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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성옥 | 2015.11.03 19:37 | 조회 6950

    2015년 11월 1일 주일오전말씀
    말씀: 에4:1~17


    나를 부인하는 삶으로 인도하는 종의 인도


    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복음의 역사를 보며
    이번 서울성경세미나가 다른 여느 때의 집회와 다르게 하나님이 많은 축복을 허락하셨습니다. 우리가 집회를 하는 중에서 해외에서 들려지는 소식을 들으면 너무 복되고 전 세계 곳곳에서 살아 움직이는 복음의 역사와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한 가지 일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복음의 일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요즘은 선교회 목회자가 전체 다 모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집회가 있고, 캠프가 있고, 해외로 나가는 목회자들이 여럿 있기에 전국 사역자가 다 모일 수가 없습니다. 태국, 인도, 해외 수양회, 성경세미나에 가시기에 빠지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만큼 우리가 복음의 일 앞에 힘 있게 달려 나가고 있고 주님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허락하신다는 마음이 듭니다. 지난 번 인도에 갔다 왔는데 한국에 앉아서 인도 선교사님들과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인도 대학 교수 분들에게 마인드 교육을 하기 위해 여러 가지 의논을 하며 주고받고 있습니다. 복되고 소망스러운 일들이 너무 많고 이번 서울성경세미나 기간 중에 일반 교회 목회자들을 초청했습니다. 일은 항상 시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발을 내딛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회 안에서 신앙을 배울 때 ‘이것이 얼마나 효과가 있고 잘 되겠나’가 아니라 발을 내딛는 것이 중요합니다. 발을 내딛고 나가보면 무엇이 잘못되었고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제일 답답한 사람이 발을 내딛지 않는 사람입니다. 무엇인가 제대로 갖추어서 발을 내딛어 보려고 합니다.

     

    영어를 못해도 떠벌리는 사람이 금방 배우듯이
    해외 단기 선교사들 가운데 유독 말을 배우지 못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 예를 들어 영어를 잘 할 것 같은데 실제 영어로 말을 잘 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대학교를 3학년, 4학년을 다니고 왔는데도 영어 한 마디도 못하는 것을 봅니다. 이 실력으로 안 되고 어느 정도 실력이 되어서 그 입을 열려고 하는데 1년이 지나도록 말을 배우지 못하고 돌아옵니다. 그와 반대로 영어를 하나도 하지 못해도 말을 떠벌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홍두호 형제, 인도에 갔는데 영어를 못해도 엄청 떠들었습니다. 저런 사람이 6개월만 있으면 영어를 금방 배울 것 같습니다. 인도를 가면서 비행기를 11번 탔습니다. 공항 검색대를 통과해야 하는데 홍 형제가 하는 모습을 가만히 쳐다보았습니다. 수하물 표를 달라고 하는데 “No problem! No problem!”, “문제없다”고 계속해서 이야기 하자 공항 검색관이 웃으면서 통과시켜 주었습니다. 신앙도 누가 빨리 배우느냐면 발을 빨리 내딛는 사람입니다.

     

    우리 교회는 전도사가 100명이나 있다
    우리가 지난 학기에 학생들에게 카카오톡으로 홍보를 하자고 했습니다. 방학 때는 홍보를 못하니까 그 때 SNS 상에서 홍보를 해 보자고 했습니다. 기적적으로 천명이 넘는 학생들의 카카오톡 아이디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 일을 안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훈련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일은 저질러보고 뛰어 보고 만들어 보아야 합니다. 전도사님들 때문에 일이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전도사님들이 있으면 전도사님들이 하겠지’ 하고 간사들이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아침 8시에 100여명 되는 조장모임을 가졌습니다. 보통 오후에, 아니면 저녁 예배 마치고 모임을 가졌는데 오늘 특별히 8시에 오라고 했습니다. 임원 모임을 늘 9시에 가졌는데 마치고 나면 늘 바쁘기에 아침 8시에 모였습니다. 저는 밖에 나가서 다른 사역자님들에게 우리 교회 전도사가 100명이나 있다고 말합니다. 이번에 사역자 이동이 있어서 최용석 전도사님이 이동을 합니다. 다른 지역 교회에서는 부사역자들이 빠져 나가면 ‘아이고, 우리 교회 부사역자가 빠져나가면 어떻게 하나’ 하는데 저는 속으로 ‘우리 교회는 100명 전도사가 있는데’ 하고 속으로 웃습니다.

