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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성옥 | 2016.09.13 12:02 | 조회 6402

    2016년 9월 4일 주일오전말씀
    말씀: 고전10:13절

     

    능히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10:13)

     

     하나님은 감당할 시험만을 허락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삶을 살고 신앙을 하면서 감당을 하지 못하겠다는 마음을 가질 때가 많습니다. 신앙을 하면 하나님이 복된 길로 이끈다는 것을 알지만 나는 그 길을 가지 못하고 감당할 수 없다는 마음을 가집니다. 내가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생각이 들어서 영적인 길을 포기하여 가지 않고 적당히 삶을 살거나 육신대로 삶을 사는 길을 갑니다. 신앙이 안 되는 이유는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판단보다는 자기 생각을 더 믿기 때문입니다. 말씀으로 감당할 수 있는데 내 판단을 믿으니까 감당할 수 없겠다 생각을 하고 그 길에서 물러나 버립니다. 그 길을 가기에 부담스러워하고 못 가겠다고 물러나 주저앉아 버리며 육신대로, 적당히 살아가며 육으로 행합니다. 말씀의 판단을 믿는 사람은 나는 감당치 못하여도 말씀에서는 감당할 시험 밖에 없다며 말씀의 판단을 믿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고 가 봅니다. 결국 신앙이 되고 안 되고의 차이, 말씀의 판단을 믿느냐, 내 생각을 믿느냐 입니다. 내 생각을 믿으려면 말씀을 짓밟아야 하고 말씀을 믿으려면 내 생각을 짓밟아야 합니다. 내가 볼 때, 내가 느끼기에, 내가 생각할 때는 감당할 수 없지만 말씀의 판단을 믿어 그 생각과 형편과 문제를 짓밟아야 합니다. 성경은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다 이야기합니다. 내 실력, 내 능력, 하나님은 감당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감당하게 하는 하나님의 도움이 있고, 계획과 길과 방법이 있습니다.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내가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하는 말은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을 수 있는 분이고, 신뢰할 수 있고 신실하시며 거짓말 하실 수 없는 분입니다.

     

     때로 어떤 일을 하다가 힘이 들어서 도망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보람되고 기뻐서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한계가 와서 도저히 할 수 없다는 마음이 왔을 때 도망을 합니다. “하나님 당신은 거짓말쟁이입니다” 하고 도망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무실에 근무하는 청년 자매들을 보면 한 번씩 다 도망간 전적이 있습니다. 다음에 도망을 할 때는 책상 위에 “하나님은 거짓말쟁이”라고 써 놓고 가십시오. 하나님은 거짓말 할 수 없는 분입니다. 감당할 시험만 허락하신다고 했는데 나자빠지거나 뒤로 물러나는 것은 자기 생각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교만하기 때문에 자기 생각과 판단을 말씀보다 더 믿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판단을 믿으면 나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의 말씀에 감당할 수 있다고 하기에 그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겨우 겨우 감당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은 분명히 이야기 합니다. 능히 감당하게 하신다고 합니다. 겨우 겨우 감당하게 하여서 겨우 여기까지 오게 하신 것이 아니라 능히 감당하게 하신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감당하지 못할 시험을 준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감당 못할 시험을 줍니다. 갑자기 무슨 말인가 싶을 것입니다. 내 능력으로, 내 방법으로 감당치 못할 시험을 줍니다. 오늘 오후 비행기로 홍콩에 가야 하기에 예배를 빨리 시작했습니다. 여러분들이 잘 따라오면 이 말씀이 너무 복된 말씀이 되지만 졸거나 멍하게 있거나 하면 삼천포로 빠질 수 있습니다. 내 능력으로, 내 방법으로 도저히 감당 되지 않을 일들을 하나님이 주십니다. 하나님이 피할 길을 줍니다. 그 피할 길이 시험을 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줍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왔습니다. 광야 길을 걸어 홍해 바다 앞으로 갔습니다. 애굽 군대가 쫓아오고 앞에는 홍해 바다가 있고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바다 앞에서 미리 하나님이 홍해 바닷길을 열어 피할 길을 주셨으면 그들이 시험에 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바닷길을 지나고 바로의 군대가 쫓아 왔을 때 그 길이 닫힘으로 수많은 바로의 군대가 바다에서 수장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감당하지 못할 어려움이지만 하나님에게는 감당하지 못할 시험이 아니었습니다. 도저히 감당하지 못하겠다는 마음은 아직 피할 길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이 여러분의 마음에 세워지면 여러분이 굉장히 복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감당할 수 있기에 뒤로 물러나지 않습니다. 신년사의 말씀에 우리는 뒤로 물러나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믿음으로 영혼을 구원함에 이를 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감당할 시험만을 주시겠다 하였습니다. 말씀의 판단을 믿으면 내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과 허물이 많아도 하나님은 능히 감당하게 하시겠다 하였습니다. 문제는 사람이 자기 생각을 믿을 때가 있고 자기 판단을 믿을 때가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용사들도 자기 생각을 믿으면 감당하지 못할 일에 빠져 시험에 듭니다.

