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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성옥 | 2016.11.20 11:23 | 조회 6117

    20161113일 주일오전말씀

    말씀: 왕상19:1-8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계산을 하는데 있어서 계산 방식이 있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계산을 하고 삽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사람들은 특히 장래와 훗날의 미래에 대해서 계산을 해 보지만 답이 없을 때가 많습니다. 앞으로 닥칠 일, 일어날 일에 대해서, 앞으로 살아갈 일에 대해서 계산이 나오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지금 내가 하나님을 섬기고 신앙을 하고 있어도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할 때가 있습니다. 성령은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먹을까 염려하지 말라 했습니다. 내일 일은 내일 염려 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다 하였습니다. 주님이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고 했는데 염려가 되는데 염려하지 말라고 염려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아프리카에 가서 아프리카 사람들을 보니까 성경 말씀처럼 살아갑니다. 내일 먹을 것이 없는데 오늘 춤을 추고 신나게 노래합니다. 믿음이 있어서가 아니고 그냥 염려 하지 않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아프리카 복음반에 가면 한국 복음반과 다릅니다. 한국 복음반에서는 생각을 버리라 하지만 아프리카 복음반에서는 아무 생각도 없이 살아가는 그 분들에게 생각을 하라고 합니다. 염려하냐, 안 하느냐가 아니라 주님이 염려하지 말라는 것은 염려만 안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면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는 주님이 내일 일을 책임지시겠다는 것입니다.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 하실 때, 내가 너의 장래와 미래를 책임 질 테니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하십니다.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답이 나오지 않고 길이 없어서 염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옵니다. 우리는 동물들이 마치 다녀 본 길로 가는 것처럼 우리 생각과 경험 영역 안에서 계산을 합니다.

     

    박목사님께서 오래 전에 뉴욕 맨하탄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말씀을 전하시면서 잠자는 미국을 깨우자고 하셨습니다. 미국에 앞으로 500개의 교회가 세워질 것이라 하셨는데 미국이 영 깨어나지 않을 것 같고 교회 개척이 되는 것을 보면 너무 더디게 느껴졌습니다. 미국 칸타타 공연을 하면서부터 새로운 많은 분들이 공연을 보기 위해 앞을 다투어 서로 들어가려고 줄을 섰습니다. 목회자 모임을 하면서 연결된 목회자들이 우리 선교회에서 속하고 싶다고 하였고 칸타타 이후에 그 교회에 가서 복음을 전할 정도로 많은 문들이 열려졌습니다. 그 당시에 종이 말씀하실 때 우리 계산에서는 그 길이 보이지 않지만 하늘 문이 열려졌습니다. 종의 마음에 믿음으로 마음을 옮겨 놓으니까 하늘 문이 열리고 없던 길이 열려지고 새로운 역사가 일어나고 기적과 같은 일들이 우리 앞에 펼쳐졌습니다. 우리가 우리 마음 하나 옮겨 놓는 것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것이 천국 열쇠를 사용한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천국 열쇠를 주셨는데 많은 사람들이 천국 열쇠를 사용할 줄도 모르고 사용하지도 않고 살아갑니다. 우리 계산으로 답이 없고 막막하고 되겠나 싶을 때가 있는데 하나님이 주신 이유, 천국 열쇠를 사용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일을 하다가 많은 일을 해야 할 때 사람의 손이 아니라 장비를 사용합니다.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생기기를 장비 업자가 원합니다. 주님 입장에서 볼 때는 우리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 많을수록 주님을 부르고 찾습니다. 오래 전에 어떤 형제님이 열쇠 가게를 하셨는데 장사가 잘 되느냐?”고 물었는데 종업원이 일을 하지 않아서 장사가 잘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종업원이 없는 줄 알고 있었는데 종업원 이야기를 하셔서 종업원이 있었습니까?” 물었습니다. 웃으시면서 도둑들이 종업원이라 했습니다. 옆집에 도둑이 들면 주변 사람들이 큰일 나겠다 싶어 보조 열쇠를 설치한다고 합니다. 주님이 일을 하고 싶어 하시는데 우리 인간의 한계를 느낄 수 있는 일들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종업원, 자꾸만 불가능 한 일, 한계, 안 되는 일들을 만나면 주님의 영업이 잘됩니다. 주님을 필요로 하는 일들이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힘, 능력,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천국 열쇠를 사용하게 만듭니다. 세상 사람들은 천국 열쇠가 없기에 자기 생각과 방법과 한계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단지 마음 하나 옮겨 놓으면, 다 해결된 위치 가운데로 옮겨 놓으면 시시해 보여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다 이루었다는 그 말씀 안에 내 모든 죄를 다 사했다고 내 마음을 의롭게 해 놓은 가운데로 옮겨 놓았을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죄 뿐만 아니라 우리 앞에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한 가운데로 또한 옮기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에 믿음을 가지면 하나님이 일을 하시는데 우리 속에 믿음을 가지려 하면 사단은 부정적인 생각을 넣어 줍니다. 그 부정적인 생각이 올라오면 그 생각에 사로 잡혀 버립니다. ‘하나님이 일을 안 하시면, 이 문제가 더 커지면’, 그러면서 자기 행위를 바라봅니다. ‘내가 이렇게 악하고 육신적인데’, 내가 육신적이든, 교만하든 행위와 상관없이 일을 하시는 하나님 앞에 행위와 결부시켜서는 안 됩니다. 뉴질랜드에 계신 선교사님, 예전에 수영 선수였습니다. 수영 국가 대표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하나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수영만 했기에 국가 대표에 선발 될 수 있는 실력을 갖추었는데 국가 대표 최종 선발 전 경기에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탈락하게 되었습니다. 수영 경기를 하면서 호흡 하는 중에 물이 입에 들어와서 힘이 쭉 빠지기에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믿음으로 달려가려고 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단이 마치 물을 먹는 것처럼 행위를 먹이면 힘이 쭉 빠져서 아무 믿음도 가지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은 예수의 피 만을 보기 때문에 당당하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행위와 결부시켜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온전해 진 가운데로 마음 하나 옮기는 것입니다. 내 마음을 다 해결된 가운데로 옮기면 하나님의 능력과 도우심과 역사로 그 문제가 해결 됩니다. 당장에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그 기간 동안 부정적인 생각과 싸움을 하게 됩니다. 세상은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라 합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생각이 부정적인 생각을 이기지 못하고 도리어 부정적인 생각이 긍정적인 생각을 이겨 버립니다. 사람들은 더 좋은 것이 있는 줄 모릅니다. 그 보다 더 좋은 것, 비교할 수 없는 것이 영적인 생각입니다. 긍정의 생각보다 훨씬 더 강력합니다. 영적인 생각, 마음에 믿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의롭다 하는 믿음을 가지니까 죄를 지어도 다시 죄인이라는 부정적인 생각에 끌려가지 않게 하는 것이 영적인 생각입니다. 다시 부정적인 생각이 올라와도 싸워서 이길 수 있는 방법,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감사로 아뢰라 합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13: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13:13)

