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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성옥 | 2016.08.09 12:20 | 조회 5744

    2016년 7월 31일 주일오전말씀
    말씀: 출12:1~14]

     

    하나님의 의

     

    저희가 수양회를 앞두고 계속 기도회로 모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제는 평소 같으면 장년회로 모이는데 장년, 부인, 청년들이 다 같이 모여서 기도회를 가졌습니다. 잠언 말씀에 사람의 심령은 능히 병을 이기거니와 심령이 상하면 누가 그를 일으키겠느냐는 말씀으로 기도회 모임을 가졌습니다. 이 말씀은 늘 환자들에게 적용하는 말씀 같았습니다. 이 말씀을 묵상해보니 너무 좋은 것이 사람의 심령은 능히 병을 이기고, 문제도 이기고, 어려움도 이기고 다 이길 수 있는데 심령이 상하면 누가 일으키겠느냐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마음의 세계를 주실 때 인간의 육체는 나약하고 보잘 것 없는 육체이지만 하나님은 다른 짐승들과 다르게 뛰어난 지혜를 주셨기 때문에 짐승들이 이룰 수 없는 문명을 이루고 살아갑니다. 또한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마음의 세계를 주셨습니다. 마음에는 큰 힘이 있고 개발되지 않은 엄청난 지하자원이 있습니다. 지하자원을 캐내어 엄청난 에너지로 만들어서 유용하게 쓰는 것처럼 마음의 세계는 모든 것을 다 이길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겨우 겨우 이기는 것이 아니라 능히 이긴다 하였습니다. 심령은 능히 문제를, 어려운 형편을 이깁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마음의 세계를 깨닫고 개발하고 이용하고 사는 삶을 주십니다. 그러면 다 이길 수 있습니다. 어떤 형편도, 어려움도 다 이기고 살 수 있습니다. 이 세계를 배운 사람들, 마음의 세계를 발견하고 이용하고 살 줄 아는 사람은 실제 그 세계에서 다 이기고 삽니다.

     

    요셉이 애굽의 종으로 팔렸다고 해서 고생하지 않았습니다. 노예의 삶이라는 것은 처참하고 비참한 삶인데 요셉의 마음이 비참해지지 않고 다 이기고 살았습니다. 다윗이 사울 왕을 피하여 도망을 하며 살았습니다. 사울 때문에 오는 비참한 삶, 광야의 삶, 그러나 다윗의 마음이 비참한 가운데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시편을 기록하면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부족함이 없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에게 있는 문제, 어려움은 심령에서 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그 형편 앞에 결코 지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결코 그 형편 앞에서 종노릇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에서만 이기고 사는 것이 아니라 실제 그 삶에서 이기면서 치리자로, 왕으로 전혀 부족함 없는 삶을 맛보았습니다.

     

