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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성옥 | 2015.08.12 08:16 | 조회 8273

    2015년 8월 9일 주일오전말씀
    말씀: 창4:1~13


    징검다리를 놓아 두어 고난의 강을 건너게 하시는 하나님


    그리스도인들이 핍박과 어려움 없이 신앙을 하고 있는 시대  
    우리에게 어려움이라는 것은 우리를 참 복되게 합니다. 지금까지 기독교 역사를 보면 그리스도인들이 핍박을 받고 어려움을 당할 때, 오히려 더 힘 있는 복음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카타콤의 순교자라는 책을 보면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큰 핍박을 받았는지 볼 수 있습니다. 기독교 역사상 그리스도인들이 핍박도 없이, 어려움 없이 신앙을 하고 있는 시대가 이 시대인 것 같습니다. 삶까지 여유롭고 풍요로워졌기에 신앙을 한다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조건 가운데 있습니다. 마음을 꺾고, 부담을 넘는 것이 어려운 것은 그 만큼 여러분들이 편하고 어려움 없이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나이든 어르신들은 고생을 해 보았고 많은 어려움을 겪어 보았기 때문에 이 시대의 삶이 얼마나 풍요롭고 좋은지, 그 감사함을 알고 있지만 젊은이들은 풍족함에 대해 당연한 마음을 가지고 조금만 모자라면 부모를 원망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조금만 더 시간이 흘러가면 자식에게 매 맞는 부모들이 많아 질 것입니다.

     

    급속한 경제 성장을 따라가지 못하는 마음의 세계
    오래 전, 일본에 “이지메”라고 하는, 한국에서 “왕따”라고 하는 것이 일본에 일어났을 때 수 많은 학생들이 자살을 하고 사회적인 문제가 일어나는 것을 보며 일본을 욕했지만 그것이 금방 한국으로 들어왔습니다. 지금 일본은 부모가 자식에게 매를 맞는데도 어디 가서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히키코모리”, 우울증의 일종, 집에 틀어박혀서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이지메”를 배워 온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흘러가는 길입니다. 우리나라는 급속도로 잘 살게 되었기에 마음의 세계가 못 따라가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병폐가 우리나라, 중국 마찬가지로 많은 문제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에서도 조금만 어렵고 부담스러우면 넘지 않으려고 합니다.

     

    부담과 고난을 견디지 못하는 온실 속 화초 같은 사람들
    어떤 부친을 만났는데 자기 아들에 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부친이 서울에서 사업을 했는데 옛날에는 전화기 하나 놓는 것도 굉장히 비싸 보통 100~200만원 이었는데 전화기 10대를 두며 사업이 잘 되었습니다.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아들을 왕처럼 해 달라는대로 다 해 주었습니다. 아들이 고등학교 때 차를 몰고 다닐 정도로 원하는대로 다 해주었습니다. 지금은 아들 인생이 완전히 망가져서 부모에게 근심거리와 고통이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절반의 사랑은 감추라고 했는데 그것을 몰랐네요.” 부친에게 말했습니다. 온실의 화초처럼 자란 아들, 어려움과 부담을 넘지 못했습니다. 한 때 사역까지 했는데 스스로 사역을 그만두고 지금은 오히려 교회를 비난하고 대적하는 곳에 가 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 실제 대적하고 비난하기 전에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부담을 넘고 고난을 견디는 부분에 약해져 있습니다. 스스로가 부담을 넘고 고난을 이겨내는 자생 능력 없는 온실 속의 화초입니다. 인정해주고 세워 주면 이 한 목숨 받쳐 충성된 모습을 보이지만 거절을 당하고 무시를 당하는 어려움을 넘지 못합니다.

