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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성옥 | 2015.02.11 17:03 | 조회 11244

    2015년 2월 8일 주일오전말씀
    말씀: 민21:4~9

     

    마음의 길

     

    마음이 흘러가는 길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광야의 여정을 가면서 이들이 늘 한 것은 원망과 불평이었습니다. 출애굽의 과정, 물이 없어서, 먹을 것이 없어서.. 그리고 먹을 것을 주어도 고기가 없다고 불평을 하고, 대적 때문에 원망하고 불평하고…, 그들의 과정 속에 늘 원망과 불평 속에서 살았습니다. 다윗의 삶과 대조적인 것은 사울에게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기고 생명의 위협을 받고 쫓겨 다녔지만 그 마음의 시편은 여호와를 인하여 기뻐하고 감사하는 삶으로 이어집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길이 나 있습니다. 마음의 세계를 보면 마음이 흘러가는 길이 있습니다. 하늘의 비행기들이 날아가는 길, 항로가 있습니다. 비행기들이 정해진 항로로만 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고도가 있습니다. 비행기의 사고를 막을 수 있도록 모든 항로가 정해져 있습니다. 배가 운항하는 것도 마찬가집니다. 그 항로를 알면 앞으로 어디를 지나갈지를 예상할 수 있듯이 마음의 길도 저런 마음을 가지고 살면 어디로 통과하고 갈 것인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기차가 천안을 지나 몇 시 몇 분에 대전을 통과할 것인지를 분명히 알 수 있듯이 마음의 세계도 그러합니다. 이런 마음의 길을 가지고 어떤 삶을 살고 어떤 과정을 통과할 것인지가 정해져 있습니다.

     

    원망과 불평으로 마음의 길이 나 있는 사람    
    민 21:4-5 길로 인하여 하나님과 모세를 향해 원망을 합니다. 이들의 삶에 원망과 불평으로 그 마음의 길이 나 있기 때문에 쉽게 불평하고 원망을 합니다. 어느 대학생이 처음 캠프를 참석하였는데 막무가내로 집에 가겠다고 했습니다..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았습니다. 네가 듣고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기에 끝까지 참석해 보고 가라고 하는 교사의 말도, 팀장의 말도, 교장의 말도 들어가지 않기에 저에게 데리고 왔습니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고 자기가 생각한 것과 다르기에 가겠다고 고집하는 여학생, 갈 수 있는 것은 자유인데 나와 잠깐 이야기 하고 가라고 했습니다. 한 가지 물었습니다. 몇 칠 지낸 것도 아니고 잠깐 지냈는데 사람의 마음의 길이 있는데 원망하고 불평하는데 길이 나 있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쉽게 원망하고 불평하고… 아르바이트 해 본적이 있느냐고 했습니다. 만일 네가 아르바이트를 했으면 똑같이 이렇게 행동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 말하는 학생에게 앞으로 네 직장 생활도, 결혼 생활도, 그 인생 전부가 불행해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에서 잘못된 마음의 길을 가지고 나가든지, 여기에서 바로 잡든지 네가 선택하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으며 마음을 꺾고 배우겠다고 했습니다. 청소년들은 자기가 잘못되었구나 깨닫고 배워야겠다는 마음이 들면 그 마음을 꺾고 배우지만 어른들은 그것이 잘되어지지 않습니다. 이미 그 마음이 굳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길이 잘못 나 있으면 계속해서 그 길을 가게 됩니다.

