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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성옥 | 2014.02.16 20:15 | 조회 14284

    2014년 2월 16일 주일오전말씀
    말씀: 창37:23~36

     

    사귐에서 오는 믿음의 삶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믿음으로 사는 삶이 복되고 영광스러운 삶이기에 우리에게 믿음을 주셨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믿음으로 사는 것이 어렵고 힘들다는 관념, 사실 이 믿음은 굉장히 쉽고 자연스럽게 흘러오도록 하였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마음만 열려 있으면 쉽게 흘러 들어가지만 믿음이 잘 안 배워지고, 잘 모르겠다는 표현은 “나는 마음을 닫고 살았다”는 표현입니다. 내가 마음을 열수 있는가? 마음이 잘 열리지 않는다고 이유와 변명을 끊임없이 그 마음에서 올라옵니다. 어떻게 하면 마음을 열 수 있겠습니까? 부족함, 허물… 그로 인해 그 마음에서 올라오는 이유와 변명을 받아 주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음은 내가 열려고 애를 쓴다고 해서 열리는 것이 아니라 사귐을 가질 때 자연스럽게 열려지게 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나 홀로 신앙을 합니다. 성도간의 사귐이 있어야 합니다. 마음의 사귐이 없는 사람이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인도자와 사귐, 하나님과의 사귐이 있어야 합니다. 빛 가운데서의 사귐을 가질 줄 모르고 그 마음에 옳음과 불신이 자리를 잡고 어둠 가운데서의 교제와 사귐을 가질 때 당을 지으며 살아갑니다. 옳음은 옳음끼리, 어둠은 어둠끼리 사귐을 갖습니다. 사단은 어둠을 가지게 만들고 당을 짓게 만듭니다. 빛 가운데의 사귐은 마음을 열고 열린 마음에 믿음이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가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야곱이 그의 생애에 놀라운 믿음을 가진 때가 있었습니다. 창세기27장에서의 야곱의 믿음, “예, 그러하옵니다.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내 소리가 아닌 믿음의 소리를 아버지 앞에서 말하였습니다. 이삭의 축복 앞에 야곱은 나아갈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어머니 리브가의 간청에도 에서가 아닌 자신의 모습을 보며 나아갈 수 없다고 거절한 그가 어머니와의 사귐을 통해 그 믿음이 야곱에게 들어왔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장막에 거하였던 야곱은 팥죽으로 형 에서의 장자의 명분을 샀던 삶은 어머니와의 사귐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어머니의 간청과 대화 속에서 사귐을 통해 믿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사귐을 가질 때, 형제에게서, 자매에게서 믿음을 가질 수 있는 마음의 터가 만들어 집니다. 아직 봄이 되지 않았는데 배 밭의 봄은 아주 빨리 찾아옵니다. 서재에서 바라보는 배 밭, 아직도 겨울이고 가지에는 움도 돗지않았지만 과수원지기의 손길이 바쁩니다. 밭을 보고 농사가 잘 되겠다는 것은 한 해에 되는 것이 아니라 농부의 손길에 거름을 주면서 몇 해가 흘러 그 밭이 일구어져야 합니다. 아무리 믿음이 없는 사람도 다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은 마음 만 열어 놓고 있으면 됩니다. 마음을 열고 있었기에 저주를 받을 것만 같은 형편이었을지라도 야곱은 장자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믿음은 그냥 생겨진 것이 아니라 열린 마음 가운데 얻어진 것입니다.

     

    ‘나는 믿음이 잘 안 생긴다. 나는 마음을 닫고 살았다. 나는 사귐 없이 교류하지 않고 살았다’와 같습니다. 그것은 자기 세계가 강한 사람입니다. 평소 그 신앙이 자기와 같은 옳음을 가진 자와 당을 짓고 교회를 불신하고 교회를 대적하는 일을 하게 됩니다. 교회와 사귐을 갖지 않는 것이 곧 대적자의 길을 가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한편으로 옳은 그것이 사귐을 통해 또한 다른 시각에서 옳지 않는 것들을 봅니다. 믿음의 통로인 사귐, 사단은 그 길을 차단시킵니다. 사귐은 아무리 믿음이 없는 사람도 믿음의 사람으로, 영적인 사람으로 만드실 수 있습니다.

