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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성옥 | 2018.04.22 19:42 | 조회 3603

    201848일 주일오전말씀

    말씀: 로마서 4:1~8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

     

    제가 최근에 해외를 계속해서 다니고 있습니다. 부활절 연합 예배 전에는 대만을 갔다 왔었고 부활절 연합예배를 마치고 몽골에 다녀왔습니다. 내일은 캐나다 원주민 마을에 다시 가게 됩니다. 제가 없는 동안 교회 소식이 늘 궁금했는데 어제도 교회 소식을 들으니까 너무 감사했습니다. 대학생들은 강화도 집회를 앞두고 강화도에서 전도를 하며 좋아하고 기뻐했고 주일학교 팀은 힐링 콘서트를 했는데 100명이 넘는 새로운 아이들과 부모님들이 함께 참여 하면서 너무 좋았습니다. 일반 교회 부부가 참석을 하셨는데 자기 교회에 와서 교육을 해 달라고 요청이 와서 해 주라 했습니다. 우리 선교회는 날로 성장하지만 다른 교회들은 문을 닫고 젊은 이들의 활동이 없어서 주일학교에서 교사할 분들이 없다 합니다. 분당의 어느 목사님, 복음을 들은 일반교회 목사님이신데 기쁜소식선교회만 밝히지 말고 주일학교 교사를 보내어 줄 수 있느냐고 요청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앞에 길을 여시는 것이 너무 감사하고 어제 장년회를 마치고 나서도 고척돔, 남동체육관에 모았던 자원 봉사자 학생들을 매주 마다 모아서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3명의 학생들이 굿뉴스코 프로그램에 지원을 했습니다. 엘리야 시대에 손 만한 구름 하나를 보고 큰 비의 소식이 있다고 했습니다. SNS를 통해서 자원봉사자들을 모집하고 앞으로 계속해서 만남을 가져야 했기에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굿뉴스코를 홍보하고 모집하는데 일들이 진행되면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실버에서는 실버 입학식을 준비하고 있는데 입학식 겸 우수 학생들 상품도 의논하고, 새로운 신입생도 의논하고, 실버 대학을 등록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모든 부서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오늘 합창단도 늘 해왔던 곡만이 아니라 새로운 합창을 하며 마음을 쏟은 것을 봅니다.

     

     

    온 교회가 살아서 힘 있게 복음을 향하여 달려가는 것이 너무 감사합니다. 사역자 뿐만 아니라 온 교회 형제 자매들이 함께 하는 것이 너무 감사합니다. 옛날에는 박목사님만 해외에 다녀 가시면서 복음을 전하셨는데 이제는 저희들도 해외로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전에는 복음을 가로 막고 대적자의 위치에서 살면서 형제 자매들에게 흘러가는 교회와 종의 마음을 가로 막았습니다. 도로가 좁아져서 차가 막히는 현상, 병목현상이라고 하는데 복음의 진보를 가로 막는 사람들이 사역자라는 마음이 듭니다. 종과 마음을 같이 해서 달려가면 교회가 힘 있게 달려가고 마우스 잡을 줄도 모르고 컴맹이었던 자매들이 전국 SNS홍보 강습회에 강사로 활동했다는 것이 너무 감사하고 이메일을 보내면서 골뱅이 기호를 몰라 골뱅이라고 문자를 넣었다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아무 것도 몰랐던 자매들, 모든 부서가 마찬가지였습니다. 마인드 팀, 실버 팀, 주일학교 팀, 아무 것도 몰랐지만 발을 내딛고 나가면 모든 부분에 할 줄 알게 하심을 입은 자입니다. 주님의 뜻이라면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할 줄 알게 하심을 입혀 주십니다. 나라는 사람이 어떠하냐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면 하나님이 다 되게 하시고 만들어 주십니다. 할 마음만 있으면 됩니다. 믿음의 발을 내딛고 복음을 향하여 달려가면 하나님이 할 줄 알게 하심을 입힙니다. 모세가 성막의 식양을 보고 이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할 줄 알게 하심을 입은 자가 있었기에 성막이 이루어 지는 것을 봅니다.

