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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성옥 | 2015.10.31 13:45 | 조회 6848

    2015년 10월 25일 주일오전말씀
    말씀: 삼상21:1~9


    자기를 부인한 뒤에 오는 십자가의 고난과 하나님의 영광


    신앙은 반드시 마음을 꺾어야 한다
    신앙을 하면서 우리 마음에 늘 문제가 되는 것이 내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를 때, 내가 원하는 것과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다를 때가 문제이고, 내 길이 하나님의 길과 다를 때 신앙의 문제가 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 하나님이 이끄시는 길이라면 신앙이 쉬울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이 내가 원치 아니하는 길로 이끌 때, 내가 가고 싶은 것이 있지만 하나님이 다른 것을 주시기에 신앙이 어려운 것입니다. 신앙은 내가 가고 싶은 대로, 하고 싶은 대로 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길과 뜻을 따라서 가야 합니다. 그렇기에 반드시 마음을 꺾어야 합니다. 마음을 꺾지 않는다는 것은 자기의 원함을 쫓아서 가는 길입니다.


    철저하게 우리의 유익을 구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당신의 뜻과 길대로 이끌어 가시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종교와 신앙의 차이,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 달라고 신에게 빕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내 필요에 따라서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신에게 빕니다. 이를 종교라 합니다. 죽은 신을 섬길 때 그렇게 섬기는 것이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길 때는 그분의 뜻이 어디에 있으며 그 길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고 따라서 가는 것이 신앙입니다. “원치 아니해도 억지로 그 길을 가야 합니까?” 그 질문의 답은 가야 합니다. 내가 원치 않고 싫어도 마음을 꺾고 그 길을 가야 합니다. 단순히 하나님이 살아 계시기 때문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는 그 분 뜻대로 섬겨야 한다는 법대로의 의미가 아니라 그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가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에는 우리가 아는 남녀 간의 사랑,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단순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사랑과 다르게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사랑, 철저히 지켜지며 변치 않는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은 당신의 유익을 위해서 일하시지 않습니다.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이시기에 철저하게 우리의 유익을 구합니다. 마음을 꺾어야 하는 이유, 나를 위해서 이기 때문입니다. 왜 마음을 꺾고, 왜 하기싫은데 해야 하며, 억지로 그 길을 가야 하는 이유,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 말은 하나님 당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그 길을 가라고 합니다. 억지라도 그 길을 가 본 사람은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그 길을 가라 했구나’ 하고 깨닫게 됩니다. 마음을 한 번도 꺾지 않았던 사람, 교회 안에서의 법이 자기를 옭아매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 내가 원하는 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살게 해주면 결국 그 삶의 방향은 정해져 있습니다.


    내 마음대로 살도록 두면 결국 폐인이 될 뿐  
    러시아에서 마약을 단속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마약은 조금 가지고 있고, 흔적이 있고, 지금 하지 않았더라도 드러나게 되면 범죄자가 됩니다. 러시아는 땅이 넓어 통제가 되지 않고 단속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마약을 단속기준 일정량 이상을 가지고 있어야 단속 대상이 됩니다. 반대로 중국도 땅이 넓은데 철저하게 마약 단속을 하고 마약 사법은 사형을 시킵니다. 러시아의 한 동네 전체가 마약 환자인 경우가 많습니다. 할아버지부터 어린아이에까지 마약환자입니다. 육체의 욕구는 끝이 없기 때문에 마음대로 살도록 내어 버려두면 결국 폐인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할 때 가장 복된 길로 인도를 합니다. 마음을 꺾고 그 길을 가보면, 나중에 그 길을 즐기게 되고 하나님이 인도한 그 길을 만족스럽게 여깁니다. 지난날을 돌아보며 어리석고 미련한 삶이었던 것을 깨닫게 됩니다. 마인드 강사 훈련을 받았던 분들 중에 억지로 떠밀려서 분위기에 밀려 받으셨던 분도 계시겠지만 지금은 정말 받기를 잘 했구나 싶을 것입니다. 가게 문을 닫고서라도 내 인생 중에 꼭 받을 가치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죽순 껍데기와 같은 쓸모없는 내 생각은 버려야 
    마인드, 사람의 마음이 길, 그 길과 설계도를 바꾸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길과 인생이 달라지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보면 마음의 길이 잘못 나 있는 것을 봅니다. 정상적인 생각을 가지고 버릴 것을 버리는 않고 많은 것들이 섞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 죽순을 좋아합니까? 제가 진해에 있을 때 예배당 뒷산에 굵직굵직한 대나무들이 있어 봄에 대나무 숲에서 죽순을 찾았으나 하나도 없었습니다. 물어보니까 대나무 죽순은 봄에 다른 나무가 새싹을 필 때 죽순이 나는 것이 아니라 한참 후에 난다고 해서 했습니다. 봄이 다 지나고 가보니까 죽순들이 많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자루를 가지고 가서 많은 죽순을 땄습니다. 너무 기분이 좋았습니다. 한 자루를 들고 따서 교회까지 힘들게 왔습니다. 나중에 보니까 죽순을 그렇게 가지고 오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죽순을 따서 그 자리에서 껍데기를 까서 알맹이만 가지고 오면 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의 생각도 그렇습니다. 쓸데없는 생각들, 필요 없는 생각들을 다 끌어안고 살아갑니다. 버릴 것은 버려야 하는데 여러분 마음에 하나님이 말씀에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 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내가 원하고, 내가 바라는 것을 부인하고 마음을 꺾어야 하며 억지로 해야 하는가? 자기가 바라고 자기가 뜻하는 쓸모없는 것을 죽순의 껍데기처럼 가지고 살아갑니다. 쓸데없는 내 생각, 내가 원하는 것, 바라는 것을 덕지덕지 붙여서 살아갑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니라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16:24)


