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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성옥 | 2016.04.26 21:15 | 조회 7027

    2016년 4월 24일 주일오전말씀
    말씀: 삼상23:1~5

     

    믿음으로 뛰는 삶

     

    아이의 마음에 고래를 생각하며 그리다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가다 보면 하나님은 우리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하나님의 크신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 것을 봅니다. 그 당시에는 알지 못하지만 한 걸음, 한 걸음 가다 보면 하나님의 큰 그림이 완성이 되어 가는 것을 봅니다. 빅피쉬라는 이야기, 선생님이 미술 시간에 좋아하는 동물을 그리라고 했는데 한 아이가 도화지 전체를 새카맣게 칠을 했습니다.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그 일을 하는 아이를 보며 부모가 걱정이 되었습니다. 의사 선생님도 보통 아이들의 그림 그리는 것을 보고 심리 상태를 파악하는데 이렇게 도화지 전체를 새카맣게 그리는 것을 본 적이 없어서 병원에 입원을 시켰습니다. 입원을 했어도 여전히 새카맣게 칠을 하던 아이가 어느 때부터 하얀 여백이 생기는 것을 간호사가 발견하고 의사 선생님께 알려 드렸습니다. 그 그림을 다 모아서 큰 실내 체육관에 가서 조각조각 그림을 맞추어 보니까 고래가 나왔습니다. 이 아이는 고래를 그리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개인에게도, 선교회에도 하나님이 큰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잘 모르지만 어느 순간에 가서 그 그림을 보면 너무 신기합니다.

     

    하나님의 큰 그림, 조각들이 하나하나 맞추어져
    홍콩의 모임, 장로님, 집사님, 임원들이 모이는 소규모 모임이었습니다. 모임 중간 오후에 마인드 교육 때문에 어느 분을 만나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교육원을 운영하시는 분, 전직 3선 국회의원이셨던 분이었습니다. 또한 국가자살방지자문위원을 맡고 계셨습니다. 얼만 전 홍콩에서 대학생들의 투신자살 소식이 연이어서 일어났습니다. 정부에서 자살방지를 위해서 엄청난 돈을 편성해 놓고 자살방지교육을 하라고 하는데 정작 일선학교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이 분에게도 그 일이 주어졌는데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에 대해서 설명해주고 우리가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자기들 단체에 대표 고문이 어느 변호사님이라고 했는데 켈빈 목사님의 형님이었습니다. 이 분이 그 이야기를 듣고 더 마음을 열었습니다. 우리에 대한 설명은 전에 들었기에 어떻게 구체적으로 이 일을 할 수 있는지 설명을 해 달라고 했습니다. 80개의 학교를 관리하고 있다 하기에 먼저 교육자포럼을 하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이 분이 원하는 날짜는 토요일이었고 각 학교의 학부형 대표들과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5월, 6월 한 주 토요일을 협의해서 정하자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큰 그림, 그 조각들이 하나하나 맞추어져 가는 것을 봅니다.

     

    홍콩에서의 마인드 교육
    홍콩에서의 계속된 마인드 교육,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홍콩 사람들은 관동어를 사용합니다. 중국의 선전, 광저우는 광둥어를 사용합니다. 홍콩의 젊은 사람들은 영어도 할 줄 알지만 나이드신 분들은 광둥어 밖에 못하는데 광둥어는 중국어와 다르기에 중국 사람들이 잘 알아듣지 못합니다. 홍콩 교회에는 광둥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몇 안 됩니다. 하지만 선전과 광저우에 있는 교회 형제자매들이 광둥어를 할 줄 아는데 이 분들이 가장 마인드 교육 훈련을 많이 받았습니다. 당장이라도 가서 광둥어로 교육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여러 명이 있습니다. 그 중, 선전에서 한 대학교에서 교수로 있는 자매, 홍콩에서 월드캠프를 할 때 학생들을 데리고 갔는데 종교 활동을 했다고 학교에서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것과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마인드 교육을 배워서 학생들에게 수업 시간이 해 주었습니다. 종교 이야기는 아닌데, 수업 시간에 당국의 관계자들이 나와서 교과서에 안 나오는 이야기라고 꼬투리를 잡았습니다. 교사 평가에서 1,2등을 하는 자매였는데 불이익을 당했습니다. 핍박을 받았지만 그 삶에 열매가 참 많은 것을 보았습니다. 구원받은 제자들 가운데 사모도 여러 명이 있습니다. 4년제 대학교의 정교수를 홍콩에 강사로 초대하여 강의를 하려면 초청장이 필요합니다. 귀 대학의 강사를 초청하고 싶다고 공문을 보내야 합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발급한 자격증, 전에는 영문으로만 했는데 한국말도 써 놓았습니다. 한류를 타고 우리나라에서 수출한 중고 버스, 한국말로 쓰여 있는데 지우지 않고 시간이 지나 글씨가 잘 보이지 않으면 다시 페인트로 칠할 정도로 한글이 권위가 있습니다. 중국에서 경제 개방을 할 때 홍콩을 롤 모델로 해서 선전에 시범 사업을 했습니다. 중국 대기업의 본사들이 선전에 다 있습니다. 잘 되니까 중국 전역으로 파급되었습니다. 광둥어를 할 수 있는 형제자매들이 마인드 교육 강사로 길러졌습니다. 홍콩에서 강사 활동이 잘 되면 그 일이 계기가 되어 선전에서 하게 되고, 중국 전역으로 보급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큰 그림, 계획을 가지고 우리에게 조금씩 나타내고 있는 것을 봅니다.

