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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성옥 | 2017.11.23 14:55 | 조회 3643

    20171119일 주일오전말씀

    말씀: 삼하12:7~15

     

    마음의 길을 먼저 옮겨놓아야 한다

     

    지난 주간에는 저희 선교회에 박목사님께서 브르기나파소 대통령을 면담하고 오셨습니다. 브르기나파소 장관님이 국가 청소년 지도자 포럼이 있는데 초청을 하셨습니다. 지난주에는 미얀마에 집회가 있고 칸타타가 있어서 도저히 시간을 나지 않아 일정을 잡지 못하고 계셨는데 어느 날 브리기나파소 대통령의 초청장이 왔습니다. 대통령이 친히 친서를 보내어 꼭 초대하고 싶다 하셨습니다. 목사님의 일정을 조정하여 브르기나파소에 가셨는데 대통령이 만난 첫 마디가 초대에 응해주셔서 감사하다고 하셨고 우리 IYF 학생들이 브르기나파소를 위해서 많은 일을 하겠다화답하셨습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들이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큰일들을 이루시고 종을 들어 쓰셔서 이루어 가고 계심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앞에 예비되어 있는 일들, 무궁무진하게 끝없이 펼쳐지고 있고 한 걸음 내딛고 나면 생각지 못한 일들을 하나님이 펼쳐가시는 것을 봅니다.

     

    어제 안산을 시작으로 칸타타가 시작 되었습니다. 저희 지역에서 예전에는 전체로 한 번 치렀는데 지금은 5~6번을 치르면서 어떤 대전도 집회보다도 가장 많은 사람에게 우리를 알리고 예수님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목사님이 브르기나파소 대통령의 초대를 받아서 가셨기에 어제 저녁 안산 칸타타에 말씀을 전해야 하는데 토요일은 이헌목 목사님이, 일요일은 제가 하기로 했다 목사님이 일요일 저녁에 칸타타 메시지를 전하실 수가 있어서 제가 토요일 마음의 길에 대해서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사람이 행복하느냐, 불행하느냐는 것은 조건 때문이 아니라 마음의 길 때문입니다. 아무리 어려움을 만나고 절망을 만나도 행복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이 있으면 행복할 수 있고 그 길이 없으면 그 속에서 힘들어하고 괴로워합니다. 1984년의 에디오피아 대기근, 통계상 100만 명이 죽었는데 많은 나라에서 구호품을 보내 주어도 공항에서 전달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곳으로 가야 할 길이 없어서 양식을 쌓아 두고 굶어 죽었습니다. 오늘 날 사람들도 마음의 길이 없습니다. 어려움을 만났을 때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불행을 만났을 때 나는 불행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박 목사님은 사람들의 마음에 없던 길을 새로 만들어 줍니다. 그라시아스 합창단이 창단되고 성장하고 세계 최고의 합창단이 되기까지 옆에서 지켜보면서 목사님이 마음의 길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아무도, 그리고 단원들조차도 세계 최고라 생각하지 않았을 때 목사님은 너희는 세계 최고의 합창단이야”, 그 마음의 길을 만들어 주셨고 2015년 독일의 마르크 오버 도르프 세계 최고의 합창대회에서 최고상을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믿음의 길, 지금은 세계 최고가 아닌데 마음은 세계 최고라는 위치 가운데로 옮겨 주셨습니다. 가장 쉬운 길이면서도 믿음의 세계를 모르고, 자기 생각과 판단을 버릴 줄 모르는 교만한 사람은 너무 어려운 길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기 생각과 판단을 믿기 때문에 마음의 길을 내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이 처해 있는 형편과 자기 마음이 중요하지, 그 마음을 부인하고 마음의 길을 내지 못합니다. 어떤 어려움, 문제, 형편 가운데 있든지 마음의 길을 내어보면 삶은 변하게 됩니다. 물론 그라시아스 합창단이 세계 최고가 되기까지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한계를 느끼고, 좌절하고, 어려울 때도 있었지만 그곳에서 다시금 건져내는 종의 말씀이 있었기에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세계 최고라는 종의 말씀을 믿고 가면서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생각의 구덩이, 스스로가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곳에서 결과가 달라집니다. 절망의 구덩이, 한계의 구덩이에 빠져 있을 때 그곳에서 벗어나면 세계 최고의 길을 갈 수 있고 삶 속에서 어떤 문제에서도 벗어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내 스스로는 그 구덩이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두 번째, 누군가가 그곳에서 손을 내밀어 건져 내어 주면 벗어날 수 있습니다. 탄자니아에서 본 특별한 광경, 야생 얼룩말이 물을 먹으러 언덕에 내려갔다가 그 언덕을 다시 올라가지 못해 발버둥을 치다 스스로 나올 수가 없어 죽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람이 키운 말이었다면, 찾고 찾아서 그 구덩이에 빠진 말을 동네 사람들과 함께 밧줄로 끌어 올려 주었을 것입니다. 생각의 구덩이에 빠졌을 때 자기 마음, 자기 생각만 믿고 그 손길을 거부합니다. 그런데 합창단은 아무리 어려운 가운데 있다 하더라도 종의 말씀이 주어지면 그 말씀을 그대로 받았기에 한계를 넘어 세계 최고의 합창단이 되었습니다. 어제는 짧은 시간이었기에 다 이야기할 수 없었지만 우리 삶에도 이 두 가지가 있으면 너무 복되겠다 싶었습니다. 우리 마음에 마음의 길을 내는 어떤 문제와 어려움과 형편이 있든지, 내 삶의 변화든, 신앙의 변화이든, 건강의 문제이든, 전에 없던 마음의 길, 먼저 마음을 옮기는 것입니다. 문제가 다 해결된 위치가운데로 마음을 옮기는 것입니다.