    잘 아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자세히 보면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라 했습니다. 자기 십자가, 이 말씀의 의미, 오늘은 자기를 부인하는 부분과 자기 십자가를 지고라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있고, 바라는 것이 있고, 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이것이 나를 망하게 하는 것이기에 나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좇는 것이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 예수님도 그 십자가 지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기쁘게 십자가를 지신 것이 아니라 억지로 그 십자가를 지웠습니다. “할 수 만 있다면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원해서 그 십자가를 지신 것이 아니라 억지로 그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억지로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싫고, 내 원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부인하는 것이 싫기에 십자가를 지어야 합니다. 내가 정말 원치 않지만, 내 마음이 싫지만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심지어 너무 고통스럽지만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길입니다. 꼭 굳이 그렇게 해야 하느냐? 신앙은 즐겁고 기쁘게 하는 것이 신앙이지 하기싫고 고통스러운데도 십자가를 지고 그 길을 가야 하느냐? 예수님이 그 십자가를 짊어지시고 가셨을 때, 어떤 결과가 주어졌습니까?


    죽기까지 복종하는 길을 가신 예수님이 받으시는 영광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2:5)


    이 마음이 어떤 마음입니까? 마태복음 16장 24절의 마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가신 길,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시고 그 길을 가셨습니다. 원치 아니했던 길, 고통스럽지만 십자가를 지고 그 길을 가셨습니다. 그 마음을 품으라고 합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6~8)


    복종이라는 것은 마음이 낮아 졌을 때 되는 것이지 마음이 높을 때 되지 않습니다. 마음이 높은 사람은 이해가 되어져야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오늘 날 유아 교육, 이해를 시키고 자발적으로 그 일을 하게끔 교육을 합니다. 서양의 아이들이 그렇게 교육이 되었습니다. 사회  생활을 하다 보면 모든 것이 납득이 가고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을 만날 때 그 일을 넘어가지 못합니다. 이 세상이 합리적이 곳이 없습니다. 수많은 비합리적인 일, 억울한 일을 만날 때 그 곳에서 주저 않고 포기하고 물러가면 자기만 손해가 납니다. 마음이 높으면 복종이 되지 않습니다. 이해가 안가도 따르고, 마음이 일어나지 않아도 따르는 것이 복종입니다. 예수님이 가신 길,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음이셨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2:9~11)


    하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영광스럽게 하려고 그 길을 가게 하셨습니다.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에게 우리가 원하고 바라는 길로 인도하지 않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부인하는 길로 가게 하는 이유 또한 같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영광스럽고 하려고 그 길을 가게 합니다. 부인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에 자기 십자가를 지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나를 복되게 하는 것입니다. 싫지만 억지라도 그 길을 가는 것입니다. 나도 내 십자가를 지어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이 길은 마음을 꺾지 않으면 안 되는 길입니다. 마음을 꺾지 않고 할 수 있는 길, 그리고 마음을 꺾어야만 갈 수 있는 두 길이 있다면 후자를 선택하십시오. 그 길이 복된 길이며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입니다.
     
