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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성옥 | 2015.09.17 13:16 | 조회 8216

    2015년 9월 13일 주일오전말씀
    말씀: 삼상25:23~31


    믿음은 형편을 개의치 않고 말씀 편에 서는 것

     

    믿음의 맛을 보지 못한 사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했습니다. 믿음을 배우면 믿음만큼 쉽고 편안한 것이 없습니다. 어제는 결혼식이 익산에서 있어 오고 가는 길이 명절만큼 많이 막혔습니다. 명절을 앞두고 벌초, 관광, 결혼식…, 차가 엄청 많이 막혔습니다. 승용차를 타고 가면서 KTX를 타고 가면 나았겠다 싶어 말했더니 어느 집사님이 한번도 KTX를 타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부산에 월드 캠프가 있고 행사가 많다 보니까 KTX를 타고 다녔는데 그 맛을 보면 승용차로 오고 가며 몇 배의 시간을 길에 버리니까 너무 아까웠습니다. 믿음의 맛을 보지 못한 사람이 후회하지도 않은 이유는 그 세계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인데 믿음의 세계를 모를 때는 내 원함, 수고로 이를 이루어야 했지만 믿음의 세계를 알면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것에 대해 구하고 믿습니다. 기도하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고 했습니다. 내게 어려움과 문제가 있고 구하는 것이 있으면 믿음을 가지고 받은 것으로 믿으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통해 믿음에서 떠나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 
    제 마음에 말씀은 마치 나침반과 같습니다. 배가 항해를 하며 목적지를 찾아갈 때 정북을 향하는 나침반을 통해 항로에서 어긋날 길을 다시 방향을 잡습니다. 믿음의 말씀을 통해 내가 믿음에서 떠나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원망, 시비, 마음에 있는 모든 어두운 것들은 내 마음이 믿음에서 어긋나 있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이 빛에 들어가 있으면 어둠에 있을 수 없습니다. 또한 원망과 불평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요셉의 마음이 믿음의 영역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요셉을 죽이려고 하고 팔았던 요셉의 형들에게 원망과 불평이 없었습니다. 또한 다윗의 마음에 소년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해라는 관용이 있었습니다. 만약 오늘 여러분의 마음속에 어둠, 불평, 원망, 원함, 억울함, 옳음이 여러분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면 여러분의 마음이 믿음에서 떠나 있다는 것을 바로 보셔야 합니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오는 하나님에 대한 오해
    어제 주례를 보면서 주례사에 대한 말씀을 오해에 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 하였도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오해, 성경과 하나님의 능력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오는 오해입니다. 제가 구원을 받고 나서도 하나님에 대한 오해가 많았습니다. 구원을 받고 난 후, 그 전 구원을 받기 전에 오던 어려움보다 더 많았습니다. 그때만해도 저는 하나님을 향하여서 오해하는 마음이었지만 믿음의 세계를 경험하고 나서 그 어려움이라는 것이 내게 너무 큰 복이었습니다.어려움을 많이 겪을수록 온실 속의 화초처럼 향기 나지 않는 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리스도인의 향기를 내기 위해 제게 어려움을 허락하셨습니다. 인간관계,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일입니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깊이 있게 복음을 전해줄 수 있는 한국사람 
    한국, 그리고 기쁜소식선교회, 우리 교회가 세계에서 가장 큰 선교 단체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세계 곳곳에 선교사님들이, 그리고 현지 사역자들이 세워져 복음을 전하며 힘 있게 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비결, 지금도 박목사님이 아프리카에 가서 다른 선교 단체에서 손이 못 미치는 나라들, 스와질란드, 레소토, 잠비아에 활발하게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믿음의 일을 배워서 각 나라마다 어려움이 있고 문제가 있어도 그 일을 넘어 힘 있게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복음을 전하면 전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깊이 있게 복음을 전해 줍니다. 서양 사람들은 마음의 세계가 얕아서 단순하게 하나님을 믿고,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믿으면 된다고 가르칩니다. 한국 사람들은 그 마음의 세계가 굉장히 복잡하고 깊습니다. 식사를 권하는 풍속, 됐다고, 여러 번 됐다고 사양을 해도 굳이 식사를 같이 하라고 강권합니다. 그러면 마지못해서 식사를 하는 척 합니다. 그러나 서양 사람들은 이것을 절대로 이해를 하지 못합니다. 개고기를 먹는 것보다 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갑돌이와 갑순이”에 대한 내용입니다. “사랑하지만 안 그런 척 했더라”는 그 마음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한국 사람들이 복음을 전할 때, 단순하게 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 깊이 들어가서 그 마음에 변화가 왔는지 살필 수 있기 때문에 전 세계 어느 나라 사람을 만나든지 깊이 있게 복음을 전해 줄 수 있습니다.