     

    대학생들에게 이야기 해 준 마음의 길
    모세를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그들의 마음의 길이 그렇게 나 있습니다. 마음의 길이 잘못 나 있으면 절대로 결혼해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없다고 대학생들에게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말씀을 마치고 나니까 한 여학생이 와서 상담을 해 왔습니다. 이야기를 해 보고 나서 그 마음을 알기에 학생이 궁금한 부분에 마음의 세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금방 마음을 바꾸고 한 외국에서 온 여학생의 간증, 이 마음을 가지고 어느 누구와도 마음을 나눌 수 없고 고통스럽게 살 수 밖에 없구나 생각이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성경을 통해 진단 할 수 있는 마음의 세계
     의사가 엑스레이, MRI를 찍고 이야기를 해 줍니다. 마음의 세계를 진단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좋습니다. 마음의 세계를 어떻게 봐?라고 의문을 가지는 사람에게 성경을 통해서 볼 수 있다고 말합니다.. 남편이 구원받지 아니한 어느 자매에게 자매님이 남편의 구원을 가로 막고 있다고 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 삶의 어려움을 통해서, 일이 되지 않아서 그 마음이 낮아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영혼에 초첨이 맞추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온유한 자가 복이 있습니다. 온유한 심령을 가지고 있으면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들어 줍니다. 그 자매님의 남편은 온유한 심령을 가지고 있는데 자매님이 마음을 못 얻어서 남편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자매님 이렇게 살아왔죠? 목사님이 그것을 어떻게 알고 계십니까? 성경이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늘 위에 비행기가 날아간 다음에 비행기가 날아간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마치 구름처럼 비행기가 날아간 흔적을 눈으로 쫓다 보면 그 끝에 비행기가 있는 것을 봅니다. 마음의 세계도 그 흔적이 남아서 어느 길로 걸어 왔는지를 볼 수가 있습니다.

     

    먼저 마음의 길을 바꾸어야
    민수기 21장에서 모세를 향하여서 원망하고 불평한 것이 아니라 이미 그 마음에 길이 나 있습니다. 원망과 불평하는 쪽으로 길이 나 있어서 그 쪽으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원망과 불평의 소리가 끝이 나지 않습니다. 들짐승을 잡을 때, 올가미와 덫을 놓는 위치는 짐승이 지나 간 자리에 설치합니다. 마음의 길이 잘못 나 있는 사람은 어디에 가든지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구원을 받지 아니한 두 사람, 그 중 한 사람은 온 마음을 쏟아서 신앙을 했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늘 원망하고 불평하며 살았습니다. 그 둘 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전자의 사람은 그가 이전에 살아온 삶의 결과는 허탈하고 허무했습니다. 후자의 사람은 구원을 받고 나서 충만하였습니다. 신앙을 누가 잘 하겠습니까? 진리를 만나서 충만한 것처럼 보여도 그 삶 속에서 계속해서 원망하고 불평하며 살아가지만 충성하며 온 마음으로 삶을 살았던 사람은 신앙의 삶도 교회 안에서 마음을 쏟고 살아갑니다. 같은 방향으로 길이 나 있어도 평탄하게 길이 나 있는 사람이 있고 거칠고 울퉁 불퉁하게 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잘 하려고 애를 쓰기 전에 마음의 길을 바꾸어야 합니다. 원망할 조건이 있어서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길이 잘못 나 있어서 그러한 것을 발견해야 합니다. 이를 두려워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거역하고 대적하고 돌이키고, 또 다시 반복되는 삶… 쉽게 쉽게 원망하고 거스리고 대적하는 그 마음이 되어 버렸다는 것을 두려워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마음이 길이 잘못 나 있는 사람은 그 길을 바꾸지 않으면 아무리 자신이 잘해 보려고 해도 또 다시 원망하고 대적하는 길로 가게 됩니다.

     

    우리 마음에 불행의 길을 완성시키려는 사단 
     사단이 내 마음의 길을 닦고 있습니다. 쉽게 불평하고 원망하고 대적하고 거스리는 길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 길로 너무 쉽게 가 버립니다. 성북 쪽에 있으면서 서울로 들어오는 길이 너무 복잡했습니다. 밤 12가 넘도록 길이 막혔습니다. 길이 발달이 되지 않은 이유, 만일 전쟁이 나면 길을 방어하기 위함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마음의 길이 복된 쪽으로, 아님 오히려 불행한 쪽으로 마음이 길이 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마음의 길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에 돌이키면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이 마음이 이대로 흘러가면 사단은 이 길의 끝을 완성하고 싶어 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살다 보면 마음의 길을 다 내어 줍니다. 시온을 향하여 대로가 있지 않고 마음의 원망과 불평으로의 길이 만들어져 갑니다.

