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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핫에그 | 2011.10.04 15:11 | 조회 5370
    일시 : 2011. 10. 3(월저녁)
    본문 : 마태복음 8장 23절-27절

    내가 뉴질랜드를 다녀왔는데 뉴질랜드 농장을 가보니까 소가 너무 행복했다. 우리나라는 대부분 좁은 공간에서 사료를 먹여 키운다. 스트레스에 시달려 면역력이 떨어지니까 사료에다 항생제를 많이 넣어서 인위적으로 면역을 강화시킨다. 닭이나 오리도 마찬가지다. 인공적인 조명위에서 닭도 오리도 사육이 된다. 자연의 청정한 곳에서 자라난 고기를 먹도록 했는데 인간들이 욕망을 따라서 인위적으로 키운 소와 돼지를 먹고 있다.

    병원의 깨끗한 곳에서 항생제를 이겨내 만들어진 박테리아가 슈퍼 박테리아다. 인간이 손을 대는 곳마다 망가진다. 신앙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어디서나 인간이 무엇을 하고 인간이 가는 걸음걸음마다 오염되고 더러워질 수밖에 없다. 냉정하게 따지면 신앙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예수님이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실 때 당신의 형상을 따라 만드셨다. 우리처럼 몸이 있고 머리가 있고 팔다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다. 영이라는 형상과 모양을 따라 우리 인간을 만드셨다. 하나님의 마음이 하나님의 형상이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창세기 1장 28절

    신문에 난 기사를 보았는데 승용차가 뒤에 페인트를 싣고 급히 가다가 사거리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레카차가 출동을 했다고 한다. 레카차 기사들이 달려들어서 자동차 유리를 깨고 꺼내주려고 했는데 엔진에서 휘발유가 세서 그런지 불이 난 것이다. 차에 불이 확 일어나는데 주변에서 “소화기... 소화기...” 하는데 주변에 자동차 어디에도 소화기가 없어서 차가 순식간에 불이 붙어 운전자가 불에 타서 사망했다고 한다. 소화기만 있었더라면...

    우리는 많은 부분에서 후회하는 삶을 산다. 사업에 실패한 사람은 ‘내가 그때 사업을 시작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주식에 손을 대서 잃은 사람은 ‘내가 그때 주식을 팔았어야 하는데...’, 주식이 올라가면 ‘내가 그때 주식을 팔았어야 하는데....’하고 대부분 후회를 한다. 이혼하는 사람은 ‘내가 그때 남편을 만나지 않았더라면...’하고 후회를 한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것 말고는 다 후회하면서 사는 것이다. 우리 인생이 다 그렇다.

    87년도에 구원을 받고 주님 안에서 보낸 삶을 생각해 보면 내가 믿음으로 살지 못해서 후회하는 것도 있지만 주의 마음과 연결되어서 믿음으로 산 삶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슬퍼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그것을 이길 힘이 없기 때문이다. 감기에 걸려서 좌절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암에 걸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좌절을 한다. 이미 증상을 느낀다면 3기이다.

    에덴동산에 복을 주셨는데 그 복은 세상살이 속에서 느껴지는 복과는 다른 것이다. 얼마 전에 유명한 탤런트 최진실씨와 그 동생이 자살을 했다. 3주기를 추모한다고 TV에 나왔는데 ‘그 사람들이 왜 죽었을까? 돈이 없어서 죽었을까?’ 그들 마음을 지킬 힘이 없고 어떤 생각이 들어왔을 때 그 생각을 이길만한 힘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형상이 우리 인간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을 때 인간은 모든 것을 정복하고 다스릴 수 있다. 우리에게 다스릴 수 있는 힘이 있다면 우리의 인생이 곧 에덴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힘의 근원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에 있다. 인간이 죄를 범하자 하나님의 형상이 떠나고 우리 인간의 마음만 남았다. 그때부터 인간은 스스로 인생을 이겨나가야 했다. 작은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들어오면 바이러스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고 작은 생각 하나가 들어오면 그 생각 때문에 죽기도 한다.