     

     

    지난 주 부활절 연합 예배를 드리기 위해 고척 돔 구장을 대관을 하려 했는데 할 수 없었습니다. 부활절 예배는 고정된 날짜가 아니라 그 날에 가보니 아예 대관이 되지 않았습니다. 대관 담당 목사님이 오셔서 큰일이 났다고 했습니다. 대관 일정을 공고할 때 시 행사를 제외하고, 야구 경기가 있는 날을 제외하고 그 날짜를 내어 놓는데 아예 그 날짜는 대관이 안 되는 것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 전날 시 행사가 있어서 안 된다고 했습니다. 하루 전에 무대를 설치하고 야구장 전체 바닥에 보호 덮개를 덮어야 하기에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어떤 시 행사인지 알아 보라 했습니다. 서울 시의 아마추어 협회에서 야구 경기를 하기 때문에 안 된다고 하기에 알고 보니 시 행사가 아니였습니다. 정식이 아닌 편법, 서울 시 어느 부서의 담당자가 대관을 한 지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서울 지역 사역자님들이 믿음으로 싸워 나가니까 하나님이 하나 하나를 보여 주셨습니다. 정식 시 행사가 아니면 심의를 붙여야 합니다. 아마추어 야구 경기이기에 관객 없이 운동장만 쓰면 되지만 우리는 모든 장소를 다 써야 하기에 심의를 붙이면 우리가 쓰는 것이 맞았습니다. 야구 경기도 취소할 수 없고 우리에게도 주지 않을 수도 없고, 협상을 끌어 낸 것이 그 날 아침 9시부터 사용하라 했습니다. 새벽 6시 부활절 예배를 해야 했지만 일단 대관을 해 놓고 리허설을 해야 하기 때문에 새벽 6시 대규모 리허설로 새벽 예배를 했습니다. 이 분들이 염려했던 것이 경기가 오후 4시에 마치기에 그 때부터 어떻게 준비를 하느냐, 위험하다 했지만 그 동안의 경험으로 은혜롭게 부활절 예배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언론에 부활절 예배가 나올 때마다 우리 부활절 예배의 사진이 나오고 인터뷰 한 내용이 나왔습니다. 오늘 날 한국 교회가 잘 못 가고 있는 방향에 대해서 지적을 하면서 부활절의 참된 의미에 대한 일반교회 목사의 인터뷰가 실렸는데 그 인터뷰 사진에 작년 부활절 에배의 우리 사진이 실려 있었습니다.

     

     

    작년 부활절 예배를 생각하면 믿음의 발을 내딛고 나가면 하나님이 많은 것을 예비해 놓은 것을 봅니다. 내가 믿음의 발을 내딛고 나간다고 나갔지만 종과 교류를 해보면 한 발을 더 내딛을 수 있고 더 많은 일들이 펼쳐지는 것을 봅니다. 박목사님은 새벽에 많은 사람이 모였으면 좋겠다 하셨습니다. 그 전까지 새벽에 많이 모이지 않았었습니다. 보통 천 여명 정도가 왔었는데 고척 돔 바닥의자가 3천명의 자리였기에 조금 더 많이 채워야겠다 싶었습니다. 종의 마음에는 새벽에 많은 분들이 오기를 원하셨기에 전국 교회 형제 자매들이 다 모아야겠다 싶었습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일, 새벽 6시에 전국 형제 자매들이 다 모이는 것에 대한 공지 글을 올렸는데 전국에서 마음을 모으게 되었습니다. 새벽에 도착을 한 지역 교회들, 12, 새벽 1시에 출발해서 밤새도록 차를 타고 올라왔습니다. 100평이 넘는 전광판에 부활절 예배 모습을 보면서 전국 형제 자매들의 마음에 큰 감동을 주었고 목사님의 마음에 있는 소망을 힘 있게 전파하셨습니다. 양천에 가서 아침 식사를 하는데 무대에서 내려오시는 목사님께 우리는 늘 하는 대로 하려 하는데 목사님께서 우리의 틀을 깨어 주셔서 감사합니다하고 이야기 드리니까 남들이 안 하는 일을 해야 돼.” 그 말씀이 너무 감사했습니다. 얼마든지 그 전에도 할 수 있었습니다. 종과 교회가 마음을 정하면 다 함께 할 수 있는 귀한 형제 자매들인데 우리가 병목현상처럼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왜 재 작년에, 4, 5년 전에 이렇게 못 했을까, 믿음의 발을 내딛고 나가보지 않으면, 그리고 종과 교제를 해 보지 않으면 우리가 얼마나 어리석고 미련한 자인지 모르고 살아갑니다. 3천명을 바닥 의자에 앉혀 놓고 작년 보다 많이 왔다고 감사하다 표현할 수 있지만 그 충만한 마음이 우리를 망하게 합니다.