     

    조별 가정 성경공부
    지난 번 중국 사역자 모임 할 때도 그렇고, 임원 모임을 가질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중국 정부로부터의 핍박, 복음의 역사, 교회가 끝이 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근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박목사님과 이야기를 해 보니까 오히려 중국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복음 전하기가 더 좋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선교회에서 지역장 목사님들이 대륙별, 나라별로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어려움, 중국 정부와 공안에서 많이 모이지 말고 가정에서 열 명 이하로 모이라고 했습니다. 그 소리가 조별로 모이라는 말로 들렸습니다. 우리가 다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에는 부서별로 모이면 부인, 장년은 사람이 많아서 모임이 잘 되지 않는데 조별로 모이니까 간증도 돌아가면서 하고 마음을 나눌 수가 있습니다. 가정 성경 공부를 하고, 가정 집회를 하고, 조별 모임을 가지니까 너무 좋습니다. 부서별로 모일 때보다 조별로 모이니까 마음의 표현도 하고 들은 말씀을 발표하고, 그렇기에 예배 시간에 잘 졸지 못합니다. 중국 공안이 조별 모임을 가지라고 가르쳐 주는 것 같습니다. 너무 좋은 것입니다. 우리 대전도 집회를 할 때 나와서 함께 하고 배우라고 했습니다. 중국 정부에서는 단체가 커지면 부담을 가지고 자꾸 흩어 버립니다. 가정 교회로 가면 천 개, 만 개, 십만 개, 가정에서 모이기에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마음 것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제가 중국을 담당한 것이 우연이 아닙니다. 인천은 중국 대련에서 배를 타서 밤에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인천입니다. 백 명,이백 명이 와도 괜찮습니다. 전에는 숙소가 없었는데 음악학교가 대전에 갔기에 충분합니다. 가정 집회, 가정 성경공부, 조별 모임, 어떻게 했는지 여러분들이 강사가 되어서 다 가르쳐 줄 수 있습니다. 중국 복음의 진보를 위한 하나님의 큰 그림을 그려 가는 과정 가운데 있습니다.

     

    뒤로 물러나는 삶을 살게 될 때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가려 하면 때로 우리 마음에 부담스럽다는 마음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한계를 만납니다. 사람들의 마음에서 어렵다, 힘들다, 부담스럽다 해서 뒤로 물러나는 사람이 있고 그 한계를 넘는 사람이 있습니다. 피하고 물러나는 사람의 삶에 대해 성경은 말합니다.

     

    “내가 증왕에 게으른 자의 밭과 지혜 없는 자의 포도원을 지나며 본즉 가시덤불이 퍼졌으며 거친 풀이 지면에 덮였고 돌담이 무너졌기로 내가 보고 생각이 깊었고 내가 보고 훈계를 받았었노라 네가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니 네 빈궁이 강도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잠24:30~34)

     

