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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성옥 | 2015.06.19 20:45 | 조회 8797

    2015년 6월 14일 주일오전말씀
    말씀: 삼하 21:1~9

     

    약속의 효력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는 삶에 대해 나누며 
    여러분 우리는 최근에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는 삶에 대해서 나누고 있습니다. 지난 후속집회 때는 의문의 묵은 것에 대해, 율법에 벗어나는 삶에 대해서 자세히 이야기 하였다면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는 삶은 어떠한 것이겠습니까? 율법은 신령하고 온전하며 율법 자체로는 완벽하지만 이 율법의 능력이 다른 사람을 이끌어 주거나, 건져 주거나 바꾸어 줄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율법은 무능력합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율법이 연약한 육신을 만나니까 아무 것도 못합니다. 연약한 육신을 바꾸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인간의 육신이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그것이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는 길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늘 율법의 행위 아래 있었기 때문에 구원을 받았어도 내가 하나님을 섬기고, 내가 잘하려고 하는…, 의문의 묵은 것 아래에서 신앙을 하기 때문에 신앙이 잘 안되고 어렵습니다.

     

    굿뉴스코 천명을 보내실 하나님을 소망하며 나아갔을 때 
    대학생들이 마인드 강연을 하고, 한편에서는 핍박이, 그리고 역사도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이끌어 가는 세계는 영의 새로운 것으로 하나님이 이끕니다. 어느 날 박목사님께서 올 해는 굿뉴스코 학생들 천명을 보내자고 했습니다. 늘 오백 명 수준에 머물러 있었는데 이는 우리에게 주는 명령이 아니라 영의 새로운 세계에 가면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애를 써야 하는 것이 아니라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어 주고 싶은 은혜와 역사를 종을 통해서 나타내는 것이기에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천명을 보내려면 몇 명에게 홍보를 해야 하는가? 지금까지의 방법으로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끌고자 하는 학생들이 학교마다 있습니다. 전반기 대학생 1000명에게 홍보를 하고 후반기에 2000명…, 그렇게 올 해 3000명에게 카카오톡 마케팅을 통해 아이디를 얻고 지속적으로 홍보를 할 수 있겠다 싶습니다. 길을 몰랐지만 그 말씀 믿고 발을 내딛고 나아갔을 때 하나님이 하나하나 길을 여시는 것을 봅니다. ‘시험기간에 관심이 없을 텐데…’, 하루하루 백 명, 이백 명 카톡 아이디를 얻고 마음의 감동을 주고 마음의 세계를 나타낼 수 있는 메시지, 굿뉴스코 단원들의 간증을 보내주고 있습니다. 굿뉴스코 해외 봉사를 갔다 오면 인생이 달라지고 마음이 변화하는 삶을 배우라고 합니다.

     

    이미 이루어질 일에 믿음으로 동참하고 역사를 맛보는 세계
    영의 새로운 세계는 이미 그 일들은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믿음으로 그 일에 동참함으로 하나님의 역사와 믿음을 맛보게 되어 있습니다. 강북에 있는 형제가 사업차 페루에 갔습니다. 페루에서 마인드 교육을 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고 합니다. 우연히 마인드 강연을 하게 되었는데 교회에서, 그리고 국회에서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마인드 강연을 잘 하는 형제가 아닌데 사람들에게 마인드 강연을 하고, 국회에서 마인드 강연을 했는데 정말 좋아하고 돌아가는 비행기 스케줄을 늦추어서 좀더 하고 가면 안되겠냐고 붙잡았다고 합니다. 
    이번에 장년들도 어제 마인드강연 콘테스트 예선을 하고, 오늘 오후에 본선을 치르게 되는데 이렇게 발을 내딛게 됨으로 인해서 하나님이 만들어 가고자 하시는 모양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이명재 형제님은 나이가 많은데  PPT 자료를 띄어 가면서 강연을 하시는데 웬만한 장년보다 나았습니다. 실버대학 교장님이라 교회가 이렇게 만들어 주었구나 싶습니다. 교회가 그렇게 만들어 주니까 만들어 지는 것처럼 하나님이 교회를 통해서 그렇게 만들어 가십니다.

