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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성옥 | 2016.12.11 11:28 | 조회 5835

    2016124일 주일오전말씀

    말씀: 1:39~56

     

    비천함을 돌아보시는 주님

     

    자연의 섭리를 보면 굉장히 단순한 섭리이지만 하나님은 우리 신앙에 중요한 부분을 보여줍니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갑니다. 단순하게 평지를 보면 어디가 높고 낮은 지를 구분하기 어렵지만 비가 와서 물이 흘러가는 곳을 보며 땅의 높음과 낮음을 알게 됩니다. 물이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도 그렇습니다. 마음의 높이를 재는 자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의 높이를 금방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에 만가지로 우리를 위하여 예비해 놓으시고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그 중의 제일은 제일이라 했습니다. 사랑의 섭리,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서 모든 은혜와 축복이 주어집니다. 한 가지 의문,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서 모든 은혜가, 모든 풍성함이 임한다면 복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지 않아서가 아니라 마음이 높으면 은혜가 흘러가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비가 많이 와도 물은 낮은 곳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높은 곳에는 물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축복도, 은혜도, 풍성함도 그렇습니다. 못나도, 부족해도, 내 행위가 온전치 못해도 마음이 낮은 위치에 가 있으면 모든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마음이 높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않습니다.

     

    우리 조상들의 지혜, 여름철이나 입맛이 없을 때 더 맛있는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입을 낮추었습니다. 쓴 음식을 먹어주면 입이 낮아지기에 모든 것이 달게 여겨지고 모든 것이 맛있게 여겨집니다. 여러분이 말씀을 들어도 그 말씀이 은혜가 되지 않으면 내 마음이 높아서 그렇습니다. 내 삶 속에 하나님의 역사가 임하지 않는 것도 그러합니다. 옛날에 어떤 목사님이 구원을 받기 전에 아내를 핍박하였습니다. 무엇 때문에 교회를 나가는지 알아보자 싶어 아내의 간청으로 수양회를 중간에 참석을 하였습니다. 오후에 도착을 해서 복음반이 있는지도 모르고 재복음반에 들어갔습니다. 강사 목사님이 인간의 몸 중 물이 70%라고 했습니다. 물 빼고 나면 아무 것도 없는 물통, 그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열고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아 지금은 목사님이 되어 계십니다. 마음이 낮으면 모든 것이 다 은혜롭게 들려집니다.

     

    단기 선교사들이 아프리카에 가보면 먹을 것이 풍성한 나라가 있고 그렇지 않은 나라가 있습니다. 어떤 한 자매가 옥수수를 싫어하였습니다. 단기 선교사로 와서 지역 교회로 다 흩어져서 지냈습니다. 그 지역은 옥수수가 주식이었습니다. 쌀농사를 안 짓기에 옥수수만 먹어야 했습니다. 아침에도, 점심에도, 저녁에도 옥수수를 계속 주는데, 그곳에 가니까 먹을 것이 하나도 없고 옥수수만 있으니까 옥수수가 맛있어 졌습니다. 입을 낮춘 결과였습니다. 마음이 높으면 문제가 되는 이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우리 마음 안에서 갈등과 마음의 싸움이 일어납니다. 마음이 높은 사람은 결론부터 이야기를 하자면 자기 생각을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마음이 낮은 사람은 말씀을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마음 안에서 갈등이 일어나고 싸움이 일어나는데 자기가 커져 있고 세워져 있는 사람은 자기 생각을 따라가지 말씀을 따라가지 아니합니다. 나는 믿음이 없어 말씀을 못 따라간다고 생각을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믿음이 없어도 마음이 낮으면 말씀을 따라가면서 믿음이 생겨지게 되어 있습니다. 내게 유익이 되고 내게 좋으면 따라가지만 조금만 손해가 나거나 부담스러우면 안 따라가는 사람이 마음이 높은 사람입니다. 자기 생각과 판단을 따라가지 말씀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어느 쪽을 택하느냐는 것을 보며 마음이 높은 지, 낮은 지를 볼 수 있습니다.