    강도가 예고하고 오지 않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옵니다. 뒤로 물러나는 삶을 살게 될 때 모든 것을 다 빼앗겨 버립니다. 주님을 생각하는 마음도, 복음도 다 빼앗겨 버립니다. 내가 적당히 살 때 적당히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빈궁이 강도같이 옵니다. 그 마음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빼앗아 갑니다. 탈취해 가고 빼앗아 가는 것이 강도입니다. 내 마음에 귀한 것을 다 빼앗아 가기에 침륜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신년사 말씀처럼, 뒤로 물러나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라고 했습니다. 발을 내딛고 나가보면 놀라운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어 있습니다. 풍성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어도 뛰는 다리를 가지고
    뛰는 메뚜기에 관한 말씀, 날개가 있고 기어 다니는 곤충은 부정하고 뛰는 다리가 있으면 정합니다. 믿음에 대하여 교회 안에서 강조를 해왔습니다. 지난주에도 행위가 아닌 믿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믿으면 하나님이 역사하신다는 말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믿음 없는 사람은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이 역사하시는데 나는 믿음이 없어, 아무 것도 안하고 살아갑니다. 언젠가 내 마음에 믿음이 오면 발을 내딛으려고 합니다. 내 마음에 믿음이 생기면 그 때 발을 내딛으려고 합니다. 그렇게 뛰는 다리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에4:16)

    에스더의 믿음이 아닙니다. 산다는 보장이 없는 마음, 믿음이 없어도 뛰는 다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왕이 살려둔다는 보장이 없지만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고 뛰어 봅니다. 믿음이 없으면 주저앉아 버립니다. 나가지 않습니다. 시도조차도 하지 않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이 역사를 하는데 내가 믿음이 없기에 그냥 주저앉아 버립니다. 그리스도인의 딜레마, 내 마음에 믿음이 생기면 그 때 발을 내딛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망할 것 같으니까 주저앉아 있습니다.

     

    발을 내딛어 보는 것
    사마리아 성의 네 명의 문둥이, 내일 이 맘 때라는 그 말씀을 믿고 믿음의 발을 내딛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아람 진에 항복하러 가자, 죽이면 죽을 따름이라, 여기 앉아 있어도 죽고 성 중은 주리니 성 안에 들어가도 죽을텐데, 확실한 믿음을 그들은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이 없다는 것을 핑계 삼아서 주저앉아 있습니다. 에스더 또한 왕 앞에 나가면 하나님이 역사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문둥이 네 사람, 죽이면 죽을 따름이라 하고 나아갑니다. 그렇게 발을 내딛어 보는 것입니다. 뛰는 다리를 사용하는 사람과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하는 사람과는 다릅니다. 하나가 물러나면 다 물러나게 됩니다. 망하는 사람이 왜 망하며 왜 시험에 듭니까? 아주 작은 부분에 물러나면서 결국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이 됩니다. 부담스럽지만 하나님을 향하여 발을 내딛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작은 차이입니다.

     

    믿음의 발을 내딛지 않으면
    허리를 교정하는 사람이 얼굴을 보면 허리가 아픈지, 안 아픈지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이불의 한 자락을 끌면 저 끝의 이불이 딸려 오는 것처럼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의 한 축이 틀어지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다 틀어 질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의 발을 내딛지 않으면 신앙이 다 틀어집니다. 그래서 믿음의 발을 내딛고 나아가야 하는데 믿음이 없다고 주저앉아 있습니다. 참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이 없다는 것을 핑계로 주저앉아 있기에 하나님은 믿음으로 나는 삶 말고 뛰어 보기라도 하라 합니다. 뛰어 보는 것입니다. 에스더가, 문둥이 네 사람이 뛰어 봅니다. 죽이면 죽을 따름이라, 그렇게 발을 내딛고 나아가니까 하나님이 역사를 합니다.

     

