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 도마동에 자리잡은 한밭중앙교회. 건물 바깥에는 닷새 동안 진행되고 있는 성경 세미나 현수막이 드높이 걸려 있었다. 서둘러 설교가 이루어지고 있는 교회 안으로 들어갔다. 강당 안에 주판알처럼 빼곡히 들어찬 사람들을 보고 흠칫 놀랐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어떤 결핍(또는 충만)이 있어서 고단한 하루 일과를 마친 평일 저녁 순금의 시간을 할애해서 이곳에 들어오는가? 다시금 놀란 것은 그들이 들고 있는 성경책 때문이었다. 페이지가 나달나달한 성경. 연필로 긋고, 볼펜으로 긋고, 다시 형광펜으로 그은 그것들은 마치 사물이 아닌 어떤 인격인 것처럼 가슴의 현을 건드렸다. 툭하면 일탈하기 일쑤인 삶의 행로를 저 말씀의 거울에 비추어 가다듬기를 그들은 얼마나 오랜 동안 되풀이해왔을 것인가. 곁에 앉은 교회 관계자는 3층에 6백 명, 2층에 2백 명 정도의 청중이 들었다고 귀띔한다. 대부분 중 · 장년층의 모습이다. 청중들을 이별하고 나자 비로소 단상에 선 이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걸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자신이 하려 합니다. 탕자는 돌아오기만 했고 나머지는 모두 아버지가 했습니다. 제일 좋은 옷, 가락지, 살진 암소를 잡아주었습니다. 탕자의 노력으로 변화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는 모두 거꾸로입니다. 주님이 하셔야 할 일을 모두 내가 하려고 하니 얼마나 어렵습니까? 오늘 여러분이 집에 들어가서 '아, 내가 할 일이 아무것도 없네?' 라고 느끼면 오늘 나의 설교는 성공한 것입니다.'
"십계명을 지키려니, 죄 안 지으려니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러나 구원받기 너무 쉽습니다. 구원은 쉬워야 구원이지 구원받느라 너무 애먹었다 하면 그건 구원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2천 년 전에 예수님이 다 해놨으니 그대로 믿기만 하면 됩니다. 그래도 지옥으로 가는 사람은 지옥 갈 팔자. 천국보다 지옥으로 가는 게 더 힘듭니다."
"여러분, 구원이란 나는 아무것도 안 하고 주님이 다 해주는 것입니다. 보세요. 간음한 여자는 아무것도 안 했어요. 그냥 끌려오기만 했습니다. 돌멩이를 던지는 사람으로부터 누가 그것을 빼앗았습니까? 내 의지대로 선하게 살면서 신앙 생활을 한다는 건 고통입니다. 오히려 신앙 생활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구원을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변덕쟁이, 자주 흔들리는 사람,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사람이 구원받도록 되어 있는 게 하나님의 계획이올시다!"
닷새째 열리는 성경 세미나 내내 저이는 오직 누가복음 15장 11절에서 24절에 걸친 '탕자 이야기' 만으로 설교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묵직한 돌을 안고 가는 걸 신앙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저 말씀들은 참으로 발걸음 가볍게 해주는 '기쁜소식' 처럼 여겨질 법했다. '함'(爲)이 없는 구원, '본래 구원'. 우리는 이미 구원을 얻었으나 단지 그것을 믿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
"...박옥수 목사. 58세. 1944년 경북 선산에서 태어난 저이는 1962년 죄사함을 받고 거듭난 이후 딕 요크(Dick York) 선교사를 포함한 외국인 선교사들에게 신앙 및 선교 훈련을 받았다. 1976년 한국복음선교학교를 설립, 수많은 전도자를 양성해 국내에 사역하고, 세계 40개국에 1백여 명의 선교사를 파송,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한다' 는 목표로 선교 활동을 펼치고 있다. 현재는 대전시 한밭중앙교회의 담임목사로 시무 중이며 저서로 설교집 사상 유례 없는 80쇄 40만 권을 발행한 <죄 사함 거듭남의 비밀>이 있다...."
안내 책자에 소개된 간단한 이력이다. 기독교는 '고통스러워하는 종교'가 아니라 '기뻐하는 종교'라 외치며 기독교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는 저이를 만나보았다.
"설교하는 모습이 독특했습니다. 정형화된 '목사표 음색과 몸짓'이 아니었습니다. 마치 청중 한 사람과 개인적으로 마주보고 앉아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편안한가 하면 순간순간 가슴 서늘한 웅변가의 카리스마가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즉흥적으로 '웅변의 원근법'이라고 명명해보기도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기성 교회나 신학교에서는 목회 음성학이란 것도 있고, 설교하는 법도 따로 배우는데 저희 선교회에는 그런 게 전혀 없습니다. 저희들은 그냥 신앙 훈련만 받기 때문에 설교하는 스타일이 모두 다릅니다."