     

    왕후 와스디를 청하여 왕후의 면류관을 정제하고 왕의 앞으로 나아오게 하여 그 아리따움을 뭇 백성과 방백들에게 보이게 하라 하니 이는 왕후의 용모가 보기에 좋음이라 그러나 왕후 와스디가 내시의 전하는 왕명을 좇아 오기를 싫어하니 왕이 진노하여 중심이 불 붙는듯하더라”(1:11~12)

     

    교만해져 있는 와스디, 자기가 세워져 있고 높아져 있기에 왕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생각을 따라 살아갑니다. 오늘 여러분이 믿음이 없어서 말씀을 못 따라간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믿음이 없어도 자기가 세워져 있지 않은 사람은 말씀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와스디는 자기가 커져 있고 자기가 세워져 있기에 말씀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반면에 에스더, 믿음이 있어서 죽으면 죽으리로다 하고 왕 앞에 나아간 것이 아닙니다. 못 가겠다 합니다. 갈 수 없는 형편이라 이야기를 합니다. 모르드개의 말을 듣고 결국 왕 앞에 나아갑니다. 두 사람의 차이, 마음의 높이입니다. 높은 위치에 있는 그릇에는 물이 흘러 들어가지 못하고 낮은 그릇의 위치에 물이 흘러 들어갑니다.

     

    건물을 지을 때 수직과 수평을 잡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김종훈 목사님이 공병대 장교 출신이셨는데 처음으로 군대에서 건물을 짓고 나니까 이쪽과 저쪽의 수평이 10cm 차이가 났습니다. 겨우 겨우 창문을 끼어 넣었다고 합니다. 추에 실을 매달아 내려놓고 그 기준에 수직을 맞춥니다. 수평은 물을 가지고 맞춥니다. 요즘은 수직과 수평을 맞추는 기계가 있어 레이저로 맞추지만 예전에는 비싼 장비가 없어도 가느다란 호스에 물을 담아 걸어 두었다가 수평을 잡을 때 정확하게 맞춥니다. 사람의 마음의 위치가 하나님의 말씀보다 높으면 절대로 그 말씀이 흘러 들어가지 못합니다. 반대로 마음이 낮은 사람은 말씀이 흘러 들어가 그 말씀이 반드시 믿음을 줍니다. 믿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말씀이 안 흘러 들어오기에 믿음을 가지지 못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다고 합니다. 말씀은 빛이기에 말씀이 들어오면 어둠을 몰아내게 되어 있습니다. 빛을 이길 수 있는 어둠은 없습니다. 넓은 벌판에 가서 성냥불을 켜면 아무리 어둠이 짙다 하여도 어둠을 밝힐 수 있습니다. 말씀이 들어오면 어둠을 물리치게 되어 있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몰아내고, 걱정, 근심, 염려를 몰아내게 되어 있습니다. 말씀이 안 들어오는 사람,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 걱정, 근심이 떠나지 않고 염려하고 있는 사람, 마음이 높아서 그 말씀이 흘러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커져 있기 때문에 와스디에게 왕의 명령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 명령이 어려워서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 마음이 왕의 말을 거역하며 반역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마음 안에 하나님의 세계를 만들어 갑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말씀이기 때문에 여러분의 마음 안에 하나님의 세계 하나하나를 만들어갑니다. 수많은 말씀을 듣지만 왜 여러분 마음 안에 세상이 만들어져 있습니까? 세상의 욕망, 욕구, 정욕이 들어가 있습니까? 육신적인 것이 가득 차 있는 이유, 이는 하나님의 나라가 여러분의 마음 안에 만들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천지를 창조하신 말씀과 똑 같은 말씀인데 단 한 가지의 이유, 그 말씀이 여러분의 마음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들어가면 내가 변하지 않으려고 해도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수면제를 먹으면 잠이 오는 것처럼, 마취 주사를 맞으면 열까지 헤아리지 못하고 금방 잠이 들어 버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오면 변화 될 수밖에 없습니다. 변화가 되지 않는 사람은 교만합니다. 주변의 형제자매들보다 교만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보다도 교만하고 높이 있어서 그 말씀이 안 받아 들여지고 그 말씀이 역사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나는 믿음이 없어서 믿음으로 못 산다고, 못 한다고 말씀하지 마시고 나는 말씀보다 교만해서 변화가 없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사랑의 하나님, 어떤 그릇에도 물을 부어주시는데 높이 있는 그릇에는 물이 들어가지 못합니다. 큰 통의 물을 작은 통에 담을 때 호스에 입을 대어 쭉 빨아들이면 낙차에 의해 물이 자동으로 계속해서 나옵니다. 물의 높이가 같아질 때까지는 계속해서 물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은혜, 능력, 축복도 계속해서 흘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다 할 때까지 계속해서 여러분의 삶 속에 흘러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물이 잘 흘러오는데 호스의 물을 그만 오게 하려면 호스를 막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들어 올리면 됩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임하지 않게 하는 방법, 사단이 여러분을 높여 놓으면 됩니다. 너무 세워져 있어서 그 사람의 마음에는 말씀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누가 전하든지 그 마음에 들어가서 역사와 변화와 능력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말씀을 듣고 내가 노력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말씀 자체에 능력이 있기 때문에 역사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신앙이 안 되고, 되고의 차이는 말씀보다 그 마음이 높으냐, 낮으냐의 차이입니다.