     

    똑똑한 분들이지만 마음의 세계는 가르치지 못하고
    학교에 가보면 재미있는 현상이 있습니다. 학교 선생님들은 다 똑똑한 분들입니다. 수능 1등급 되어야 교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똑똑한 선생님들이 다 모여서 가르치는 일 중에 마인드 교육은 한 시간도 못합니다. 장년, 부인, 청년들 다 하는 마인드 강연인데 선생님들은 못하기에 외부 강사를 구하느라고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세계를 가르치지 못합니다. 서울의 한 교장 선생님이 제게 물으셨습니다. 

     

    “마인드 교육이 뭡니까? 뇌파를 연구해서 하는 것입니까? 명상 하는 이런 쪽이 마인드 교육입니까?”

     

    교장 선생님조차도 마인드 교육이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중고등학생들에게 하라고 해도 잘 할 것입니다.

     

    믿음의 단계에 도달하게 하시려고 주신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교회를 통해 우리를 만드는 과정 속에 우리가 있습니다.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긴다는 것은 믿음에 속한 세계입니다. 믿음 하면 너무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것 같습니다. 구체적으로 좀 더 믿음의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서,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되는 세계에 도달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쉽게 누구나 한 계단 한 계단 밟아 올라올 수 있도록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는 세계, 무엇을 믿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고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약속들은 일방적인 약속입니다. 율법은 따르면 복을 주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켜 행하지 못하면 저주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에는 조건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약속에 참예할 수 있는 사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찾아와서 열국의 아비가 되겠다고 하셨습니다. 어느 날 요셉에게 꿈을 주면서 치리자로 세우셨고,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주면서 왕으로, 베드로에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시겠다고 했습니다. 내 조건이 전혀 개입되지 않습니다. 아무 조건 없이,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약속을 주셨습니다. 이 약속에는 아무나 참여할 수 없습니다. 이 약속의 세계에 들어가면 너무나 놀라운 세계를 볼 수 있습니다. 이런 혜택은 아무나 받을 수 없습니다. 엄청난 혜택과 축복, 이 약속에 아무나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 약속에 참예할 수 있는 사람들을 한정시켜 놓았습니다.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됨이라”(엡3:6)

     

    약속에 참예할 수 있는 조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된 자가 참예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의 조건, 노력, 모습과 상관없이 약속대로 그 일을 이루는데 이 약속에 참예할 수 있는 사람은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된 자입니다.

     

    약속 안에서 사람 낚는 어부가 되어 있는 우리  
    여러분은 약속에 참예한 자가 되었습니다. 약속에 참예하지 않고 내 노력, 방법, 수고로 무엇을 한다고 하는 것은…, 인천은 김포공항이 가깝고 인천공항이 가깝습니다. 일본, 중국에 간다고 하면 비행기를 타야 합니다. 비행기를 탈 수 있는 티켓을 얻었는데 그 티켓을 안 쓰고 비행기를 타지 않고 연안부두에서 배를 구하고 있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입니까? 올해도 한국월드캠프에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갈 것입니다. 만일 KTX 티켓이 있는데 부산까지 걸어서 가겠습니까? 하나님이 약속대로 나를 이끌고 가신다고 했는데 그 삶에는 내 조건, 행위, 노력이 상관이 없습니다. 구약의 약속들을 보면 개인에게 주어지지만 예수님의 약속을 보면 그 말씀대로 다 귀한 사람 낚는 어부가 되어 있습니다.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는 신앙의 길은 내 조건과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내 조건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약속이 나를 만들어 가시고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는 세계, 약속에 세계에 들어갔을 때 이 약속이 너무 놀라운 것이 내가 잘하고 못하고가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구원을 받고 한 동안 선교학교를 가려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복음을 위해 살고 싶은 마음, 복음이 귀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선뜻 그 마음이 들지 못했습니다. 부모님을 모셔야 된다는 첫 번째 조건…, 그보다 더 큰 두 번째 조건이 제 자신이었습니다. 내성적인 사람이었기에 나하고 복음이 맞지 않았습니다. 내 조건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약속은 당신의 뜻대로 저를 만들어 가셨습니다. 내게 있는 외부적인 조건, 그리고 내 자신에게 있는 내부적이 조건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약속에 참예한 자가 되어 지면 그 약속이 나를 만들어 갑니다.