     

    삶은 옥수수 같은 케냐 사람들의 마음
     케냐 사람들에게 삶은 옥수수라고 별명을 붙여 주었습니다. 삶아 놓은 옥수수가 겉은 부드러워도 그 속 대롱은 굉장히 단단합니다. 케냐 사람들의 마음이 그렇습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백인에 대해 무시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기 생각과 다르고 받아들여지지 않아도 그 말씀 앞에 “예, 예” 합니다. 그렇기에 구원받은 줄 알지만 그 속 중심의 생각은 꺾지 않습니다. 한번은 집회를 하면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케냐 선교학교 자매가 한 대학생과 상담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맞은편에서 상담을 하다 대학생이 벌떡 일어나서 가 버렸습니다. 굉장히 의외였습니다. 그렇게 표현하고 가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옥수수 대롱과 같은 딱딱하고 고집스러운 마음, 그 마음 중심에서 무너지지 않고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고 자기가 옳다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잘 드러내지 않습니다. 이를 찾아내어 가르쳐 주고 버려져야 복음을 편만히 전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세계는 그냥 “믿습니다.”가 아니라 믿음의 영역에 들어가면 믿음이 자라야 하고 믿음이 굳어져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어려움을 통해 내게 믿음을 가르치기 원하시는 하나님 
    대나무는 봄에 죽순이 나서 자라기 시작합니다. 그 다음부터 단단해져 가고 뿌리가 뻗어 갑니다. 내 마음에 믿음을 가지고 가보면 내가 믿음 아닌 가운데 흘러가 있고, 믿음에서 멀어져 있는 나를 보게 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고 기도하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고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믿음에서 떠나 있는 것을 봅니다. 믿음에 대해서 자주 들어야 할 이유입니다. 오랫동안 행위에 매여 살아왔기 때문에 내 연약함, 부족함을 보면 ‘이런 내게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도우시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무엇을 잘못해서 내게 어려움을 주고 나를 치시나’는 생각이 들지, 그 어려움을 통해서 나를 자라게 하시고,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통해서 내게 믿음을 가르치시기를 원하고, 이것을 넘는 법을 가르치시기를 원합니다. 오해가 아닌 내 마음의 소망, 기쁨,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복된 삶으로 변하게 됩니다. 구원을 받고 믿음을 배우면 배울수록 그 어려움들은 내게 복이 되었습니다. 형편에 머무르지 못하도록, 안주하지 못하도록 믿음의 발을 내딛지 않으면 안 되도록 하셨습니다. 닭은 개가 쫓아오지 않으면 날지 않는다는 이야기처럼 구원받은 사람들은 내게 어려움과 문제가 닥칠 때, 믿음으로 살 수 있습니다.

     

    믿음을 배운 사람이 들어가는 새로운 영역 
    믿음을 터득하게 되면 개가 쫓아오지 않아도 날고 싶습니다. 믿음의 날개 짓을 하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한계와 부담을 넘어서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런 삶을 주고 싶습니다. 믿음의 삶, 우리 하나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나라는 사람은 보잘 것 없지만 믿음이 심겨지고 자라게 되면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고 새로운 일에 도전함으로 내 능력의 열 배, 삼십 배, 백배의 능력으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믿음 없는 한 사람은 구원 받지 아니한 세상 사람과 차이가 없지만 믿음의 사람은 이 땅에서 해 볼 수 없는 일들을 새로운 영역에서 마음 것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을 배우게 되면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이 일하고 싶은 만큼 우리를 마음 것 들어서 씁니다. “나도 믿음을 가지고 배우고 싶습니다.” 이 마음을 가지셔야 합니다.  믿음의 세계는 우리가 터득한 세계와 전혀 다른 영역이고 다른 세계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이 비록 익숙지 않을 지라도 한 부분, 한 부분 배워 나가야 합니다.

     

    자기 수단을 버리지 않아 믿음을 배우지 못한 야곱 
    믿음보다 더 편안한 것, 인간적인 방법과 수단, 잔꾀, 이것이 섞여 지면 야곱의 생애 속에서 야곱은 아브라함처럼 믿음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수많은 은혜, 그러나 야곱의 생애에 가보면 늘 야곱의 수단, 방법, 잔꾀가 있습니다. 이를 버리지 않으니까 그 삶의 결국이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다”고 말합니다. 야곱의 생애, 어려움도 많고 환란도 많고 험악한 세월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이유, 자기의 꾀를 버리지 않았고 자기의 수단과 방법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 방법, 수단, 잔꾀가 들어가면 믿음을 배우지 못합니다. 믿음의 영역, 그 세계 속에서는 인간의 수가 통하지 않는 세계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수만이 통하는 세계입니다.