     

    모르드개의 말, 목숨을 걸어야 받아들일 수 있는 말, 죽으면 죽으리로다 하고 왕 앞에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에스더의 마음이 모르드개보다 낮았기 때문입니다. 왕후의 위치에 있었던 에스더가 사촌 오빠 모르드개보다 그 마음이 높았다면 모르드개의 말이 에스더에게 흘러가지 못하고 믿음을 가지지 못했을 것이며 왕 앞에 믿음의 발을 내딛지 못했을 것입니다. 신앙이 아닌 사람의 공통점,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보다 높아져 있습니다.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 형편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 공통점이 말씀보다 커져서 교만해져 있기 때문에 그 말씀을 받으려고 애를 써도 받지 못합니다. 마음이 낮으면 아무리 육신적이라도 결국 말씀이 흘러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마음이 높은 사람과 마음이 낮은 사람, 와스디 그리고 에스더와 마리아를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마리아도 처음에 천사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낮다고 해도 자기 생각이 없고 자기 판단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 생각이라는 그 칸막이가 물길을 가로 막고 있는데 그 물 막이를 들어 내 버리면 물이 흘러가게 됩니다. 마음이 높은 사람은 마음의 위치가 높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흘러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 차이를 알겠습니까? 에스더나 마리아도 처음부터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였습니다. 왕 앞에 나아가면 죽이는 법, 사내를 알지 못하는데 어찌하겠냐고 묻습니다.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베었느니라 본래 수태하지 못한다 하던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 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1:34~38)

     

    마리아가 가로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 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미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를 공수로 보내셨도다”(1:46~53)

     

    마음의 위치, 마음이 교만한 자를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라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내리치셨습니다. 마음의 생각이 높으니까 이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흘러 들어가지 못합니다. 일을 시켜 보면 어떤 사람은 작게 이야기를 해도 그대로 받아서 하는 사람이 있고 마음이 교만한 사람은 여러 번 이야기를 해도 안 흘러 들어갑니다. 기억력이 부족한 것도, 일을 할 줄 몰라서도 아니고 마음의 생각이 높아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듣는데 말씀이 안 흘러 들어가는 사람, 마음의 생각이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들으면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마음의 갈등, 분쟁, 악한 생각들, 마음의 생각이 높아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치 아니하면 저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라”(딤전6:3~5)

     