     

    남방으로 향해 가던 마음을 가나안으로 
    우리 교회 사역자가 있건 없건, “우리 교회 조장들, 전도사가 100명이고 조금 지나면 목사가 100명입니다” 하고 믿음으로 말할 날이 올 것입니다. 조장들이 다 전도사인데 목사가 되면 지금 조장이 아닌 분들은 다 전도사가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발을 내딛어 봐야 합니다. A라는 지점에서 B라는 지점에 가보면 A라는 지점에서 볼 수 없었던 B라는 세계를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기근을 만나서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기근을 만나서 애굽으로 내려간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 삶의 방향이 남방으로 향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도 다섯 개 교회가 통합되다 보니까 점점 남방으로 갔습니다. 쉽게 주일 예배를 빠지는 것을 봅니다. 점점 남방으로 가는 마음이 형성 되어져 갑니다. 십일조, 형편이 되면 하고 형편이 안 되면 안 해도 되고, 결국 그 마음이 세상으로 향하게 됩니다. 조장들이 섬기고 마음을 쓰면 그 방향을 남방에서 가나안으로 향할 수 있습니다. 오늘 8시까지 오라고 해 놓고 몇 명이나 오겠나 싶었는데 거의 모든 조장들이 왔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생전 8시까지 오지 않고, 10시까지 오라고 해도 지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다 모여서 찬송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너무 감사하고 행복했습니다. 우리 교회에 이렇게 교회의 일들 앞에 함께 하는 이렇게 많은 형제자매들이 있었습니다. 내 마음에 형제자매들을 전도사로 믿으니까 감사했고 이제는 목사로 믿겠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이기에 하나님이 이렇게 만들어 가실 것입니다.

     

    한국 교회를 다 얻게 하실 소망
    우리는 손을순 모친님의 간증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오래 살다 와서 말도 서투셨지만 하나님이 그 분을 섬기니까 어느 목회자 분보다도 더 힘 있게 복음에 쓰임을 받다 주님 편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여러분들도 이런 삶을 사시면 얼마나 복되겠습니까? 내 삶을 가장 복되게 만들고 가장 행복하게 만들어 줍니다. 일반 교회 목회자들이 설 자리가 없습니다. 교회는 점점 줄어들고 신학생들은 계속 배출이 되고 있고, “박 목사님이 하시는 것을 보니까 하는 일마다 잘되었다”고 어느 일반 목회자가 이야기를 했습니다. 미국, 500석 되는 큰 예배당에 젊은 사람들은 하나도 없고 할아버지, 할머니들 15명이 앉아 있습니다. 일반교회 목회자들이 미국 칸타타에 와 보니까 칸타타뿐만 아니라 그 일에 참여 하고 있는 스텝들을 보면서 너무 부러워  했습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하냐고?” 물었고 박 목사님께서 “구원을 받고 복음을 전하면 된다”고 하니까 일반 목회자들이 박 목사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확실하게 못 받고 복음을 전해주지 못하니까 그렇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구원 안 받은 목사님들은 아무리 해도 안 되었습니다. 칸타타 공연을 보면서 많은 젊은이들이 온 마음으로 일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동양인들이 이런 일들을 하는 것을 보고 순수 백인인 자기들은 안 되는데, 그 동안 무시하던 유색인종임에도 자기들이 못하는 일들을 보면서 마음을 꺾고 우리와 교류가 되는 것을 봅니다. 한국 교회도 소망이 보입니다. 한국 교회 목회자들이 목회가 안 되는 것이 너무 어려운데 미국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았습니다. 이번에 7명이지만 다음에 30명, 그리고 100명이 되고, 하나님이 한국 교회를 다 얻게 하실 것이 너무 소망스럽습니다.

