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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오미 | 2012.09.19 17:18 | 조회 16287

    룻기1장1절~5절


    말씀대로 이루어지는게 신앙이다.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람이 뭐라고 하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성경이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그게 중요하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말씀은 그렇지만 내 생각에는 하며 토를 달고 변명을 한다.

     

    아람나라에 나아만이라는 군대장관이 있었는데, 외형적으로 군대 최고 통치권자고 왕도 알아주는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문둥병자였다. 그 집에 이스라엘과 전쟁 중에 생포한 작은 계집종이 있었다. 그는 자기가 섬기고 있는 나아만 장군이 문둥병자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아만 장군아내에게 우리 이스라엘에 하나님 선지자가 있는데, 그 앞에 서면 주인님의 문둥병이 고쳐집니다.라고 말했다. 믿음은 믿음이 전달되고 불신은 불신을 전달하는 것처럼 계집아이에게 믿음이 있었기에 그의 믿음이 나아만 아내에게 전달이 되었다. 그 아내가 남편에게 기쁜 소식이 있다 당신의 문둥병이 나을 수 있다. 계집아이가 자기나라 선지자가 있는데 문둥병을 고칠 수 있다고 하더라 계집아이 말에 확신과 믿음이 있더라. 나아만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계집아이의 믿음이 나아만 아내에게 전달되었고 다시 아내의 믿음이 나아만에게 전달되어 나아만이 이스라엘로 가게 되었다.

     

     많은 물건과 종을 가지고 엘리사의 집 앞에 왔다. 엘리사의 종 게하시가 엘리사의 말씀에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고 하셨다고 하자 나아만 장군이 화를 내며 그냥 돌아가려고 했다. 엘리사의 말씀이 자기 생각과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아만이 문둥병이 나을 수 있는 것은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는 것뿐이었다. 말씀대로 요단강에 가서 몸을 잠그면 깨끗해지는데, 그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는데 사탄이 ‘말씀은 그렇지만 성경은 그렇지만’ 하는 이런 저런 변명을 주면 사람들은 내 생각에는 내가 보기에는 내가 느끼기에는 하는 변명을 한다. 이런 저런 변명이 우리 신앙에 방해가 되게 한다.

     

    엠41,42장에 보면 바벨론이 이스라엘을 통치했는데 그달야라는 통치자를 파견했다.

    그때에 이스라엘의 군대장관 이스마엘이 있었는데 그와 10명이 동조해서 총독 그달야를 칼로 쳐 죽였다. 백성들이 보니 두려웠다. 죽인것 까지는 이해가 가는데 왕을 거스른 것은 어떻게 하나? 그래서 선지자 예레미아를 찾아왔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물어서 우리가 갈 길과 해야 할 길을 알려달라고 했다.

     

     여호와의 말씀이 우리보기에 좋든지 좋지 않든지 청종하겠습니다. 하였다. 예레미아가 하나님 앞에 나갔는데 말씀의 계시가 왔다. 그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했는데 ‘그 바벨론 왕을 두려워말라. 그를 주관하고 인도하는게 하나님이다 .애굽으로 도망가지 말고 이전처럼 여전히 예루살렘에 거하라.’ 백성들의 말은 하나님 말씀이 어떻든 청종하겠다 해놓고 중심에 듣고 싶은 건 화가 나도 참아야지 힘이 없는데 총독을 죽이면 어떻게 빨리 애굽으로 도망가 그 소리가 듣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그렇게 한다. 하나님 말씀이면 우리뜻이 중요하지 않으니 그대로 하겠다 해놓고 불평불만을 한다. 선교학생이 되는 것도, 시집ㆍ장가가는 것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사람들이 인도받으러 나오는 것 같아도 자기가 원하는 것에 맞추기를 바란다. 그건 하나님의 인도가 아니다.

     

    고집은 하나님 말씀이 아닌 자기 옳음, 생각, 느낌, 감각을 굳게 잡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은 변함없다. 내 고집을 꺾는게 지혜로운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끝까지 고집하면 ‘내 칼이 끝까지 따라가서 재앙을 내리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고 이겨먹으려는 사람은 미련한 사람이다.

     

    나아만 장군이 분해서 돌아가려하니 종들은 말씀 앞에 마음을 꺾어 본 사람이라 그 마음을 달래서 나아만을 말씀 앞에 꺾도록 이끌어 주었다. 나아만이 마음을 돌이켜 요단강에 들어가자 그의 살이 어린아이 살같이 깨끗해졌다. 내 자신이 하나님 앞에 꺽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꺾을 수 없다. 내가 순종하지 않는데 다른 사람을 어떻게 순종의 길로 인도하겠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씀의 인도보다 자기 생각 자기 주관을 앞세운다. 만일에 말씀대로 이땅에 거해 하면 ‘예, 말씀이 그렇다면 총독을 죽였든 우리를 불쌍이 여겨 우리를 지켜줄 줄 믿습니다.’ 하면 되는데, ‘말씀은 그렇지만 여기 있으면 죽을 거야. 빨리 도망가야돼.’ 그렇게 생각을 한다.

     

    이 룻기에 보면 엘리멜렉과 나오미가 살고 있는 땅은 베들레햄이었다. 베들레햄은 떡집 곧 하나님의 집, 몸 된 교회 안에 말씀의 떡이 있다. 교회 안에는 말씀이 공급되고 교제가 있다. 그런데 그 베들레햄에 흉년이 왔다. 왜 베들레햄에 기근이 왔는가? 이것은 중요한 이야기다. 왜 베들레햄에 흉년이 왔냐면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였기 때문이다.