     

    믿음과 소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는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합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4:4~7)

     

    자기가 주체가 되어서 말씀을 듣는 사람은 자기가 그렇게 하려하고 말씀이 주체가 된 사람은 이 말씀을 받아서 주님이 주체가 되어서 이렇게 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 하실 때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도록 해 주시겠다 함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하셨습니다. 내가 염려하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믿어야 합니다. 내가 어떤 상태가 되어야 아무 것도 없는 상태가 되어져야 하겠습니까? 마음에 그림을 그려 보라 했습니다. 내 마음에 부정적인 생각이 올라올 때 싸워서 이기는 법은 기도와 간구라 하였습니다. 그냥 기도가 아닙니다.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기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당신이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겠다 하셨기에 때를 쓰는 것이 아니라, 불평하는 기도가 아니라 이루어진 사실에 감사로 아뢸 수 있습니다. 부정적인 생각과의 싸움에서 내 마음의 생각과 마음이 지켜지며 소망과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행위와 결부시키지 말고 다 이루어졌다고 믿어서 마음을 옮기면 하나님의 능력과 도움이 옵니다.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는 것은 소망에 해당이 됩니다. 믿음을 가지면 마음에 소망이 생겨납니다. 그 다음이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 중의 제일은 사랑입니다. 내 마음에서 행위와 결부시키지 않고 다 이루었다는 믿음을 가지고 나아갈 때는 괜찮은데 그렇게 안 될 때가 있습니다. 마음에 믿음을 가지지 못할 때, 행위에 매여 힘들어 할 때, 그 때는 어찌하겠습니까?