     

    유대인의 세계 최고 ‘좌절 교육’  
    “좌절 교육”, 유대인의 교육 중에 하나입니다. 먼저 집에서 부모가 가르칩니다. 부모 품에 있을 때는 부모가 대신해 주지만 앞으로 수 많은 어려움, 좌절을 겪게 될 것인데 좌절 교육 없이 그냥 일어설 수 없습니다. 유대인들의 교육, 세계 최고의 교육이라고 하는데 어느덧 우리 선교회 안에 최고의 교육을 통해서 양육을 받고 신앙을 배우고 자라고 있습니다. 끊임 없이 온실 속의 화초가 아닌, 어려움을 넘고 한계를 넘는 삶을 살게 하려고 종이 간섭을 하고 책망을 하고 내치고…, 이런 과정을 통해서 마치 부모가 자식을 혼내고 매를 대는 그 모습이 절반의 사랑을 감추는 것처럼, 좌절 교육을 통해서 온실 속의 화초가 아닌 야생화처럼 비바람에도 견딜 수 있는 삶을 살게 합니다.

     

    “남들은 다 쉽게 하는 결혼, 잘 안되는 그게 복이야!”
    가만히 있으면 안일한 사람이 되어서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사람이 됩니다. 내 스스로 부담과 어려움을 향하여 발을 내딛어야 합니다. 어떤 젊은 형제가 저를 찾아 왔습니다. 인천으로 취직이 되어서 이사를 왔는데, “목사님, 결혼을 해야 하는데 아직 결혼식을 못 올리고 있습니다.” 좌초지정을 들어 보니까 교회 안에서 선을 보고 서로가 좋아 날을 잡아야 하는데 형제 집안에서 아버지가 강하게 반대를 했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존중해서 기다렸는데 1년 반 동안 여전히 똑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이제는 믿음으로 결혼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정하고 결혼을 추진하는데 어제도 자매와 함께 와서 교제를 했습니다. 지난 주에는 한 두 시간, 이번 주에는 한 시간 동안 교제를 했습니다. 제가 서울에 자주 가 있고 선교회에 할 일들이 많아서 저희 형제 자매들도 제 얼굴을 보기 어려운데 하나님이 은혜를 베푼다 싶었습니다. 교회 안에 결혼식, “뭔 결혼을 그렇게 빨리 하느냐고?” 묻지만 결혼을 끝내고 나면 너무 고마워합니다. 주위에 보면 결혼을 하기 위해 몇 개월을 고생하는 것을 보며 교회를 향하여 감사해 합니다. 믿음으로 발을 내딛고 방도, 결혼식장도 알아 보고 있습니다. “남들 다 쉽게 하는 결혼, 잘 안되니까 어렵지? 그렇지만 이게 다 복이야!” 이런 어려움 때문에 교회 앞에 나오고, 종 앞에 나와서 교제를 하고…, 이 어려움이 다 복입니다. 안 좋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이 고난과 부담을 넘어야 합니다. 지금도 아버지가 반대를 하고 있습니다. 청첩장에 내 이름도 넣지 말라고 합니다. 결혼식을 주선하다 보면 이런 저런 어려움이 많이 있습니다.

     