     

    나는 늘 죄를 짓는 죄인인데 복음이 우리 마음을 옮겨 주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다 사하신 길, 일을 아니할 찌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를 의롭게 여기셨습니다. 죄 사함의 문제만이 아니라 어떤 문제가 있든지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쳐야 하는 것이 아니라 죄가 다 사해진 위치로 마음을 옮겼기에 의롭다 하신 것처럼 어떤 문제가 있든지 간에 문제가 다 해결된 가운데로 내 마음을 옮기는 것입니다. 그렇게 길을 내어 놓으면 그곳에 도달하게 됩니다. 불행하다, 문제를 해결해야 행복해 지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을 행복한 가운데로 마음을 옮겨 놓는 것입니다. 그렇게 길을 내어 놓으면 여러분의 삶은 그 길을 가게 됩니다. 그 길을 가다 생각의 구덩이, 절망, 한계, 좌절, 내 스스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나올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나를 건져 줄 교회와 종의 손을 붙잡고, 그 말씀을 붙잡으면 쉽게 나올 수 있습니다. 자기가 벗어나려고 애를 쓰는 사람은 절대로 나올 수 없습니다. 문제는 이 길을 안다고 해서 행복한 삶을 살고 문제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문제를 알아도, 마음이 교만한 사람은 이 길을 가지 못하고 마음이 옮겨지지 아니하고, 생각의 구덩이에 빠졌을 때 종과 교회가 전해주는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못 벗어나지 못합니다. 자기가 부인되지 않은 사람, 마음이 교만하기에 그렇습니다. 겸손해 보여도 마음이 생각이 교만한 것을 봅니다. 자기 생각과 자기 판단이 부인된 사람이 겸손한 사람입니다. 마음을 꺾지 못하고, 자기 생각과 자기 고집대로 하는 사람은 굉장히 교만한 사람입니다. 분명히 행복해 질 수 있는 길이 있고 복되어 질 수 있는 길이 있는데 자기가 부인되지 않아서 불행한 삶을 살게 됩니다.

     