     

    새로운 주의 일 앞에 반드시 넘어야 할 것은 ‘나’
    이런 일들을 해 나가면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새로운 주의 역사 앞에 나가는데 늘 방해 되는 것이 우리 자신입니다. 새로운 일들을 하려고 하면 늘 가로 막는 것이 우리 자신입니다. 반드시 넘어야 할 것이 자기 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기를 넘지 못하기 때문에 새로운 주의 일 앞에, 주의 역사를 맛보지 못합니다. 구원의 기쁨으로, 교회를 섬겨야 한다는 깨달음으로 살아 와도 결국 한계가 오는 것은 자기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주의 일을 하려면 늘 가로막는 것이 “나” 라는 사람입니다. 박 목사님께서 성경 공부를 하자고 했을 때 많은 교회들이 넘지 못했습니다. 한계 안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왜 성경 공부를 다 해야지,’ 그 말씀 하나가 우리를 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우리 교회도 수백 군데 성경 공부를 했습니다. 천 군데가 넘도록 할 수 있었던 것이 전에는 우리도 넘지 못했습니다. 언제든지 우리는 틈만 나면 성경공부, 가정성경세미나를 언제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을 전도사고, 목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일들 앞에 가는데 있어서 가로막고 있는 산, 바로 “자기”라는 산입니다. 자신을 넘지 못하면 새로운 영의 세계 속에 못 가는데 이것을 어떻게 넘어야 합니까? 성령의 인도로 넘어야 합니다. 문제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잘 넘을 수 있으면 괜찮지만 성령의 인도를 잘 못 받고 넘지 못하기에 앞선 종의 인도가 필요합니다. 제 자신도 말씀을 받고 듣는다 하지만 나를 넘어서지는 못합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습니다. 우리 자신을 넘고 나니까 지금은 천 군데가 넘는 곳에서 성경공부를 하고 가정 집회를 해왔습니다. 우리 자신을 넘어설 때 주의 일을 하는 영역이 있습니다.

     

    자신을 넘어서지 않으면 자기 한계 안에 머물러 살 수 밖에 없고
    우리가 또한 양적으로 크게 성장케 하시겠다는 말씀을 받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시 그 일을 가로막는 것은 우리 자신들이었습니다. 우리가 발을 내딛고 나갔을 때 수양회 때마다 매 100명씩 초청해 가자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 일을 이루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덕분에 실버대학이 생겼고, 사할린 교포들을 모셔갈 수 있었습니다. 실버대학이 우리로 그친 것이 아니라 지역마다 실버대학이 생기면서 실버캠프에 갔을 때 작년 보다 400명이 넘는 분들이 새롭게 오셨습니다. 우리 자신을 넘어서지 않으면 우리가 교회를 섬긴다고 하지만 늘 산 아래 제자들처럼 새로운 영의 인도와 축복도 누리지 못하고 자기 한계 안에 머물러 살 수 밖에 없습니다. 한 부분을 받으려고 보니까 우리 자신이 늘 가로막고 있는 것을 봅니다.

     

    큰 군대의 힘보다 더 큰 이방 여인들의 믿음
    요즘은 칸타타 후원회가 일어나고 그 일에 기쁨을 맛보고 있습니다. 좀 전에 이경숙 자매님이 간증한 것처럼 아내가 늘 쓸데없는 일을 하고 다니는 것처럼 보였는데 지역 유지들이 자매를 알고 있고 뜻 깊은 일들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 남편에게 들려졌습니다. 그럴 때 복음을 전해 주어야 합니다. 남편이 마음을 열 때 복음을 전해주어야 마음이 돌이켜 집니다. 큰 군대의 힘보다 더 큰 힘, 어느 군대가 솔로몬에게 쳐들어와서 산당을 만들게 하겠습니까? 이방 여인들이 솔로몬에게 산당을 짓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지은 솔로몬이 산당을 지은 것은 이방여인들이 마음을 돌이켰기 때문입니다. 자매님들이 믿지 않는 남편에 대해서도 믿음을 가지면 그 마음이 돌이켜지게 되어 있습니다.