    마음의 에너지를 가지고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삶이 믿음의 삶입니다. 심령은 능히 문제와 형편과 어려움을 다 이길 수 있습니다. 이런 형편, 저런 처지를 탓하고 남편, 아내를 잘못 만나서, 다 심령이 져 버리고 심령이 상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처럼, 요셉처럼 놀라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해 놓았습니다. 내게 만가지 어려움이 둘러싸여 있어도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심령, 마음입니다. 어떻게 이길 수 있습니까?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워 이길 수 있는 것은 믿음이 보호막과 같아서 모든 것에서 보호를 해 줍니다. 믿음의 모든 기초를 어디에서 배울 수 있습니까? 구원의 믿음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그 믿음을 자세히 살펴보면 어떻게 모든 것을 이기며 살 수 있는 지 정확히 배울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출애굽기 12장의 말씀은 유월절 어린 양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 하면서 살았는데 하나님이 모세를 보내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 냅니다. “나는 혀가 뻣뻣하고 둔하여 말할 줄 모르나이다” 하면서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절합니다. 하나님의 표적, 이는 모세에게 자신의 판단과 능력을 믿지 말고 내 말만 쫓고 가기 위함이었습니다. 손에 들고 있는 지팡이가 뱀이 되고 다시 잡으니까 지팡이가 되고 손을 가슴에 품었다가 빼보니 문둥병이 발하고 또다시 정상이 되고, 모세의 판단이 틀렸습니다. 모세가 늘 들고 다니던 지팡이, 그가 의지하였던 지팡이가 뱀이 될 줄 몰랐습니다. 내 판단, 내 경험이 말씀의 판단을 믿지 못하도록 만드는 사단의 역할을 합니다. 내가 정확히 알고 있는 부분일수록 부인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나라 여자 양궁은 세계 최강입니다. 우리나라 양궁 선수들은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것보다 우리나라에서 국가 대표가 되기가 더 어렵다고 합니다. 여러 국제 대회에서 우승을 해야 하기 때문에 국가 대표가 되기가 어렵습니다. 그 중에 신궁이라 불리는 양궁 선수, 김수녕 선수입니다. 기네스북에도 올라가 있을 정도로 세계 기록도 여러 개가 있습니다. “활시위에서 떠난 활에 대해서는 미련을 두지 않는다.” 그 말의 또 다른 의미, 만약 화살을 잘 못 쏘았을 때 그 화살에 마음을 두면 다음 화살을 그르칩니다. 내가 잘못한 것에 대해서도, 내가 잘한 것에 대해서도 마음을 두지 말아야 하는 것처럼 오늘 하루를 어떻게 새롭게 신앙을 할 것인지, 주님에게 마음을 둘 것인지 살펴야 합니다. 양궁이 어려운 이유, 실내에서 경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필드에서 경기를 합니다. 실내는 바람의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정조준만 하면 좋은 점수를 얻지만 실외에서는 바람의 방향이 수시로 바뀌기 때문에 정조준만으로 절대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없습니다. 오조준, 양궁 선수들이 수많은 연습을 해야 합니다. 바람의 방향과 세기에 따라서 오조준을 해야 10점에 맞출 수 있습니다. 자기 판단을 믿으면 국제 대회에 나와서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없고 바람의 방향과 상황에 따라서 오조준을 해야 합니다. 저격수, 스나이퍼들이 쓰는 총은 옆에 부사수가 있어서 바람의 방향과 세기와 거리를 정확히 계산을 해 줍니다. 양궁 선수이든지, 저격수든지 뛰어난 사람은 오조준을 잘 해야 합니다.

     

    신앙을 하는데 있어서도 오조준을 잘 해야 합니다. 내가 알고 있는 정확한 정보가 아닐 때가 있습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는 것 같이 성령으로 난 자들은 다 이러하다고 했습니다. 영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반대로 율법은 정해져 있습니다. 그 때, 그 때마다 영의 인도를 따라서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맞다고, 내 판단대로 정확하게 그 길을 가는 것이 맞는 것이 아닙니다. 영의 인도를 따라서 내 것을, 내 판단을 언제든지 버릴 수 있는 것이 오조준입니다. 신앙을 하면서 진실된 내 마음도 거짓된 것임을 깨달은 적이 있습니다. 내 마음의 진심, 진정한 마음, 이것도 거짓됩니다. 사람은 다 거짓되되, 사람의 마음이 생각과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하다고 하였습니다. 제가 아프리카 케냐 선교를 가기 전에 하나님이 제 마음에 정확히 보여 준 것이 있습니다. 내 마음의 중심, 교회를 대적하고 종을 대적하는 마음이 없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정확하게 내 진실 된 마음도 거짓된 것임을 보여 주었습니다. 사람은 자기를 세워주고 인정을 해 줄 때 내 마음이 충성된 마음, 진정한 마음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내 마음이 무시되고 짓밟히게 되면 대적하는 마음으로 돌아서게 됩니다. 교회에 충성하고 희생했던 그 마음이 대적하는 자료로 쓰이게 됩니다. 내 진실 된 마음도 거짓된 것입니다. 성경은 이미 우리에게 깨우쳐 주려고 베드로를 들어서 정확히 보여 주었습니다. 목자를 치리니 양떼가 흩어지리라 하고 너희가 다 나를 버릴 것이라 했을 때 베드로는 죽어도 주를 부인하지 않겠다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할 것이라 했습니다. 베드로의 마음에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자신을 돌아보았을 때 그 마음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를 부인한다는 마음, 손끝만큼도 그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습니다. 빙산은 90%가 물에 잠겨 있고 10%가 물에 떠 있습니다. 빙산의 일각, 내 마음을 감지 할 수 있는 마음이고 잠겨 있는 그 마음, 내가 감각할 수 없는 마음입니다. 우리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진실 된 마음도 거짓됩니다. 억울해 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가라 앉아 있고 내가 감각할 수 없는 영역에 가면 온갖 악한 것이 다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을 보았을 때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하였다 하였고 그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항상 악하다 하였습니다. ‘내 마음에 종을 거스리고 교회를 대적할 마음이 없는데 왜 대적이라고 하는가?’ 내 마음 중심에서 내가 무시되고 내가 세워지지 않고 짓밟혔을 때 내 마음 중심에서 거스리고 대적하는 마음이 올라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베드로의 마음, 감각되는 영역에서는 죽어도 주를 부인하지 않을 것처럼 보이지만 감각되지 않는 영역에서 온갖 더러운 것이 베드로에게 있습니다. 결혼식장에 가서 신랑 신부 혼인서약을 할 때 어떤 대답을 합니까? 영혼 없이, 힘없이 대답하지 않고 자신 있게 크게 대답을 하지만 5년 후, 10년 후 다시 물어 보십시오. 요즘은 6개월, 한 달도 가지 않는 것을 봅니다. 이 물음에 자신 있게 대답해 볼 사람이 있습니까? 인간의 진실 된 마음까지도 거짓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내 마음, 감정, 생각, 판단을 믿고 살아갑니다. 바람이 임의로 부는 것처럼, 언제 어느 때 수시로 바뀔지 모르기 때문에 내 생각에 전혀 아니다 싶어도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따라서 그 음성을 받아들이고 그 길을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았을 때 오조준을 해야 하나님이 보실 때 정조준이 됩니다. 말씀의 판단을 따라가는 것이 정조준이고 내 생각을 따라가는 것이 오조준입니다.