    특별한 믿음이 없었다
    홍콩 교육원 원장님을 만나서 일들을 진행하는데 내 마음의 그림을 그려 보았어도 그렇게 될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이 없습니다. 이 일이 잘될지, 못 될지, 교육자 포럼을 얼마나 잘 만들지 저는 모릅니다. 확실한 하나님의 그림, 확실히 된다는 믿음이 있어서 그 소리를 하지 않습니다. 어렴풋이 보여도 그냥 발을 내딛고 뛰어 보는 것입니다. 가만히 있는 것보다 뛰어 보는 것입니다. 메뚜기가 뛰듯이 풀쩍 풀쩍 뛰어 보는 것입니다.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좀 더 눕자, 부담을 피하고 물러나고, 결국 전체가 다 물러나게 됩니다. 곤핍이, 빈궁이 강도같이 옵니다. 반대로 뛰는 다리로 발을 내딛고 나가면 주의 은혜가, 풍성함이 강도같이 갑자기 내게 주어집니다. 이름도 없고, 누군지도 모르는 문둥이 네 사람, 특별한 믿음이 없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그냥 가 보았습니다. 살려준다는 보장이 없지만 발을 내딛고 나가보았습니다.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좀 더 눕자
    요즘은 비행기 표를 인터넷에서 끊을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여행사에만 발권 권한을 주었는데 이제는 누구나 인터넷에서 비행기 표를 끊을 수 있습니다. 미리 미리 예약을 잡아야 합니다. 이번에도 인도 가는 일정을 잡고 돌아오는 길에 홍콩을 경유하는 일정을 잡았는데 일정이 변경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비행기 표는 예약을 해 놓으면 쌉니다. 열 번, 스무 번 예약을 해 놓아도 제약이 없습니다. 발권만 해 놓지 않으면 됩니다. 뛰는 다리를 써서 발을 내딛는데 손해 보는 경우가 있습니까? 내가 믿음이 없어도 하나님의 뜻이고, 교회의 뜻이라면 뛰어 보는 것입니다. 문둥이 네 사람의 복,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뛰는 방향이 하나님의 뜻과 같았습니다. 에스더가 기쁨으로 왕 앞에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나아갔습니다. 마음이 일어나서 해야지, 억지로 한다고 되냐, 믿음이 있어야지, 그렇게 뒤로 물러나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좀 더 눕자라고 합니다. 특별한 믿음이 없어도 교회가 가는 방향으로 발을 내딛고 나가고 뛰어 보는 것입니다. 이런 삶을 살면 여러분의 삶에 놀라운 경험을 할 것입니다. 내가 믿음이 없어도 교회가 가는 방향으로 뛰어 보면 됩니다. 하나님의 뜻과 같으면 믿음이 없어도 발을 내딛고 나가보면 됩니다. 인도자가 시켜서 억지로 왕 앞에 나아가도 하나님이 역사를 합니다. 문둥이 네 사람의 방향이 하나님의 뜻과 같았기에 하나님은 그 뛰는 삶을 정하다고 하셨습니다. 잘된다는 보장이 없어도, 확고한 믿음이 없어도 교회의 뜻과, 하나님의 뜻과 같다면 발을 내딛고 그 길로 가 보십시오. 안되면? 또 뛰는 것입니다.

     

    믿음 없이 그냥 뛰어 보았어도
    “레위 족속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 들었더니 그 여자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아 그 준수함을 보고 그를 석달을 숨겼더니 더 숨길 수 없이 되매 그를 위하여 갈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이를 거기 담아 하숫가 갈대 사이에 두고”(출2:1~3)

     

    모세의 부모, 믿음으로 모세를 장성할 때까지 키울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준수함을 보고 석 달을 숨겼습니다. 믿음이 있어서 숨긴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길이 하나님이 뜻과 같았습니다. 발을 내딛어 보았으나 석 달 밖에 숨기지 못했고 실패했습니다. 그렇게 뛰었어도 별 수가 없었습니다. 어떤 이는 믿음도 없이 흉내를 내다가 망했다고 비난을 할 수도 있습니다. 더 숨길 수 없는 상황, 아이를 하숫가에 던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 번 또 뛰었습니다. 갈 상자에 아이를 담았습니다. 그렇게 하면 아이가 며칠을 더 버틸 수 있겠습니까? 믿음이 있었습니까? 바로의 공주가 와서 이 아이를 건질 것이고 바로 공주의 아들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까? 믿음 없이 그냥 뛰어 보았어도 하나님의 뜻과 같았습니다. 하나님은 그 삶을 정하다고 합니다. 마음에서 포기하고 뒤로 물러나는 삶, 나는 안돼, 뛰려고 하지 않습니다. 백 번 믿음으로 살려고 하다 안 되어도 그 삶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뛰는 다리로 뛰어 보았을 때 하나님의 역사와 축복을 만났습니다. 우리 삶 속에 믿음이 없어도 뛰어 보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다는 것이 방패가 되어서 이런 저런 일에 동참하라고 해도 거절합니다. 지금 내가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지 말고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냐 아니냐를 그 마음에 물으십시오. 에스더가 믿음이 없었지만 모르드개가 시키는대로 억지로라도 하니까 그 삶이 축복을 받았습니다. 사단은 너무 간교한 것이 이 교회 안에서 믿음을 강조했는데 틈을 타서 믿음이 없으면 안 된다고, 믿음 없이 나가면 망한다고 평생 믿음 없이 주저앉게 만들어 버립니다. 마음이 일어나서 신앙을 해야지, 억지로 하는 것이 무슨 신앙이냐고? 어떤 이는 묻습니다. 그러나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좀 더 눕자 결국 다 잃어버립니다.  모세의 부모, 믿음이 없었지만 한 번 시도를 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같은 방향으로 뛰니까 하나님이 놀랍게 역사를 하셨습니다. 공주의 아들로 삯을 받아가면서 보란듯이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키웠습니다.