     

    엘리야가 형편에 쫓겨 아무 믿음과 소망을 가지지 못하는 상태로 들어갑니다. 로뎀나무 아래에서 죽기를 구합니다.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행하고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나이다 하고”(왕상19:4)

     

    엘리야의 마음이 실족을 해서 로뎀나무 아래에서 죽기를 구합니다. 그가 달려갈 때 말고 이렇게 넘어졌을 때는 어찌하겠습니까? 엘리야를 보면서 어떻게 일어나는가를 보았습니다. 마음의 힘을 다 잃었습니다. 보이는 것은 형편 밖에 없습니다. 저가 그 형편을 보고 일어나 그 생명을 위하여 도망합니다. 마음의 실족, 엘리야의 생애가 끝나고 그 삶이 끝이 났습니까? 그러면 우리에게 소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엘리야가 다시 힘 있게 달려갈 수 있는 것은 엘리야의 믿음도 아니고 그 소망도 아닙니다. 주님의 사랑입니다. 제가 늘 아침마다 강남에 가서 선교회 일을 보는데 차가 막히기에 아침 일찍 6시 전에 나갑니다. 며칠 전에 차를 타고 가면서 그라시아스 합창단 찬양을 듣는데 찬송가 가사가 그렇게 은혜스러웠습니다. 수요일 날 오신 분들에게만 이야기 해 준다고 하였는데 찬송가 가사가 마음이 지쳐서 기도할 수 없고 눈물이 빗물처럼 흘러내릴 때 주님은 아시고 우리를 위해 사랑으로 인도하신다는 내용의 가사였습니다. 들리지 않는 말씀, 능력이 되지 않는 믿음, 주님은 우리 연약함을 아시고 사랑으로 인도하십니다. 내가 믿음을 가졌을 때 주님은 믿음으로만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다 무너져 내렸고 믿음을 가질 수도 없고, 기도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마음의 힘을 다 잃어버릴 때 사랑으로 인도하십니다.

     

    이세벨이 사자를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정녕 네 생명으로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 같게 하리라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저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그 생명을 위하여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곳에 머물게 하고”(왕상19:2~3)

     

    엘리야가 본 형편, 이세벨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일 이맘때라는 말을 합니다. 사마리아성에서는 소망의 말씀이었는데 이세벨이 왜 사자를 보내어 내일 이맘때에 죽일 것이라 이야기합니까? 죽일 작정이었다면 바로 당장 죽이지 내일 죽일 것이라고 사자를 보내지 않습니다. 사단이 이렇게 일을 합니다. ‘이세벨이 나를 죽이려 하면 내가 어떻게 일을 할 수 있겠나’,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지금까지 도우신 하나님이 여전히 엘리야에게 일을 할 수 있음에도 엘리야는 넘어졌습니다. 믿음의 삶을 살 수가 없기에 여기에서 그 생애가, 믿음의 삶이 여기에서 끝이 났습니까? 그 마음이 지쳐서 기도할 수 없고 일어날 힘이 없어도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습니까?

     

    로뎀나무 아래 누워 자더니 천사가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왕상19:5~6)

     

    이런 엘리야에게 주님이 찾아와 주셔서 천사가 어루만지면서 일어나서 먹으라 합니다. 아무 힘도 없고 누워서 죽기를 구하고 있는데 숯불에 구운 떡과 물을 천사가 준비하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먹고 마시고 일어나 달려가지 않고 다시 누웠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네가 길을 이기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왕상19:7)

     

    다시 누웠더니,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낙심하고 좌절하고 있는 엘리야를 일으켰는데 다시 누워버린 엘리야, 다시 일으키고 다시 먹이면서 일으켰습니다. 이는 엘리야의 믿음이 아닙니다. 엘리야가 믿음으로 일어났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엘리야는 주님의 사랑으로 일어났습니다. 그렇기에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말합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13:1~3)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들과 싸울 때 하늘의 불이 내려 그들을 멸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엘리야가 형편을 보고 믿음이 바닥이 났을 때 그 삶이 끝이 나야 하는데 그가 그 이후에도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불러 올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제일이 아니라 사랑이 제일입니다. 엘리야의 믿음이 바닥이 났을 때 사랑이 없으면 엘리야는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 됩니다. 주님의 사랑이 그를 먹이고 다시 어루만지고, 또 다시 누운 엘리야를 다시 먹이고 어루만지면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웁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사랑으로 인도를 하고 누군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최근에 내 믿음이 아무 것도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의 사랑이 없으면 실족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며 아무 것도 아닌 자입니다. 예언과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오늘 우리에게 엘리야를 어루만지고 일으키는 주의 사랑과 손길이 있습니다. 주를 향하여 달려가고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 믿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이 있기에 그 믿음도 소망도 가질 수가 있습니다. 일흔 번씩 일곱 번까지 용서하라는 주의 말씀이 있듯이 엘리야가 또 다시 누워도, 또 다시 누워도, 열 번, 백 번, 만번일찌라도 주님의 사랑이 한이 없습니다. 주님은 여전히 찾아와서 주님의 사랑으로 어루만져서 일으키려고 힘을 주고 있고 이끌어 주고 있습니다. 단지 내가 외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믿음이 없어’, 그래서 사람들은 믿음을 가지려 하지 않고 믿음과 나는 거리가 먼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믿음과 나하고 천 리, 만 리 멀어져 있기에 믿음은 아무나 가지지 못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고린도 전서 13장 말씀이 우리에게 소망을 줍니다. 제 아무리 믿음이 있고 신령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 합니다. 믿음으로 달려가는 사람은 자기 믿음으로 달려가는 것이 아닙니다. 주의 사랑이 이끌어 주고 지켜주며 어루만져 주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개인의 믿음이 아니라 사랑의 터 위에 세워진 믿음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그 터를 제외하면 그 위의 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오늘 우리에게 가장 큰 소망은 주님의 사랑입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에게 주의 사랑이 오늘 우리에게 찾아와서 여러분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있고 일으켜 주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 소망스러운 것은,