    자기를 부인 할 필요가 없었던 와스디는 결국 폐위를 당하고

    “마시는 것도 규모가 있어 사람으로 억지로 하지 않게 하니 이는 왕이 모든 궁내 관리에게 명하여 각 사람으로 마음대로 하게 함이더라 왕후 와스디도 아하수에로 왕궁에서 부녀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푸니라”(에1:8~9)


    왕이 잔치를 벌여서 금잔으로 마시게 하고, 왕의 풍부한 대로 어주가 한이 없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자기를 부인해야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억지로 하는 것이 없고 자기 마음대로 하는 잔치, 사람들이 원하고 바라는 모습이지만 그 결과 왕후 와스디가 왕의 명령을 거절합니다. 자기 잔치를 벌여 놓고 그 잔치에서 나오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것 때문에 결국 와스디는 폐위를 당하게 됩니다. 와스디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불행하게 한 결과입니다. 신앙은 반드시 자기를 부인하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곳에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지고 가셨던 것처럼, 할 수 만 있다면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자기가 부인되지 않고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고 살아가는 삶의 결과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삶의 결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그 삶은 위로부터 오는 마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자기가 부인되지 않은 사람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그 마음을 받을 기능이 없어 자기 마음과 생각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마음이 약한 사람은 위로부터 오는 마음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마움이 약한 사람은 주의 말씀을 굳게 잡지 못한다
    두 가지 이유, 첫 번째 마음이 약하기 때문에 위로부터 오는 주님의 마음을 주면 금방 잡는 것처럼 보여도 조금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 말씀이, 그 마음이 그 마음에 없는 것을 봅니다. 주의 말씀을 굳게 잡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약하기 때문에 조금 시간이 지나면 주의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자기 생각만 가득 차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나의 안식일을 지키며 나를 기뻐하는 일을 선택하여 나의 언약을 굳게 잡는 고자들에게는 내가 내 집에서, 내 성 안에서 자녀보다 나은 기념물과 이름을 주며 영영한 이름을 주어 끊치지 않게 할 것이며”(사56:4~5)

    주의 마음 하나를 굳게 잡으면 이는 마치 금광에서 금맥을 잡은 것과 같습니다. 금맥을 찾는 사람, 그 맥을 찾아서 따라 들어갑니다. 그 맥을 따라가다 보면 많은 금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주의 마음을 따라가다 보면 주로부터 오는 귀한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마음이 약한 사람은 마음을 꺾지 못하여 말씀이 들어갈 수 없다
    두 번째, 마음이 약한 사람은 마음을 꺾지 않기 때문에 가인의 모습을 통해서 주의 뜻을 보여주고 말씀을 하여도 그 마음에 주의 말씀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억울하고 분한 마음만 있지 마음을 꺾지 않으니까 주의 말씀이 한 방울도 들어가지 않습니다. 수 없이 많은 태평양 바닷물 위에 떠 있는 알루미늄 캔 안으로 한 방울의 바닷물도 들어가지 않는 것처럼 마음이 약한 사람은 마음을 닫고 있기 때문에 그 마음에 적은 주의 마음 하나를 받아들이지 못해 변화가 없습니다. 창세기 4장에서 하나님과 가인이 그렇게 많은 말씀을 하지만 주의 말씀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습니다. 마음 약한 사람은 마음을 잘 열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받아줄 줄 모릅니다. 우리는 내가 분명히 옳다고 들고, 맞다는 생각이 들어도 나중에 가서 보면 틀렸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주의 말씀을 받아들이면 자신이 잘못되었고 틀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임금님의 혼인 잔치를 거절하였던 그들, 죽는 순간까지도 그들이 잘못된 줄 몰랐습니다. 이들의 마음에 왕의 마음을 받아 보았다면 진멸 당하기 전, 그 집에 재앙이 임하기 전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자기 마음을 꺾지 않고, 부인하지 않고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은 사람은 망한 후에  깨닫습니다. 마음을 꺾는 사람과 마음을 꺾지 않는 사람의 차이, 받아보고 난 후, 재앙이 임하기 전에 전자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만 마음을 꺾지 않는 사람은 재앙이 임하고 난 이후에 깨닫습니다.


