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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성옥 | 2015.04.13 23:29 | 조회 10056

    2015년 4월 12일 주일오전말씀
    말씀: 왕하7장 1절 – 8절


    내 기준을 벗어나 하나님의 기준으로


    마음의 병을 심각하게 앓고 있는 일본 
     제가 일본에 다녀오면서 일본 사회에 심각한 병이 있습니다. 실제로 아프리카에 가면 심각한 병들이 있어서 에이즈, 말라리아, 최근에는 에볼라가 발생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아프리카에 무서운 병들이 많은데 그보다 더 무서운 병이 있습니다. 육체의 질병, 에볼라를 두려워 하고 심각하게 여기고 있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병인데도 이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말라리아보다, 에이즈보다 더 무서운 병을 일본 사람들이 가지고 있습니다. 마음의 병, 마음이 병들어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증상이 우울증, 신경 정신병 증상으로 나타납니다. 해결이 안되어 벗어나지 못하고 자살로 이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일본은 전세계에서 가장 자살을 많이 하는 나라입니다. 20분당 1명꼴로 자살을 합니다. 일본 사회에 깊이 병들어 있는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처방약, 기껏해야 우울증 약 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울증 약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 또한 일본입니다.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 
    현대인들은 위장병을 많이 앓고 있습니다. 위장병 약을 개발하기 위해서 전 세계 제약회사에서 연구하는 연구진이 수만 명이 됩니다. 그에 반해 우리는 마인드 강사 훈련을 통해서 심각한 마음의 병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치료해 줄 수 없는 것을 우리가 가지고 있다는 것이 너무 소망이 됩니다. 마음에 관해서 해결해 줄 수 있는 해결책, 유일하게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고서는 그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오게 하기 위해서 많은 문제들을 인간들에게 허락하여 주었습니다. 죄 문제에 대해서도 아무리 선하게 살려고 해도, 죄를 짓지 않으려 해도,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죄 속에 점점 더 빠져 들어갑니다. 죄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문제 역시 하나님 아니고서는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주막 주인의 돌보심만이
    누가복음 10장의 강도 만난 자가 사마리아 인을 만나서 구원을 받습니다. 주막에 데리고 가서 돌봐줍니다.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 갚겠다’ 했습니다. 주막에 속해서 주막의 주인으로부터 돌보심을 받아야 합니다. 다른데 가면 해결 방법이 없습니다. 주막 주인에게 두 데나리온을 주었기에 주막 주인에게만 해결책이 있습니다. 복음이 있는, 말씀 앞에 오지 않으면 절대로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처럼 교회에 오지 않으면 마치 주막 주인의 돌보심이 없이 그가 살아갈 수 없는 것처럼 주님은 오늘 우리들에게 돌보심을 받을 수 있도록 이 교회 안에 모든 것을 다 주셨습니다.


    주님안에서 마음의 세계를 배우는 복된 자녀  
    학교 공교육이 다 무너졌고, 일본 이지메 문화가 한국에 그대로 들어와서 수많은 학생들이 왕따를 당하고 자살을 하고 심각한 문제 가운데 있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자녀 교육을 위해서, 교육 수준이 높은 곳에 집값이 올라갑니다. 직장, 살기 편한 곳을 따라서 가는 것이 아니라 교육을 따라서 이사를 합니다. 문제는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세계, 그 문제까지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성적을 올려 줄 수 있지만 마음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주님 안에 살면서, 여러분의 자녀가 주님 안에서 자라나면서 세상의 어디에서도 받을 수 없는 마음의 세계를 어려서부터 배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 모릅니다. 마음의 길을 바로 잡아주면 너무 복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세계가 아니기 때문에 정확한 잣대가 없으므로 자기의 위치가 어디에 있는지 잘 모릅니다. 유일하게 마음의 잣대를 해 줄 수 있는 것이 성경입니다.