     

    양을 잡아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피를 바르면 재앙이 피하여 지나갈 것이라 합니다. 피를 볼 때에 그 집을 넘어가겠다고 합니다. 수많은 세월 동안 양심 것, 올바르게 살아왔다고 합시다. 그렇게 살아온 행위와 오늘 들려진 양의 피를 바르라는 말씀 하나 받아들이라는 것 중에 어느 것이 위대합니까? 50년 동안 정직하고 바르게 남을 위해 희생하였어도 피를 바르지 않은 삶과 지금까지 개판으로 살았다가 말씀의 판단 하나를 받아들여 피를 발랐다고 하면 누구에게 재앙이 미칩니까? 재앙은 말씀의 판단을 받아들이지 않았기에 임하게 됩니다. 재앙을 내리는 천사가 전혀 갈등하지 않고 피가 발라져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재앙이 넘어 갑니다. 주님이 심판을 내리고 재앙을 내릴 때 행위를 보지 않습니다. 말씀의 판단을 받아들이느냐, 안 받아들이느냐 그것 하나 봅니다. 행위를 보지 않고 말씀의 판단 하나만을 보는 것은 사람이 다 거짓되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하기 때문이기에 볼 필요가 없습니다.

     

    청솔모라는 다람쥐보다 큰 외래종이 있습니다. 어느 날 호두나무 밑에 가 보니까 호두가 많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천안에는 호두과자가 유명합니다. “호두과자 안에 호두가 들어 있습니까?” 호두과자에 호두가 안 들어 있어서 누군가 물어 보니까 붕어빵에 붕어가 들어 있는 것 보았느냐고 되묻습니다. 우스개 소리입니다. 천안에 호두 농장이 많아서 호두과자에 호두를 넣어서 천안 호두과자가 유명해졌습니다. 청솔모가 호두를 따기에 청솔모가 못 올라가도록 호두나무 밑에 양철을 빙 둘러 쌓아 미끄럽게 해 놓았습니다. 청솔모가 버린 것은 호두가 비워 있습니다. 호두를 깨 볼 필요가 없습니다. 모양은 똑같아도 청솔모는 기가 막히게 압니다. 하나님은 인간 속에 선이 안 들어 있다는 것을 모르겠습니까? 항상 악할 뿐인 인간이기에 볼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하나님의 음성을 받아들이느냐, 안 받아들이느냐, 이것 하나를 봅니다. 50년 동안 선하

    게 살아온 그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판단 하나를 받아들이는 것을 하나님은 의롭게 봅니다.