    다윗이 범죄 한 이후에 선지자 나단이 와서 다윗을 책망하는 장면을 읽었습니다. 선지자 나단이 왕인 다윗에게 신랄하게 책망을 하고 그 책망을 다윗이 겸손히 받아들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왕들, 그 주변에 선지자가 없거나, 선지자가 책망을 하면 감옥에 넣거나, 아니면 헤롯처럼 요한이 그의 잘못을 지적하니까 결국 나중에 그의 목을 베어 버리는 것을 봅니다. 왕이기에 누구 말도 듣지 않고 자신이 옳다 하면 그 생각을 따라 갑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기를 부인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싸움을 잘하고, 전쟁을 잘하고 위대한 일을 해서 위대한 왕이라 하지 않습니다. 칸타타의 1막을 보면 예루살렘 성전을 지은 헤롯이 유대인의 왕?, 나 외에 다른 왕은 없어!” 하고 나옵니다. 헤롯은 왕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없습니다. 그는 왕족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유대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성전을 지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해 주었기에 유대인들이 헤롯을 왕으로 받아들였고 또한 헤롯은 로마가 재정적으로 어려웠을 때 새로운 항로를 만들어서 로마로부터도 인정을 받았습니다. 왕족의 혈통, 아기 예수가 태어났다고 하니까 헤롯이 발끈합니다. 외형적으로 보면 헤롯이 성전을 건축했고, 다윗은 그러하지 못했습니다. 다윗이 성전을 지으려고 하자 하나님은 그가 피를 많이 흘렸기에 그 아들 솔로몬을 통해 성전을 지었습니다. 외형적으로 위대한 일을 하는 것보다도 마음을 꺾고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가장 위대한 일입니다. 자신이 주를 위해서, 교회와 복음을 위해서 한 것이 많을수록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가인은 아벨보다 훨씬 뛰어나고, 능력이 있었고, 에서는 야곱보다 훨씬 뛰어나고, 일을 잘하고, 사냥하여 별미를 만들어 아버지를 기쁘게 하는 자였습니다. 일을 하는 기준으로 보면 훨씬 잘하는 자들이었는데 영적 안에서의 기준은 자기가 부인되느냐, 부인되지 않느냐 입니다. 자기가 부인되지 않는 사람은 일을 잘해도 가인, 에서와 같은 자입니다. 일을 못해도, 연약해도 자기 생각과 판단과 자기를 부인할 줄 아는 사람, 아벨은 입김과 같이 허무한 사람이지만 자기를 부인하고 양의 첫 새끼와 기름을 가지고 나아갔고, 야곱은 연약한 자이며 별미를 만들 능력이 없지만 어머니 리브가가 내 말만 좇고 가라 했을 때 자기를 부인하고 아버지의 축복 앞으로 나아갑니다. 사람들은 자기 일 잘하는 것을 믿고 마음을 못 꺾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부인되지 않는데, 일을 잘한들 무엇이 소용 있습니까?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겨울이 되어서 김장을 하는데 바람 든 무우,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처럼 마음이 교만해져서 높아져 있는 사람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성경에서는 일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가 부인 되어진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습니다. 다윗을 향해 힐난하게 책망하는 나단, 그 마음의 정곡을 찌르는 방법을 씁니다. “왕이시여, 어떤 부자가 있어서 양과 소가 심히 많고 어떤 가난한 사람이 있어서 아무 것도 없고 암 양 새끼 하나뿐인데 부자가 손님이 왔다고 자기 양과 소는 아끼고 그 가난한 자의 양의 새끼를 빼앗아 그 사람을 위해 잡았다이야기 했습니다. 다윗이 그 이야기를 듣고 크게 화를 내면서 이 일을 행한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 했습니다. 나단이 당신이 그 사람이라 직설적으로 그 앞에서 책망을 했습니다. 다윗이 얼마나 무안했겠습니까? 그런데 다윗이 그 앞에서 마음을 꺾습니다. 다윗의 죄를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그 일 하나하나에 다윗이 마음을 꺾고 자기를 부인합니다.

     