     

    “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 내가 후일에는 사울의 손에 망하리니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피하여 들어가는 것이 상책이로다 사울이 이스라엘 온 경내에서 나를 수색하다가 절망하리니 내가 그 손에서 벗어나리라 하고”(삼상27:1)

     

     유다 땅에 있는 다윗, 그 마음이 사울로 인하여서 블레셋으로 도망합니다. 사울의 위협에 다윗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시험만을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다윗이 사울과 함께 있을 때 다윗을 죽이려고 창을 던졌습니다. 다윗이 잘 피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피하게 하셨습니다. 다윗이 사울이 던진 창이 다리에 맞아서, 팔에 맞아서 상하지 않도록 피할 길을 주셨습니다. 그랬던 다윗이 자기 판단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능히 감당하게 하시는데 자기 생각을 믿으니까 블레셋 땅으로 피하여 들어갑니다. 다윗이 어려웠을 때가 이 때입니다. 블레셋 땅으로 들어가서 얻은 성이 시글락이었고, 그 성으로 인해서 큰 어려움을 만납니다. 하나님은 능히 감당하게 해 놓았는데 다윗의 마음에서 감당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글락이 불타고 대소 여인들과 처자들이 다 사로잡혀가고, 자기 생각을 따라간 어려움이었습니다. 아무 것도 아닌 사람, 정말 보잘 것 없고 나약한 사람이 되어버린 다윗, 이전의 다윗은 말씀의 판단을 믿으니까 다윗의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었던 골리앗을 감당하여 이깁니다. 말씀의 판단을 믿으니까 하나님이 능히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겨우 겨우 골리앗을 이긴 것이 아니라 능히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말씀의 판단을 믿을 때는 어떤 어려움과 문제가 와도 능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엘리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아합이 엘리야의 무릇 행한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인 것을 이세벨에게 고하니 이세벨이 사자를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정녕 네 생명으로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 같게 하리라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저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그 생명을 위하여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곳에 머물게 하고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행하고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왕상19:1~4)

     