     

     

    신앙의 간증, 로마서 4장의 말씀이 진짜 간증이며 이 간증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4:4-5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일을 아니할찌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내가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를 했는데 하나님이 나를 구원의 길로 인도했다고 하면 그 간증이 맞습니까? 아닙니다. 나는 경건치 아니한 자인데, 나는 추하고 더럽고 악한 자인데 주님이 나를 긍휼히 여기셔서 나를 구원하였다고 간증합니다.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셨는데 내가 경건해서 구원을 받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나는 경건치 아니한 자라는 것을 간증하고 100% 하나님의 의로 구원을 받은 구원 간증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딤전 1:12-16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절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사도 바울의 간증, 오늘 사람들이 지혜가 없고 미련하고 눈이 가려워져서 이 말씀 조차도 깨닫지 못합니다. 아무리 내가 대적자이고 악한 자라도, 나 같은 자도 구원하셨기에 어느 누구도 구원하실 수 있다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딤전 1:13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예수님은 의인을 구원하려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구원하려 오셨고 그가 죄인 중에 괴수라 할찌라도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긍휼을 입었습니다. 죄인 중의 괴수, 이 단어만을 곡해하여 자신도 죄인이라 주장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잘 섬겼기에 의로운 자가 아니고 나는 경건치 아니한 자입니다. 전적인 주님의 은혜가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딤전 1: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충성되이 여기셨다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잘 섬기고 기도를 잘하고 충성하고 봉사했기 때문에 주님이 나를 구원하셨다면 이는 가짜 구원입니다. 늘 경건치 아니한 내가 있어야 합니다. 잠실 체육관, 장충 체육관에서 부활절 예배를 드리다가 이렇게 큰 고척 돔 구장에서 천 명이 아닌 삼 천명이 모여서 새벽 예배를 드렸다고 하면서 감사했겠지만 이는 저희들의 틀 안에서 해 왔던 대로 해온 결과입니다. 목사님이 그 틀을 깨어 주셨고 경건치 아니한 제가 보여졌습니다. 주님의 역사를 내 간증인 것처럼 간증할 때가 있습니다. 충만하게 간증을 하는데 주님의 역사는 주님의 간증이며 당신이 하신 일입니다. 간증을 분류해보면, 내 간증이 아니기에 주님이 일하신 것을 내가 대신해서 주님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가 대신 이야기할 뿐입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자기 것으로 이야기 합니다. 자기 신앙의 모양인 것처럼, 자기 수준인 것처럼 미련하고 어리석게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일하심 안에서 은혜 입은 나를 이야기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속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잖아’,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것이 마치 자기 신앙의 위치인 것처럼 세워 놓고 은혜 입은 나를 간증합니다. 이는 내 간증이 아닙니다. 내 간증이라는 것은 경건치 아니한 나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항상 간증 속에 경건치 아니한 내가 있어야 합니다. 45일 날 전국 인터넷 홍보, 소셜 네트웍에서 홍보하는 강습회를 했습니다. 인터넷도 모르고, 종이 하라고 해도 할 줄 모른다고 물러나 있고, 골뱅이가 무엇인지도 모른 경건치 아니한 나를 간증해야 합니다. 나는 경건치 아니한 자이고 역사는 주님이 하셨습니다. 경건치 아니한 나를 이야기 하는 것이 내 간증입니다.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 믿음의 발을 내딛고 나가서 하나님이 역사하셨다고 간증하면 그 사람의 마음 속에 경건치 아니한 내가 없습니다. 부활절 연합 예배를 하면서 경건치 아니한 제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보면서 감사한 간증도 있지만 그 일 앞에 경건치 아니한 나를 세울 수 없었습니다. 서울 지역 사역자님들이 같이 마음을 모아서 부딪혀 보고, 버스 대는 강변 주차장에 운동 시설도 되어 있는데 그 중 운동장 2개에서 하나가 대관이 되었고, 지난 번 사고로 인해서 들어가지 못하도록 말뚝을 박아 놓았는데 믿음으로 부딪혀서 허락을 해 주었습니다. 올 해만 허락해 주고 내년에는 절대로 안 된다고 했지만 걱정하지 말라 했습니다. 절대로 안 되는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서울 지역, 경인 지역 사역자님들이 같이 일을 하면서 전에는 안 되면 안 되는 일에서 물러났었는데 부딪히면서 그 일이 참 재미있어 졌습니다. 기도를 하면서 주님의 인도를 받고 기도하며 마음을 모으고, 올 해 고척돔 구장의 부활절 예배는 많은 사람이 모이고 천 명의 합창단이 모인 눈에 보이는 역사뿐만 아니라 준비를 하며 안 되는 일들 앞에서 하나님의 일하심도 보게 되었습니다.