     

    구원 받은 자매의 간증, 자신은 효부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시어머니가 중풍병으로 누워 있어 잘 섬겼다고 효부상을 받았습니다. 구원 받고 나서 간증을 하는데 그것이 굉장히 괴로웠다고 합니다. 친정어머니도 아니고 지극 정성으로 섬기는 며느리가 어디에 있느냐고 동네에 소문이 자자했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고 시어머니가 힘들고 밉고 더럽고, 그래서 시어머니의 허벅지를 꼬집었습니다. 누구에게 말하면 며느리가 돌보아 주지 않을까 싶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시어머니, 목욕시킬 때 시커멓게 멍들어 있는 시어머니를 보면서 양심이 찔렸습니다. 거짓된 인생, 하나님의 음성을 받아들이느냐, 안 받아들이느냐, 이것 하나를 하나님이 보시겠다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받아들이면,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피를 바르면 살게 됩니다. 너무 기본적인 말씀, 당연한 말씀이지만 여러분의 삶에 적용을 해 보십시오. 오늘 삶에 이 말씀이 적용이 되고 있는지, 안되고 있는지, 하나님의 음성을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일꾼이 되며 그렇지 않으면 대적이 됩니다. 가롯 유다가 예수님을 팔 생각을 받아들이니까 사단의 종이 되어 버립니다. 말씀을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종이 되며 일꾼이 됩니다.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일을 아니할찌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롬4:4~5)

     

    의롭다 하시는 이 말씀 하나 받아들이면 이를 의로 여깁니다.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 믿음을 의로 여깁니다. 많은 사람들이 구원 받은 사람으로 의로운 것, 경건한 것이 나타나야지, 그래야 구원이지, 엉망으로 살면 그것이 구원이냐고 묻습니다.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의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의로 구원을 받았으면 내 삶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느냐, 안 나타나느냐가 중요합니다. 인간의 의가 아닙니다. 인간의 올바른 행동을 보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은 사람들이 착각을 합니다. 인간의 의, 내 행위와 상관없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구원을 받았으면 반드시 의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의는 인간의 의가 아니고 하나님의 의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지 않으면 구원이 아닙니다. 구원 받았다고 하면서 인간의 의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구원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고 하시는 하나님의 판단을 믿는 자에게 그 믿음을 의롭게 여깁니다. 요셉은 치리자가 아닌데 이를 믿는 것이 의입니다. 다윗이 쫓겨 다니면서도 왕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하나님의 의입니다. 죄 없다고 하는 하나님의 판단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의입니다. 내 생각과 내 판단을 믿지 않고 내가 싫고 좋지 않아도 하나님이 좋다고 하면 그것이 좋은 것이며 이를 따라가는 삶이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는 삶입니다. 오로지 자기 생각과 판단을 따라서 사는 삶,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지 않는 사람입니다. 문제가 있으면 하나님을 찾고, 그렇지 않으면 찾지 않고, 그는 종교인이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착하게 살아야지, 죄 짓지 말고 살아야지, 인간의 의가 아니라 말씀의 판단 하나를 믿으니까 하나님이 이것을 이로 여기셨습니다.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의가 무엇인지 모릅니다. 구원의 열매, 의의 열매가 맺혀지게 되어 있습니다. 내 생각과 다르고, 내 판단과 달라서 좋지 않아 보여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삶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납니다. 인간의 의도, 하나님의 의도 안 나타나는 사람도 있고 인간의 의가 나타나지 않고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는 사람, 인간의 의도 하나님의 의도 나타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엉망이라도 말씀의 판단 앞에서 이를 받아들이면 하나님은 의로 여깁니다. 말씀이 안 받아 들여지는 사람, 능력이 되지 않는 사람, 하나님의 판단을 믿지 않고 죄만 없다는 것만 알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고 하시는 하나님의 판단을 믿는 사람의 믿음을 의로 여깁니다. 죄 없다 하는 것이 구원이 아닙니다. 내 판단을 버리고 말씀의 판단을 믿을 때 이것을 의로 여기면 이를 구원이라 합니다. 단지 피 하나 바르면 재앙이 피하여 지나갑니다. 말씀의 판단을 믿는 의가 나를 살리는 것처럼 신앙에서도 그 사람 속에 말씀의 판단을 믿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는 것을 의롭게 여깁니다.