     

    게으른 사람의 마음
    “혹이 다윗에게 고하여 가로되 보소서 블레셋 사람이 그일라를 쳐서 그 타작마당을 탈취하더이다 이에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을 치리이까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이르시되 가서 블레셋 사람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 하시니 다윗의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유다에 있기도 두렵거든 하물며 그일라에 가서 블레셋 사람의 군대를 치는 일이리이까”(삼상23:1~3)

     

    부담스러운 일, 영적으로 뒤로 물러나는 것은 게으른 사람의 마음이며 그 마음이 자라지 않습니다. 한계를 만나면 물러나거나 주저앉아 버립니다. 한계를 만나면 좌절하고 도망가고, 절망하고 포기하고 주저앉는 것이 자라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자라지 않는 사람은 한 가지 밖에 모르기에 두 가지 일이 주어지면 너무 부담스러워합니다. 자라는 사람은 여러 가지 일을 같이 할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컴퓨터를 배운다는 것이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지금은 컴퓨터를 배우는 1시간이 예전에 4년을 배워도 그 만큼 작업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편리해졌습니다. 프로그래밍 명령어로 컴퓨터에 지시를 해야 컴퓨터가 일을 했기에 한 가지 밖에 일을 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컴퓨터를 배우는 것이 굉장히 쉽습니다. 컴퓨터를 통해서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영적으로 자란다는 것이 이와 같습니다. 한 가지만 일을 겨우 하다가 이제는 열가지, 스무가지 일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으며 그 일을 다 감당해내고 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놀라운 역사를
    작년에 필리핀 교사들 연수를 받으러 오면 온통 그 하나에 집중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2층에서 필리핀 교사들 연수를 받고 있고, 4층에서는 집회를 하고 있고, 대학생 홍보를 하고 있고 저는 홍콩에 가서 마인드 교육을 하고 있고, 교회의 역량이 많이 자랐습니다. 모세 부모의 마음에 특별한 믿음이 없었습니다. 아이의 준수함을 보고 숨겼습니다. 그러나 너무 놀라운 것은 하나님이 믿음이라고 합니다. 히브리서에서 믿음으로 모세는 바로의 명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뛰는 다리는 정합니다. 믿음이 없어도 발을 내딛고 나가 보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어도, 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도, 억지로 그 길을 가도, 죽기보다 하기 싫어도, 발을 내딛고 나가야 합니다. 에스더에게 제일 합당한 이유, 왕이 부르지 않았는데 나가면 죽이는 법, 왕에게 부름을 받지 아니한 지가 30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모르드개는 그 핑계를 거부합니다. 너와 네 집이 망한다고 합니다. 억지로 나가게 합니다. 여러분 마음에 사단의 음성을 듣지 말고 하나님은 뛰어 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면, 그 방향이 같고 교회가 가는 방향이라면 억지라도 그 길을 가야 합니다. 신앙이 안 되는 이유는 교만하기 때문이며, 자기 고집 때문입니다. 뛰어 보라고 하는데 뛰지 않습니다. 안되면 또 뛰는 것입니다. 석 달이 지나 바닥이 나도 또 뛰어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갈 상자를 만듭니다. 그러니까 생각지도 못한 놀라운 역사를 만납니다. 그러나 피하면 생각지도 못한 궁핍을 강도처럼 만나게 됩니다. 다 빼앗기고 아무 것도 없이 껍데기 신앙을 하며 주일 낮 교인이 많아집니다. 뛰는 다리를 사용하지 않고 주저앉아 있기에 그 마음에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립니다. 그리고 종교인처럼 살아갑니다.