     

    (사사기 25) “왕이 없으므로 각각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는 왕이 없어서 사람이 각각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다윗을 왕을 세워 국론을 통일하고 마음을 하나로 모으셨다. 이 나라도 대통령을 중심으로 국민들이 마음이 모아져야 한다. 이스라엘에 다스리고 주관하는 왕이 없었다. 사람의 마음의 왕국에도 왕이 있어야 한다.  각 사람의 마음의 왕국에 세워져야 할 왕은 만왕의 왕이신 예수그리스도가 여호와가 왕으로 세워져야 한다. 그런 사람은 복되고 안식을 누릴 수 있다.

     

    사람들이 결혼의 여부 표시로 반지를 낀다. 반지를 꼈다는 것은 임자가 있다는 표시므로 반지를 낀 사람에게는 함부로 다가가지 않는다. 결혼한 사람은 남편이 있고 주인이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내 영혼의 왕으로 주인으로 세워져있어야 한다. 내 마음의 왕국에 왜 기근이 오냐 하면 말씀을 버린 것과 여호와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고통인 것처럼 하나님이신 예수그리스도가 왕으로 세워져 있지 않고 내가 왕으로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신앙생활을 할 때 베들레햄 안에 있으면서도 흉년이 올 때가 있는데 그때는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이다 내 마음에 예수그리스도가 주인으로 세워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레위 한사람이 첩을 취하는 때가 있었는데 내전으로 6만 5천명이 죽었다. 앗수르 수도 니느웨 수도가 12만명이었다. 당시의 6만 5천은 엄청난 숫자다. 그 이유가 뭔가? 표면적 이유가 있고 근본 이유가 있다. 백성을 섬기고 하나님을 섬겨야 할 사람이 첩을 취한 것이다. 첩이 다른 남자와 행음을 했다. 친정으로 도망감

     

     그 정도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음을 알고 손을 끊어야 하는데 첩장인을 찾아가 거기서 3일 유하고 5일  되던 날 베냐민 기브아 마을을 지나가게 되었다. 노인이 하룻밤 묵고 가라고 해서 묵었는데 그 첩이 베냐민 사람들에게 강간을 당하고 죽게 되었다. 그러자 첩의 시체를 토막을 내 12지파에게 보내 분노한 사람들이 내전을 해 많은 사람이 죽게 된 거다. 첩이 행음한 거나 베냐민 사람이 행음한 건 전쟁의 표면적 이유다.

     

     근본 원인은 레위지파 사람 마음 안에 왕이 없었다. 그 마음에 예수그리스도가, 말씀이 왕으로, 주인으로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윗도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이었지만 밧세바를 취한 오점을 남겼다. 그 진짜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겼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마음에 주인으로 세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룻기에서 베들레햄은 떡집인데 왜 기근이 왔나?, 그들 마음 안에 레위지파사람 안에 왕이 없었던 것처럼 엘리멜렉 안에, 나오미 안에 왕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사시대에 왕이 없었더라.’처럼 신앙은 말씀대로 이루어지기에 말씀이 내 마음에 들어와 하나님 말씀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신앙이다.

     

    ‘우리는 양 같아서 각기 제길로 갔거든’처럼 나름대로의 길이 있다. 나름대로의 잣대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저울이 있고 나름의 저울이 있다. 내 시각은 다 가짜지만 하나님은 말씀의 저울밖에 없다. 여기다 맞춰야 한다. 연주할 때 피아노에 음을 맞추듯이 하나님의 말씀은 기본음이기에 우리는 자주자주 기록된 이 말씀에 비춰봐야 한다. 요단강에 일곱 번 잠그라고 하면 그대로 해야 한다. 하나님이 죄 없다 하면 없는 것이다.

     

    한 부친님께 복음을 전하려고 하니까 내가 구원받았다는 확신이 있는데 왜 자꾸 찾아오냐고 하셨다. 그래서 성경에 문등병자는 죄를 가르친다. 문등병인지 피부병인지 본인이 결정하는 게 아니라 반드시 제사장에게 가서 보인 뒤 제사장이 결정하는 거다. 문등병이 나을 때도 스스로 결정하는 게 아니라 제사장 앞에 반드시 몸을 보여서 제사장이 정하다하면 정하고 부정하다 하면 부정한 것이다. 어르신 이야기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제사장은 예수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 구원을 받았다 받지 않았다를 정한다. 부정하다는 결정을 내리는 것이 어르신 말 말고 성경을 펴놓고 이말씀이 말하는 믿음과 내가 가진 믿음이 같으면 어느 교파든 문제없이 맞다. 그러나 성경과 다르면 교파와 상관없이 잘못된 거다.

     

    어떤 사람이든지 간에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봐야 한다. 말씀에 캐논이란 뜻이 들어 있다 막대자란 뜻이다. 말씀에 내가 가진 생각, 내가 가진 믿음을 비춰봐서 말씀과 맞으면 믿음이고, 다르면 믿음이 아니다.

    제사장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문둥병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것처럼 나아만이 문둥병이 나을 수 있는 길은 예수님의 말씀이 그렇다고 하면 그대로 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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