    마음이 높은 사람은 절대로 자기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고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으로 이어집니다. 마음이 높은 자의 생각과 마음이 낮아 말씀이 들어온 자의 생각이 전혀 다릅니다. 자기가 옳다 하고 자기 생각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은 교만할대로 교만하여져서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이 되어 버립니다. 바람 든 무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처럼 겉은 멀쩡해 보여도 다 갖다 버려야 합니다. 언쟁과 변론, 계속 그 속에서 악한 생각만 나옵니다. 설명을 해 줘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변론은 끝이 없습니다.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말을 가지고 설명해 풀어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이 높아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교만해져 있으니까 나오는 증상인데 사람들은 자기 마음이 얼마나 교만해져 있고 높아져 있는지 알지 못하고 마음이 부패하여져 버립니다. 마음이 썩어 버렸는데 그 마음에서 무엇이 나오겠습니까? 여러분 집에 음식물 쓰레기통이 있어 한 여름 며칠을 그대로 나두면 썩어서 썩은 냄새가 심하게 납니다. 교회가 하는 일에 반대적인 생각, 마음이 썩어 있고 부패 되어져 있기에 그 사람의 마음에서 행복하고 평안하다는 소리를 하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변론을 하며 말싸움을 해서 이기는 재미로 삼습니다. 그 마음이 교만하고 썩어 빠져서 그렇다 말하고 그런 사람과 대화할 필요가 없습니다. 누구에게? 남 말고 나에게 그렇게 말씀하십시오. “내가 교만해서 그래, 내 마음이 썩어서 그래!” 집에 가서 남편에게, 마누라에게 이야기를 해 주어야겠다 생각하지 말고 자신에게 그렇게 대하십시오. 마음이 부패한 사람은 그 마음에 사랑을 느끼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 무조건적인 사랑, 그 사랑의 섭리에 의해서 만 가지 축복이 임하는데 안타깝게도 부패한 사람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고 살아갑니다. 또한 감사를 느끼지 못합니다. 또한 충만함도 느끼지 못합니다. 불평과 원망, 아무리 맛있는 사과도, 배도 썩으면 먹을 수 없습니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인간, 교회 안에서만 아니라 이 사회에서도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입니다. 교회 안에서만 불평하고 불만이 있는 것이 아니고 직장에 가서도 상사를 욕하고, 사장을 욕하고, 어디를 가나 감사가 없고, 행복이 없습니다. 마음이 높아지면 행복을 느끼지 못합니다. 입이 높아지면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주어도 느끼지 못합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귀한 것을 주어도 그런 사람의 마음에도 감사가 없습니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 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3:1~5)

     

