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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좋은아침 | 2013.02.17 23:36 | 조회 16222

    탕자의 비유에 나타난 신앙의 6단계

     

    일자: 2013. 1. 13()오전

    본문: 15:11-24

     

     개요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에 대한 말씀은 6단계로 나눌 수 있다. 1단계는 은혜를 입는 단계, 2단계는 은혜 입은 것이 대적이 되는 단계, 3단계는 자기를 비우는 단계, 4단계는 아버지께 속하는 단계, 5단계는 아버지가 일하는 단계, 마지막으로 6단계는 승리하는 삶을 사는 단계다. 이 개요를 가지고 설명해 보자. 사람들은 신앙의 한계를 만날 때 그것이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해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이것이 선교회 신앙의 한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선교회 신앙에 대해서 다 알고 있다고 생각을 한다. 신앙의 1단계는 은혜도 입고 역사도 경험하는 좋은 단계다. 그러나 그 다음 단계가 어떠한 단계인지를 모르면 문제가 생긴다.

    남아공에 눈이 내렸다. 많은 사람들이 얼어 죽었다. 추위에 대해 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는 추위에 대한 대비가 잘 되어 있다. 우리는 가을을 좋아 하지만 곧 겨울이 올 것을 알기 때문에 추위를 대비하고 산다. 그래서 남아공 사람들처럼 얼어 죽지는 않는다. 신앙에서도 은혜를 입는 것은 좋지만 그 단계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 다음 단계를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 대비책이 있으면 그 다음 단계를 쉽게 넘어갈 수가 있다.

    날씨가 좋은 나라로 손꼽히는 곳이 케냐이고 그 중에서도 나이로비 날씨가 참 좋다. 그러나케냐에도 추울 때가 있다. 한국과 기후가 반대기 때문에 케냐의 7, 8월은 춥다. 그렇다고 영하로 내려가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케냐 나이로비에 사는 사람들이 한국보다 춥다는 소리를 훨씬 더 많이 한다. 그 이유는 난방장치가 안되어 있기 때문이다. 단기선교 나오는 학생들에게 두꺼운 옷을 준비해 오라고 하는데 말을 잘 듣지 않는다. 그곳은 해발 1600미터에 위치해 있다. 한국 한라산이 1950미터다. 이만은 못하지만 아침저녁으로는 굉장히 춥다. 그런 추위가 있기 때문에 담요가 있고 매트리스가 있어야 한다. 두꺼운 옷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주변 나라보다 좀 더 잘사는지 모른다. 신앙에도 은혜를 입은 후에 오는 단계를 대비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대적하고 교회를 대적하는 사람이 되고 만다. 그런 사람들은 신앙이 어떤 단계로 나뉘어져 있는지를 정확히 알지 못하면서 그것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교회 안에서 신앙을 10, 20, 이렇게 하다가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은 자신이 어느 위치에 있고 그 다음에 어떤 단계로 넘어가는지를 배우려고 하지를 않는다. 안다는 생각이 신앙을 배우지 못하게 만든다.

     

    1단계, 은혜를 입는 단계

     

    1단계는 은혜를 입는 단계다. 이 단계는 특별한 것이 없어도 잘 된다. 누가복음 1512절과 13절을 보면 그 둘째가 아비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비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그 후 며칠이 못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했다고 되어 있다. 작은 아들이 일을 잘 했는지 아니면 못했는지에 대한 언급이 직접 되어 있지는 않지만 마음의 세계를 보면 그것을 알 수 있다. 누가복음 1512절에서 둘째 아들이 분깃을 내게 주소서하고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는 것은 나름대로 잘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아버지가 작은 아들에게 양을 1백 마리 치라고 보냈다고 해보자. 양을 치는 것은 힘든 일이다. 하루 종일 양떼 곁에서 이리나 늑대, 악한 짐승이 오는지를 살펴야 한다. 아프리카 마사이족은 유목민이다. 이들은 한 발로 서는 법을 익힌다. 두발로 서 있지 않고 창을 의지해서 한 발로 서 있다. 왜냐하면 하루 종일 서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작은 아들이 양을 치러 와서 낮잠을 잤다고 해 보자. 해가 어둑어둑 해졌는데 양떼들은 다 흩어지고 열 마리만 데리고 왔다면 아버지가 기가 막힐 것이다. “너는 양을 치면 안되겠다. 내일은 콩 밭에 가서 새나 쫓아라.” 그랬다면 그것은 양치는 것 보다는 훨씬 쉽다. 그런데 콩 깍지를 구워 먹으려고 불을 피우다가 콩 밭을 홀랑 태워 먹었다고 해 보자. 양을 치라고 해도 안되고 콩밭에 보내도 안되고. 이런 입장에 작은 아들이 내게 돌아 올 분깃을 달라고 할 수 있을까. 분깃을 요구한 것은 잘 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형제가 돌 공장에 취직을 했다. 잡일도 돕고 일을 했다. 묘지에 가 보면 검은 돌상석이 놓여 있다. 돌을 잘라서 석공이 광을 내야 반들반들한 돌이 나온다. 돌을 크기에 맞게 잘라서 다듬고 광을 내는데 그것을 지게차로 뜨는 일이 있었다. 그것을 돕는다고 지렛대로 들다가 돌 모통이가 깨졌다. 석공이 하루 종일 다듬은 돌을 이 형제가 한방에 날린 것이다. 일본은 석상을 많이 쓰는데 한달을 깎아서 수출을 위해 컨테이너에 넣는 일이 있었다. 그것을 넣는데 한 부분이 컨테이너에 걸렸다. 그것을 돕기 위해서 오비끼(산성각)로 이 형제가 그것을 쳐서 넣다가 귀퉁이가 부러져버렸다. 석공이한 달 깎은 것인데. 사장이 보니 패만 끼쳤다. 그래서 여기 있으면 안되겠다 싶어서 이 형제가 운전을 하니까 돌을 실어오는 일을 시켰다. 돌을 카고크레인을 싣고 오는데 T자 삼거리를 못보고 급히 브레이크를 밟는 바람에 뒤에 실린 돌이 앞에 크레인을 다 망가트렸다. 그래서 사장이 집에 가서 쉬어라. 내가 부르면 오라고 했다고 한다. 이런 입장에서 사장에게 왜 나를 자르냐고 할 수 있을까. 회사 와서 하는 일마다 패만 끼친 것이다. 작은 아들이 잘한 것이 없다면 어떻게 당당히 아버지 앞에 분깃을 요구할 수 있을까.