    길이 없을 때 물러나지 않고 믿음의 발을 내딛으면 
    중풍병자를 네 사람이 메고 갈 때 정상적인 방법으로 예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홀몸이 아니기에 다음에 오자는 마음이 생길 수도 있지만 마음을 정하고 나아가니까 지붕을 뚫고서 길을 만들어 냅니다. 길이 없는 가운데서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길이 없지만 믿음의 발을 내딛으면 하나님이 역사를 합니다. 이 어려움을 넘어가다 보면 이 형제는 굉장히 영적으로 성숙하게 될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안 되는 일, 이것이 참 복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려움이 있다면 복이 굴러 들어온 것입니다. 복이 굴러 들어왔으니까 요리만 잘 하면 됩니다.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 주님과 만나 행복 해 하는 사람
    사역자들이 할아버지가 되어서 휴대폰에 손자, 손녀 사진을 넣고 다닙니다. 자식이 어린 시절에는 먹고 사느라고 자식 키우는 재미를 느끼지 못합니다. 자식들을 다 키운 가운데 여유가 있는 상태에서 손자, 손녀를 보면 너무 사랑스럽고 이쁩니다. 고난, 어려움, 부담에서 벗어나려고 그곳에서 오는 재미를 다 놓쳐 버립니다. 얼굴에 다 써있습니다. 이런 고난, 어려움 속에서 주님과 만나고 주님의 능력을 맛보고 행복해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그 얼굴에 두 글자로 짜증, 세 글자로 왕짜증이라고 써 있습니다. 나를 어쩔 수 없는 고난 속에 넣어서 믿음을 배우면서 하나님을 얻어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고난과 어려움을 먹으면 그것이 복으로, 감사로 바뀌는 기능
    사람이 음식을 먹으면 신기하게 그 음식을 에너지로 만들어 활동할 수 있도록 만듭니다. 소는 풀만 먹습니다. 소는 풀만 먹어도 힘이 쎕니다. 들판에 풀만 먹어도 살도 찌고 힘도 쎄지는데 그 기능이 그 몸 안에 들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고난과 어려움을 먹으면 그것이 복으로, 감사로 바뀌는 기능이 있습니다. 어려움 때문에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 그 기능을 하도 쓰지 않아서 그 기능이 죽어 있는 사람입니다. 만일 여러분 가운데 제대로 정신을 차리고 보면 내게 어려움이 왔던 것이 복인 줄을 알 것입니다. 저희들 가족 모임에 가서 어릴 때 이야기를 잠깐 이야기 했습니다. 어릴 때 싫었던 것, 저희 어머니가 저를 엄청 엄하게 키워서 매 맞는 것, 혼 나는 것, 삐쳤다간 국물도 없는 것…, 저희 형제가 1남 4녀의 외동 아들이었기에 금이야, 옥이야 그렇게 키운 것이 아니라 엄하게 키웠던 것이 지금은 너무 감사합니다.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남아 있는 기억이 있습니다. 닭을 한 마리 삶아서 온 가족이 모여서 뜯어 먹었습니다. 제가 닭고기를 먹다가 삐쳤는데 먹으라고 해도 먹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가족끼리 먹는데 ‘설마 내 것은 남겨 놓겠지’ 했지만 정말 가족끼리 국물도 없이 다 먹어 버렸습니다. 그 때 마음 꺾지 않으면 나만 손해구나 싶었습니다. 만일 내 몫을 남겨 두었다면 제 마음을 꺾지 않고 살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어려움을 피하는 것은 영적인 초보  
    어려워졌다면 정상적으로 그 마음이 주님과 가까워져야 합니다. 망했다면 오히려 주님을 얻었기에 감사해야 합니다.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라는 말씀, 어떤 어려움과 고난이 와도 이를 기쁨과 감사로 바꿀 수 있는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어려움으로 인하여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할 수 있는 조건입니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을 얻게 되고 믿음을 배우게 되며 복된 시간이 되었다고 간증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려움을 허락하는데 그 어려움 마저 피하는 삶을 사는 사람은 가장 영적으로 초보적이고 어린 아이입니다. 그 어려움으로 인하여 원망하고 있다면 밥을 먹지 말아야 합니다. 어려움을 감사로 바꿀 수 있는 기능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습니다. 바로 바꿀 수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 틀림 없이 감사로 바뀌게 됩니다.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스스로 고난의 길을 택하는 것
    그리스도인들이 성장하게 되면, 오늘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스스로 고난의 길, 부담의 길을 택할 줄 알아야 합니다. 피하는 삶을 사는 것은 지극히 초보적이고 어린아이의 삶이지만 성장했다면 내 스스로가 고난과 어려움을 향하여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점점 편리하고 편안한 것을 좇아 흘러갑니다. 로봇 청소기, 땀 빼며 청소하기 귀찮으니까 로봇이 혼자서 돌아다니면서 청소를 하고 스스로 충전을 합니다. 사람들은 이런 것을 원합니다. 그렇지만 신앙은 내가 부담을 넘지 않고, 고난의 길을 택하지 않고 믿음이 자랄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의사들이 수술에 대한 욕심이 있습니다. 환자들이 오면 웬만하면 수술을 하자고 합니다. 안과의사가 백내장 수술을 하는데 100명쯤 해야 익숙해지면서 제대로 할 수 있게 됩니다. 대부분의 수술이 그렇습니다. 의사가 수술을 해 보지 않고는 유능한 의사가 될 수 없습니다. 믿음이 자라지 않으니까 요만한 어려움도 넘지 못하고 원망하고 앉아 있습니다.