     

    약속을 의지했을 때 그 약속이 신실하게 일하시는 것을 보며 
    25살에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총각 전도사로 있다 결혼을 했습니다. 한참 뛰어 놀 나이였습니다. 아무 것도 몰랐지만 하나님이 제게 하나를 깨우쳐 주셨습니다. 복음의 일이 내 실력, 노력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약속에 참예한 자가 되면 그 약속대로 하나님이 놀랍게 일을 하신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내 앞에 어려운 일, 내가 바라는 일, 해결되기를 바라는 일 앞에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했을 때 그 약속은 신실하게 그대로 일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약속에 참예하면은 신기하게 내 삶을 바꾸어 주시고, 나를 이끌어 가시고,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는 것을 한 번, 두 번 경험을 하면서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영주, 굉장히 보수적인 도시, 4년이 되었지만 복음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고 교회에 갔을 때 4분이 계셨습니다. 앞선 종이 4년 동안 해도 안 되는 도시라면 내가 한들 잘 되겠나 싶었습니다. 복음의 역사가 잘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이 말씀이면 보수적이고 복음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 동네에도 능히 역사가 일어나겠다는 말씀이 들려졌습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방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방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내가 북방에게 이르기를 놓으라 남방에게 이르기를 구류하지 말라 내 아들들을 원방에서 이르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라”(사43:5~6)

     

    이 말씀을 약속으로 삼았습니다. 이 말씀대로 하나님이 일하시면 충분하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이 약속에 참예할 줄 잘 몰랐습니다. 이 약속에 침노할 줄도 몰랐습니다. 약속에 참예한 자가 되었다면 당연히 초대 받은 손님이고 당연히 들어갈 수 있는 자입니다. 세례 요한은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침노하면 내 것이 아니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약속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너에게 하신 약속이 아니야, 네가 필요해서 끌어당긴 것이지…’, 사단은 그렇게 우리 마음에 속삭입니다. 그래서 수 없이 많이 흔들렸습니다. 복음의 말씀을 보면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다시는 기억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은 침노하면 그 약속이 내 것이 됩니다. 안 받아 들이고 안 믿으면 그것이 내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약속대로 원방에서 사람들을 교회로 모으신 하나님
    어느 날, 중심을 잡고 난 이후에 내 삶에 어려움, 문제가 있을 때 약속에 참예한 자가 되면 약속대로 하나님이 일을 하시겠구나, 사역을 모르고 복음의 역사도 없을 그 때에 약속을 의지하고 나니까 내가 열심히 노력한 것보다 더욱 복음의 역사가 힘 있게 일어났습니다. 동쪽으로 가면 봉화라는 곳이 있는데 봉화라는 곳에서 한 여학생이 구원을 받게 하셨습니다. 친구를 통해 친구에게로 여학생들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더 동쪽으로 가면 춘향이라는 동네가 있었는데 부친 한 분이 아들을 통해서 복음을 듣고 구원의 역사가 그 동네에 일어났고 풍기에서도 한 아주머니가 구원을 받으셨습니다. 내가 전도를 잘 해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 약속을 의지했는데 동방에서, 남방에서, 원방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교회 안에 앉혀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대로 그대로 그 약속을 이루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연약함을 친히 도우사 약속대로 열국의 아비로 만드시고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하리라 했던 주의 약속, 아브라함의 조건이나 외부적인 조건이나 아브라함을 통해서 그가 열국의 아비가 될 조건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게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주 흔들리고 자기 생각을 따라 살았지만 아브라함의 조건과 상관없이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열국의 아비로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8:3)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8:26)

     

    구약의 율법으로 내가 도달할 수 없는 세계가 언약의 세계이며, 약속의 능력은 이 모든 연약한 것을 친히 도우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약속의 성취를 볼 수 있습니다. 약속은 전능하기 때문에 아무리 무능하고 조건이 없을 찌라도 약속에 참예한 자가 되면 아브라함을 열국의 아비로,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요셉을 치리자로, 베드로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 수 있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우리 연약함을 친히 도우 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포크레인을 운전하기 위해서 덩치가 커야 합니까? 나와 상관없는 세계이며 그 차의 힘과 능력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면 나와 상관없이 하나님이 일을 하시는 세계입니다.