     

    네 형제의 우양의 길 잃은 것을 보거든 못본체하지 말고 너는 반드시 끌어다가 네 형제에게 돌릴 것이요”(22:1)

     

    나귀라도 그리하고 의복이라도 그리하고 무릇 형제의 잃은 아무 것이든지 네가 얻거든 다 그리하고 못본체하지 말 것이며”(22:3)

     

    주님이 우리에게 못 본체 하지 않겠다 하십니다. 길을 잃어 버렸을 때, 넘어졌을 때 못 본체 하지 않겠다 합니다. 믿음의 길을 잃어버린 베드로, 넘어진 엘리야, 주님은 반드시 찾아오셨고 못 본체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베드로에게 주님이 친히 찾아가서 배 오른 편에 그물을 던지라 합니다. 고기가 가득히 잡혔는데 베드로가 주님의 사랑을 발견하였습니다. 처음 베드로는 믿음으로만 살려고 했습니다. 내가 죽어도 주를 부인하지 않고 죽는데도, 감옥에도 함께 가겠다 하는 자신의 믿음이 있었습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그 중의 제일이 사랑이라는 것을 베드로에게 보여주고 싶으셨습니다. 세 번 주님을 부인하고 저주한 베드로, 그 믿음이 바닥이 났을 때 물고기 잡으러 갔습니다. 다시 그가 복음을 향하여 달려가지 못했습니다. 행위와 결부시키지 않고 그 마음을 옮겨 믿음으로 옳기지 못하였습니다. 우양이 길을 잃어 버렸는데 어떻게 그 자신이 길을 찾아 갈 수 있습니까? 엘리야처럼 넘어질 때가 있습니다. 길을 잃어버린 베드로, 믿음을 잃어버리고 물고기 잡으러 갑니다. 이 때 주님의 사랑의 필요합니다. 주님이 베드로를 찾아가서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

     

    가라사대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신대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다른 제자들은 육지에서 상거가 불과 한 오십 간쯤 되므로 작은 배를 타고 고기든 그물을 끌고 와서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21:6~9)

     

    엘리야에게 하셨던 것처럼 주님이 베드로에게 사랑이 제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줍니다.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21:15)

     