    마음을 꺾은 사람, 자기가 부인된 사람은 책망을 해 보면 압니다. 책망이 들어가지 않는 사람은 자기가 잘한 것, 옳은 것이 있기 때문에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잘한 것, 옳은 것 때문이 아니라 더 근본적인 이유는 자기를 믿기 때문에, 자기를 믿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사단이 옳은 마음, 잘한 마음을 넣어 주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부인할 줄 아는 사람은 자기 판단과 생각을 믿으면 안되기에 그 마음에 분명한 회개가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보아도 잘못한 것이 없어도 책망이 들려지면 인정이 되어서 그 마음을 꺾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부인합니다. 말씀에서 잘못되었다면 마음을 꺾습니다. 마음을 꺾어보면 하나님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보여주고, 깨우쳐 주시는 것이 있습니다. 더 교만한 사람은 잘못된 것이 보여도 마음을 꺾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세상이 악해져서 누가 봐도 잘못된 것이 드러나도 마음을 꺾지 않습니다. 이 세상이 악해져서 그렇습니다. 잘못해진 것이 보여서 마음을 꺾는 사람이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 또한 교만한 마음입니다. 우리는 말씀의 판단 앞에서 꺾어져야 합니다. 어떻게 보이고, 어떻게 깨달아져야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교회와 종이 불편해 하면 나는 못 느끼지만 그대로 받아 그 마음을 꺾어야 하고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예전에는 아파서, 통증이 오면 그곳을 진찰하고 치료를 하고 진단을 했습니다. 요즘은 의술이 발달되어서 건강 검진을 통해서 본인이 못 느끼는 병을 진단할 때가 많습니다. 앞으로는 지금 아픈 데가 없고, 병이 없지만 앞으로 무슨 병에 걸린 것인지 내다보는 최고의 의술, 한의학에서도 예측을 하고 미리 그 병을 막아줍니다. 동양의학에 전해지는 이야기를 보면서 마음의 세계에 있어서도 더 발달이 되어져야 합니다. 내가 잘못해서 마음에서 느끼는 것보다도 내가 느끼지 못해도 종이 진단을 해주면 마음에 받아들이는 사람, 그리고 그 마음을 제해주려고 하는 책망을 어떻게 느낍니까? 박목사님께서 20년 전에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살면 다 대적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마음의 세계를 보지도 이해하지도 못했습니다. 이 마음을 가지고 살면 앞으로 어떻게 살지 알고 계셨기에 마음을 책망 하시고 그 마음을 꺾어 주셨습니다. 세월이 지나 보면, 교회를 대적하고, 예배당을 차지하려고 싸우는 사람들, ‘그래서 20년 전에 목사님이 이런 이야기를 하셨구나’, 우리 앞에 느껴지는, 보이는 마음의 세계를 가지고 사는 것이 심히 미련하고 어리석습니다. 마음을 꺾지 않는 사람, 교만한 사람은 더불어 말할 수 없는 것이 본인이 느껴야 하기 때문입니다.

     

    청년 자매들이 시집을 늦게 가려고 합니다. ‘혼기를 놓치면 안 되는데’, 여기 앉아 계신 나이 드신 분들은 다 그 생각을 하시겠지만 정작 본인들은 자기 느낌과 판단을 믿습니다. 그리고 어떤 신랑감을 만나느냐,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내 인생에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아무리 안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어도 마음이 맞으면 가장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마음의 세계에서 사람들은 결국 자기가 느껴야 하고, 자기가 깨달아야 하는 삶을 살려고 하기에 모든 부분에 불행해지는 것을 봅니다. 때로 제가 제 아내와 함께 운전을 하고 갈 때 제가 졸리고 피곤할 때 아내에게 운전을 하라고 하지만 실제로 한 번도 제 아내에게 운전대를 맡기고 잠을 잔 적이 없습니다. 못 믿기 때문입니다. 졸려도, 쉬웠다 가더라도 제가 운전을 하고 다녔지 한 번도 맡겨보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판단과 생각을 믿고 살지, 주님의 판단과 말씀의 판단, 그리고 종과 교회의 판단에 자기를 맡기지 못하는 것은 미덥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제 아내도 운전을 하고 다니지만 제가 운전을 하니까 제 아내에게 운전을 맡기지 못합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교회의 인도를 받는다 하면서도 자기 생각과 판단을 따라 갑니다. 너무 안타까운 것이 교회를 못 믿고 종을 못 믿는 것인데, 왜 인도를 받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자기 생각과 판단을 믿을까? 이는 한 순간의 실수가 아니고 그 사람의 마음에 자기 생각과 판단을 믿기 때문에 그렇게 될 수밖에 없고 예견된 길입니다. ‘내가 지금 졸린데, 내 아내에게 운전대를 맡기고 편히 잠을 잘 수 있겠나’, 휴게소까지 가기 전, 졸음 쉼터가 나오면 잠시라도 눈을 붙이고 가는 것이 낫습니다. 자기 생각과 판단을 믿는 사람은 결정적인 순간에 주님이 못 미덥고, 종과 교회의 인도가 미덥지 못하기에 자기 판단을 따라 결정을 하고 살아갑니다. 교만하고 거만해서 그렇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고 넘어짐의 앞잡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넘어지고, 그래서 패망합니다. 다윗은 나단의 책망 앞에서 마음을 꺾습니다. 자기가 부인된 사람, 그 사람은 첫 번째, 하나님을 인정합니다. 다윗의 마음에 선지자 나단의 말이 다 맞기 때문에 인정한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또 이처럼 이르시기를 내가 네 집에 재화를 일으키고 내가 네 처들을 가져 네 눈앞에서 다른 사람에게 주리니 그 사람이 네 처들로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이스라엘 무리 앞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하셨나이다”(삼하12:11~12)

