오라비라 하였사오니 나는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이렇게 하였나이다 하나님이 꿈에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알았으므로 너를 막아 내게 범죄하지 않게 하였나니 여인에게 가까이 못하게 함이 이 까닭이니라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 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 보내지 않으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정녕 죽을줄 알찌니라”(20:4~7)

     

    하나님의 거울로 보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편입니다. 아비멜렉이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거울로 보았을 때 하나님은 믿음 없어서 인간적인 방법을 쓰고 아내를 누이라 또 속인 것으로 아브라함을 책망하는 것이 아니라 아비멜렉을 책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조건을 필요치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온전하면 됩니다. 내가 어떠하냐는 조건에 우리는 민감합니다. 이 세상은 내 조건, 능력을 요구합니다. 그것으로 내 가치를 여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세계에서는 내 조건이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뜻과 섭리만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세계에서는 그 어떤 조건도 필요치 않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모든 것이 좌우됩니다. 아브라함이 번제단과 물두멍 신앙을 발견하면서 자기의 조건에서 자유로워졌습니다. 물두멍 신앙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늘 자기 조건에 대해서 민감합니다. 아브라함이 자기의 거울을 제하면서 자기를 보지 않습니다. 그랄 왕 아비멜렉에게 가서 내 아내를 누이라 말하였는고,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거울로 아브라함을 보면 여전히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며 모든 복의 근원입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모든 복의 근원이라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축복하면 그가 복을 받고 저주를 하면 저주를 받습니다. 아브라함이 잘하든 못하든 창세기 20장에서 복의 근원이며 열국의 아비이며 믿음의 조상입니다. 아브라함이 자기의 거울로 보면 나는 안되겠다, 내가 무슨 믿음이 조상이야, 나는 믿음에서 너무 멀어’, 자기 거울로 보면 형편 없는 사람이요, 안될 사람으로 비추어 질 것입니다.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는 사람, 그래서 물두멍 신앙이 필요합니다.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에게 거울이 없었던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자기 거울이 없어야 합니다. 오늘 여러분의 마음에도 손거울을 제해 버려야 합니다. 늘 내 모습을 보고 있는 거울이 제해져서 자기를 벗어 버려야 합니다. 내 손거울로 보며 내 옳다 하는 바로 나를 책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 그리스도인들이 자책하며 믿음의 살지 못하는 것은 자기 거울로 자기를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의 거울이 없습니까? 하나님의 거울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이야기할 때 복의 근원이라 합니다. 하나님 당신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는 이렇게 형편없는 나도 하나님의 거울로 비추어 보면 너무 소망스럽습니다.

     

    형편없는 베드로의 모습,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고 떠나갔지만 예수님의 거울로 보면 목자요 영광스러운 모습입니다. 내 자신의 모습, 내가 비추어 보면서 형편 없는 사람으로, 안될 사람으로 만들어 하나님의 사람으로 위대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거울로, 하나님의 뜻과 섭리 안에서 이미 우리는 복된 자입니다. 죄사함에 대해서만 아니라, 삶에 대해서, 인생에 대해서 지금 내가 보는 내가 형편 없어도 그렇지 않습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인천 교회 멤버로써 있었지만 지금은 마인드 팀이 캐나다 인디오 마을에 선교를 하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마을 구석구석까지 가서 학생들을 위한 캠프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주일학교 팀에서 홍콩에 가서 아동인성 교육을 어떻게 하는지 가르쳐 주려 하고, 그리고 오늘 아침 임원모임에서 장년들을 필리핀 마약사범 교육에 보내려고 합니다. 우리 교회에서 조성혁 전도사님이 오셨는데 따갈로어를 잘하니까 언제든지 통역으로 주말마다 데리고 가면 됩니다. 마약 사범들을 교육하는 일에 있어서 너무 소망스럽고 우리가 전 세계에 일들을 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사단은 그런 우리를 보지 못하도록 자기 거울로 자기에 메여 있게 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뜻과 계획과 섭리대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끌어 갑니다. 그런 아브라함이 자기 자신에게 메여 못 따라오니까 자기 자신의 거울을 제하여 버렸습니다. 아브라함의 마음에 담대하게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의지하면서 하나님의 손길에 이끌려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복의 근원이며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잡혀 있는 자입니다. 우리 합창단은 대만 원주민들에게 부활절 칸타타를 하러 가야겠다 싶습니다. 처음에는 중국 합창단을 데리고 가려고 했는데 비자가 나오지 않아서 우리 합창단이 대만 원주민 마을로 돌아다니면서 할 일이 너무 많아질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 안에 우리가 있습니다. 더 이상 내 거울로 나를 보지 말고 하나님의 거울로 보면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그러면 네가 살려니와~, 여러분 자신의 모습을 보지 말고 담대하게 믿음을 향하여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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