     

     

    경건치 아니한 자로써 영적으로 계속해서 성장해 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대부분 신앙이 성장하지 않고 멈추어 버리는 것은 그 나름대로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를 경험한 것이 있어서 그것을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간섭, 그 마음으로 인해 받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남동 체육관 귀국 발표회를 하면서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왔습니다. 자원 봉사자 700명을 모집했고 실버회에서, 그리고 형제자매들이 온 마음을 쏟아서 12,000명이 되는 많은 분들이 공연을 관람하고 돌아가셨습니다. 그 역사 속에서도 경건치 아니한 제가 있었습니다. 1회 공연을 하려 했고, 2회 공연을 안 하려고 뒤로 물러날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오후 330분 공연에 자리가 없을 정도로 온 수 천명의 사람들을 잘라 버리는 사람이 저였습니다.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경건치 아니한 나, 복음을 가로 막는 자요, 대적자요, 훼방자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나를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종을 통해서 지적을 해 주셨고 긍휼을 받아서 그 일이 은혜롭게 되었습니다. 경건치 아니한 내가 있어야 되고 의롭게 하시는 하나님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에 그러한 내가 없습니다. 은혜 입은 나, 하나님의 역사를 붙들고 있습니다. 수준 낮은 신앙, 더 이상 자라지 않는 신앙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쥐고 있으면 망합니다. 우리는 경건치 아니한 나를 쥐고 있어야 합니다. 일들 하나하나를 돌아보면 경건치 아니한 나, 아닌 나, 복음을 가로 막는 내가 보입니다. 종과 가까이 가서 교류하고 들고 나가서 인도를 받아 보면 늘 경건치 아니한 내가 보입니다. 법으로 종 앞에 나가는 것이 아니라 교류하지 않는 동안 은혜 입은 내가 남아 있지 경건치 아니한 내가 없는 것을 봅니다. 최근에 종과 함께 하며 하나하나를 인도를 받으니까 내 삶 속에 경건치 아니한 제가 있었습니다.

     

     

    내일 캐나다 위니펙 원주민 마을에 갑니다. 영하 15, 아직까지 춥고 누가 가라 하지 않지만 내 마음에서 그 길을 또 가야겠다는 마음이 듭니다. 자살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고 어느 누구도 그 해결책을 못 찾고 있는데 교사, 교장단들에게 마인드 교육을 하고, 정부 예산으로 캠프를 할 수 있도록 진행하고 그 지역에 추장이나 대 추장을 만나 보려고 합니다. 미국에 있는 캠프에 학생들을 데리고 가고 캐나다 벤쿠버, 토론토에서 캠프를 진행하면서 복음의 진보를 가져 올 수 있기에 그냥 주저앉아 있을 수만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떠밀려 사는 삶이 아니라 진작에 살지 못하였던 삶, 종은 수 십 년 전부터 믿음의 발을 내딛고 달려 나가셨습니다. 오래 전에 박목사님께서 지역장 목사님들에게 나는 새로운 일들을 창출해서 일을 하는데 왜 자네들은 새로운 일들을 만들어 가지 않는가?” 목사님이 앞서 가시고 우리는 뒤 따라서 일을 만들어 간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에 와서 그 의미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아직 부족합니다. 전 사역자들이 달려가고 형제자매들이 다 믿음의 발을 내딛고 새로운 일에 뛰어 들기 시작하면 얼마나 많은 복음의 진보와 역사가 일어나겠습니까? 떠밀려서 억지로, 억지로 신앙을 하는 사람들, 그런 신앙이 아니라 믿음의 발을 내딛고 나가면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지난 날 내가 왜 이렇게 못 살았던가?... 경건치 아니한 나를 보며 그 신앙이 깊어지고 계속해서 발전을 가져 옵니다.