    자기 나름대로 높은 마음을 꺾지만
    마음을 꺾는다. 마음이 높은 사람이 나름대로 마음을 꺾는다고 꺾었는데 너무 높은 위치에 가 있기 때문에 꺾었다고 해도 여전히 높은 위치에 있습니다. 마음이 낮은 사람이 마음을 꺾어서 더 내려가는 것과 비교할 때 훨씬 높은 위치 가운데 있으면서도 자신은 마음을 꺾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말씀을 들을 때, 신앙을 배울 때, 자기가 기준이 되어 있기 때문에 신앙이 되지 않고 자신은 마음을 꺾은 사람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자기가 자신의 기준이 되어졌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변화, 고침을 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문둥병 걸린 나아만 장군이 내려간 마음의 위치
    성경적인 정확한 잣대, 사마리아 성에 있는 문둥병자에 관한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사마리아 성에 있는 문둥병자가 가지고 있는 마음의 위치가 있습니다. 열왕기하 5장에 나오는 나아만 장군, 그 또한 똑같은 문둥병자입니다. 문둥병이라는 것은 자기도 모르고 남도 모르게 3년, 자기만 알고 3년, 남도 자기도 알게 3년이라고 했습니다. 문둥병의 진행, 사마리아 성에 있는 문둥병자들은 이스라엘 나라의 규례대로 성 안에 살 수가 없었기에 성 밖으로 쫓겨났습니다. 나아만 장군은 문둥병이 드러났음에도 여전히 그 위치에서 문둥병을 고치려고 했습니다. 그 문둥병을 고치려고 나름대로 마음을 많이 꺾었습니다. 마음을 낮추고 은혜를 구하고 긍휼을 구하는 마음으로 많은 예물을 들고 이스라엘로 갔습니다. 나아만 장군에게 수종 든 계집 아이, 아람이 이스라엘을 쳐서 계집종을 잡아 왔습니다. 문둥병이 아니라면 나아만 장군이 큰 소리 치면서, 이스라엘에서 대접을 받을 수 있지만 뻣뻣하게 갈 수 없는 것은 그 자신에게 문둥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기 생애에 나아만 장군으로 있으면서 이렇게 마음을 많이 꺾어 본 적이 없었을 것입니다. 나아만 장군의 입장, 마음을 많이 꺾고, 마음을 많이 낮추었습니다. 그러나 열왕기하 7장에 나오는 사마리아 성문 밖에 있는 문둥병자와 비교해 보면 너무 높은 가운데 있는 것을 봅니다.


    사마리아 성문 어귀 문둥이들이 내려간 마음의 위치
     왕하 7:3~ 성문 어귀에 문둥이 네 사람이 있더니 서로 말하되 우리가 어찌하여 여기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랴 우리가 성에 들어가자고 할찌라도 성중은 주리니 우리가 거기서 죽을 것이요 여기 앉아 있어도 죽을찌라 그런즉 우리가 가서 아람군대에게 항복하자 저희가 우리를 살려 두면 살려니와 우리를 죽이면 죽을 따름이라 하고

     문둥이 네 사람이 문둥병이 드러나기 전까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위치를 불문하고 어떤 위치에서 있든지 간에 문둥병이 드러나면 그 위치에서 쫓겨나야 하고, 성 밖 문둥이 촌에 가야 합니다. 우리나라도 옛날에 그러했습니다. 문둥병이 드러나면 마을에서 살 수 없고 쫓겨나서 문둥이 촌에 가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에서는 철저하게 성 밖으로 쫓아냈기 때문에 무슨 직업, 어떤 위치에서도 쫓겨나서 구걸하는 삶을 살아야 하고 성 중에서 주는 것을 먹고 살아야 합니다. 문둥이 네 사람도 얼마나 똑똑하고, 잘나고 못 났느냐가 다 무시되어 집니다. 거지보다도 못한 삶, 어느 누구로부터 환영을 받을 수 없는 위치 가운데로 내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비교할 수 없는 두 사람 마음의 위치
    나아만 장군, 사마리아로 찾아가면서 마음을 많이 꺾었지만 사마리아 성에 있는 문둥이 네 사람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네 사람의 문둥이가 더 마음을 꺾습니다. “우리가 아람 진으로 가서 항복하자, 저가 우리를 살려두면 살려니와 죽이면 죽을 따름이라.” 나아만 장군의 마음에서 나름 마음을 많이 꺾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문제는 그냥 살고 있는 이 사마리아 성문 어귀에 있는 문둥이보다 나아만 장군의 마음이 훨씬 너무 높이 있습니다. 그 마음의 기본이 너무 높아 있습니다.