     

    앞선 종의 인도를 통해서 성령의 인도를 받고
    성령의 인도, 우리 스스로가 잘못 받기 때문에 앞선 종의 인도가 필요합니다. 그 인도를 받아서 가보면 그 말씀 안에 하나님의 뜻, 길, 계획이 있다는 사실을 믿으면 내 눈에 보이는 것을 부인하고 갈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고 했습니다. 먼저 나를 부인하는 부분에 있어서 “나도 부인한다고 했는데 왜 내 삶에 변화가 없느냐?”는 부분에 오늘 답을 찾아 갈 것이고 두 번째 자기를 신뢰하는 마음이 자기를 망하게 하기 때문에 그 마음을 버려야 한다는 말씀을 수 없이 들었을 것입니다. 이제는 여러분들이 퍼즐 조각을 하나하나 맞추어서 살펴보면, 하나씩 따로 떼어 놓고 볼 때는 보이지 않았던 부분이 맞추어 지면서 보이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내 소리를 거절하지 못하는 것은 나를 부인한 것이 아니다
    첫 번째, 자기를 부인한다고 했는데 왜 변화가 없을까? 그 이유는 자기를 부인한다고 하면서 여전히 자기를 믿고 있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를 부인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그 마음속에 자기를 믿기 때문에 내 속에서 올라오는 소리를 듣고 살아가며 그 소리를 거부하거나 거절하지 못합니다. “나도 꺾을 만큼 꺾어 보았다”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올라오는 소리를 거부하거나 거절할 수 있었습니까? 옛날엔 고된 시집살이를 했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도저히 못살겠다 싶어서 친정에 가면 친정에서 받아주지 않고 출가외인이라 해서 돌려보내었습니다. 돌아서서 마음 아파 눈물을 훔칠지언정 냉정하게 거절했습니다. 여러분이 여러분 속에서 올라오는 소리, 마치 시집갔던 딸이 돌아오면 냉정하게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주기에 신앙이 안 되고 해결이 안 되는 이유입니다. 마음을 꺾었는데, 또 마음을 꺾으라고 하면 지겹습니다. 내가 몇 년 째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왜 변화가 없습니까? 하나님의 역사도, 하나님이 문제를 해결하고 이끄는 손길이 없는 이유, 여러분 속에서 올라오는 소리를 냉정하게 거절하고 거부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부인했느냐, 안 했느냐는 것은 여러분 속에서 올라오는 소리를 거부하고 있느냐, 쳐 내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를 못 쳐내는 것은 자기를 부인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딸이 시집을 가서 고된 시집살이를 하다 돌아오면 밥이라도 한 끼 해 먹이고 하루 밤 재워서 돌려보내겠습니까? 가슴이 아파도 냉정하게 돌려보내어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라고 지난주에 말씀을 전했습니다. 친정 엄마가 딸을 받아 주고 싶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냉정하게 돌려  보냅니까? 가슴이 아프지만, 정말 안타깝고 애타는 마음이 들어도 거절을 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 생각 속에 올라오는 것을 냉정하게 거절하고 받아 쳐야 합니다. 사단의 소리, 마귀의 소리로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냉정하게 딸을 돌려보내면 시댁과 친정의 사이가 가까워지지만 그렇지 않으면 원수가 됩니다. 자기 마음을 받아주는 사람은 교회가 불편해 지고, 종이 불편해 집니다. 자기 생각, 자기 판단을 냉정하게 쳐 내고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이 자기를 부인한 사람입니다.