     

    신의 한 수 
    오래 전, 신의 한 수라는 제목으로 신문 기사가 나왔습니다. 어느 한 기업의 선택으로 앞 날을 내다보고 잘 했을 때를 표현 하였습니다. 내용이 궁금해 그 글을 읽어 보니까 한진 중공업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현대 조선, 대우 조선, 삼성 중공업보다 훨씬 먼저 부산 동래에서 배를 만들었지만 그 터가 너무 좁아서 축척 된 기술이 있어도 큰 배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필리핀 수빅, 그 넓은 땅에 조선소를 만들었습니다. 선교회에 아시는 장로님이 한국에 있다 필리핀 한진 중공업에 스카우트 되어서 가신 장로님을 필리핀 마인드 강연 차 갔다 그곳에서 만났습니다. 한진 중공업의 넓은 여러 개의 도크, 그리고 필리핀 사람들의 값 싼 노동력으로 경쟁력 있는 배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에스더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한 수 
    에스더의 인생에 절대로 생각지 못하는 하나님의 수를 모르드개가 줍니다. 에스더가 왕후가 되기 전에는 종족과 민족을 구하지 말라고 합니다. 일 년 동안 왕궁에서 왕후로 간택이 되기 전까지 그 안에서 살면서 모르드개가 당부한 말를 이해하지 않았어도 에스더는 그대로 모르드개의 말을 따라 행합니다. 하만이 유다인을 멸하려 할 때, 만일 에스더가 유다인이었음을 알았더면 하만은 에스더까지 해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나중에 그 결과를 보았을 때 이는 신의 한 수였습니다. 유다인을 멸하려고 하는 악한 하만의 계획, 왕이 부르지 않을 때 나아가면 이는 죽이는 법이었지만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나아가라고 합니다. 이도 신의 한 수였습니다. 에스더에게 필요한 것, 하나님의 한 수였습니다. 왕후가 되었어도 하나님이 주시는 그 한 수를 받지 아니하면 그는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좋아 보여도 이것이 앞으로 내게 어떻게 작용할 지 계산할 줄 모릅니다. 우리 인생의 길에 하나님의 수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앞날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 앞을 예측할 수 도 없고 내다볼 수 도 없습니다. 이 수가 내가 왜 필요한지 모릅니다. 종족과 민족을 고하는 일, 그것이 하나님의 한 수였지만 모르드개도 그 일을 예측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도 모르지만 그 마음이 일어나서 에스더에게 말 하였고 에스더도 몰랐지만 그 말을 그대로 받았습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유익을 쫓아가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에도 이 한 수를 주고 싶어 합니다.

     

    요셉을 애굽의 치리자로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수  
    조삼모사, 원숭이에게 우선 아침에 네 개를 주겠다고 하면 좋아합니다. 내게 유익하다 보니까 그 수를 받아들이지만 그 수는 하나님의 수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망할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의 수를 따라 가면 그것이 복되게 됩니다. 요셉에게 자기의 수로, 자기의 방법으로 가라고 했다면 결코 종으로, 더욱이 감옥에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수, 애굽의 치리자로 세우기 위해 종으로 애굽으로 가게 하였고, 치리자로 세우기 위해 감옥에서 관원장을 만나게 하고 꿈 해몽에 대한 능력을 나타내고 바로의 꿈을 해몽할 자로 요셉을 택하게 하였습니다. 요셉이 감옥에 있지 않고 따로 생활을 한다고 하면 술 맡은 관원장이 그를 찾고 싶어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케냐에서 전화가 발달되지 않았을 때 중요한 사람을 정부에서 찾아야 할 때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 누구를 찾고 있다고 방송을 했습니다. 요셉이 감옥에 있어야 했던 것은 하나님의 수였습니다. 요셉이 감옥에서 나온 것이 잘된 것이 아니라 망하는 것입니다. 우리 방법과 수단을 버려야 하는 이유, 하나님의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수를 사모하는 사람은 내 방법과 수단이 좋아 보여도 이것이 망하는 길임을 알면 이를 버려 버리고 하나님의 수를 기다립니다. 유다 땅을 피하여 블레셋 땅으로 피하여 간 다윗, 상책으로 보였지만 결국 망하는 수였습니다. 하나님의 수가 필요합니다. 교회를 통해서 한 수, 한 수, 우리를 통해서 인도를 합니다. 그래서 믿음이 없으면 그 길이 원망이 되고 불평이 됩니다.