     

    2단계, 하나님을 대적하는 단계

     

    은혜는 입으면 입을수록 좋은지만 이것이 자기를 신뢰하게 만든다는 것을 사람들은 잘 모른다. 그냥 은혜를 입으며 살면 되는 줄 안다. 그러나 은혜를 입으면 입을수록 더 나를 신뢰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신앙의 2단계, 대적하는 단계에 머물게 된다. 첫 번째 이 단계에서 사단이 노리는 계략이 있다. 사단은 은혜를 입고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을 대적하고 교회를 대적하도록 계략을 쓴다. 그래서 우리 자신을 신뢰하게 만든다. 은혜를 입은 것 때문에 자기를 신뢰하게 되면 사단의 계략대로 신앙의 2단계에 들어가게 만든다. 그래서 작은 아들이 아버지와 연합하지 못하고 아버지를 떠나게 만든다.

     

    3단계, 비우는 단계

     

    사단은 이런 계략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님은 그에 대한 어떤 대비책을 가지고 계시는가. 하나님은 사단보다 더 나은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 사단의 계략을 무너트리고 하나님의 계획을 세워 나가신다. 3단계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단계다. 하나님은 우리를 비우는 단계로 인도하신다. 누가복음 1512절과 13절 말씀을 보면 아비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그 후 며칠이 못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했다고 되어 있다. 아버지가 살림을 나눠 줬고 먼 나라로 가는 것을 허락했다. 먼 나라로 가는 것을 허락했다기 보다 실은 자기를 비우는 일을 하신 것이다. 자기를 신뢰하면 아버지와 하나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아버지는 이 아들이 무너지고 비워져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아들이 비워지는 단계로 아버지가 인도를 하는 것이다. 첫 번째 은혜 입은 것으로 감사하는 단계는 신앙의 지극히 초보적인 단계다. 은혜 입은 것이 대적이 되는 것을 모른다면 정말 어리석고 미련한 단계에 머물게 된다. 은혜를 입은 다음에 자기를 비우는 단계를 통과하지 못하는 사람은 성장할 수가 없다. 비워지는 신앙의 단계를 귀하게 여겨야 한다. 내가 은혜를 입고 세움을 입는 것보다 내가 비워지고 무너지는 것이 훨씬 귀한 것이다.

     

    두꺼비가 벌을 잡아먹는데 잡아 먹을 때마다 벌이 두꺼비 혀를 톡 쐈다. 그것을 지켜보던 맹꽁이가 벌이 혀를 쏘는데 왜 벌을 잡아먹느냐고 했다. 그러자 두꺼비가 톡톡 쏘는 맛으로 먹는다고 대답을 했다고 한다. 누가 지어낸 이야기지만 신앙의 이 맛을 모르는 사람은 늘 은혜 입는 것만 그리워한다. 세움 받고 있는 사람은 세움을 받으면서 대적하지는 않는다. 온 마음을 다해서 충성을 다한다. 그러나 자신이 비워질 때 그 맛을 모르면 사람들은 마음의 방향이 늘 은혜 받는 단계만을 그리워한다. 마치 어린 아이가 엄마 젖을 그리워하는 것과 같다. 어린 아이가 때가 되면 젖을 떼야 된다. 엄마 젖을 떼려고 할 때 아이들이 안 떨어지려고 하지만 젖을 떼야 한다. 4, 5살 되도록 젖을 빨면 안된다. 내가 비워지고 무너지는 맛을 봐야 하는데 오랫동안 은혜를 입고 사는 것에만 머물러 있다. 내가 이런 신앙을 살아서 얻어지는 맛이 있는데 그 맛을 모르는 사람들은 자신을 비우는 단계에 들어갈 때 자기를 높여 주는 쪽으로 흐르게 된다.