    원치 않는 임금님의 혼인 잔치에 가는 것이 재앙을 막아주기 때문에   
    두 갈래 길, 두 사람이 똑같이 ‘원치 않는 임금님의 혼인 잔치에 가야 하는가?’를 생각하여도 그 길을 가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보면, 재앙이 임하기 전에 ‘이 길로 오기를 참 잘했구나’ 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재앙을 만나고 진멸을 당하는 사람들, 자기를 부인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불행을 막아주고, 재앙을 막아줄 수 있는 이 길을 몰라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재앙을 만나 불행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신앙은 원치 아니해도, 마음이 일어나지 않아도 재앙을 만나기 전에 ‘내가 이 길로 오기를 참 잘했구나’ 하고 깨달을 수 있습니다. 후회하며 재앙을 뒤집어쓰고 살아가는 삶, 미련한 자의 삶입니다. 마음이 일어나서 신앙을 하려고 하는 사람은 그 신앙의 폭이 아주 좁은 사람이며 그 마음은 점점 더 좁아질 것입니다.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고 했습니다. 부인한다고 해서 즐겁고 기쁜 것이 아니라 되려 십자가를 지어야 합니다. 때로 고통스럽고 고민스럽습니다. 그 길이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고 그 길로 갔을 때 재앙이 지나가고 임금님의 혼인 잔치에서 함께 즐길 수 있는 것입니다. 내 계획이 있어도 억지라도 이 십자가를 지고 갔을 때, 기쁜 것은 아니었고 즐거운 것은 아니었지만 임금님의 혼인 잔치에 오기를 거절했던 사람들에게 진노가 미치고 진멸을 당할 때 내 십자가를 진 것이 너무 잘 했구나 깨달을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무겁고 불편한 골리앗의 칼을 받은 다윗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도망할 때, 제사장에게서 떡과 골리앗의 칼을 얻습니다. 엘라 골짜기에서 죽인 골리앗의 칼, 다윗이 그 칼을 가지면서 이 같은 것이 또 없다며 기뻐했습니다.


    “제사장이 가로되 네가 엘라 골짜기에서 죽인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이 보자기에 싸여 에봇 뒤에 있으니 네가 그것을 가지려거든 가지라 여기는 그 밖에 다른 것이 없느니라 다윗이 가로되 그 같은 것이 또 없나니 내게 주소서”(삼상21:9)


    골리앗의 칼은 다윗에게 맞지 않는 칼입니다. 다윗의 덩치와 골리앗의 덩치가 다르기에 다윗에게는 무거운 칼이며 불편한 칼입니다. 처음 우리나라에 군인들이 쓰는 소총이 미군들이 쓰던 소총이었기에 한국 군인들에게 맞지 않았습니다. 한국형 소총, 한국 사람들의 체형이 맞도록 개발을 했습니다. 하물며 거인 골리앗이 마음 것 휘두르며 쓰던 칼이 다윗에게 맞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어느 칼보다도 골리앗의 칼을 달라고 했습니다. 단순한 무기로써의 칼이 아니라 그 칼 안에 담겨 있는 귀한 간증이 담겨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러 나갈 때, 모든 사람이 골리앗을 부담스럽게 여겨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다윗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여호와의 군대를 모욕하는 저 골리앗을 하나님이 치시겠다’는 위로부터 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두 가지의 마음, 어린 소년으로 골리앗 앞에 서 있는 다윗의 마음,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그 마음이 있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 앞에 나아갔다는 것은 자기를 부인했다는 것입니다.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저 골리앗을 대적할 수 있어?’ 자기 마음을 부인했을 때 그 마음이 기쁘고 즐거운 것이 아니라 부담스러웠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그 길로 나아갔습니다.


    주의 마음을 받아들인 다윗을 높이시는 하나님
    다윗이 골리앗의 칼을 보면서 골리앗 앞에 나아갔을 때, 내 생각과 판단을 부인하고 버리고 위로부터 오는 그 마음을 받아서 나아갔을 때, 내 인생이 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다윗을 높이시고 모든 이름 위에 다윗을 높이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마음에 주의 마음 하나 받아들인 것이 온 나라에 주님을 나를 높여 내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였습니다. 목동이었으며 보잘 것 없는 사람이었던 다윗을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셨습니다. 나를 복되게 하고 영광스럽게 하였습니다.