     

    나에게서 올라오는 소리를 받아주어 판단과 불신을 가지고 
    자기를 신뢰하고 있고, 내가 옳다고,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를 부인하지 못합니다. 자기를 신뢰하는 마음을 버리라는 말은 자기를 부인한다고 하면서 한편 자기를 신뢰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다 보니까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또 자기에게서 올라오는 소리를 받아주고 놀아주고 판단하고 불신하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요즘 친정엄마들처럼 시집 간 딸이 시댁, 남편에 대해서 불평하면 짝짝꿍이 되어서 같이 불신하고 불평합니다. 때로 부모들이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선생님과 학교에 대해서 항의를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참 어리석습니다. 이는 아이들의 인생을 다 망쳐 놓는 결과를 낳습니다. 어떤 학생이 제게 상담을 하러 왔습니다. 자기는 착한 학생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네 앞머리만 보면 안다”고 하니까 그 학생이 웃었습니다. 제일 속이기가 쉬운 사람이 부모입니다. 그렇기에 아이들의 말을 쳐내 주어야 합니다. 말이 많은 요즘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꾸짖을 때는 애매한 것이 아닌 확실한 것만을 꾸짖습니다. 그런데도 부모들이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선생님이 잘못된 것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자녀의 말을 쳐내야 합니다. 이것이 아이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믿지 않는 사람은 올라오는 생각과 판단을 쳐낼 수 있다
    어느 것이 부담스러운 것인가? 우리 육신은 항상 영적인 것에 대해서 부담스러운 마음을 가지기 때문에 어느 것이 더 부담스러운 것이냐를 따라가면 그것이 영적인 길입니다. 육신의 소리는 성령의 소리를 거스르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믿지 아니하는 사람은 자기 속에서 올라오는 생각과 판단을 쳐 낼 수 있습니다. 시댁에서 쫓겨 온 딸, 학교에서 꾸지람을 들은 학생 이야기를 했는데 부모들의 마음은 어디로 기울겠습니까? 자녀를 사랑하지만 딸을 위한다면, 학생을 위한다면 결국 그 자녀들을 위해서 쳐 내야 합니다. 지금 누가 그렇게 살겠느냐 만은 영적으로는 반드시 내 생각을 냉정하게 쳐 내야 합니다.

     

    생각을 쳐내지 못하는 에스더에게 필요한 모르드개
    오늘 에스더 성경을 보면 에스더가 그 동안 자기를 부인하는 삶을 살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자기 속에서 올라오는 생각을 에스더가 주장하고 있습니다. 모르드개가 왕 앞에 나가라고 합니다. 에스더의 마음에 왕 앞에 못 나간 지 30일인데 부름을 받지 않고 나가면 죽이는 법이기에 자기 속에서 올라오는 생각을 쳐 내지 못했습니다. 성령의 인도로 안 되기 때문에 모르드개라는 종이 필요했습니다. 모르드개가 그 일을 해 주었습니다.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에4:14)

     

    부인한 사람은 자기 속에서 올라오는 생각을 쳐낸 사람입니다. 자기를 신뢰하기 때문에 부인한 자가 되지 못합니다. 여러분 자신에 대해서도 내 속에 올라오는 생각이 사단의 생각이며 마귀의 음성으로 영의 일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자기 생각을 쳐 내면 내가 부인되어지면서 말씀이 들려지고, 말씀이 받아지고, 모르드개의 말이 에스더에게 남아 일을 하기 시작하는 것을 봅니다. 자기 생각을 쳐 내지 못하기에 갈등, 불평, 불만, 불신이 있어 말씀이 그 마음에 자리를 잡지 못합니다. 에스더의 생각이 있어 모르드개의 말을 따르지 않으면 그 마음에 갈등, 불신이 있어 왕 앞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원치 아니하는 길,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시간이 에스더에게 있습니다.