"훈련이나 기교가 아니라 목사님 내면에서 일어나는 것들이 스스로 형식을 만들어낸 것 같습니다. 머리가 희끗하긴 하지만 가까이서 뵈니까 참 동안이십니다. 따로 건강 관리를 하시나요?"
"한 5년 전에 심장이 굉장히 안 좋았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깨끗하게 나은 후 운동을 하기 시작했어요. 아침에 서대전 여자고등학교 솔밭 사이로 4km 나 뜁니다. 참 좋아요. 오후에도 시간 되면 형제들하고 족구를 합니다."
"'모든 걸 예수님이 대신해주시니 나는 정말 할 일이 없구나' 라고 느끼면 내가 설교를 잘한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걸 들으면서 시원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말만 믿고 모두들 정말 아무것도 안 하면 어떻게 됩니까?"
"보세요, 자동차가 고장날 때 정비소에 가지요? 누가 차를 고치나요? 선생님이 고칩니까, 정비 기사가 고칩니까? 선생님이 비행기 조종 못 하시지요? 그렇지만 비행기 타는 데 불편하지 않죠? 왜냐하면 좋은 조종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이란 그런 거에요."
"정작 아무것도 할 게 없다고 설교하시는 목사님은 어느 누구보다도 바빠 보이는데요."
"요한복음 2장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를 쫓아내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거룩한 성전 안에 똥 싸고, 오줌 싸고, 소리 지르는 동물이 있어선 안 되잖아요. 아무도 그걸 내쫓는 사람이 없었는데 예수님이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다 내쫓았습니다. 이게 무슨 이야기냐 하면 우리 마음의 이야기예요. 성전은 우리의 마음을 가리키는 겁니다. 우리 마음에 그런 추하고 더러운 탐욕들이 가득 있는데 왜 그걸 내쫓지 못하느냐 하면 사실 우리가 탐욕을 사랑하기 때문이죠. 그렇잖아요?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다 쫓아내 주시는 겁니다. 사람들이 '박 목사님, 그 어려울 때 어떻게 했습니까? 하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데 그건 내가 아닌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이 다 이끌어주시니까 가능했던 거에요."
"그럼 예수님이 다 하시고, 인간 박옥수는 뭘 합니까?"
"저는 매일 쉬지요. 정말 그렇습니다. 저는 참 평안해요. 어떤 분들은 목회가 어렵다고 하고, 오늘 저녁에 설교를 뭘 할까 고민한다고 해요. 하지만 나는 사랑하는 예수님이 내 인생을 주관해서 끌어가는 걸 강하게 느낄 수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진실하고 부지런하고 성공하길 원하지만 보다 강한 유혹이 다가오면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왜 자꾸만 유혹에 무너질까요. 강한 내성을 갖추어서 창조를 했으면...."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사자처럼 강하게도, 코끼리처럼 크게도 만들 수 있었겠지만 당신이 사랑을 쏟을 대상으로 사람을 만드셨어요. 보세요, 사람은 태어날 때 어린아이로 태어납니다. 엄마의 젖을 먹어야 하고, 보살핌을 받아야 해요. 그래서 사람은 작보다 약한 사람들, 자기보다 부족한 사람들, 모자란 사람을 도울 때 거기서 얻는 희열이 상당히 커요. 하나님이 인간을 그렇게 만드셨어요."
"기독교는 기뻐하는 종교인데 고통스런 종교가 됐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뻐하는 종교란 무엇입니까?"
"38년간 병 속에 있던 환자가 예수님을 만나 나아서 갔습니다. 괴로워하면서 갔겠어요, 기뻐하면서 갔겠어요? 탕자가 돼지우리에 있다가 아버지 집에 와서 기뻐했겠어요, 슬퍼했겠어요? 나는 늘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아무리 깊은 웅덩이에 빠져도 예수님이 건져낼 수 없는 웅덩이는 없다고 말입니다.
한국 기독교가 성경에 어긋난 일을 하는 것은 예수님이 해야 할 일을 신도에게 하라고 하는 거예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건 인간 스스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오신 거예요. '그 문제는 네가 못해. 내가 할게.' 그래서 오셨는데 예수님을 놔두고 자기가 자꾸 하려고 하니까 예수님이 일을 못하시는 거예요."
"우리는 자신의 노력에 의해서 스스로가 변화하는 모습을 볼 때 성취감을 느낍니다. 높이뛰기 선수가 처음엔 무릎 높이도 못 넘다가 훈련을 통해서 점점 허리, 가슴, 자기 키 이상을 훌쩍 뛰어넘게 됐을 때 즐거움이 생기잖아요."