     

    나는 개입하지 않고 약속을 찾아내어 의지하기만 하면
    처음 사역에서 내가 열심히 하니까 구원을 받고, 말씀을 잘 전해주니까 사람들이 변화 받는 것을 경험한 것이 아니라 말씀의 약속 하나를 의지했는데 하나님이 너무 놀랍게 일을 하셨습니다. 복음의 역사에 내가 조금도 개입이 되지 않았습니다. 
    봉화에서 처음 구원받았던 여학생 박오수 자매가 구원을 받고 지금도 도봉 교회에서 신앙을 하고 있습니다. 이 자매가 구원을 받을 때 내가 조금도 개입되지 않았던 것은 언니 초청으로 수양회에 참석을 했습니다. 수양회에서 만나 영주 교회로 연결을 시켜 주었습니다. 춘향에서 구원을 받은 분도 수양회를 통해서 저희 교회와 연결이 되어졌습니다. 내가 조금도 잘 했다고 할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그대로 일을 하셨습니다. 약속에 참예하는 법을 터득하고 나니까 이 문제를 해결할 만한 약속이 어디에 있는가, 이 문제를 도울 만한 약속이 어디에 있는가? 그 약속을 찾아내고 의지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마치 유월절 절기에 장자를 멸하는 재앙이 임할 때 피를 보면 재앙이 피하여 지나가는 것은 그 안에 있는 사람의 조건과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삶에 있어서도 이 약속 안에 들어가면 나 사람은 사람이 잘하고 못하느냐가 상관이 없습니다. 약속은 내가 연약하다 할지라도 성령이 친히 도우시기 때문에 약속이 그 일을 이루게 되어 있습니다.

     

    영원한 약속의 효력 안에서 보존되는 기브온 거민
    약속의 효력, 우리 마음은 자주 흔들리고 요동을 하는데 그 때마다 약속이 변하지 않습니다. 약속의 효력은 영원합니다. 한번 주어진 약속이 얼마나 대단하고 놀랍습니까?

     

    “다윗의 시대에 년부년 삼년 기근이 있으므로 다윗이 여호와 앞에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는 사울과 피를 흘린 그 집을 인함이니 저가 기브온 사람을 죽였음이니라 하시니라 기브온 사람은 이스라엘 족속이 아니요 아모리 사람 중에서 남은 자라 이스라엘 족속들이 전에 저희에게 맹세하였거늘 사울이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위하여 열심이 있으므로 저희 죽이기를 꾀하였더라 이에 왕이 기브온 사람을 불러 물으니라”(삼하21:1~2)

     

    기브온 거민은 여호수아에서 마땅히 멸망당할 자였는데 사신의 모양을 꾸미고 멀리서 온 것처럼 다 떨어진 옷과 가죽부대, 떨어진 신, 마르고 곰팡이 난 떡을 준비해서 화친하자고 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여호수아가 그들의 모습을 보고 떡을 취하여 보니까 멀리서 온 줄 알고 화친의 약속을 주었습니다. 약속이 그들에게 주어졌을 때 이들은 살 수 있었습니다. 오랜 후 사울이 기브온 거민을 죽였습니다. 마땅히 죽어야 할 자 임에도 불구하고 재앙이 기브온 거민이 아닌 이스라엘에게 왔습니다. 다윗의 허락, 사울 집안의 사람 일곱을 내어 주어서 기브온 거민의 한을 풀어 줍니다. 기브온 거민들이 보존되는 것은 그들이 일을 성실히 했기 때문에 보전된 것이 아니라 약속에 의해서 그들이 보존되었습니다. 므비보셋도 그 아버지 요나단과의 약속으로 인해서 그도 보존이 됩니다. 두 발이 쩔뚝이…, 죽여도 아깝지 않을 사람…, 요나단으로 인해서 은총을 베풀고 함께 상에서 음식을 먹는 자가 되었지만 압살롬의 난으로 인해서 그가 다윗을 위해 기쁘게 한 것도, 잘한 것도 없었지만 그 후 기브온이 사울의 집안사람 일곱을 내어달라고 했을 때 그 약속으로 보존되었습니다. 요나단과의 약속으로 인해 다윗은 므비보셋을 아꼈습니다. 약속과 상관없는 자들에게 재앙이 임했습니다. 므비보셋이 무엇을 잘해서 보존된 것이 아니라 약속에 의해서 보존이 되었습니다. 약속을 가진 자를 해하려고 하니까 그 해하려고 하던 자들이 재앙을 만나게 됩니다.