     

    에스더가 왕 앞에 나아가 유다 민족을 구원할 생각도 못하고 있는 것은 에스더의 마음에 사귐이 끊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르드개와의 사귐이 끊어짐으로 에스더의 마음엔 유다 민족에게 온 사망이 그 마음에 오지 않았습니다. 굵은 베옷을 입고 대궐 문 앞에 엎드려 있는 모르드개의 베옷을 벗기 고자 하였던 에스더는 그 이유를 알아보려 하지 않았습니다. 사귐이 단절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신하를 통해 모르드개와 대화를 하면서 사귐이 회복되어졌을 때 그가 자신을 죽이는 법 앞으로 “죽으면 죽으리로다”하고 믿음을 가지고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수  많은 교제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귐을 통해 마음을 열었을 때 믿음의 발을 내 딛을 수 있었습니다. 유다 민족의 사망과 슬픔의 애통, 부담이 되었던 에스더의 마음은 왕 앞에 나아갈 수 없는 이유와 변명을 찾았습니다.

    에4:11-12 에스더의 신하인 하닥에게만 이야기 했다면 그 소리는 어둠의 소리요 불신의 소리이겠지만 자신의 어려운 형편과 거부되어지는 마음을 모르드개에게 전달하였습니다. 형편의 소리요, 모르드개의 말과 반대되는 소리임에도 불구하고 그 마음의 소리가 자신과 그 신하에게서 그치지 않고 모르드개에게 전달 되었습니다. 에4:14 모르드개의 화답, 그 소리에 에스더의 마음에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하였습니다. 내가 나아가지 않아도 다른 곳으로 말미암아 놓임을 받을 것이지만 에스더 자신은 멸망할 수밖에 없는 자신을 보았습니다. 이는 모르드개와의 깊은 사귐 가운데서 나와 내 아비 집이 멸망하기에, 나를 위해 왕 앞에 나아가라는 말씀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빛 가운데의 교제와 사귐이 이 사실을 정확히 잡아 주었습니다. 모르드개의 강권함은 유다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서 에스더를 이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은 에스더를 위함이요 자신을 위하는 것입니다.

     

    자녀 교육이 1순위가 되어버린 대한민국, 부모가 자녀를 교육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인데 청소년기에 가장 알차고 복되게 만들어 주는 것이 교회입니다. 결국 교회를 섬기고 복음을 섬긴 것이 내가 아니라 교회가 나를 섬기고 나를 인도해서 나로 복되게 하였습니다. 유다 민족이 아닌, 나를 위해서 발을 내딛고 “죽으면 죽으리로다”하고 나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굶주린 사마리아 성 밖, 네 명의 문둥이가 그 성을 떠나 아람 진에 가서 항복하자고 했던 것과 같습니다. 생명의 복음을 전하고 있는 동안 재앙이 피하여 지나갑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망하는 자로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사귐이 에스더를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었고 믿음의 발을 내딛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어머니 리브가와의 사귐이 야곱을 축복 앞으로 이끌었습니다. 사귐이 없는 사람이 옳음만 생겨나며 사람과 부딪히며 이 사귐에서 오는 믿음의 삶을 맛보지 못하고 필요성 조차도 느끼지 못하고 삽니다. 자기가 잘하고, 잘났고, 낫다고 하는 사람, 사귐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단절된 체 살아갑니다. 마음을 주고받고 마음을 나누는 관계, 교회 안에 그냥 앉아 있지 말고 말씀 앞에 나와서 모임과 함께 하여야 합니다. 장독 뚜껑을 닫아 놓았는데 비가 아무리 억세게 와도 물 한 방울이 들어갈 수 없는 것처럼, 분명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말씀에서 말미암지만 먼저 우리 마음이 열려 있어야 그 말씀이 우리 마음에 믿음으로 자리 잡을 수 있습니다.

     

    창27:8-9 어머니 리브가가 야곱에게 가르쳐 주는 믿음은 야곱이 이해가 가지 않고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는다 할지라도 어머니의 말만 쫓아가서 그대로 받아 살아갈 때 없는 축복도 내게로 가져올 수 있는 믿음의 통로가 되어 집니다. 비록 계속해서 야곱이 어머니의 마음과 반대되는 소리를 한다 할지라도 어머니의 믿음의 세계는 “내 말만 쫓아가라.” 하였고 이것이 축복의 권능이었습니다. 야곱의 축복은 이렇게 이루어 졌지만 야곱은 이 마음을 잃어 버렸습니다. 야곱의 생애, 그가 고통하고 두려워하고 어려워하는 모든 것들은 이 믿음에서 떠났기 때문에 오는 어려움이었습니다.