"높이뛰기 하는 선수가 포플러를 심었어요. 매일 뛰어넘었지요. 나무가 작을 땐 문제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나무가 2미터, 3미터 크는데 뛰어넘을 수가 있어요? 높이뛰기 선수들은 2미터까지는 뛰지요. 그러나 하나님 기준에선 불합격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이 아닌 인간의 기준에서 생각하면 되지요."
"그렇게 하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질 수가 없습니다."
"늘상 모든 존재가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살 수는 없을뿐더러 그것이 꼭 하나님의 뜻일 필요도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모르지만 내가 바르게 살고 평안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것도 가치 있는 것일 텐데요."
"제가 교도소에서 교화위원으로 있으면서 재소자들을 만나보니까 그 사람들만큼 죄진 걸 후회하는 사람도 없어요. 벽에다 머리를 박으면서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고 각오를 하지만 나가면 또 죄를 지어요. 그러니까 인간은 하나님의 도움이 있어야해요."
"추운 밤마다 오들오들 떨면서 날만 밝으면 둥지를 지어야겠다고 각오를 했다가 날만 새면 까맣게 잊어버린다는 '힐단새 이야기'가 떠오르는군요. 하지만 계획을 세우기도 하지만 깨뜨리기도 하고, 죄를 짓기도 하지만 회개하기도 하고, 후회하지만 다시 도전하는 것, 이것 자체가 통째로 온전한 삶이 아닐까요? 세상은 죄를 배제함으로써 완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죄까지 포함해야 완전한 것이 아닐까요? '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 라는 어느 시구처럼요."
"성경에도 그런 말씀이 있어요. '죄가 더해진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 라고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우리가 행복해져야지요."
"'구원' 하고 '거듭남'은 어떻게 다릅니까?"
"구원은 어떤 죄에서 벗어나는 걸 말하고, 거듭남이란 내 삶이 죄에서 벗어나면서 달라진다는 것이지요. 거듭나면 사람이 달라져요. 그게 너무너무 신기해요."
"한 사람이 갖고 있던 가치관, 습관이 완전히 바뀔 수 있을까요?"
"예. 그건 이론이 바뀌는 게 아니고 마음이 바뀌는 거니까요."
"목사님께서는 기성 교회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안목을 갖고 계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지금 한국 교회가 많이 무너져 내리고 있어요. 기성 교회 목사들은 돌파구를 찾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그래도 찾지 못하는 첫째 이유는 교회가 대형화되어가기 때문입니다. 대형화의 원인은 목회자들이 신학적 이론만을 배웠지 신앙을 모른다는데 있습니다. 목사님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교세 확장에만 치중하니까 성도들이 교회에 와서 많이 지치는 거에요. 막 지은 작은 교회는 너무 피곤하니까 몇 만 명 모이는 큰 교회로 가는 겁니다."
"목사님의 어린 시절 꿈은 뭐였습니까?"
"나는 목사는 안 하려고 했습니다."
"왜죠?"
"말도 잘 못하고, 발음도 좋지 않고, 성격도 참 안 좋았어요."
"목사로서의 장점은 하나도 없었는데 결국 목사가 되셨네요?"
"예. 정말 이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되는 거예요. 지나 놓고 보면 나를 그렇게 이끄시려고 하나님이 컨베이어 벨트에 나를 올려놓은 것 같은 마음이 들더라고요."
박 목사는 경북 선산에서 아버지 박재득 씨의 3남 2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일찌기 여덟 살 때 돌아가셨지만, 어린 시절 계모 슬하에서 자랐던 아버지는 자식들을 위해 새어머니를 들이지 않았다. 선산 중학교를 졸업한 그이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군경 원호 가족에게 혜택을 주는 서울 국립기술학교로 진학을 했다.