     

    다윗과 함께 했던 사람 중에 아이도벨이라는 모략꾼이 있다. 그의 모략은 하나님의 말씀과 일반이라 할 정도로 뛰어났다. 하지만 다윗은 아이도벨의 모략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께 물었다. 아이도벨은 다윗과 함께하면서 빛을 보지 못했다. 그는 후에 압살롬에게 갔고 자기를 세워주고 높여주는 압살롬과 함께했다. 사람들은 그런 마음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구원을 받은지 오래되었든 안되었든 마찬가지다. 자기가 인정되고 대접을 받는 위치로 갔을 때 그것을 은혜롭고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은 1단계, 은혜를 입는 신앙 밖에 몰라서 그런 것이다. 교회와 멀어지는 사람은 정확히 그런 사람이다. 간섭 안받아서 좋다고 생각하고 은혜를 입는 것이 좋다면서 지극히 초보적인 단계에만 머문다. 음식의 맛을 잘 모르는 아이들은 아이스크림, 초콜렛, 사탕, 이런 것을 좋아한다. 그것이 제일 맛있는 줄 안다. 신앙의 단계를 가보지 못한 사람은 은혜를 입는 것이 제일 좋은 것인 줄로 안다. 어린 아이를 꾀기 위해서 매운탕 대신 달콤한 사탕을 줘야하는 것과 같다.

    우리가 반드시 가야할 신앙의 단계가 있다. 1단계에만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그래서 2단계를 통과한 사람은 자기가 비워지고 낮아지면서 1단계에서 얻을 수 없고 비교할 수 없는 은혜가 있다. 그 맛을 본 사람은 1단계 맛이 초보적인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이 자라가야 한다. 어떤 형제나 자매, 또는 사역자가 비워지고 무너트림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 그렇게 일하고 계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렇게 해서 그 사람을 훨씬 더 깊은 신앙의 단계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비워지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기 때문에 은혜 입는 단계에만 머물려 하고 여기 저기 기웃거리는 것이다.

     

    4단계, 아버지께 속하는 단계

     

    탕자의 자신이 비워지면서 보는 세계가 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고 못난 사람이다. 아버지의 은혜가 없기 때문에 주려 죽는 사람이다. 돼지 먹는 쥐엄열매도 못 먹고 주려 죽는 자다. 아버지께 내 분깃을 요구한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이것이 자기가 비워진 사람의 마음에 보이는 세계다. 그 단계에 갔을 때 아버지께 속하게 되는데 이것이 신앙의 4단계다. 탕자가 아버지께 속하게 되었을 때부터 그의 모든 문제는 아버지의 문제가 된다. 이 단계에 있는 사람을 교회에 속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교회에 속해 있다고 해도 언제든지 교회를 떠날 수 있다. 탕자가 처음 아버지의 은혜를 입고 있었을 때는 언제든지 아버지를 대적할 수 있고 결국 아버지 집을 떠났다. 그 때는 탕자가 아버지에게 속했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탕자가 4단계에 와서 아버지에게 속한 자가 되었는데 이것을 아버지와 하나 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탕자가 아버지께 속해서 하나 된 후에는 더 이상 아버지를 떠날 수 없다. 수가 틀린다고 떠나지 않는다. 탕자가 아버지께 속했을 때 그의 다 떨어진 옷이나 주린 것이 모두 아버지의 문제가 되었다. 여자가 결혼하면 모든 아내의 문제가 남편의 문제로 된다. 아내가 진 빚도 가져온 돈도 모두 남편의 것이 된다. 둘이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비워지고 무너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반드시 그 단계를 통과해야 속한 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5단계, 말씀이 일하는 단계

     

    5단계는 아버지가 일하는 단계 즉, 아버지의 말씀이 일하는 단계다. 아버지가 하인들에게 제일 좋은 옷을 입히라, 가락지를 끼우라, 소를 잡으라하니까 그대로 되는 세계, 아버지가 일하는 단계다. 이것은 말씀이 일하는 단계이고 안식에 들어간 단계다. 자기가 자기를 위해서 일하는 단계가 아니다. 자기의 어떤 부족함도 문제가 되지 않고 아버지가 일하는 단계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런 신앙을 주시고자 한다. 그럼 큰 아들의 모습과 그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살펴보자.