     

    말씀대로 이루어진 세계를 보는 아비가일 
    무엇을 믿어야 합니까? 믿음은 이미 이루어진 세계를 보는 것입니다. “주여, 믿습니다.” 마음에 강한 의지를 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루어진 세계를 보는 것입니다. 아비가일의 마음 세계에 들어가 보면 다윗이 이미 왕이 되어져 있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사무엘상 25장에 많이 나오는 단어가 내 주는 주의 여종에게, 아비가일이 다윗에게 주라는 표현을 많이 씁니다.

     

    “주의 여종의 허물을 사하여 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반드시 내 주를 위하여 든든한 집을 세우시리니 이는 내 주께서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심이요 내 주의 일생에 내 주에게서 악한 일을 찾을 수 없음이니이다”(삼상25:28)

     

    “여호와께서 내 주에 대하여 하신 말씀대로 모든 선을 내 주에게 행하사 내 주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신 때에”(삼상25:30)

    아비가일이 보고 있는 세계, 지금의 다윗이 아닌 이루어 질 다윗을 보고 있습니다.

     

    “다윗의 소년들이 가서 다윗의 이름으로 이 모든 말을 나발에게 고하기를 마치매 나발이 다윗의 사환들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뇨 근일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도다”(삼상25:9~10)

     

    나발이 다윗을 보고 있는 모습, 눈앞에 있는 다윗은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으로 보고 있습니다. 아비가일은 이미 이루어진 세계를 보고 있습니다. 다윗의 집을 든든히 세울 것으로, 다윗을 이 나라의 지도자로 보고 있습니다. 아비가일의 마음에 하나님이 다윗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지, 그 말씀하신대로 그대로 이루실 것을 믿었습니다. 말씀 안에서 보는 다윗은 이 나라의 치리자며, 왕이며, 하나님의 택한 자였습니다. 내 주에 대하여 하신 말씀대로, 아비가일은 믿었습니다. 이 세계를 볼 만한 눈이 있었기 때문에 남편 나발을 떠나서 다윗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다윗을 위하고 사랑했지만 불행한 삶을 산 미갈과 요나단 
    아비가일과 반대되는 사람, 미갈입니다. 다윗의 주변 인물들 중에서 신앙의 중요한 법칙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떠나가 버리자 다윗의 아내였던 미갈은 다윗을 떠나 발디엘에게 시집을 가버립니다. 미갈도 다윗을 위했던 여자였습니다. 또한 요나단도 다윗을 위하고 자기 생명과 같이 사랑했습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마치매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연락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니라”(삼상18:1)

     

    결과적으로 미갈도, 요나단도 불행해졌습니다. 이들이 왜 불행졌습니까? 이는 다윗을 미워했던 것도 아니고 다윗을 섬기지 아니했던 것도 아닙니다. 다윗을 대적했던 나발, 하나님이 치심으로 죽임을 당하였고, 다윗을 대적했던 사울, 결국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부상을 당하고 결국 자살을 해서 죽습니다. 다윗을 위하고 다윗을 사랑하였던 요나단이 왜 사울과 같이 죽어야 했습니까? 다윗을 위하였던 미갈, 그러나 미갈은 다윗으로 말미암아 자식을 낳지 못하고 그 삶을 불행하게 마쳐야 했습니다.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어느편에 서 있느냐
    다윗과 함께 하며 복을 받았던 사람들, 아주 적은 차이입니다. 다윗을 위하였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누구 편에 섰느냐는 것입니다. 미갈이 다윗을 위하였지만 사울 편에 서 있었고, 요나단 또한 여전히 사울 편에 서 있었습니다. 내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내가 어느 편에 서 있느냐는 것입니다. 내가 주를 위하고 있고, 교회를 섬기고 있고, 감사 헌금도 하고, 십일조도 함으로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신앙은 내 위치를 묻고 있습니다. 다윗이 왕으로, 다시 돌아올 기약도 없기에 시간이 지남으로 결국 발디엘의 아내가 되었던 미갈, 말씀 안에서 이미 이루어진 세계를 보고 나발을 떠나 다윗의 아내 되었던 아비가일, 다윗에게 기름 부어졌을 때 이미 다윗은 하나님이 볼 때 왕이 되어져 있습니다. 내 마음에 합한 자, 다윗,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시리라 하시더니”(행13:22)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과정 
    하나님의 마음 안에서는 이미 이루어진 세계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첫째 날이 있기 전 여러분이 하나님 옆에 있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나면 비록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땅이라도 그렇게 보지 않을 것입니다.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뜻이 있고 이를 이루는 과정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전에 먼저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윗이 쫓겨 도망 다니는 것이 아니고 왕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뜻을 다윗을 통해서 이루시겠다는 것입니다. 나발이 볼 때는 다윗이 쫓겨 도망 다니고 있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는 기름 부음을 받을 때 이미 다윗은 왕이 되었습니다. 미갈은 이것을 보지 못했고 아비가일은 보았습니다. 말씀 안에서의 다윗, 내 눈에 있는 남편 다윗을 보았던 미갈, 말씀 안에서의 다윗, 왕으로 세우실 다윗을 보지 못했습니다. 아비가일이 이야기하는 것, 하나님의 마음과 아비가일의 마음은 같은 시선에서 보고 있습니다. 나