     

    뛰는 다리를 사용해서 뛰면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삶, 모세 부모의 삶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 축복, 역사를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같은 방향으로 발을 내딛고 뛰어 보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어서 발을 내딛고 나아갔을 때만 하나님이 역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안되면 또 뛰어 보고, 또 안 되어도 또 뛰어 보는 것입니다.

     

    “다윗의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유다에 있기도 두렵거든 하물며 그일라에 가서 블레셋 사람의 군대를 치는 일이리이까 다윗이 여호와께 다시 묻자온대 여호와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일어나 그일라로 내려가라 내가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붙이리라 하신지라”(삼상23:3~4)

     

    다윗에게 온 확실한 말씀, 그러나 다윗의 사람들에게는 그 약속의 말씀이 있지 아니했습니다. 다윗이 가자고 하니까 억지로, 가기 싫은데 간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들도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했습니다. 교회가 가는 방향에 같은 방향으로 뛰는 다리를 사용한 사람들입니다. 성경에 믿음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 안일한 가운데서 벗어나게 해 주는 것이 뛰는 다리입니다. 믿음이 없어도 뛰어 보고, 마음이 안 일어나도 뛰어 보고, 억지라도 뛰어 보아야 합니다. 날지 못하는 사람, 믿음으로 살지 못하는 사람은 여럿 있을지 몰라도 뛰는 다리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여기에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신앙 못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합니다. 시험에 들어도 뛰는 다리는 사용할 수 있습니다. 브솔 시내를 건너지 못한 200명,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이 문제입니다. 믿음이 없어도, 마음이 일어나지 않아도 뛰는 다리를 사용해서 뛰면 됩니다. 모세의 부모가 바로의 공주에게 삯을 받아가면서 아이를 키울 때 동네방네 다녀가면서 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풀쩍 풀쩍 뛰어보면 많은 역사가
    저는 제 마음에 홍콩에 관한 이야기를 했지만 이 일이 잘 될 거라고 이야기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과 방향이 같기에 뛰어 보는 것입니다. 풀쩍 풀쩍 뛰어보면 많은 역사가 일어납니다. 김동엽 선교사가 인도에서 풀쩍 풀쩍 뛰어다닙니다. 확실한 믿음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다른 주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없는 일들이 뗄렝가나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시에서 5에이커의 땅을 기증 받았습니다. 20억이 넘는 땅, 도로가 옆의 평편한 땅, 전기, 수도가 다 되어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주는 땅과 다릅니다. 길이 다 포장 되어 있고 전봇대가 다 세워져 있으면 기반 시설이 다 되어 있습니다. 마치 택지 분양하는 식입니다. 그 일을 가만히 보면서 어린 사역자라서 천방지축인 것처럼 보여도 뛰는 방향만 잡아 주면 됩니다. 안 뛰는 사람을 뛰라는 것은 어렵지만 뛰는 방향을 잡아주는 것은 너무 쉽습니다. 이 삶을 배워야 합니다. 이 삶을 못 배우면 가뭄에 콩 나듯이 발을 내딛고 살아갑니다. 그렇게 산지가 3년, 5년, 10년이 되어 갑니다. 오늘 여러분의 마음에 뛰는 다리를 가지고 늘 사용할 수 있습니다. 분명한 믿음이 없어도 믿음을 가진 사람과 똑같이 놀라운 믿음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고집스러운 사람은 죽어도 뛰지 않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마음에 이것이 고집이며, 회개치 아니한 마음이며, 저주 받을 마음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가 가는 방향으로 함께 뛰면
    게으른 자가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좀더 눕자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게으른 사람, 아내가 없으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내가 밥을 먹여 주어야 밥을 먹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아내가 며칠을 집을 비워야 하기에 주먹밥을 만들어서 손에, 입에 쥐어 주고 갔는데 갔다 오니까 혀 바닥이 닿는 곳의 음식만 먹고 결국 굶어 죽었다고 합니다. 굶어 죽은 게으른 자, 그 사람이 무슨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겠습니까? 믿음이 없어도 한 번 뛰어 보니까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합니다. 모세의 부모, 에스더, 문둥이 네 사람, 믿음도 없고, 마음도 없고, 아무 것도 없어도 교회가 가는 방향으로 함께 뛰면 물러나지 않고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해보고, 저 일에도 동참을 해 보고, 내 역량을 늘려 보기 위해서라도 뛰어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뛰는 다리를 가지고 발걸음을 내딛고 사시면 하나님이 여러분의 삶 속에 놀랍게 역사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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