    큰 아들은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라고 했다. 큰 아들은 지금 자기를 신뢰하고 대적하는 단계에 있다. 1단계에서 2단계에 들어가 있다. 큰 아들의 마음에는 자기가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었고 자기를 신뢰하는 곳에 머물러 있다. 실은 그동안 아버지의 은혜로 살았던 것인데 그것이 자기를 신뢰하게 만들었다. 은혜 입은 것을 자기고 내가 한 것이라고 하고, 아버지는 자기에게 염소새끼 한마리 주지 않았다면서 아버지를 대적하고 있다. 반면에 작은 아들은 자기가 비워지고 아버지에게 속해있어서 자기의 모든 문제가 아버지의 문제가 되었고, 이제는 아버지가 일을 하고 그는 안식에 들어 갔다.

     

    6단계, 승리의 삶을 사는 단계

     

    큰 아들은 아버지와 작은 아들을 대적하는데 그 대적을 아버지가 막아주고 있다. 작은 아들은 아버지가 대적을 막아 주시는 승리의 삶을 사는 6는 단계에 와 있다. 큰 아들은 겨우 신앙의 초보에 있으면서 아버지를 원망하고 훨씬 깊은 단계에 들어가고 있는 작은 아들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비워지고 무너지는 것은 참으로 귀하다. 이 일은 스스로 할 수 없고 아버지가 하신다. 하나님은 그 길로 인도하신다. 무너져 보지 않은 사람은 무너져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만약 교회 안에 큰 아들만 있다면 무너지고 비워진 자를 이해할 수가 없다. 하나님은 우리를 진정으로 교회에 속한 사람이 되게 하시고 우리 대신 성령이 일해 주시는 은혜를 주기 원하신다. 큰 아들은 너무 어리석었다. 은혜를 입은 것 때문에 오히려 판단하고 정죄하는 위치에 있는데 이것이 신앙의 망할 징조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아버지가 큰 아들에게 아버지의 것이 다 네 것이라는 말씀을 했지만 그는 그 믿음을 갖지 못했다. “이 네 동생은 잃었다가 얻었고 죽었다고 살아난 아들이라고 해도 못마땅하게 여기고 아버지와 하나 될 수가 없었다.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를 가두시는 일을 하신다. 누에 고치가 아주 좁은 구멍을 뚫고 나오기 위해서 어깨를 사용한다고 한다. 그런 진통의 과정을 통해서 날개에 힘이 생기면서 나왔을 때 날 수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힘이 없어서 날 수 없는 것처럼 우리도 비워지는 단계를 거치지 않으면 창조에 속한 하나님의 말씀의 세계를 날수 없는 것이다. 여전히 내가 일하는 세계 밖에 모른다. 교만한 사람은 그 과정을 통과하지 못하고 자기를 위해주고 인정해 주고 세워주는 쪽으로 나아간다. 우리는 어떤 음성이 들릴 때 그 음성이 하나님의 음성인지 아니면 사단의 음성인지를 알아야 한다. 고통스럽고 어렵지만 아버지에게 속한 세계로 인도하는 음성이 아니라면 그것은 1단계에 머물게 하려는 사단의 역사인 것이다.

     

    맺음말

     

    1단계는 진통을 치르지 않고도 갈 수 있다. 평안하고 감사하고 좋다. 그러나 그곳에 사단의 계략이 있다. 하나님은 그것을 아시기 때문에 3단계로 인도하신다. 3단계는 자기를 비우는 단계다. 그리고 계속해서 아버지와 하나가 되는 4단계, 말씀이 일하시는 5단계, 아버지가 모든 대적을 다 막아주고 승리의 삶을 살게하는 6단계로 이끌고 계신다. 기껏해야 1단계를 가는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단계로 이끄시는 것이다. 정치 지도자가 복지정책을 쓰면 사람들이 우선 당장 좋아 한다는 것을 알고 그 정책을 쓰는 것처럼 사람들은 1단계 신앙을 좋아한다. 종교 지도자가 되어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곳으로만 인도한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종이라고 할 수 없다. 자신이 비워지고 무너지는 영적인 세계를 살아야 한다. 우리 교회가 영적으로 성장하면서 하나님이 때가 되니까 이런 길을 가르쳐 주고 계신다. 병아리가 부리로 껍질을 깨고 나오면서 그 고통의 과정을 통해 먹이를 쪼을 수 있는 병아리가 된다. 지금은 비록 무너져 있지만 이 과정은 하나님이 귀한 일꾼으로 세우려고 인도하는 귀한 것이다. 우리는 그 비우는 것의 가치를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결국 우리 자신을 벗기시고 말씀이 마음껏 일하는 창조의 세계로 인도하기를 원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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