     

    생각의 토막 하나만 제하면 어려움이 좋은 것임을 알게 되고 
    저희 사택 안방에 화장실이 있는데 세면기 물이 졸졸졸 나오다가 갈수록 심해집니다. 어제서야 원인을 찾았습니다. 거실이나 다른 화장실은 수압이 센데 안방 화장실 물 나오는 배관 안에 고무 패킹이 불량품이어서 물줄기를 막고 있었습니다. 믿음의 사람이 되고, 신령한 사람이 되는 것이 무언가 특별한 곳에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 생각의 토막을 하나만 제하면, 어려움이, 고난이 좋은 것이구나. 이것을 모르면, 어려움과 고난이 복되게 하는 것을 모르면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그러다 교회를 떠나면 반드시 대적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르쳐 주고자 하는 믿음의 길, 어려움과 고난이 필요하지만 피해가는 사람은 처음에는 원망하고 불평하고 부담스러워하다 결국 대적자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신앙은 징검다리를 건너는 것
    오래 전 기쁜 소식지에 글을 연재하였었는데 징검다리라는 코너에 글을 연재했습니다. 징검다리라는 것은 냇가에 띄엄띄엄 돌이 놓여져 있는 돌다리이기 때문에 한 발자국을 내딛고 또 다시 한 발자국을 내딛으면서 누구나 그 길을 건널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신앙은 징검다리를 건너는 것과 같습니다. 부담, 어려움을 도저히 못 건너겠다고 하는 사람, 안 되는 것을 어쩌란 말이냐 항변하는 사람, 하나님이 여러분을 인도할 때는 징검다리의 돌이 다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내 앞에 하나만 보입니다. 한 발은 내딛을 수 있겠는데 그 다음은 어떻게 하란 말이냐 묻지만 그 한 발을 내딛고 나면 그 다음 징검다리를 하나님이 보여줍니다. 그렇게 하나 하나 놓인 돌을 내딛고 나아가다 보면 개울 이편에서 저편으로 건너갈 수 있습니다. 징검다리를 통해서 건너가면 어린 아이에서 할아버지까지 다 건너갈 수 있습니다. 만일 한번에 강 이편에서 저편으로 건너는 것이 믿음이라고 생각하면 나는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정상입니다. 이 편에서 저 편으로 어느 누구도 한 번에 건너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징검다리 식으로 건너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예비하신 분명한 징검다리로 한 발씩 내딛어
    장래 기업의 땅으로 나아갈 쌔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같습니다. 지금 내가 있는 여기,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는 것이 한 걸음 내딛는 것과 같습니다. 모세, 그 어머니가 그를 살리기 위해 징검다리 한 발을 내딛고 나니까 그 다음 한 걸음, 아이를 버려야 했고 그리고 그 다음 한 걸음, 갈상자를 준비해야 했습니다. 그 다음 바로의 딸이 갈상자를 발견하고 자기의 아들로 키웠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징검다리를 건너 듯, 신앙의 발길을 내딛어야 합니다. 한 발 내딛고 나면 또 다시 발을 내딛을 수 있는 징검다리를 하나님이 놓아 줍니다. 하나님이 분명히 놓아 주십니다. 한 걸음 내딛고, 또 한걸음 내딛고…, 믿음의 길을 갈 때 고난과 어려움을 피하지 말고, 아무리 어려운 상황과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한 걸음 내딛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하나님은 강 한 가운데 세워 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서 분명한 징검다리를 예비해 놓았습니다. 지금 한 발을 내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발을 내딛으면 어느덧 고난과 부담의 강을 넘어서 축복의 땅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건너지 못할 강도, 부담도, 어려움도 없다
     박목사님의 간증, 더 이상 도저히 못하겠다 싶어서 선교 학생들에게 집으로 다 돌아가라는 그 마음을 가지고 선교학교 수업에 들어가셨습니다. 이 수업이 끝나면 돌려보내야겠다는 마음으로 창세기 말씀을 읽게 하고 선교학생들에게 발표를 하라고 했습니다. 되도 안 하는 소리를 하는 선교학생들을 보면서 다시금 말씀을 가르치시고 그렇게 목사님 마음에 말씀의 소망을 품으셨습니다. 때로 사역을 하다가 힘들어 그만 두겠다는 사역자들에게 하시는 목사님의 말씀, “그러면 그만 두라고 하는 그 날까지만 해!” 그 말 듣고 지금까지 사역을 하시는 사역자님들이 많이 있습니다. 찬송가의 가사처럼 내 장래 일이 가려져 내 눈에 뵈지 않으나 다만 한 걸음씩 발을 내딛는 것입니다. 건너지 못할 강도, 부담도, 어려움도 없습니다. 안되겠다 싶은 마음으로 주저앉아 있을 뿐이지 발을 내딛으며 한 걸음 내딛다 보면 그 강을 건널 수 있고 그것이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의 삶이됩니다.