    베드로의 바닥난 믿음, 그에게 필요한 것은 너에게 찾아와서 처음과 동일하게 밤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만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렸을 때 물고기를 잡았던 것처럼 주의 사랑은 변치 않고 그에게 당신의 사랑을 보여 주었습니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그 사랑과 다릅니다. 베드로에게 변치 않는 주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베드로가 깨달은 사랑, 내가 주를 사랑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그 중의 제일이 사랑이라는 것을 베드로가 깨달았습니다. 이 사랑이 없으면 내가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고 예언하는 모든 비밀을 알고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 줄 알아도 아무 것도 아닌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을 저주하고 부인하고 떠나왔던 예수님, 그 주님이 찾아와 주시고 처음과 동일하게 주님이 그에게 역사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베드로가 발견하였습니다. 오늘 이 사랑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내가 실족한다 할찌라도, 넘어진다 할찌라도 못 본체 하지 않겠다 하십니다. 길을 잃고 헤매이고 믿음의 소리를 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믿음이 제일이 아닌 사랑이 제일임을 깨달은 사람은 다시금 일어설 수 있고 믿음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 생애의 시작,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갔지만 형편과 기근을 보고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그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살 것 같으면, 우리 믿음으로 살 것 같으면 이렇게 다 망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되며, 엘리야가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고, 베드로가 복음을 향해 살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엘리야처럼 로뎀나무에서 죽기를 구하여도 주님이 찾아가 어루만지고 또 다시 어루만지며 그에게 힘을 주고 다시 일으켜 세워 달려가게 합니다. 베드로가 다시 일어나서 주님께 영광을 돌리며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은 주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이 사랑이 어느 누구도 외면하지 않고 어느 누구도 외면하지 않습니다. 오늘 이 사랑이 있어서 믿음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넘어져도 괜찮습니다. 믿음을 없어 길을 헤매여도 괜찮습니다. 이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국가 대표 선수들도 실수를 합니다. 경기 도중에 넘어져도, 수 없이 실수를 해도 다시 일어나 뛰어 갑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이 교만해서 한 번 믿음에서 실족하였다고 주의 사랑을 외면하고 무시하고 짓밟고 육신대로 살아갑니다. 내가 믿음이 없어서 못 달려가는 것도 아니고 믿음이 없어서 문제가 아니고 주의 사랑은 짓밟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악한 것입니다. 이런 내게 주님이 찾아와서 나를 이끌고 일으켜 세워 줍니다. 아브라함, 엘리야, 베드로, 자기 믿음이 아닙니다. 사랑으로 그들을 이끌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사랑으로 오늘 너를 이끌어 주려고 하는데 그 사랑을 외면하고 무시해서 신앙이 안 됩니다. 자기 믿음으로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주의 사랑이 오늘 여러분을 이끌고 있습니다. 내가 실족하고, 넘어지고 길을 잃어버렸다 할찌라도 주의 사랑이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의 사랑을 외면하기에 지옥에 가는 것처럼 우리를 아시고 사랑으로 인도하는 주의 사랑을 외면하기에 신앙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주의 진정한 사랑을 베드로가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세 번 저주하고 부인하고 떠나왔던 내게 주님이 찾아와서 내게 똑같이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주의 사랑을 발견하였습니다. 믿음의 단계를 배워서, 1단계, 2단계, 3단계, 그 길 갈 수 있는 것은 주의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의 사랑이 또 다시 넘어진 것을 못 본체 하지 않고 다시 일으켜 세워 주시기에 그 길을 갈 수 있습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그 중에 제일은 믿음이라 하지 않은 것이 너무 좋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끝이지만 주님은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했습니다. 제 아무리 신령하고 믿음이 있다 하여도 사랑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 합니다.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을 가진 자와 믿음이 하나도 없는 사람, 이 두 사람이 말씀 앞에서 똑같습니다. 실컷 믿음을 가지라 해 놓고서, 사랑이 없으면 똑같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제 아무리 믿음이 없어도 주의 사랑이 있으면 그 사람을 하나님이 어루만지고 일으켜서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주면 됩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이 믿음 없는 사람을 보면서 형편만 보고 산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 믿음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 주님이 말씀합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사랑으로 인도하시기에 그 사랑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 사랑이 나를 이끌고 있고 그 사랑이 나를 어루만지며 숯불에 구운 떡을 주며 내가 일어날 때까지, 그리고 계속해서 그 사랑이 우리에게 향하고 있습니다. 내게 믿음과 소망이 없어도, 사랑은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은 입는 것입니다. 사랑은 그냥 주어진 것입니다. 조건이 없습니다. 이미 이 사랑은 조건 없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나는 믿음이 없다 말할 수 있으며 소망이 없다 말할 수 있지만 사랑이 없다 말할 수 없습니다. 일방적으로 주님에게서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마음에 쉼을 누리십시오. 사랑은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중의 제일인 사랑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사랑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 있어서 그 사랑 때문에 믿음과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주의 사랑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믿음이 없다고, 소망이 없다고 사랑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이미 주어진 사랑이기 때문에 성경은 이 사랑에서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그 어떤 것이라도 끊을 수 없다 합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8:38~39)

     

    믿음의 그릇, 소망의 그릇, 사랑의 그릇 세 가지가 있어서 믿음의 그릇이 텅 비워 있고, 소망의 그릇이 텅 비워 있어도 사랑의 그릇 안에는 사랑이 늘 가득 차 있을 것입니다. 그 사랑 안에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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