     

     

    목사님은 전 세계를 누비면서 전 세계를 얻고 있습니다. 스와질랜드는 나라를 얻었습니다. 국왕과 국모, 그리고 왕족 일가를 다 얻게 하시는 것을 봅니다. 한 나라를 얻어서 복음을 전하는 그 일에도 어마 어마한 일들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사단은 우리를 망하게 하려고 경건치 아니한 나를 손에 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은혜 입은 나를 쥐게 하여서 망하는 길로 가게 합니다.

     

     

    삼하 1:4-10 다윗이 가로되 일이 어떻게 되었느뇨 너는 내게 고하라 저가 대답하되 군사가 전쟁 중에서 도망하기도 하였고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도 죽었나이다 다윗이 자기에게 고하는 소년에게 묻되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의 죽은 줄을 네가 어떻게 아느냐 그에게 고하는 소년이 가로되 내가 우연히 길보아산에 올라 보니 사울이 자기 창을 의지하였고 병거와 기병은 저를 촉급히 따르는데 사울이 뒤로 돌이켜 나를 보고 부르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한즉 내게 이르되 너는 누구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나는 아말렉 사람이니다 한즉 또 내게 이르되 내 목숨이 아직 내게 완전히 있으므로 내가 고통에 들었나니 너는 내 곁에서 서서 나를 죽이라 하시기로 저가 엎드러진 후에는 살 수 없는 줄을 내가 알고 그 곁에 서서 죽이고 그 머리에 있는 면류관과 팔에 있는 고리를 벗겨서 내 주께로 가져왔나이다

     

     

    아말렉 소년의 거짓말, 유대인들은 이방인의 손에 죽는 것을 가장 수치로 여깁니다. 사울의 면류관, 만일 아말렉 소년이 빈손으로 왔다면, 그리고 사울의 죽음을 이야기했다면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 면류관이 자기를 죽게 할 줄 모르고 그 손에 쥐고 있었습니다. 은혜 입은 나, 죽은 사울의 면류관과 같습니다. 그것이 나를 죽이고 망하게 하는 것임을 모릅니다. 여러분의 손에 사울의 면류관이 아니라 경건치 아니한 내가 있어야 합니다. 마음을 꺾지 못하고 신앙을 망하게 하는 것이 그 손에 사울의 면류관을 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교묘하고 간사하게 우리를 속이고 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면서 망하는 길로 갑니다. 경건치 아니한 나를 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은혜 입은 나를 쥐고 있고 사울의 면류관을 쥐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의 날 선 검과 같아서 영과 혼을 찔러 쪼갠다 하였습니다. 은혜 입은 나를 붙들고 있기 때문에 마음을 굽히지만 마음을 꺾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일에 하나님은 일을 하십니다.

     

    한 편 손 마른 자의 이야기, 누가 복음 6장에는 어떤 손이 말랐는지 정확하게 명시를 하고 있습니다.