    자기가 기준이 되면 사단이 속이기가 쉽고
    부활절 합창제에 우리 합창단이 노래 부르는 것을 들었습니다. 아카펠라를 부르는데 기본음을 잘못 잡았습니다. 주변이 너무 시끄러우니까 잘 들리지 않아서 큰 소리를 내게 됩니다. 나아만 장군이 마음을 낮춘다고 해도 그 마음이 너무 높습니다. 기본음이 잘못 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나도 마음을 많이 꺾고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자기가 기준이 되어 있기 때문에 사단이 속이기가 너무 쉽습니다. 기본만 높여 놓으면 마음을 꺾었다고 해도, 그 소리를 듣게 되면 신경질 나고 짜증이 나기 시작합니다. 자기 마음에 들어지는 감각으로 신앙을 합니다. 나름 마음을 꺾은 사람은 마음을 꺾으라는 소리가 들리지 않고 거부 반응이 일어납니다.


    기본 마음이 높은 나아만 장군 
    나아만은 기본 마음이 높은 사람입니다. 나름 마음을 많이 꺾었다고 생각을 했고 많은 예물을 가지고 겸손하게 나아갔지만 사마리아에 있는 선지자는 이를 알고 있었습니다. 더 낮추고 그 마음을 더 꺾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를 요단강으로 보냈지만 나아만은 분한 마음으로 떠나갑니다. ‘내가 이 만큼 꺾었는데 여기서 더 어떻게 꺾으란 말이냐?’ 분한 마음으로 떠나갑니다. 신앙을 하면서 마음을 꺾으라는 말을 많이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마음이 높으면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마음이 높은 사람은 그 마음에 믿음이 형성되지 않습니다.


    믿음이 없다는 것은 마음이 높다는 것  
    옛날에 아이를 못 낳는 여자들이 불공을 드려 아이를 낳곤 하였습니다. “어느 절에 가면 아이를 낳는다고 하더라”는 소문이 납니다. 험한 산세 속에 있는 절, 여자가 살이 찌면 임신이 잘 안되기에 불공이 드리기에 부지런히 다니다 보면 몸이 건강해져서 임신을 한다고 합니다. 마음이 높으면 그 사람의 마음에 말씀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다는 말씀처럼 믿음은 애를 써야 하는 것이 아니고 들으면 믿음이 생겨나게 되어 있습니다. 마음이 높은 사람에게 말씀이 들리지 아니하며 임하지 않습니다. 믿음이 없는 것은 마음이 높은 것이고 교만한 것입니다. “믿음이 없어서요.”, 쉽게 말하며 내가 부족하고 연약하다고 생각을 하지만 “내가 교만합니다.” 라는 소리입니다. 누구 이야기도 안 듣는 사람이라는 소리입니다. 사람들은 믿음이 없으면서도 그대로 머물러 있는 이유, 믿음이 없기에 은혜를 입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믿음이 없는 가운데 은혜를 구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없는 것이 교만한 것이고 그곳에 있으면 패망하기 때문에 믿음을 배워야 합니다. 내가 누구 이야기도 안 듣고, 교만하고, 그대로 머물러 있으면 망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치 소돔 성에 그대로 머물러 있으면 그 심판으로 망하기 때문에 반드시 믿음을 배워야 하며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믿음을 가지면 하나님이 존귀케 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입니다. 믿음이 없는 것이 패망의 선봉입니다.