    발을 개의치 말라고 했던 아비가일의 말,

     

    “원하옵나니 내 주는 이 불량한 사람 나발을 개의치 마옵소서 그 이름이 그에게 적당하니 그 이름이 나발이라 그는 미련한 자니이다 여종은 내 주의 보내신 소년들을 보지 못하였나이다”(삼상25:25)

     

    믿음을 가진다는 것은 내 앞의 형편이 어떠하든지, 내 눈에 길이 어떻게 흘러가든지, 개의치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형편을 개의치 않는 것
    제가 선교회 총회의 일을 맡고 있습니다. 앞선 목사님들이 그 일을 맡아 오셨는데 젊은 사역자가 일들을 맡아서 하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하게 되었습니다. 좋은 일은 하나도 없고 책임  지어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아프리카에 있다 진해에서 사역을 하면서 형편은 밑바닥에 있는데 어렵고 힘들 때 하나님께 말씀을 구했습니다. 하나님이 요셉에 관한 말씀을 보여 주셨습니다. 치리자의 말씀, 내 형편과 전혀 달랐습니다. 물론, 행정상 일을 하기 위해서 젊은 사역자가 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우연히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주신 말씀대로 이루시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믿음은 개의치 아니하는 것입니다. 불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개의치 아니하는 것입니다. 내 형편이 이렇지만 말씀이 이러하다면 아비가일의 간증처럼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정확한 믿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아비가일은 나발이 말씀을 무시한 것에 대해서 다윗 앞에 납작 엎드려 사죄를 하였습니다. 아비가일의 말 속에 “주”라는 표현을 계속하면서 은혜와 긍휼을 구합니다. 말씀을 무시하면 망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내 주께서 무죄한 피를 흘리셨다든지 내 주께서 친히 보수하셨다든지 함을 인하여 슬퍼하실 것도 없고 내 주의 마음에 걸리는 것도 없으시리니 다만 여호와께서 내 주를 후대하신 때에 원컨대 내 주의 여종을 생각하소서”(삼상25:31)

     

    오직 여호와의 말씀과 약속 편에 서서  
    말씀 안에서의 다윗, 하나님 안에서의 다윗을 아비가일은 보았습니다. 여호와께서 내 주 다윗에게 하신 말씀대로 보았습니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일에 대해서 아비가일의 마음에 말씀대로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그 약속은 마치 보이지 않는 멀리 있는 세계를 볼 수 있는 망원경과 같습니다. 지금 다윗이 쫓겨 도망 다니고 있는데 내일 왕이 되어 즉위할 것처럼 아비가일은 다윗과 대화를 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아비가일을 보면서 아비가일처럼 지혜로운 여인이 없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다윗의 마음에 다른 여인이 아닌 아비가일을 아내로 삼고 다윗 가까이에 두고 싶어했습니다. 오늘 우리를 그리스도의 신부로 부르셨는데 여러분들은 미갈과 같은 아내입니까, 아비가일과 같은 아내입니까? 미갈은 사울에게 매여 살았고, 요나단도 사울에 매여 살았지만 아비가일은 나발에게 매여 살지 않았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어느 편에 있습니까? 형편을 개의치 않고 말씀 편에 있습니까? 교회를 위하고 있다 하더라도 미갈처럼, 요나단처럼 사울 편에 서 있지 않습니까? 형편과 육신 편에 가 있으면 그 육과 함께, 형편과 함께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 생각, 내 마음, 내 형편 모두가 사울입니다. 다윗 편에 선 다는 것은 약속의 말씀 편에 서는 것입니다. 내 눈에 어떠하든지 개의치 말고 말씀 편에 서는 것입니다. 다윗의 참된 아내, 참 그리스도인은 아비가일과 같은 사람입니다. 수 없이 올라오는 생각과 형편, 망하는 길에 서 있지 말고 오직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말씀과 약속 편에 서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복된 삶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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