     

    마음의 길을 하나 바꾸면 복된 삶을 살 수 있는데
    부인 자매님이 주방에서 일을 하면서 쉽게 불평하고 원망하는 자매님, 자기 주관, 자기 고집대로 하는 사람이 신앙의 길 또한 마찬가지로 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단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갑니다. 원망과 불평하는 쪽으로… 하나님은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들이지 않았습니다. 갈렙과 여호수아만을 제외하고. 여러분 마음의 세계에도, 여러분의 삶에도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신 축복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준비를 해 놓으셨지만 마음이 길이 잘못 나 있어서 그 축복과 상관없는 길로 가는 것을 봅니다. 왜 삶이 어렵고 힘들고 어려운지 본인은 모르지만 그 마음의 길을 하나 바꾸면 복된 삶을 살 수 있을텐데… 점점 그 마음이 굳어져 가는 것을 봅니다. 굳어지고 익숙해져서 그 삶이 편안해 졌을 때, 더 이상 하나님의 축복이 예비되어져 있음에도 얻지 못하고 자기를 위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목적에 내가 드려지는 삶
    노아가 방주를 만들 때 쓰여진 나무가 잣나무입니다. 잣나무는 사시사철 푸르름을 자랑합니다. 잣나무가 곧게 치솟아 올라가면서 푸르름을 자랑하는데 방주에 쓰여진 잣나무는 찍혀진, 잘려진 잣나무입니다. 찍혀져서 그 밑둥이 잘리고 가지가 잘려 나가고 껍질이 벗겨지고 그 나무의 성질도 다 빼어내야만 방주에 쓰임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삶은, 여러분이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목적에 내 자신이 드려 졌을 때 그 삶이 가장 아름다운 삶입니다. 내가 원하는 부분에 하나님의 많은 도움이 있어서 많은 은혜를 입은 사람이 귀한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의 목적에 드려져서 쓰임을 받은 사람이 귀한 사람입니다. 두 부류의 신앙의 길, 내가 가는 길에 하나님이 돕고 역사하시고 은혜를 베풀기를 바라며 가는 사람, 자신의 목적에 하나님이 드려지는 삶이고 잘려진 잣나무처럼 하나님의 목적에 자신이 드려지는 삶이 있습니다. 내 인생의 목적에 잘려져서 하나님의 목적에 드려져야 합니다. 숲의 나무들은 경쟁을 하면서 자라갑니다. 나무들이 빽빽하면 하늘을 향하여 쭉쭉 뻗어 나갑니다. 많은 햇볕을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해 위로 자라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에 내 삶이 드려졌을 때 그 삶이 가장 아름답고 귀한 삶입니다.

     

    에스겔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
     겔 2:5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 가운데 선지자 있은 줄은 알찌니라

     겔 2:7 그들은 심히 패역한 자라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내 말로 고할찌어다

     에스겔 선지자의 목적, 악한 백성들에게 외쳐서 그들이 돌이키는 삶이 선지자의 목적이지만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명한 것은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 가운데 선지자가 있은 줄을 알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패역한 자들이기에 이미 하나님은 그들이 듣지 아니할 줄을 알고 계셨습니다. 자기 목적이 아닌 하나님의 목적 앞에 드려져서 쓰임 받은 삶, 이 삶이 귀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역사가 있고, 열매가 있어서 귀한 것이 아닙니다. ‘듣지도 않고 돌이키지도 않을 것인데 외치면 뭘 해?...’ 그러나 이 삶이 아름답고 고귀한 삶은 하나님의 목적에 그 자신이 드려졌기 때문입니다.