    분한 모양으로 떠나가는 나아만 장군의 마음 
    나아만 장군이 믿음을 가지고, 소망을 가지고 그 길을 가지 아니하고 분한 모양으로 그 길을 떠나갑니다. 그것이 교만입니다. 나아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음을 많이 꺾고, 문둥병을 고치기 위해서 마음을 많이 낮추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더 꺾어야 할 위치에 그를 두니까 분한 모양으로 떠나갑니다. 꺾었느냐, 꺾지 않았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기 감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어느 위치에 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마음을 꺾은 그것이 사마리아 성 밖에 평범하게 사는 문둥병자들보다 훨씬 높습니다.


    마음을 꺾었는데도 은혜를 입지 못한다면 먹을 것을 안 주면 주려 죽을 수밖에 없는 위치, 성문 어귀에서 앉아서 성 중이 주리니까 그들에게 주어질 양식이 없기에 주려 죽게 되었습니다. 한번더 여기에서 마음을 꺾습니다. 그 위치에서 반드시 하나님의 역사와 능력을 맛보게 되어 있습니다. 마음을 꺾었다고 했는데도 은혜를 입지 못했다면 역으로 생각을 해보십시오. 내가 아직 마음을 덜 꺾은 사람이라는 것을, 기본 마음이 높은 사람임을 알아야 합니다. 나아만이 분한 모양으로 떠나가듯이, 하나님의 축복과 역사 앞에 왔다가 떠나가며 교회와 멀어지는 것입니다. 이 교회 안에 함께 속해서 함께 가지 아니하는 이유, 마음을 꺾었어도 그 마음의 기본 위치가 높아 있기 때문입니다. 간섭 받기 싫어하고 마음에서 나아만 장군의 위치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는 아무데나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는 위치, 역사를 경험할 수 있는 위치…, 아무 곳에서나 맛볼 수 없습니다. 나아만이 은혜를 입을 수 있는 위치, 그 가운데로 내려가지 않는 이상 나아만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절대 기준에 도달할 때 까지
    하나님은 상대 평가가 아닌, 절대 기준입니다. 이 사람보다 이 사람이 선하고 착하기에 되는 세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 기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에 도달하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나아만 장군이라 할찌라도, 이스라엘 왕이라 할찌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위치 가운데로 오지 않으면 은혜를 입을 수 없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내 마음을 꺾었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 기준 앞에 비추어 봐야 합니다. 나아만이 마음을 많이 꺾고 사마리아 선지자 앞에 온 것은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왕 앞에 왔다가 다시금 사마리아 선지자 앞에 가야 했습니다. 거기에서 더 마음을 꺾고 요단강에 내려가서 일곱 번 목욕을 하라는 말씀, 그러나 그 생각 ‘상처 위에 손을 얹고 문둥병을 고치면 될 것 같은데…’, 기본이 높기 때문에 은혜를 입을 위치 가운데로 오지 않았습니다. 나름 마음을 꺾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위치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지 못하는 삶, 나아만 같고 기본이 높은 사람이며 마음을 더 꺾어야 할 사람입니다.


    마음이 낮은 사람에게는 그 말씀이 소망이 되고  
    사마리아 성에 있는 문둥병자, 나아만 장군…, 여전히 나아만 장군의 마음이 높은 위치 가운데 있습니다. 사마리아 성문 어귀에 있는 문둥병자들에게 나아만 장군에게 말했던 것처럼 그대로 했더라면 그 마음에 주를 찬양하며 얼른 요단강에 내려가서 일곱 번 목욕을 했을 것입니다. 마음이 낮은 사람에게는 그 말씀이 소망이 되고 믿음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적 기준에서 얼만큼 그 마음이 내려 왔냐는 것입니다. 마음을 많이 꺾은 사람이라 생각하기에 하나님의 역사와 축복과 은혜에서 떠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내 마음이 하나님이 원하는 위치 가운데까지 내려갔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중요합니다. 내가 마음 꺾는다고 꺾었는데 하나님의 역사가 내 삶에 나타나지 않으면 나는 마음의 기본이 여전히 높은 사람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문둥이 네 사람이 가진 그 위치까지 그 마음이 내려갔다면 요단강에 일곱 번 씻으라는 그 말씀 앞에 어떻게 분한 마음으로 떠나가겠습니까? 그 말씀을 기쁨으로 받아들이며 소망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는데, 마음이 높은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기에 믿음이 형성될 수 없습니다.