     

    한 걸음씩 고난의 강을 건너 믿음의 사람이 되고
    안개로 인한 가시거리, 눈을 들어 멀리 보면 앞이 안 보이지만 50미터를 운전해 가면 그 앞의 50미터가 보입니다. 한 걸음 내딛고 나면 한 걸음이 보이도록 해 놓은 신앙의 길이 꼭 그와 같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안개 속을 운전할 줄 모르는 사람 같습니다. 그 만큼 가면 그 앞에 그 만큼 간 길의 길이 보입니다. “아무리 어려움이 와도, 도저히 헤어날 길이 없고 방법도 없다”고  말하여도, “안개가 짙게 끼여 있어 운전할 수 없다” 말하여도 주님은 그 다음 갈 수 있는 길을 예비해 놓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주님이 기뻐하는 일이라면 발을 내딛어 보십시오. 만가지 문제가 몰려온다 할 찌라도 하나님은 강 한가운데 두고 내어버려 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그 앞에 징검다리 돌을 하나 놓아 줍니다. 한 걸음 내딛고 나면 또 한 걸음 내딛을 수 있는 징검다리를 놓아 줍니다. 이렇게 고난의 강을 건너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대부분 신앙의 원리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한 걸음만 내딛으면 됩니다. 오늘 주저하고 있는 문제, 한 걸음 발을 내딛어 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은 또 한 걸음 내딛을 수 있도록 합니다. 이 세계를 경험해 본 사람은, 이 원리를 터득한 사람은 “지금 내가 한 걸음 내딛을 수 있잖아!” 하고 발을 내딛습니다. 이 세계를 모르는 사람은 포기하고 주저앉아 있습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간 아브라함의 길
    아브라함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믿음의 사람, 믿음의 조상으로 가는 데까지 하나님은 징검다리를 놓아 두셨습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간 아브라함,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고 징검다리를 건너다보니까 어느덧 아브라함이 믿음의 사람,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모세를 숨겼던 어머니, 그 한 걸음을 내딛었을 때 하나님은 그 어머니와 모세를 위해 준비해 놓은 길이 있었고 결국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는 선지자가 됩니다. 우리 장래 일은 가리워져 있습니다. 아무리 계산하고 생각해 보아도 ‘이것은 안되겠다’ 싶은 그 마음은 정상입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가는 그 길이 믿음의 길입니다. 일단 한 발을 내딛어 보는 것입니다. 다만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 길을 하나님은 예비해 놓았습니다.

     