    교제할 대상이 아닙니다. 돌아서라 합니다. 강한 쇠로 만든 자동차도 처음에 어떻게 길을 들이느냐는 것에 따라 나중에 차의 성능이 크게 좌우됩니다. 예전에 중고차 스틱 차량을 살 때 여자들이 운전한 차를 사지 말라는 철칙이 있었습니다. 여자들은 자동차의 기계적인 성능을 모르기에 스틱 변속을 할 때 엔진의 출력을 높이 올려서 변속을 해야 하는데 길을 잘못 들여서 나중에 차가 고속 주행을 못하는 것을 봅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엠프, 스피커를 사서 길을 들입니다. 그래야 나중에 저음과 고음을 잘 낼 수 있게 됩니다. 기계도 길을 잘 들여야 하는데 사람의 마음의 길을 들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겠습니까? 케냐에 학생들이 축구 경기를 안 보여 준다고 100군데의 학교가 불 탔습니다. 표면적인 이유는 맞지만 내면적인 이유는 그 마음의 길이 잘못 되어 있습니다. 데모하는 날, 데모 데이가 있어서 그 날이 되면 이유가 없어도 데모를 합니다. 그래서 학교는 등교를 못 하게 하고 대문을 걸어 잠급니다. 프랑스가 지배했던 나라, 영국이 지배했던 나라, 프랑스가 지배했던 나라는 억압을 많이 했기 때문에 잘 대들지 않고 거역하지 않은데 영국이 지배했던 나라는 잘 대해 주었기 때문에 거역하고 훼방하는 길이 나 있습니다. 사건이 옳으냐가 중요하지 않고 마음을 꺾는 길로 길을 내어 주어야 하는데 부모들이 촛불 집회에 아이들을 데리고 갑니다. 태교, 좋은 생각을 하고 좋은 음악을 듣습니다. 초등학생, 중학생들을 거역하고 훼방하는데 마음의 길을 내어 주면 그 아이들이 커서 그러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길을 잘 못 내어 놓으니까 인생을 평생 그렇게 살아갑니다. 마음을 꺾고, 순응을 하고, 마음을 꺾고 다스리지 않기에 앞으로 자살률과 이혼률이 더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말세가 되면 교만해져서 훼방하고 거역하고 감사치 못하고, 마음 하나 높아지니까 그 마음이 부패해 집니다. 오늘 여러분의 마음, 어느 시대보다도 마음을 관리하는 것은 정말 복된데 성경은 뭐라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3:16)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늘 책망합니다. 우리 마음을 낮추는 일을 합니다. 사람들은 사람 앞에서 마음을 꺾는다는 것이 잘 안됩니다. 이미 교만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말씀 앞에서 내 마음에 겸비함을 갖추고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 앞에 마음을 꺾지 않으면 나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인생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끊임없이 우리 마음을 책망하고 있기 때문에 전능한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내 마음을 꺾고 내 마음이 낮추면 만 가지 하나님의 사랑의 의해서 축복과 은혜가 임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 삶 속에 마음 것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믿음이 없고 부족해도 사랑의 섭리가 나를 이끌어 복되게 하는데 그 사랑은 마음이 높은 사람에게는 임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 사랑의 혜택이 마음이 높은 사람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에스더와 마리아는 믿음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말씀 앞에서 겸비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믿음이 없었어도 하나님의 사랑이 이들을 찾아가서 이야기를 하고 설득을 하고 이끌어서 만세에 복 있는 여자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내 마음이 높은 지, 낮은 지, 마음만 낮으면 부족해도, 아무리 못나고 허물이 많아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지난번에 심홍섭 전도사님을 불러서 간증을 들었습니다. 공통적으로 여러분들이 다 느꼈을 것입니다. 그 마음에서 교만을 느끼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술주정뱅이,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 그런데 그 마음이 참 낮아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마음 하나 낮으니까 말씀 앞에서 자기 생각을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갈 수 있었습니다. 마음이 높은 사람은 결정적인 순간이 자기 마음과 생각과 형편을 따라갑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이 말씀을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높은 사람이 생각을 따라가고 마음이 낮은 사람이 말씀을 따라갑니다. ‘다 알겠는데 나는 안 된다.’ 하는 것은 교만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이 더 커져 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가 가로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 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1:46~50)

     

    만 가지 문제가 마음의 생각이 교만하기 때문에 시작됩니다. 내가 커져 있는 모양이 와스디 입니다. 왜 거역하며 왕의 말을 못 받아들인 이유, 마음의 생각이 교만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왕의 명령을 들었을 때 마음의 싸움과 갈등, 결국 따라 간 것이 자기의 생각이었습니다. 마음의 생각이 교만하면 자동적으로 자기 생각을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반대로 마리아는 사내를 알지 못하는데 어찌 아들이 낳으리요, 이해가 되지 않지만 마음이 낮으니까 그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마리아의 마음에 마음이 일어난 것도, 이해가 된 것도 아닙니다. 비천한 여자이기에, 그 마음이 겸비하였기에 말씀을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로다 하고 나아가도 두려움이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모르드개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은 그 마음이 겸비하였기 때문이며 그 마음이 모르드개보다 낮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질 때 내 마음이 겸비해 있지 않으면, 내 마음이 높아져 있으면 절대로 믿음의 삶을 살지 못합니다. 믿음이 안 생긴다는 말이 아니라 내 마음이 교만하며 부패해져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 마음의 위치가 높아져 있기 때문에 불평과 원망이 내 마음에서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늘 악한 생각, 악한 말, 불평을 쏟아 낼 수밖에 없는데 그 사람이 행복하겠습니까? 교회에 해를 끼쳐도 여전히 자기의 생각을 따라 살아갑니다. 그 인생이 불행해지면서도 혼인 잔치에 초청함을 거부하고 자기 밭으로 따라갑니다.