     

    ‘주님께 내 인생의 십일조를 드려보자’
    어느 날, 말라기 성경을 읽으면서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말씀을 읽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3:10)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당시에 학생이었고 십일조를 드릴 만한 돈도 없었습니다. 때론 차비도 없어서 교회까지 걸어가기도 했었고 가는 차비가 있어도 올 차비가 없어서 망설일 때도 있었습니다. 차비가 없어서 걸어올 때가 있었습니다. 주님 앞에 드릴 것이 없는데 내 인생의 십일조를 드려보자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직장을 다니며 일을 한다고 하면 30년 동안 일을 하고 3년을 주님께로 드리고 그렇게 인생의 십일조를 드려보자고 했습니다. 3년이라는 시간을 주님께 드리면, 드렸다고 하면 그 시간을 어디에 쓰더라고 그 시간 동안 쓰여진 돈에 대해서 내가 이러쿵 저러쿵 관여를 하지 않습니다. 내가 드린 십일조를 가지고 화장지를 왜 사냐고 물을 수 없습니다. 내가 드렸으면 어디에 쓰여지든 간에 복음에 쓰여지면 내가 관여를 하지 않는 것처럼 내 인생이 들여졌으면 내가 관여할 수 없었습니다. 

    대학교 2년을 마치고 군대를 가야 했는데 방위 6개월을 갔다 와야 했습니다. 빨리 갔다 오고 싶었는데 교회에서 대학교를 마치고 가라고 했습니다. 마음을 꺾고 군에 가지 않았습니다. 군대를 필한자만 취업이 가능하기 때문에 대학 3학년 때 군대를 가려고 했는데 교회는 또 대학을 마치고 가라 했습니다. 교회가 어디를 인도하고 무엇이라고 하든지 간에 내 인생의 십일조를 드리기로 했기에 그 말을 따랐습니다. 하나님이 그 마음을 따라서 내 인생에 복을 쌓아둘 곳이 없을 정도로 내 인생을 복되게 이끌어 주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대학 도중에 군대를 다녀왔으면 복음의 길 보다 취업하는 길로 갔을 것입니다. 국가 유공자였기 때문에 대기업에 들어갈 수 있는 보장이 되어져 있었습니다. 대학을 마치고 다니까 학기 중에는 우선 입영 혜택이 주어지지만 졸업을 하고 나니까 혜택을 받지 못하고 2월에 졸업을 해서 9월에 군대를 들어갔습니다. 그 시간 동안 교회 예배당에서 살았고 군대를 다녀와서 선교학교에 들어갔습니다. 내 삶을 주님 앞에 드렸을 때 내가 갈 수 없는 길을 가게 하셨습니다.

     

    내 원함에서 잘려져서 하나님의 뜻에 드려졌을 때 
    지난 월, 화, 수 3일 동안 사역자 사모님 마인드 교육을 하였습니다. 웬만한 공연들은 다 빼고 마인드 교육 프로그램만 구성을 해서 했는데 너무들 좋아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계속해서 내 인생에 하늘 문을 열고 복을 쌓을 곳이 없을 정도로 하나님이 쌓아 두셨습니다. 잘려진 잣나무처럼, 내 인생에서, 내 원함에서 잘려져서 하나님의 뜻에 드려졌을 때 내가 상상할 수 없는 길들을 하나님이 이루어 주셨습니다. 프랑스, 독일, 영국에서 집회와 마인드 교육을 하려고 합니다. 프랑스에 있는 박미가 선교사님, 예배당 한 쪽 구석, 허름한 방에서 예배당 생활을 하면 한 솥 밥을 먹고 살았습니다. 근간에 몽골 사람들이 연결되어져서 2~30명이 연결되어졌습니다. 하나님이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 주시는데 하나님이 여러분의 인생에도 그렇게 일을 하십니다.