     

    선지자 나단의 책망 이후,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다윗의 후궁 열명과 백주 대낮에 후궁과 동침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왕께 여짜오되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청컨대 나로 건너가서 저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 왕이 가로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저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저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하고”(삼하16:9~10)

     

    하나님을 인정한 사람은 이 일 앞에서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와 같은 마음이 아닌, 시므이가 저주하는 것을 하나님으로 인정합니다. 마음을 꺾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특징, 첫 번째, 어떤 일을 만나든지 하나님을 인정합니다. 마음을 꺾지 못한 사람은 대적들과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솔로몬 왕이 하나님과 마음이 멀어지면서 이방 여인들을 취하고 일찍이 두 번이나 하나님이 말씀을 하셨어도 계속해서 이방 여인을 취하였음으로 하나님이 대적들을 일으킵니다. 그런데 솔로몬 왕은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닥과, 르손과 여로보암과 싸우고 있습니다. 다윗은 자기를 저주하는 시므이와 싸우지 아니하고 아비를 대적하고 후궁을 취하고 아버지를 죽이려 하는 압살롬을 대하여 죽이지 말고 너그러이 대접하라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기가 부인되지 않고, 자기가 부인되지 않는 사람은 자기를 책망하고 지적하는 사람과 싸움을 합니다. 교만한 자를 책망하고, 미련한 자를 책망하면 오히려 너를 대적한다 합니다. 함부로 책망할 수 없는 것이 개의 귀를 잡는 것과 같다 합니다. 내가 느끼는 대로, 내 태도와 자세가 겸손한 것을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말씀의 판단 앞에서 진단한 결과로 마음의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인정합니다. 죽는 그 날까지 하나님을 인정하고 귀한 간증을 남깁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내 의대로, 그 목전에 내 깨끗한대로 내게 갚으셨도다 자비한 자에게는 주의 자비하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특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리심을 보이시리이다”(삼하22:25~27)

     

    다윗이 하나님 앞에 사특히 행했기 때문에 주의 거스리심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했을 때 얻어지는 간증입니다.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그리했다는 것은 교만한 말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한 사람이 자기가 부인되어진 사람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마음이 꺾어진 사람은 하나님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자기를 책망하고 자기를 대적하는 시므이나 압살롬에게 보복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래서 하나님을 얻습니다. 첫 번째, 하나님을 인정해야 하고, 두 번째, 하나님을 얻는 것입니다. 다윗의 마음에 귀한 간증을 얻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낮추기 위해서, 실수와 허물을 통해 나를 낮추는 일을 합니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얻습니다. 마음을 꺾고 낮추었다는 것은 입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인정한 사람은 하나님을 얻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마음을 닫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신 귀한 간증이 모든 사람을 덕스럽게 합니다. 세 번째 자기가 부인되어진 사람은 믿음이 있고 소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또 아비새와 모든 신복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저에게 명하신 것이니 저로 저주하게 버려두라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날 그 저주 까닭에 선으로 내게 갚아주시리라 하고”(삼하16:11~12)

     

    하나님만을 향한 소망, 그 소망은 믿음에서 옵니다. 하나님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실 것에 대한 믿음을 가졌을 때 소망을 이야기합니다. 마음을 꺾었다는 것이 말로만 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마음이 꺾어진 사람인지, 아닌 지, 수 없이 들었던 그 말씀 속에서 마음이 꺾어진 사람인지, 마음을 꺾으면 꺾을수록 하나님이 인정되고 하나님을 얻고 선을 이루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소망을 가집니다. 마음을 꺾을 때 마다 하나님을 향한 간증과 소망과 믿음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형식적으로 마음을 꺾은 사람은 그 삶에 귀한 간증이 없습니다.