     

    아브라함의 삶, 인간의 의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인간의 의로 말하자면 오히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더 의롭습니다. 롯이 아브라함을 보았을 때 형편이 없습니다. 아내를 누이라 속이고, ‘어떻게 아내를 팔아먹을 수 있는가?’ 롯의 목자와 아브라함의 목자가 다투었을 때 롯이 떠나갑니다. 인간의 의가 가득 찬 사람이었기에 롯이 소돔 성으로 갑니다. 죄악 된 도성에서 그 죄악에 물들지 않았습니다. 그 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천사에게 하나님의 규례를 따라서 무교병을 만들어 주고 천사를 보호하여 자기 딸을 희생시키려고 합니다. 인간의 의, 반대로 아브라함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있는 하나님의 의, 그가 믿음이 없어서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을 후사로 삼으려고 하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몸에서 난 자라야 후사가 될 것이라는 말씀의 판단을 믿습니다. 이스마엘을 얻었지만 또한 하나님의 말씀의 판단을 믿었고 아브라함은 이삭을 얻게 됩니다. 신앙이 어렵고 부담스러운 것은 자기 생각을 믿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판단을 믿어야 하는 이유,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피를 발라야 하는 이유, 재앙이 피하여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신앙을 해야 하는 이유, 믿음을 가져야 하는 이유, 재앙을 피하여 지나갈 수 있는 길은 말씀의 판단만을 믿는 길 외에는 없습니다. 구원 받았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지 않고 그 생각과 판단을 믿고 사는 사람, 구원이 아닙니다. 구원 받았는데 왜 그 모양이냐고 묻는 것은 틀린 말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 구원이 아닙니다. 삶 속에서 이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삶에서도 하나님은 행위를 보지 않습니다. 구원의 확신만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열매, 자기 생각을 믿지 않고 말씀의 판단을 믿는 것이 신앙입니다. 백세나 되었고 사라의 태가 죽었음에도 말씀의 판단을 믿었을 때 그 믿음이 아들을 낳게 하였고 그 삶 속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의가 그 마음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의가 나타납니다. 의의 열매, 구원 받은 사람에게 나타나는 의의 열매입니다. 선하게, 말씀대로, 충성하고, 봉사하고 헌금하고 살아가는 삶보다 먼저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야 합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자기 재산 절반을 나누어 주고 토색한 것이 있으면 네 배나 갚아 주겠다고 한 것보다 더 위대하고 중요한 것은 말씀의 판단을 따라간 것입니다.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피를 바른 것이 평생을 선하게 살아온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오늘 구원 받은 지 몇 년이 되었어도 지금 말씀의 판단 앞에서 내 생각과 판단을 버리고 받아들이는 것이 하나님의 의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마음에서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인간의 의가 나타나지 않아서 구원 받지 않았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고 구원의 열매는 하나님의 의로 심었기에 인간의 의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문제를 삼지 않습니다. 구원의 열매, 하나님의 의의 열매, 내 삶 속에서 말씀을 믿고 내가 보기에 좋지 않아도 내 생각과 판단을 버리고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는 삶, 때로 갈등이 되겠지만 내 생각은 거짓된 것이기에 그 생각을 따라가면 마귀의 종이 되고 재앙을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삶을 따라 사는 것이 가장 복된 삶입니다. 재앙을 피하여 갈 수 있는 것이 말씀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삶입니다. 잘 몰라도 그 삶을 살다 보면 어느 덧 재앙이 지나가 있습니다.

     

    단기 선교, 처음 그 나라에 가서 나라에 대한 자신의 선택을 고민을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이 내 인생에 가장 복된 길로 인도를 합니다. 하나님의 판단을 믿으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분이고 하나님이 부르셨고 의롭다 하셨고 영화롭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어디에서 하나님을 경험하며 어디에서 내 마음이 만들어지는지, 하나님의 뜻에 맡기면 평안 안에서 쉼을 누릴 수 있습니다. 갈등하며 사는 이유, 자기 판단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 길이, 저 길이 좋을까?’, 마치 병아리를 가만히 두지 않고 쪼물딱 거려서 죽이는 것처럼, 결국 자기 인생을 자기가 조물딱 거리면서 다 망칩니다. 나도 모르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다 보면 재앙이 피하여 지나갔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의입니다. 내 행위와 상관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을 믿었기에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습니다. 그 의를 가진 자, 죄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 말고. 또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그 판단을 따라 살면 이것이 나를 좋게 하고 행복하게 만듭니다. 내 마음에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져 있는가 아닌가, 의의 열매가 나타나는가 아니한가, 내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의 의를 가졌으면 내 생각이 어찌하든 간에 말씀의 판단 앞에 겸손하여 그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내 생각이 전적으로 악하다는 것을 알면 내가 싫고 좋아 보이지 않아도 말씀의 판단을 따라가면 재앙을 피하여 지나갈 수 있습니다. 내 생각을 따라가면 저주고 재앙을 만날 수밖에 없지만 말씀의 판단을 따라가며 그 마음에서 선을 긋고 복된 삶을 살아가실 것으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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