    홍라희씨가 ‘행복한 여인의 눈물’이라는 그림을 샀는데 그 그림의 경매가가 미화 715만달러이다. 우리나라 돈으로 79억원이다. ‘도대체 어떤 그림이기에 그렇게 비싼가?’했더니 어떤 파마한 여자가 고개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있는데 그 얼굴에 눈물을 그려놓은 것이다. 무슨 만화책 그림과 같다. 독일의 리텐스타인이라는 화가가 있었는데 그 화가의 딸이 아빠는 ‘사람을 왜 이렇게 못 그려?’ 하니까 아빠는 ‘풍경을 그려!’ 딸이 사람을 그려보라고 해서 한번 그린 그림이 그 그림인 것이다. 지금은 그때의 시세보다 3-4배 더 높아졌다고 한다. 그림은 잘 그려야 되는 것이 아니라 누가 그렸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누구든지 인생의 그림을 잘 그려 보려고 한다. ‘빈 도화지에 그림을 어떻게 잘 그릴까?’하고 생각을 한다. 리텐슈타인이 그림을 그렸을 때 그 그림이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인생의 그림을 누가 그려야 가장 가치가 있겠는가?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그림을 그려주고 싶어 하신다. 우리가 붓을 들어서 그리는 그림을 끝내고 하나님이 그림을 그려주고 싶어 하신다. 가인과 아벨도 자기가 그림을 그려서 나갔고 에서도 자기가 익숙한 사냥꾼으로 나갔다.

    신앙은 내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는 것을 멈추고 예수님이 내 인생 속에 붓을 들고 그림을 그려주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그린 그림은 가치가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사단에 속아서 ‘내가... 내가...’ 하면서 그 그림을 그려나가는데 분주하다. 사람들이 그림을 그리다 실패하고 좌절하면 목숨을 끊기도 한다.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형상이 있어서 나는 가만히 쉬고 하나님이 우리 인생 속에 일하시는 것이다. 내가 걱정하고 염려하는 것은 종교다. 종교는 인간이 신을 위하는 것이고 신앙은 완전한 신이 우리를 위하는 것이다.

    내가 청주에 있는 LG화학에 15년을 다녔는데 현장관리직으로 있었다. 내가 있는 공장은 나하고 몇몇 사람이 독일에 가서 공부를 해서 뉴질랜드에 있는 회사에서 기계를 사서 공장을 세웠다. 관리직에 있는데 굉장히 힘들었다. 보름에 한 번씩 성과 분석을 해서 사진을 찍고, 그래프화해서 발표를 해야 한다. 회사 근무하는 것도 대충 대강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교회를 배우다 보니까 교회가 너무 좋은 것이다. 퇴근해서 청주예배당 청소도 하고 그런 것이 참 좋았다. 교회에 마음 안 쓰는 사람을 보면 판단을 했다. 하루는 주일 오전예배를 드리는데 목사님께서 ‘우리 교회에 감당이 안 되는 형제가 있다’며 이야기 했다. ‘누구야? 목사님을 속 썩이는 형제가?’ 목사님이 그 형제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고 말씀하시면서 그 형제가 박상일 형제라면서 속상해 죽겠다고 했다. 깜짝 놀랐다. 목사님이 혹시 말실수 하는 것이 아니야? ‘내가 에서라고? 그럼 야곱은 누구야? 저렇게 조는 형제가 야곱이야? 내가 에서면 야곱하고 잘해봐라!’하면서 가려다가 사택으로 갔다. “목사님, 제가 이해가 안 됩니다. 내가 왜 가인인지?” 그러니까 목사님이 창세기 4장을 펴더니 ‘네가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제 마음과 가인의 마음의 상태가 너무 똑같았다. 내가 교회 안에서 하는 것을 받아주지 않으니까 내 속에서 안색이 변하고 분했다. 그것을 보면서 ‘내가 가인이었구나. 내가 가인의 삶을 살았구나’하는 마음이 들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서 나 같은 인간을 구원하시고 나 같은 인간의 손을 잡으시는구나!’하면서 다시 회개하고 신앙생활을 했다. 내가 열심히 하는 것을 내려놓으니까 말씀이 들려왔다.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 - 로마서 1장 6절

    ‘하나님이 나를 어디 사도로 부르셨을까?’하고 생각해보니 ‘LG에 사도로 부르셨구나’ 해서 회사에서 성경공부를 했는데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구원받아서 교회가 개척되고 그 성경모임을 통해서 3명이 선교학교를 갔다.