     우리에게 닥치는 일들, 우리 능력과 우리 스스로 우리 판단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피할 길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모르고, 보지 못하는 것은 시험 당할 즈음에 보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겠다는 그 즈음에 가서 보아야 합니다. 이 지점은 말씀의 판단을 믿어야 갈 수 있습니다. 사냥개 주인이 멧돼지를 사냥할 때 멧돼지의 송곳니에 치이면 사냥개가 다칠 수가 있기 때문에 사냥개에게 방탄복을 입힙니다. 멧돼지를 감당할 수 없는데도 사냥개가 덤벼 듭니다. 주인을 믿기 때문입니다. 멧돼지와 대치해서 짖어 대면서 그 길을 막고 있으면 주인이 옵니다. 똥개는 깨갱하고 도망을 갑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어찌 사냥개만 못합니까? 엘리야와 이세벨의 관계에 있어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눈에 보이는 외형적인 싸움 이전에 마음의 싸움이 있습니다. 사단의 방법과 계획, 이세벨이 사단의 그림자입니다. 사단의 약점, 여러분에게만 약점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세벨이 하는 수법을 보면 사단의 약점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세벨이 엘리야에게 내일 이맘때에는 정녕 네 생명으로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 같게 하리라고 합니다. 내일 죽을 것이라고 위협합니다. 엘리야를 죽이는 것이 계획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종이며, 하나님이 붙들고 있는데 이세벨이 엘리야를 죽일 수 도 없고 해할 수 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세벨이 할 수 있는 것, 엘리야에게 겁을 줄 수 있고 위협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겁먹고 도망가게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이세벨의 목적이 엘리야를 죽이는 것이 목적이었으면 내일 죽을 것이라고 미리 알려주지 않습니다. 사단은 내일 일을 염려하게 하면서 스스로 감당치 못하게 물러나게 합니다. 자기 생각을 믿는 사람은 이 올무에 다 걸려들게 되어 있습니다. 다윗에게도 일시적이지만 후일에는 망한다는 두려움을 주어 효과적으로 먹히게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은 말씀의 판단을 믿는 것입니다. 내게 닥치는 모든 일은 감당할 수 있는 일입니다. 아무리 보아도 감당할 수 없어도 하나님은 거짓말 할 수 없는 분이기에 피할 길을 주십니다. 그 피할 길은 반드시 시험 당할 즈음에 오기 때문에 말씀의 판단을 믿고 내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 앞에도 발을 내딛고 나가 보아야 합니다. 발을 내딛고 가보고, 또 가보면 점점 더 문제가 커질 수가 있고 시험이 당할 때가 오지만 그 즈음에 하나님이 피할 길을 보여줍니다.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고, 자기 능력으로 그 일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왕후이지만 그 능력으로 할 수 없는 능력 밖의 일 앞에 모르드개는 나가라고 합니다. 내가 볼 때 망할 것처럼 보이는데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으로 나갑니다. 왕 앞에 나아가려고 할 때 왕이 불러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 날 왕이 부르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이 왕 앞에 나아가야 하는데 금홀을 밀어야 살지 그렇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죽으면 죽으리라고 하면서 나아갈 때 그 길이 보이고 그 길이 열려집니다. 미리 불러주고, 미리 홍해 바다가 열려져 있으면 얼마나 편합니까? 하나님이 피할 길을 내시는 그 지점까지 가야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 영역까지 누가 갈 수 있습니까? 말씀의 판단을 믿는 사람이 그 영역까지 갈 수 있습니다. 단순한 이치이지만 이 말씀을 믿고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도 말씀을 따라서 신앙의 길을 갈 것인지, 아니면 자기의 판단과 생각을 믿고 갈 것인지.

     

     제가 금요일날 부인회 워크숍을 하면서 핍박 받던 자매 이야기를 했습니다. 남편의 핍박이 너무 심해서 자매가 감당할 수 있겠나 싶었습니다. 핍박 받던 두 자매가 신앙을 계속할 수 있겠나 싶었고 사역자 이동을 하고 나서도 유심히 지켜보았습니다. 지나서 보면 수양회에 참석하고 있고 신앙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보니까 핍박을 제일 많이 받던 자매가 부인회 회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내 인생에 어떤 어려움을 만나도 능히 감당할 수 있는 시험과 피할 길을 주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자신이 견디다가 더 이상 견디지 못하면 자기 판단을 따라 뒤로 물러나지 말아야 합니다. 정확하게 하나님은 피할 길을 주시고 능히 그 일을 감당하게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어느날, IYF 활동을 하는 대학생들이 저한테 두 가지 일을 도저히 못하겠다 하였습니다. IYF 활동만 하든지, 공부만 하든지, 둘 다 감당할 수 없겠다고 했습니다. “어떤 것을 할까요?” 물으러 나온 대학생에게 둘 다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를 더 얹어 장학금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그 때 교제를 받고 마음으로 받은 학생들은 다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성적이 안 나오는 학생들의 부모님들은 학생들의 말을 그대로 믿어 IYF활동을 했기에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먹을 것 먹고 다 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놀다가 공부를 하려고 하면 안 되지만 IYF활동에 적극적으로 하다 공부를 하면 공부가 더 잘됩니다.

     

     사르밧 과부에게 언제 가루통의 가루가 넘쳐 납니까? 마지막 남은 가루 한 웅큼을 가지고 엘리야를 위해 먼저 떡을 만들어 주고 난 이후에 가루가 넘쳐 났습니다. 하나님은 가루 통의 가루가 넘쳐나서 자기만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도 다 넘쳐나도록 풍성하게 하셨습니다. 가루 한 웅큼, 시험 당할 즈음에 하나님의 피할 길이 보여졌습니다. 사르밧 과부가 망할 것처럼 보여도 엘리야에게 가루 한 웅큼으로 떡을 만들어 드렸을 때 능히 넘쳐나는 역사를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이렇게 일을 합니다. 요한복음 2장에 포도주가 넘쳐나는 역사도 포도주가 바닥이 났을 때입니다. 시험을 당할 즈음에 능히 감당할 수 있는 길을 주신 것은 믿음 있는 사람과 믿음 없는 사람을 구분하기 위함입니다. 피할 길을 내시는 하나님은 믿음 있는 사람만 경험할 수 있도록 해 놓았습니다. 믿음 없는 사람은 고난과 고통과 한계의 연속이었습니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들 앞에 하나님이 능히 감당하게 하셨기에 믿음 있는 자의 마음에 그 하나님이 남아 있습니다. 내 생각과 판단과 느낌을 부인하고 말씀의 판단 앞에 한 발, 한 발 나아가면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도저히 안 되겠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여로보암에게 열 지파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자손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에게는 두 지파를 주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으로 인해 이스라엘 열 지파의 백성들이 르호보암에게로 가서 결국 르호보암에게 속하겠다는 생각을 여로보암이 하게 됩니다.