    그라시아스 합창단이 한 걸음씩 내딛어 세계 최고가 되는 과정
    한국월드캠프 개막식, 서울 시청 앞 공연 속에서 그리시아스 합창단이 세계 최고의 합창단이 되는 과정을 영상을 통해 보았습니다. 다만 한 걸음을 내딛었을 뿐입니다. 유로아트, 전세계에 있는 클래식 음악을 배우고자 하는 학생들이나 일반인들과 독일의 음악 교수들을 섭외를 해서 연수를 해 주는 장로님이 있습니다. 처음 교수법이 가장 뛰어난 선생님을 그리시아스 단원들에게 붙여 주었고, 지금은 세계적인 지휘자 보리스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징검다리를 놓듯이 하나 하나 단계를 놓아서 무명의 합창단이 세계 최고의 합창단이 되도록 하였습니다. 우리가 가는 모든 길에 하나님은 징검다리를 놓아 두셨습니다.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고 안될 것처럼 보이기에 믿음이 필요합니다. 길이 다 보이면 누가 그 길을 가지 못하겠습니까? 믿음의 사람만이 갈 수 있는 길, 장래 일이 내 눈 앞에 가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 절망적이고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막연하고 막막했을 뿐이었습니다. 요셉의 길도, 다니엘의 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이 다니엘을 인도할 때 징검다리를 놓아서 다니엘을 세우는 일을 하였습니다. 요셉의 인생에도 때론 감옥에 갔지만 그 감옥에서 옥중 제반 일을 다 볼 수 있었고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덧 그 징검다리의 끝이 그를 애굽의 총리로 세웠습니다.

     

    부담 앞에 한 걸음 내딛을 때 새로운 길이 열리는 세계
    고난과 부담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을찌어다 하고 디모데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딤후1:8)

     

    복음 때문에 영광을 받으려고 하는 사람, 그리고 복음 때문에 고난을 받으려는 사람, 구원 받은 것을 인하여 영광이 아닌 고난을 받으라고 하고 있습니다. 오늘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에 이제는 내게 찾아오는 핍박이 별로 없습니다. 부담, 어려움을 넘는 사람과 피하는 사람, 이제는 내 스스로가 고난을 넘고 부담 앞에 나아가는 사람, 발을 내딛으니까 하나님이 또 한 걸음 내딛을 수 있도록 그 길을 열어 줍니다. 이 신앙을 터득하면 무모해 보이고 어리석어 보이지만 하나님이 너무 신기하게 그 길을 열어줍니다. 우리가 스와질란드에 처음으로 마인드 교육을 시작했는데 레소토의 장관님이 스와질란드와 똑같이 해 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그리고 베넹과 똑같이 해달라고 요청하는 아프리카 나라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박목사님에게 없었던 일정, 새로운 일정을 잡아서 아프리카 4개국을 가게 됩니다. 베냉을 향한 한 걸음, 그 다음 한 걸음을 주님이 여십니다. 주의 일을 할 때, 주의 뜻을 따라 갈 때, 부담스럽다고 발을 내딛지 않으니까 그 다음 길이 보이지 않지만 한 걸음 내딛고 나면 그 다음 걸음을 보여 줍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이 징검다리 걷듯이 한 걸음, 한 걸음을 인도해 오셨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한 걸음을 내딛을 때, 별 것 없어 보여도, 특별한 것이 없어 보여도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어 한계를 넘어 보면 새로운 주님의 세계를 볼 수 있습니다.

     

    한 걸음을 내딛지 못해서 강 이 편에 주저앉아 있는 사람
    오늘 여러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발을 내딛는 사람은 또 한 걸음 내딛어서 강 저편에 가 있고 그 한 걸음을 내딛지 못하는 사람은 이편에서 강을 넘지 못하고 주저 않아 있는 사람입니다. 모세가, 아브라함이 길을 개척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예비해 놓았습니다. 발을 내딛으면 되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마음이 교만해져서 그 한 걸음을 시들하게 여겨 버리고 무시하지만 믿음의 발을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다 보면 어느 덧 강 저편에 가서 강 이편에서 따라올 수 없는 삶을 살아갑니다. 핍박과 어려움 가운데서도 감사하며 기뻐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원망과 불평 속에 역사도, 기쁨도 없이 마치 불 난 사람은 다시 일어서지만 돈 뜯겨서 망한 사람이 ‘그 돈만 받으면 그 돈만 받으면, 그렇게 다시금 일어서지 못하고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 모두 앞에 놓아두신 징검다리를 건너 하나님의 영광으로 
    하나님의 영광, 징검다리를 건너서 온 것입니다. 이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도록 하나님은 우리 모두 앞에 놓아 두셨습니다. 그 한 걸음을 내딛어 보십시오. 그러면 또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도록 하나님은 징검다리를 놓아 줍니다. 문제와 형편과 나 자신에게서 벗어나 놀라운 믿음의 삶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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