    신앙은 내가 하는 것을 내려놓고 내 안에 말씀이 임하는 것이다. 말씀이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다. 창세기 1장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을 때 ‘모든 것을 다스리는 힘이 생긴다’고 말했다.

    사울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고 다윗은 두 번째 왕이다. 사울이 육신의 그림자이라면 다윗은 영의 그림자이다. 사무엘상 15장에 보면 사무엘 선지자가 사울에게 ‘아말렉의 모든 것을 진멸하라’고 했다. 그러나 사울은 좋은 것들을 남겼다. 나름대로 제사 드릴 제물을 남겼다. 말씀이 그대로 사울을 통해서 나타난 것이 아니라 말씀이 무시되고 사울의 생각이 흐르고 있었다. 이 사람이 살인하고 간음하고 도둑질을 한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이 그 마음속에 흐르고 있었다.

    아랍권에 가면 굴이 많은데 사울이 군사를 풀어 다윗을 찾다가 동굴에 들어갔는데 다윗의 심복들이 사울을 죽이려고 했다. 하나님이 주신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윗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흘러서 사울의 옷자락을 가만히 베었다. 신앙인은 그 마음 중심에 하나님의 마음이 흐른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마음이 흐르면 하나님이 나를 막기도 하고 할 수 없는 일 앞에 하게도 하신다.

    창세기 1장에 하나님의 형상이 아담과 하와의 마음을 지켜주니까 에덴을 지키고 다스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여러분들의 남은 생애 속에 하나님의 형상이 만들어지고 다시 형성되게 되면 그 하나님의 형상이 여러분의 삶을 지켜주고 그 형상이 여러분들의 문제와 어려움을 정복할 수 있게 하실 것이다. 우리 삶속에서 하나님의 형상이 살아있다면 여러분들은 어느 곳에 있다 할지라도 그 마음이 여러분들을 지켜나갈 것이다.

    여러분들과 저는 아담의 씨로 태어났다. 그런데 우리는 인간의 능력으로 사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형성된 분이기에 하나님의 형상이 자리하고 있다. ‘이 사람이 누구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고?’ 예수님께서 바다를 꾸짖으셨는데 꾸짖었다는 것은 듣기 때문에 꾸짖는 것이다. 언제 예수님이 깨어나서 꾸짖어 주셨느냐? 하면 ‘주여 우리를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했을 때이다. 베드로, 안드레 이런 사람들은 어부 출신이기 때문에 그들은 풍랑이 왔을 때 어떻게 하는지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주여 우리를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했다. 자기가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마음에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물을 베고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웠다. ‘누가 예수님을 깨우는가?’ 내가 해서 안 되니까 그런 것이다. 제자들은 자기들의 지혜와 기술, 모든 것을 동원했지만 안 되었다. 사단에게 속아서 사단이 넣어주는 마음을 가지고 인생을 잘 저어보려고 했지만 안 되는 것이다. 그때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우는 것이다. 믿음이 적은 자가 누구인가? 능력 있는 예수님이 계시는데 내가 하려고 애를 쓰는 사람을 보고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없으니까 내가 하려고 하는 것이다. 내가 하려고 하니까 긴장해야 하고 떨어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면서 곧 일어나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셨다고 했다.

    여러분들은 믿음을 가지고 계셔서 예수님의 마음으로 바람과 파도를 잔잔케 하십니까?

    에덴이 만들어지려면 하나님의 형상이 우리 안에 복원이 되어야 한다. 주무시고 계시는 예수님이 깨어나서 예수님이 일하여야 한다. 내 안에 예수님이 말씀을 하셔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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