    십자가를 지는 고난을 통과했을 때
    다윗의 손에 들려 있는 골리앗의 칼이 무기로써 잘 만들어진 칼이 아니라 자기를 부인하고, 싫지만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갔을 때 하나님이 다윗을 영광스럽게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목동, 아무도 몰랐던 그의 이름을 높였습니다.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다윗의 마음에 그 간증, 나를 부인했던 그 간증,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 길을 갔을 때 하나님이 그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고 높이셨습니다. 지금 내 위치가 어떠하냐가 아니라 그 마음의 주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면 하나님이 영광스럽게 할 것을 다윗은 믿었습니다. 성경이 이야기하기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내 생각과 판단을 부인하면 내게 손해가 날 것 같습니다. 기쁘고 즐거운 것이 아니라 더 안 좋은 것으로 보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나를 부인함으로 인하여서 오는 손해, 어려움, 그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입니다. 나를 부인하는 길은 그 뒤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입니다. 부인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뒤의 십자가를 지어야 합니다. 십자가 고난의 쓴 잔, 그 십자가를 통과했을 때 예수님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고 그 이름 앞에 모든 무릎을 꿇게 하였습니다.


    십자가를 지지 않을 때 주의 일하심을 경험할 수 없다
    죽을 수도 있는 길, 어린 소년이 그 길을 가지 않아도 됩니다. 형들의 안부를 알아보기 위한 다윗의 목적, 그 길이 아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갔습니다. 부인만 하면 즐거워지고, 감사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기다리고 있기에 그 삶 속에 주의 일하심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 했습니다. 마음에서만 부인하고 하나님이 역사해 주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이 주고자 하시는 영광스러운 축복들을 맛보지 못합니다.


    부담, 어려움, 고통들을 지고 가는 신앙을 통해 복된 삶을 살기를 
    마인드 교육을 해 보니까 마음 약한 사람들이 시험을 본다고 하니까 다 도망을 갔습니다. 잘하고 못하고, 도전이라도 해 보아야 하는데 한 번이 아니라 열 번 이라도 해서 도전하면 되는데 마음이 약한 사람들이 도전하지 못하고 물러나게 됩니다. 부담, 어려움, 고통들을 지고 가는 것이 신앙입니다. 자기 마음에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 길을 가보니까 그 앞에 그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골리앗이 그 앞에 버티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동물원에 가서 본 기린과 야생의 기린은 정말 다르게 보입니다. 동물원의 기린은 큰 것이 아닙니다. 야생의 수컷 기린은 상상 이상으로 큽니다. 막상 가까이 가서 높은 나무 위의 새싹을 먹고 있는 기린, 너무 큽니다. 다윗이 골리앗 앞에 갔을 때 말로만 듣던 골리앗, 지금이라도 돌아서고 싶고, 도망하고 싶을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그 다윗을 비웃을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부담스럽지만, 도망가고 싶지만 그 길을 가 보았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가는 그 길, 우리 삶 속에 그 길이 길 수도 있고 짧을 수 도 있지만 마음 약한 사람들은 그 길을 가보지 못합니다. 마인드 3일 동안 그 길을 가 본 사람들은 좋았다고 말하지만 중간에 포기한 사람들은 힘들었다고 말합니다. 조금 힘들고, 조금 부담스러우면 그 십자가를 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다윗의 마음에 자기 생각이 있고 위로부터 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 자기 생각을 부인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골리앗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싫지만 십자가를 지고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에게 주었습니다. 원치 않고 싫은 길, 이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합니다. 다윗의 이름도, 예수님의 이름도 영광스럽게 한 것처럼 여러분의 이름도 영광스럽게 할 것이며 하나님이 준비한 복된 삶을 살아가실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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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7 [인천교회]김재홍 목사 주일말씀(2015/7/5) 이성옥 2015.07.10 9108
    116 [인천교회]김재홍 목사 주일말씀(2015/6/28) 이성옥 2015.07.10 8805
    115 [인천교회]김재홍 목사 주일말씀(2015/6/21) 이성옥 2015.06.25 9030
    114 [인천교회]김재홍 목사 주일말씀(2015/6/14) 이성옥 2015.06.19 8797
    113 [인천교회]김재홍 목사 주일말씀(2015/6/7) 이성옥 2015.06.14 8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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