    믿음이 없는 것을 부족함이라고 속여 놓은 사단  
    “믿음이 없습니다.” “나는 교만합니다.” “나는 누구 말도 듣지 않습니다.” 교만해서 패망할 조건입니다. 부족한 것도 연약한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내 마음에 무시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연약하다고 생각하며 망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벗어나려고 하지 않고 머물러 있습니다. 사단이 그렇게 해 놓았습니다. 부족한 것이 아니라 잘난 것이고 교만한 것이며 패망의 선봉인 것입니다.


    나아만 장군처럼 나름대로 마음을 꺾고 사는 어리석은 사람
    나아만 장군이 믿음을 가지지 못하고 떠나가려고 했지만 사마리아 성문 어귀에 있는 네 문둥병자들은 그 위치에서 더 마음을 낮춥니다. “살려두면 살고 죽이면 죽을 따름이라.” 이제는 아람 진에 항복하러 갔을 때 그들이 어떻게 하든 간에 그대로 받을 마음으로 갔습니다. 이 위치 가운데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신기한 능력으로 역사하고 은혜를 베푸실 수밖에 없습니다. 문둥이 네 사람이 아람 진으로 갔는데 아람 군대에게 큰 군대의 소리로 듣게 해서 다 도망을 갔습니다. 아름 진에 가 보니까 진은 텅텅 비워 있고 수많은 예물, 금은보화, 음식이 가득히 있었습니다.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라고 했습니다. 마음 하나 낮으니까 하나님이 그들을 그토록 존귀케 하였습니다. 내 안에 기준을 두면 망합니다. 내가 진단하기를…, 마음을 꺾었다, 안 꺾었다가 아닙니다. 여전히 기본 마음이 높아 있습니다. 열왕기하 5장과 열왕기하 7장의 두 문둥병자의 마음을 놓고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나름 마음을 많이 꺾는데 그래도 마음이 높은 사람이 있습니다. 마음을 꺾었다고 생각을 하면 상대방이 자기를 위해 주기를 바라며 섬김을 받기를 바랍니다. 더 꺾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만날 위치 가운데로 가려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분한 모양으로 떠나가는데 사람 사이에 있어서도, 이 교회 안에서 신앙을 하면서도 얼마나 많이 떠나가지 않겠습니까? 나아만 장군처럼 나름 마음을 꺾고 사는 사람이지만 기본 마음이 높기에 마음을 꺾었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니 허다한 무리가 좇으니라 한 문둥병자가 나와 절하고 가로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즉시 그의 문둥병이 깨끗하여진지라”(마8:1)


    자기에게 기준을 두지 않은 문둥병자의 믿음  
    이도 문둥병자입니다. 마태복음 8장에 와서 문둥병자가 깨끗함을 받는데 이 문둥병자는 믿음을 가진 문둥병자입니다. 마음을 높으면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나아만 장군은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목욕을 하라 그리하면 그 살이 여전하여 어린아이와 같이 깨끗하리라”는 말씀을 들었지만 이 문둥병자는 어떤 말씀도 직접 듣지 못하였습니다. 이 문둥병자는 자기에게 기준을 두지 않았습니다. 내가 원하느냐, 원치 않느냐가 아닌, 내 기준이 아닌, 주의 뜻이 어디에 있느냐를 물었습니다. 견고한 믿음, 확실한 믿음을 가지려면 마태복음8장에 나오는 문둥이처럼 이 세계를 터득해야 합니다. 문둥병자의 마음에 “주여 원하시면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주가 원하느냐, 원치 않느냐, 주의 뜻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이 주의 뜻입니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했습니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마8:17)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기에 주님은 이 약속을 이루어야 했습니다. 이 문둥병자의 마음에 이것은 주님이 원하시고 주님의 뜻임을 알았기에 그 믿음을 가지고 믿음의 세계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우연히 만나는 축복과 은혜를 넘어
    내일 이 맘 때에~, 네 명의 문둥병자들이 우연히 아람 진으로 갔고 아람 진에 가서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신 풍성한 양식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마음이 낮은 위치 가운데 있으니까 우연히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신 축복과 은혜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8장의 문둥병자는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분명한 약속, 이 말씀대로 주님은 분명하게 이 문둥병을 온전케 해야 했기에 그 말씀대로 주님 앞에 나아갔고 주님의 법칙을 그 마음에 터득하였습니다.