     

    요셉 역시 다윗처럼 자기를 해하려 했던 형들을 향하여 원망하고 보복하는 마음이 아닌 은혜와 긍휼을 베풉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이 인정되었기 때문입니다. “당신들이 나를 팔았으므로 두려워하지 마소서, 나를 보내신 분은 당신들이 아니라 하나님이라이야기 합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을 얻었고 선을 이루실 것에 대한 믿음을 가졌습니다. 사람들은 그냥 내 마음에서 느껴지는 것으로 내 마음이 꺾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오늘 여러분의 마음에 내 마음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마음이 없고, 하나님으로 인해 얻어진 것이 없고, 내 마음에 믿음과 소망이 없다면 내 마음이 꺾어진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마음이 꺾어진 사람은 간증이 나오게 됩니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얻은 간증과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소망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마음이 꺾어진 사람입니다. 이것이 없는 사람은 아직 마음을 닫고 마음이 꺾어지지 않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왜 자기를 부인하고 마음을 꺾는 삶을 중요하게 여기신 이유, 하나님이 우리에게 전에 없던 마음의 길을 만들어 주고자 하시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부인되어지고, 자기 생각과 판단을 믿지 않을 때 위대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문제와 어려움이 있든 지간에, 먼저 마음을 옮겨 놓는 것이며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이 마음의 길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무엇이 문제가 되겠습니까?

     

    중국에서 고속 철도 건설한다는 이야기를 수 년 전에 들었는데 중국처럼 넒은 나라에는 정말 필요하겠다 싶었습니다. 얼마 전 중국에 가 보니까 고속전철 역이 공항보다 크게 만들어져 있고 너무 편리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마음의 길을 낼 수 있는 바탕이 되어 있으면 여러분의 삶은 너무 소망스럽게 됩니다. 아무리 마음의 길을 만들어 주려고 해도 자기가 부인되지 않으니까 형편과 자기 생각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자기가 부인되어지면 너무 축복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100층 되는 건물의 계단을 걸어서 올라가라 하면 여기에 계신 분들 중에 많은 분들이 올라가지 못하겠지만 엘리베이터는 누구나 타고 갈 수 있습니다. 심홍섭 전도사님의 간증, 술주정뱅이였는데 그 마음을 옮겨 온전한 자로 만들어 주니까 복음 전도자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신앙의 엘리베이터, 새로운 길이 만들어집니다. 제가 아프리카의 어느 형제님 집에 심방을 갔는데 7층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 왜 여기에서 사느냐고 물으니까 집이 비싸도 이곳이 조용해서 산다고 했습니다. 만일 엘리베이터가 없다가 만들어지면 얼마나 편하겠습니까? 마음의 새로운 길이 만들어져서 옮겨지는 것입니다. 박목사님의 아프지만 나았다, 그 길이 우리에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목사님에게 하나님이 특별히 만들어 주신 길이 아닙니다. 박목사님이 위궤양 때문에 고생을 하시다 말씀으로 병에서 나으셨고, 그 해 수양회 때 수백 명의 형제자매들이 병에서 낫게 되었습니다. 간증으로 충만했고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믿음의 길이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마음의 길을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마음에 다윗처럼 정확하게 자신이 부인되고 마음이 꺾어지면 새로운 마음이 길이 생겨나서 어떤 문제와 형편에서 옮겨지고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오늘 자기를 부인하는 법과 마음을 꺾는 법을 배우고, 고집과 회개치 아니하는 알량한 자존심을 버리고 비록 왕이었어도, 선지자 나단의 책망 앞에서 마음을 꺾었습니다. 여러분이 다윗 왕 보다 더 존귀한 자입니까? 그래서 마음을 꺾지 못합니까? 다윗과 같은 위대한 사람도 마음을 꺾었습니다. 내가 오늘 내 자존심, 체면 하나 때문에 마음을 꺾지 못한다면, 다윗 보다 더 높은 위치에서 한 없이 교만한 자임을 알고 그 마음을 꺾는 것이 아름다운 일임을 돌아보십시오. 나는 아무 것도 아닌 자입니다. 다윗도 마음을 꺾고 부인을 하는데 나도 이 교회 앞에서 내가 악했다고, 잘못했다고 마음을 꺾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마음을 꺾지 않고 사는 삶이 미련하고 어리석은 삶입니다. 마음을 꺾고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얻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귀한 간증을 삶 속에서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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