     

    창37:31-34. 야곱은 요셉이 죽었다고 생각하여 애통해 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죽지 않았습니다. 요셉의 찢겨진 채색 옷, 그리고 짐승의 피로 물든 그 옷, 이는 형들의 속임이었습니다. 그 옷을 보면서 야곱의 마음에 요셉이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그의 생각을 그 마음에서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자기 마음을 쳐내고 이끌어 줄 수 있는 어머니 리브가와 같은 인도자가 없었기에 그 생각과 자신의 판단을 믿는 마음으로 살았기에 슬픔에 젖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창32:6-8. 야곱의 두려움과 답답함은 에서가 400인을 끌고 오는 것 때문이 아니라 그 생각을 받아 주었기 때문이었으며 그가 처음 신앙을 잃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내 말만 쫓고 가서~” 어머니 리브가의 믿음 또한 그가 가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복 중에 주신 그 말씀  만을 따라 판단하였기에 그 믿음은 온전하였습니다. 말씀에서 에서는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길 수밖에 없습니다. 야곱이 본 에서는 400인을 거느리고 오는 형으로, 말씀의 판단을 믿지 않았기에 야곱은 두려움으로 심히 답답해 하였습니다.

     

    요셉을 대적하는 형들은 진실을 아버지에게 말할 수 없었습니다. 거짓 생각, 그 생각 때문에 고통하며 슬퍼했습니다. 처음 신앙을 버렸기 때문에 그러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받은 처음 사랑,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구원, 처음 신앙을 배울 때 우리가 의롭다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내 모습이 어떠하든지 간에 말씀의 판단 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보여 지는 것과 자기 생각과 자기 판단 만을 믿었던 야곱의 생애는 그가 바로 왕 앞에 섰을 때 험악한 생애를 보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창28:12-15. 야곱의 꿈은 요셉의 꿈과 차이가 있습니다. 꿈은 복을 주겠다고 말씀을 합니다. 요셉은 꿈을 믿었습니다. 그 꿈으로 형들로부터 미움을 받았고 그로 인해 노예의 삶으로, 감옥으로 그 인생의 한 순간을 차지하였지만 요셉은 그 꿈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이 꿈을 믿지 아니했습니다. 요셉은 “나를 이곳으로 보내신 이가 하나님이시다.” 형 들 앞에 하나님의 분명한 뜻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바로 왕 앞에서 자신의 험악한 세월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가 처음 신앙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 황제 앞에 서기 위하여 그 길을 갈 때에 바다의 풍랑과 위협 속에서도 그가 배 위에 타고 있는 사람을 위로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 마음에 평안을 주었고 불안에 떨고 있는 다른 이들의 마음에도 넣어 줄 수 있었습니다.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구원을 받고 난 이후에, 야곱이 신앙이 있고 요셉의 신앙과 사도 바울의 신앙이 있습니다. 어떠한 어려움 형편 가운데 있어도 평안할 수 있고 다른 이에게 이 평안을 줄 수 있는 믿음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살려고 애를 써도 안 되는 삶을 보며 믿음이 어렵다고 판단해서 그 믿음에서 떠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귐을 가질 때 마음을 열고 열린 마음에 내 생각과 내 판단과 다른 소리를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어느 한 순간 짧은 대화와 교제 속에서 이루어진 믿음은 열린 마음이고, 이 교회 안에서의 사귐입니다. 닫힌 마음에 사단은 옳음을 넣어 줍니다. 이것이 당을 짓게 하며 불신을 일으키며 교회를 대적하게 합니다. 요셉을 형들, 요셉에 대해서 마음을 닫고 있기에 어떠한 이야기도 하나님의 뜻을 말하여도 그들이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또한 두 발이 절뚝이인 므비보셋이 다윗과 사귐을 가지지 못함으로 왕의 식사 자리에 함께 하여도 여전히 자기 모습으로 다윗 앞에 나오는 것을 봅니다. 교회의 사귐이 얼마나 중요한가? 마음을 열고 믿음을 배우고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갑니다. 어머니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되고 어머니의 백성이 내 백성이 되어진 룻, 그는 하나님의 법에 결코 이스라엘에 들어올 수 없는 모압 족속임에도 불구하고 어머니 나오미와의 사귐은 그를 그리스도의 족보를 잇는 귀한 여자로 만들었습니다. 믿음은 그렇게 사귐을 통해서 흘러 들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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