     

    “여로보암이 에브라임 산지에 세겜을 건축하고 거기서 살며 또 거기서 나가서 부느엘을 건축하고 그 마음에 스스로 이르기를 나라가 이제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리로다 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전에 제사를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유다 왕 된 그 주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서 나를 죽이고 유다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리로다 하고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 신이라 하고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이 일이 죄가 되었으니 이는 백성들이 단까지 가서 그 하나에게 숭배함이더라”(왕상12:25~30)

     

     구약에 가장 악한 왕, 악의 대명사, 여로보암, 후일에는 나라가 르호보암에게 돌아가겠다는 두려움이 왔고 단과 벧엘에 금송아지 신상을 만들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님에게서 떠나가게 합니다. 하나님이 피할 길을 보이시지만 내일 일을 염려하면 천하의 다윗과 엘리야도 말씀이 보이지 않고 내일이 보이니까 시험에 들 수밖에 없습니다. 내일 일은 두고, 내일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피할 길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말씀의 판단 하나를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겨우 겨우 감당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능히 감당하게 하신다 하였습니다.

     

     제가 신앙의 길을 걸어오면서 나로서 감당할 수 없는 수많은 일들을 만났습니다. 내 능력의 영역 안에 일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때로 길도 보이지 않고 방법도 없는 일들을 주신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내 판단을 믿고 주저앉았다면 감당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감당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때 하나님은 내 영역과 그릇을 자꾸 키워가셨습니다. 전에는 조금만 부담스러워도 못하겠다는 마음을 가졌기에 스스로 포기하고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나약하고 연악하기에 짝이 없는 나로써 살았지만 하나님이 한계와 능력 밖의 일을 주시면서 그 일을 감당할 수 없는 일들 앞에 발을 내딛고, 길이 없는데도 발을 내딛고 가게 되었습니다. 인도 마니푸르에 갔다 온 이야기를 지난 주 설교를 했습니다. 마니푸르의 폭동, 반군 대장이 죽었습니다. 일주일 동안 대모를 했고 그 중에 반군이 총에 맞아 죽는 일로 폭동이 크게 일어난 소식을 갔다 온 후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멋모르기에 그 길을 갔지 제 정신 이었으면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피할 길을 주셨습니다. 유일하게 그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은 교육을 하러 갔기 때문입니다. 정부의 초청장을 보여 주었다면 반군에 인질로 잡혀 있을 수도 있었습니다. 정부 행사로 가는데 길을 열어 달라고 한 것이 아니라 교육 목적을 가지고 간다고 하니까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 피할 길을 주셨습니다. 우리에게서 나올 수 없는 지혜와 길이었습니다. 폭동 지역의 관문을 여러 차례 통과 한다는 것이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하나님이 능히 그 일을 감당하게 하셨기 때문에 갔다 와서 기쁨으로 간증을 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피할 길을 찾지 말고 내 방법을 쓰지 말고 하나님이 하여 주신다고 합니다. 나는 안 되겠다, 못하겠다, 가지 못하겠다 하면서 뒤로 물러나 버립니다. 나로서 안 되지만 하나님이 예비해 놓은 길, 하나님의 피할 길, 말씀의 판단을 믿고 그 길을 가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고 교회가 기뻐하는 뜻인데 그 길을 가서 망했다고 하면, 그 피할 길을 주지 않았다면 하나님을 믿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 번도 내가 감당 못할 위치까지 갔을 때 피할 길을 주지 않은 적은 없습니다. 우리는 뒤로 물러나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라는 것은 나로써가 아니라 하나님이 피할 길을 주셨기에 그 하나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 기다림은 시험 당할 즈음까지 가보아야 하나님의 피할 길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면, 교회의 뜻이면 그 길을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피할 길을 주십니다. 이 말씀을 믿고 이 삶을 경험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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