     

    자기가 부인된 사람에게만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삶이 있다

    “에스더가 명하여 모르드개에게 회답하되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에4:15~16)

     

    자기를 부인한 사람이 십자가를 지고 가는 모습입니다. 자기를 부인하려고 해도 안 되고, 마음을 꺾어 보려고 해도 안 꺾여 지는 사람, 자기를 신뢰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기를 신뢰하기 때문에 죽어도 그 마음을 꺾지 아니합니다. 사람은 잘못되었을 때 그 마음을 꺾지 않고 마치 바이러스가 변종 하듯이 늘 그 마음을 바꾸며 끝까지 망하는 길로 갑니다. 자기를 신뢰하는 사람은 절대로 마음을 꺾지 못하고 그 생각을 쳐내지 못합니다. 아이가 학교에 갔다 와서 선생님에 대한 고자질을 하면 그 말을 쳐내지 못하고 그 선생을 탓합니다. 선생님에 대해서 항의하고 찾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그 생각을 쳐내지 못합니다. 어리석은 부모들이 자기가 판단하고 들어 보고 선생에 대해 불평하고 불만을 토하고 항의를 합니다. 아이를 신뢰하니까 그 속에서 들려지는 소리를 쳐 내지 못한 결과입니다. 똑같습니다. 여러분 속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쳐내지 못하는 것은 자기를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절대로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갈 수 없습니다. 이 십자가를 질 수 있는 사람은 자기가 부인된 사람만이 질 수 있습니다. 이는 말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말을 알아 볼 것이 아니라 그 삶 속에서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삶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이름을 높이고 이들의 삶을 영광스럽게 한 이유는 자기가 부인된 삶을 살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삶을 가장 영광스러운 삶으로 바꾸시고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지 않음과 같이”, 내가 나를 부인하고 내 생각을 쳐 내고 가보면 새로운 일들이 열려져 있습니다. 너무 재미있습니다. 인도에 하이데라바드는 한 번도 들어 보지도 못한 도시이지만 목사님의 말씀 하나를 가지고 가보니까 그 곳에 열린 문이 있었습니다. 요즘 인도와 매일 연락하면서 새로운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인도를 자주 가야 하기 때문에 비행기 직항 편을 알아보고 있고 하나님이 새로운 일들을 열어 가시는 것에 소망을 가집니다. 언제까지 여러분 속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받아주면서 자기를 사랑하며 살겠습니까? 이는 망하는 길입니다. 가정에서, 사회에서, 더더욱 교회 안에서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조효남 형제, 누구보다 가정을 사랑하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리라고 결혼하기 전부터 그 마음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내가 늘 고통하며 힘들어 하고 신앙만 안 되는 것이 아니라 가정생활도 힘들어 했습니다. “전에 남편이 아니라”고 간증하는 자매의 이야기 속에  전에는 너무 힘들었는데 그 말 한마디에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대부분 부부의 삶이 신혼에서 참깨가 들깨로, 들깨가 모래로, 모래가 자갈로 바뀌어 갑니다. 절대 자기 가정을 자기가 지킬 수 없습니다. 내가 부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가정에서, 사회에서도 행복해 질 수 없습니다. 에스더가 자기가 부인되지 않고 이 나라에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계속해서 하만의 공격 속에서 어려움을 당하며 살아야 하지만 자기가 버려지고 부인되니까 하만의 권세가 꺾이고 모든 무릎과 권세가 그 앞에 엎드려 졌습니다. 모르드개의 말이 에스더에게 들어가려면 에스더 자신이 부인되어져야 합니다. 

     