     

    말씀 앞에서 전능한 하나님의 말씀인데 완전한 말씀이며 완벽한 말씀입니다. 와스디가 왕의 명령 앞에서 왕의 명령을 듣지 않는 것은 거역이며 반역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말씀을 거부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안 받아들이는 것은 사단이 사단처럼 만들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리에 사단이 앉으려고 하나님을 대적하였는데 말씀보다 자기가 더 높아져 있는 모양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섭리 안에 모든 것을 다 주십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지옥에 가며 사랑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은 말씀보다 자기가 더 세워져 있어서 자기 생각을 따라가기에 구원을 받지 못한 결과입니다. 내 생각을 따른 것이 아니고 그 안에 들어가면 사단의 계획을 따라간 것입니다. 사단 편에 서서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2:1~3)

     

    사람들은 그 내면에 악한 영이 끌고 있는데 표면적으로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그 삶을 내가 살아가고 있다 생각을 합니다. 사단이 가룟유다에게 했던 것처럼 자기 목적대로 사단은 써먹고 그 사람을 버렸습니다. 반대로 예수님은 자기 사람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만 가지로 연약하고 부족함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마음이 교만하여지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어집니다. 마음을 꺾어야 하고 자기를 부인해야 하는 이유, 내 생각을 따라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낮아야 말씀의 판단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나는 믿음이 없어서, 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내 마음이 부패해져 있고 교만해져 있어서 그 뜻을 따라가지 못하고 내 생각을 따라갈 수밖에 없으며 언제든지 내 판단을 따라갈 준비가 되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믿음이 없어도 마음이 낮은 사람은 언제든지 말씀을 따라갈 준비가 되어져 있습니다. 에스더와 마리아는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 앞에도 그 말씀을 따라갈 준비가 되어져 있습니다. 성경은 자기 생각을 따라간 결과가 말세에 고통 할 때가 온다 하였습니다. 마음이 높아져 있으니까 하나님의 사랑도, 축복도, 은혜도 흘러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내 마음의 상태, 그 마음을 발견하고 하나님이 여러분 인생에 어려움과 문제들을 통해서 마음을 낮추어 보십시오. 오늘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겸비하시고 말씀 하나를 받아들여 만 가지 복을 입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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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 [인천교회]김재홍 목사 주일말씀(2018/0114) 이성옥 2018.01.23 3564
    191 [인천교회]김재홍 목사 주일말씀(2018/0107) 이성옥 2018.01.07 3631
    190 [인천교회]김재홍 목사 주일말씀(2017/1224) 이성옥 2017.12.26 3967
    189 [인천교회]김재홍 목사 주일말씀(2017/1210) 이성옥 2017.12.15 4101
    188 [인천교회]김재홍 목사 주일말씀(2017/1126) 이성옥 2017.11.29 3725
    187 [인천교회]김재홍 목사 주일말씀(2017/1119) 이성옥 2017.11.23 3642
    186 [인천교회]김재홍 목사 주일말씀(2017/1112) 이성옥 2017.11.19 4002
    185 [인천교회]김재홍 목사 주일말씀(2017/1105) 이성옥 2017.11.11 3952
    184 [인천교회]김재홍 목사 주일말씀(2017/1029) 이성옥 2017.11.05 3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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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2 [인천교회]김재홍 목사 주일말씀(2017/0226) 이성옥 2017.02.26 5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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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3 [인천교회]김재홍 목사 주일말씀(2016/1113) 이성옥 2016.11.20 6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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