     

    신앙의 뿌리를 어디에 두고 있느냐

     

    “또한 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 즉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긍하지 말라 자긍할찌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롬11:17)

     

    뿌리가 약속입니다. 내가 약속을 보전하는 것이 아니라 약속이 나를 보전하는 것입니다. 약속으로 하여금 그렇게 만들어 줍니다. 베드로가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했을 때 그 말씀을 자기가 이루어 가는 것이 아니라 그 약속이 베드로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어 줍니다. 일방적인 약속, 그 약속이 우리를 보전해 줍니다. 신앙의 뿌리를 어디에 두고 있습니까? 신앙의 뿌리를 약속에 두는 사람이 있고 자기에게 뿌리는 내리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똑같이 주를 섬기고 신앙을 하는 것처럼 보여도 어려움이 닥치면 표가 납니다. 뿌리를 어디에 두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약속으로부터 힘과 소망과 능력을 공급 받는 사람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는 사막의 딸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에 거하리라”(렘17:5~8)

     

    약속에 마음을 두고 있는 사람은 물가에 나무를 심기운 사람 같습니다.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은 사람, 자기를 믿으며 자기에게 뿌리를 두고 있는 사람,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주의 일을 하려고 하는 사람은 사막의 떨기나무와 같습니다. 지금 내 앞에 어떤 형편이 있든지, 내가 처해 있는 형편, 문제와 상관없이 가무는 해에도 하나님의 역사와 능력을 맛보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마음의 뿌리를 어디에 두고 있느냐, 요셉의 형들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요셉의 형들에게 약속에 참예할 수 있도록 요셉은 이야기 했습니다. 한탄하지도, 근심하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나를 먼저 이곳에 보내신 자는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의 형들은 약속에 뿌리를 내리지 않고 자신들에게 두고 있었기에 피곤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의 행위와 상관없이 요셉의 약속에 의해서 그들이 보전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죽으니까 두려워하고 염려하고 근심합니다. 

    똑같이 신앙을 하는 것처럼, 겉으로 보기에는 표가 나지 않지만 그 마음의 뿌리를 약속에 두는 사람이 있고 자기 자신에게 뿌리를 두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막의 떨기나무처럼, 광야의 가시나무처럼 메말라 있고 아무런 열매도 없습니다. 여러분 자신의 마음을 비추어 보면 만가지 일이 여러분 앞에 있다 하더라도 아무리 가물어도 약속으로부터 힘과 소망과 능력을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섬기게 해 주시고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약속이 여러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섬기게 해 주고 복음을 위하게 만들어 줍니다. 뿌리가 여러분을 보전하게 합니다. 내가 하는 삶은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방 족속, 약속이 주어진 자도 아니었던 기브온 거민, 이들은 약속에 침노했습니다. 그 약속은 유효합니다. 그들이 어떠했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약속은 그 당시에만 유효한 것이 아니라 세월이 지나서 사울이 기브온 사람을 죽였을 때 하나님은 사울의 집에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신앙하는 것에 가장 필요한 것, 약속에 참예한 자가 되었기에 당당히 그 약속에 들어갈 수 있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 약속에 의해서 내 삶이 보전되어집니다. 약속이 나를 그렇게 보전해 주면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이 나를 이끌어 갑니다. 연약함만 가지고 있고 아무런 약속도 없으면 하나님은 아무 일도 하실 수 없습니다. 약속이 내 마음에 뿌리를 두고 있을 때 반대로 가는 형편을 볼지라도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으로 말미암아 만들어져가는 그리스도인들
    박목사님이 이야기하셨던 창세기 1장의 말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어둠이 없습니다. 하늘에 별을 만드시고…, 칠흙 같은 어둠이 있을 찌라도 그 어둠에 밝은 별이 빛나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아무리 암담한 절망 가운데 들어가 있을지라도 결코 두려워하지 않고 풍성한 삶을 맛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연약한 나를 율법은 아무 것도 못하지만 하나님은 약속으로 말미암아 내가 아무리 연약하고 부족해도 하나님은 능히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루신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의 약속은 내 모든 연약한 조건이 있어도 하나님의 뜻대로 만들어가고 이끌어 가며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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