학비와 용돈을 벌고자 신문 배달을 시작했을 때였다. 이때부터 무언가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배달 할당을 받은 3백여 가구 중 대부분이 수금이 안 되는 집들이었다. 한 달 동안 뼈빠지게 신문을 돌려봐야 수금한 돈을 지국에 내고 나면 내 손에 들어오는게 하나도 없었다. 화가 치민 그이는 어느 날 수금한 돈을 들고 고향으로 도망쳤다. 그래봐야 자신이 낸 보증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돈이었다. 국립기술학교는 정부에서 졸업 후 정착금까지 주는 곳이었다. 졸업을 얼마 남겨두지 않았던 때였으므로 학교로부터 졸업장도 주고, 정착금도 주겠다는 연락이 왔지만 그이는 스스로 지은 죄 때문에 서울로 올라갈 용기를 낼 수 없었다.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고 낙향한 그이는 자꾸만 겉돌았다. 농사일도 싫었고, 저녁마다 친구들하고 모여서 담배 피우고, 술 마시는게 일이었다. 심지어 친구들과 아버지 몰래 자기 집 창고에서 볏가마니를 털기도 했다. 교회 나가 후회하고 또다시 죄를 짓는 일이 반복되었다. 말단 공무원 시험을 쳐보려고 준비했지만 그조차 자신이 없어 포기했고, 기술 하사관으로 군대에 가려고 했지만 신체 검사에서 떨어져 버렸다. 몇 번이나 자살을 하고 싶을 정도로 삶에 회의를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1962년 어느 날의 일이었다.
"새벽 기도를 나갔을 때였습니다. 문득 내 마음에 있는 모든 죄가 눈처럼 희게 씻겨진 사실을 믿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때부터 내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손에 잡기만 하면 잠이 쏟아지던 성경이 읽히기 시작했다. 거듭난 그이에게 마치 준비돼 있었던 것처럼 새로운 길이 열렸다. 뜻 있는 선교사들이 대구에서 이제 막 시작한 선교학교에 동네 장로의 추천으로 입학하게 된 것이었다. 그곳에서 그이는 이론과 지식으로 무장된 신학이 아니라 마음을 여는 신앙을 배웠다. 1971년 딕 요크 선교사로부터 목사를 안수받았고, 1976년에 기쁜소식 선교회의 전신인 한국복음선교학교를 설립했다.
기쁜소식 선교회는 몇 명의 거듭난 외국인 선교사들의 신앙을 이어받은 박옥수 목사에 의해 태동했다. 50년대 중반 세계십자군선교회의 회장인 영국인 노먼은 일본 도쿄에 왔다가 우연히 한국에 들렀다. 한국 전쟁 후 영적 부흥이 일어나 많은 사람이 복된 삶을 살고 있다고 믿던 그이는 막상 대구 집회에서 "거듭난 사람은 손 들어보라"고 질문했다가 충격을 받게 된다. 겨우 서너 명만 손을 들다 말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한국에 와 있던 몇 명의 선교사들과 함께 선교학교를 열어 신앙 훈련을 하기 시작했다. 박옥수 목사도 당시 여러 학생 중의 한 사람이었다.
선교회 이름은 그이가 80년대 아세아방송에서 맡았던 방송 설교 프로그램 '기븐 소식'에서 따온 것이다. 그이는 1986년 부산 무궁화회관에서 대전도 집회를 개최하고, 집회 때 설교한 내용을 <죄 사함 거듭남의 비밀>이라는 책으로 출간하여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이 책은 10여 개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인이 읽고 있다 한다. 현재 기쁜소식 선교회는 대도시 복음 전도 집회와 전도 책자 발간 및 보급, 인터넷 방송(old.goodnews.or.kr)과 영상을 통한 복음 전도, 전도자 훈련 및 국내외 파송 등을 주요 사업으로 하고 있다.
"12월은 예수님이 오신 달입니다. 2천 년 전 예수님 탄생의 의미를 지금에 되새긴다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기 때문에 모든 걸 다 가지고 오실 수 있는 분이었어요. 그런데 예수님은 유대 땅 베들레헴에 태어나실 때 거처할 방이 없었어요. '방'은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사람들은 마음속에 정욕이나 욕망을 가득 채워놓아서 예수님이 태어나실 방을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우리 마음속에 태어나시길 원합니다. 우리 모두 각자의 마음속에 우리 예수님을 위한 작은 방을 마련해 두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의 바람이 있다면?"
"저는 한국 교회에 올바른 신앙을 심고 싶습니다. 참된 신앙으로 사람들 마음에 쉼이 오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쉼이라고요?"
"예. 아이들이 어려운 문제를 가지고 있을 때 아버지가 오면 다 해결되어 쉬어버리잖아요? 복잡한 문제를 내가 쥐고 있다는 건 주님이 아직 내 마음에 안 오셨다는 거에요. 주님이 오시면 우리는 쉬게 되고, 주님이 이끌어주는 걸 느끼니까 감사하게 됩니다."
저이가 살고 있는 신의 뜰은 참 평온하고 안락해 보였다. 신의 뜰 속에 살면서도 신을 그리워하는 이와 신을 모르면서도 신의 외연(바깥)을 넓히고 싶어하는 이가 그렇게 만났다. 한 사람은 신의 기준으로, 한 사람은 인간의 기준으로 이야기하지만 두 사람은 똑같이 땅을 밟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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