    마음이 더 낮아져서 믿음을 가지는 단계
    열왕기하 5장의 나아만 장군, 열왕기하 7장에 나오는 네 명의 문둥이…, 마음이 높으니까 패망하는 길로 가고, 마음이 낮으니까 자연스럽게 믿음의 길로 가서 하나님의 축복을 맛보았습니다. 마태복음8장의 문둥병자는 마음만 낮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분명한 법칙, 주님의 뜻이 보여졌기에 담대함이 생겼고 소망이 생겼으며 믿음을 따라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우연히 하나님을 만나고, 우연히 하나님의 축복을 만나 것에서 마음이 더 낮아지는 단계는 믿음을 가지는 단계입니다. 마태복음 8장에 나오는 문둥이는 정확한 믿음의 법칙을 발견했습니다. 때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도 막연하고 요행처럼 느낄 때가 있지만 마음에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도우심과 믿음의 법칙을 정확히 발견하며 그 마음에 담대함과 소망이 주어집니다.


    주님의 뜻이라면 반드시 역사되는 법칙
    믿음의 법칙이 정확하게 존재하고 있습니다. 지금 내 모습이 어떠하든지 상관없이, 주님의 뜻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이것이 주님의 뜻이라면 내 조건과 상관없이 주님은 반드시 역사합니다. 주의 뜻이라면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담대해 지는 것입니다. 주의 뜻을 볼 줄 알고 주의 뜻을 살필 줄 압니다.


    왕의 뜻을 보았기에 담대함이 생긴 므무간
    에스더 성경에 보면 므무간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일곱 방백 중에 하나, 왕이 왕후 와스디의 폐위를 두고 의논할 때에 므무간이 담대하게 폐위를 주장합니다. 그 일이 제대로 되어지지 않으면 훗날 왕후로부터 보복을 받을 수 있지만 므무간은 왕의 중심을 보았습니다. 왕의 뜻을 보았고 왕의 원함을 보았기에 왕후의 폐위를 담대히 주장할 수 있었습니다.


    믿음이 오지 않았다면 내 마음이 여전히 높다는 것
    히브리서 10장에 “우리는 뒤로 물러나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담대히 앞으로 나아갈 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보았을 때 담대함을 가질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8장에 나오는 문둥병자, 마음에 망설이지 않고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주의 뜻이 보여 졌기 때문입니다. 주의 원함을 보았습니다. 약속을 통해서 보니까 주님은 반드시 내 문둥병을 고쳐야 한다는 담대함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마음이 가장 낮은 사람, 자기를 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 약속, 그 믿음을 따라서 담대히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온전히 마음이 꺾인 사람입니다. 언제까지 꺾어야 되고, 언제까지 마음을 낮추어야 하냐고 묻는다면 내 마음에 비로써 믿음이 왔을 때입니다. 믿음이 오지 않았다면 내 마음을 다 꺾지 아니한 사람입니다. 한 없이 나를 높여 놓고 산 사람이기에 마음을 꺾는다고 해도 사마리아 성문 어귀에 있는 네 문둥이보다 그 마음이 위치가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마음에 내 안에서 기준을 가지지 말고 내게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보며 내 마음에 믿음이 오지 않았다면 내 마음이 여전히 높은 사람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위치에 왔을 때 하나님은 반드시 역사하시고 은혜를 베푸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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