    오늘 여러분의 마음속에 나를 부인한다고 하고 꺾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변화가 없었다면 나를 신뢰하고 있는 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을 믿고 있고 여러분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육신에서 올라오는 소리를 쳐내지 못하기에 갈등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내 속에서 올라오는 소리를 쳐내는 삶이 나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삶입니다. 그 삶을 가장 영광스러운 삶으로 하나님이 바꿉니다. 하나님이 이런 길을 인도하고 있습니다. 내 속에 올라오는 소리를 무시하지 못하면, 교회의 소리를 무시하고, 성령의 소리를 무시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오늘 여러분이 어느 길을 갈 것입니까? 냉정하게 생각을 해 보십시오. 성령의 음성, 교회의 음성, 종의 음성을 무시하고 거부하고 사는데 그 삶 속에 무슨 복이 있겠습니까? 내 생각과 내 판단을 무시한다는 것은 성령과 교회와 종의 음성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나를 부인한다는 것은 내 생각을 무시하고 성령과 교회와 종의 음성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기쁘고 즐거운 것이 아닙니다. 망할 것 같고, 두렵고, 부담스럽고 어렵습니다. 그래서 밤낮 삼 일을 금식하고 에스더는 왕 앞에 나아갔습니다. 나를 부인하고 나면 복이 왕창 주어지고 문제가 해결되고 기쁨이 넘쳐나는 것이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갔을 때에야 비로서 그 뒤에 복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모습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간다는 것은 원치 않고 가기 싫고 너무 부담스러웠기에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겠다”고 말합니다.

     

    영적으로 성장한다는 것
    영적으로 어린 사람은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삶을 살 줄 모릅니다. 부인하고 나니까 더욱 힘듭니다. 영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삶 뒤에는 반드시 영광과 축복이 주어집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에스더의 삶을 복되게 했습니까? 내 자신을 부인하고 내 속에서 올라오는 소리를 거절하고 내 판단, 내 생각을 믿지 않고 그 다음 가야 할 길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그 뒤에 하나님의 영광이, 그 뒤에 하나님의 역사가 주어집니다. 항상 얕은 물가에 머물러 있지 말고 여러분 자신을 던져 보십시오. 하나님이 얼마나 영광스럽게 하며 복되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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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천교회]김재홍 목사 주일말씀(2015/11/01) 이성옥 2015.11.03 6951
    131 [인천교회]김재홍 목사 주일말씀(2015/10/25) 이성옥 2015.10.31 6850
    130 [인천교회]김재홍 목사 주일말씀(2015/10/18) 이성옥 2015.10.22 7605
    129 [인천교회]김재홍 목사 주일말씀(2015/10/4) 이성옥 2015.10.04 7785
    128 [인천교회]김재홍 목사 주일말씀(2015/9/20) 이성옥 2015.09.24 8204
    127 [인천교회]김재홍 목사 주일말씀(2015/9/13) 이성옥 2015.09.17 8219
    126 [인천교회]김재홍 목사 주일말씀(2015/9/6) 굿뉴경인 2015.09.09 9447
    125 [인천교회]김재홍 목사 주일말씀(2015/8/31) 이성옥 2015.09.02 8261
    124 [인천교회]김재홍 목사 주일말씀(2015/8/23) 이성옥 2015.08.26 8392
    123 [인천교회]김재홍 목사 주일말씀(2015/8/16) 이성옥 2015.08.21 8463
    122 [인천교회]김재홍 목사 주일말씀(2015/8/9) 이성옥 2015.08.12 8274
    121 [인천교회]김재홍 목사 주일말씀(2015/8/2) 이성옥 2015.08.06 8730
    120 [인천교회]김재홍 목사 주일말씀(2015/7/26) 이성옥 2015.07.31 8350
    119 [인천교회]김재홍 목사 주일말씀(2015/7/19) 이성옥 2015.07.24 7917
    118 [인천교회]김재홍 목사 주일말씀(2015/7/12) 이성옥 2015.07.16 8506
    117 [인천교회]김재홍 목사 주일말씀(2015/7/5) 이성옥 2015.07.10 9108
    116 [인천교회]김재홍 목사 주일말씀(2015/6/28) 이성옥 2015.07.10 8806
    115 [인천교회]김재홍 목사 주일말씀(2015/6/21) 이성옥 2015.06.25 9031
    114 [인천교회]김재홍 목사 주일말씀(2015/6/14) 이성옥 2015.06.19 8799
    113 [인천교회]김재홍 목사 주일말씀(2015/6/7) 이성옥 2015.06.14 8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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