     

    6:6-10 또 다른 안식일에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사 가르치실쌔 거기 오른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송사할 빙거를 찾으려 하여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가 엿보니 예수께서 저희 생각을 아시고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한가운데 서라 하시니 저가 일어나 서거늘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묻노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멸하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며 무리를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저가 그리하매 그 손이 회복된지라

     

     

    하나님의 의로운 오른 손, 그러나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서 우리가 내밀 수 있는 손은 온전한 손이 아닌 마른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아말렉 사람, 다윗 앞에 나아갈 때 온전한 손을 내밀려고 자신이 사울을 죽였다고, 그 면류관도 가져왔다고 합니다. 자기 온전한 것을 들고 나오니까 망하였습니다. 은혜 입은 내가 들려있고 하나님을 경험한 내가 들려 있으면 사무엘하 1장에 나오는 아말렉 소년의 망하는 길로 가게 됩니다. 교회의 소리도, 책망의 소리도 듣지 않고 말 귀를 못 알아 듣습니다. 영과 혼이 섞여서 그냥 가는 세계가 아닙니다. 분명하게 찔러 쪼개져야만 신앙도, 복음도 변질되지 않고 온전한 믿음을 지켜 나갈 수 있습니다. 오늘 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에 영적인 세계에서 대충 신앙을 하기 때문에 깊이 사고를 하고 세밀하게 나누는 것을 싫어합니다. 사람들의 사고 방식을 사단이 바꾸고 있습니다.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이 몇 회 방영을 할 것인지 구상을 합니다. 최장수 드라마 전원일기, 아이가 자라서 클 때까지 계속해서 출연을 시켰습니다. 대역이 필요 없습니다. 그런데 요즘 그런 드라마가 나오면 보지 않습니다. 빨리 전개되고 진행되는 것을 좋아하지 깊이 생각하고 찾아 보는 것을 싫어합니다. 영적 세계는 대충 대충 신앙을 하면 결국 사울의 면류관을 지고 망하는 길로 갑니다. 경건치 아니한 내가 보여지면 되도 않은 신앙을 한 자신을 보게 될 것입니다.

     

     

    작년 서울 대전도 집회를 하면서 다른 나라의 목사님들을 초청해서 하면 좋겠다 하셨습니다. 해외에 유명한 목사님이 오셔서 함께 하면서 마음을 열고 목사님을 초청하고 엄청난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왜 진작에 우리가 이렇게 하지 못했을까? 경건치 아니한 우리가 보여집니다. 하나님의 은혜, 역사, 믿음으로 했다가 아니라 경건치 아니한 내가 보여집니다.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구원 간증을 하면 모두가 한 결 같이 그 간증 속에 경건치 아니한 내가 있고 의롭다 하신 하나님이 있습니다. 경건치 아니한 내가 빠져 버리면 이는 가짜입니다. 신앙 간증도 그렇습니다. 우리 손에 무엇이 들려 있어야 합니까? 경건치 아니한 내가 있을 때 계속해서 자랄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충만하게 산다고 말할 수 있지만 좁은 틀과 한계 안에서 나름 신앙을 하며 어리석고 미련한 길을 갑니다. 연락하고 상합해 보면, 앞선 종과 주변의 종들과 연락하고 상합해 보면, 내가 얼마나 미련하고 어리석고 종을 무시하고 산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한계 안에 갇혀 있는 우리 모습을 보시며 목사님이 얼마나 갑갑해 하셨을까? 뒤로 물러나지 아니하고 부딪혀 보니까 너무 은혜롭게 되는 세계가 있습니다. 일을 하면서도, 은혜를 입으면서도, 주의 역사를 경험하면서도 경건치 아니한 내가 있으니까 또 다시 일을 하려면 종 앞에 나가서 연락하고 상합하면서 많은 복음의 진보와 역사를 가져 옵니다.

     

     

    오늘 여러분의 마음에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 구원간증처럼 신앙에서도 주의 역사하심 속에서 경건치 아니한 내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내 마음을 높일 수가 없습니다. 주님이 길을 열었고 주님이 은혜를 입혔기 때문입니다. 교만한 마음을 품지 않고 힘 있게 복음을 향하여 박 목사님이 달려가시는 것은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믿지 않고 경건치 아니한 나를 품고 살아가시기 때문입니다. 작은 차이처럼 보이지만 내가 은혜입고 믿음으로 산 것을 붙들고 있는 것과 경건치 아니한 나를 붙들고 있는 두 부류의 사람 속에서 늘 경건치 아니한 나를 이야기할 수 있는 복된 신앙을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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