     

    자기 목적을 가지고 사는 동안 일어나는 갈등과 고통
    내 인생의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 잘리지 않는 잣나무처럼 요압이 그러했습니다. 자기 속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고 살아갔습니다. 요압은 결국 대적자가 되었습니다. 야곱이 약속 안에 있는 사람이지만 자기 목적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라헬을 얻기 위해 7년, 그리고 또 다시 7년…, 그렇게 14년 동안 아내를 얻기 위하여 수고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아내로 인하여 고통하고 갈등하고 살았던 야곱, 하나님이 이미 그 아내를 예비해 놓았음에도 자기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에 그 삶이 드려져서 잘려진 잣나무처럼 살았다면 야곱이 험악한 세월을 살았다고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얻었냐, 못 얻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기 목적을 가지고 사는 동안 계속해서 갈등과 고통이 일어났습니다.

     

    원망과 불평의 근본은 마음이 약하기 때문 
    원망과 불평의 길, 마음의 길이 그렇게 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 뱀으로 인하여서 많은 사람들이 죽습니다.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자기 조건에 맞지 않기 때문에 길로 인하여서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물도, 양식도 아니고… 길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길로 인하여 백성들의 마음이 상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길로 인하여 그 마음이 상한 것이 아닙니다. 길로 인하여 마음이 상한 사람이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길 때문이 아니고 근본 그 마음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표면적으로 보았을 때는 그러해 보이지만 근본은 이들의 마음이 약하기에 불평하고 원망을 합니다. 구구절절한 이야기, 남편이 아내를 향하여, 아내가 남편을 향하여 원망하고 불평하는 소리, 누구 때문이 아니라 근본 마음이 약하기 때문이라고 말해줍니다. 그 근본을 모르면 자기 마음을 상하게 하는 사람에게 원망하지만 그 근본을 보아야 합니다. 가나안 땅을 보여주어도 그 땅을 악평을 합니다. 또 원망하고 불평을 합니다. 마음이 약해져서 오는 마음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저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합니다. 그들 마음에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믿음이 있을 때 어떤 형편과 문제 속에도 원망하고 불평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상하는 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누가 내 마음을 어렵게 하고 상하게 했기 때문이라고 말하지 마십시요. 그러면 평생 그 마음을 고치지 못합니다. 믿음을 가지면 그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원망하고 불평함으로 인해서 불 뱀이 왔고 그 불 뱀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길은 생명의 길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하므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민21:7)

     

    잘못했다고 뉘우치고 돌이키는 켜도 인도를 받지 않으면 또 다시 원망하고 불평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모세가 하나님 앞에 기도했을 때 그들이 원하는 길 말고 하나님이 이들을 위해 예비해 놓은 길이 있습니다. 뱀들이 떠나가지 않습니다. 놋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고 합니다. 어느 길이 더 좋은 길입니까? 백성이 구한 것은 이미 불 뱀에게 물린 자들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불 뱀이 떠나가도 불 뱀에게 물린 자들은 결국 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길은 생명의 길입니다. 뱀들이 떠나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놋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두고 이것을 쳐다본즉 살 수 있게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 뱀을 쳐다본즉 살더라”(민21:8~9)

     

    믿음으로 들어가는 문
     말도 안 되고 불가능 해 보이는 말입니다. 믿음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다고 했습니다. 믿음의 관문이 이렇습니다. 안될 것처럼 보이고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 길로 가야 됩니다. 믿음의 길을 가려고 하니까 안 될 것처럼 보이고 막막해 보이고 막연해 보입니다. 그 문으로 들어가면 됩니다. 될 것처럼 보이는 문으로 가지 마십시요.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그 문을 향해 믿음의 길을 갔습니다. 그 길로 발을 내딛고 가시면 됩니다. 믿음의 길은 될 성 싶은 길로 가는 것이 아니라 안 될 것처럼 보이는 그 방향이 믿음의 길입니다.

     

    다른 길이 없기 때문에 믿음의 길을 가는 것
    믿음이 잘 생겨지지 않아서 망설인다면, 그리고 그것이 어렵다고 생각한다면…, 하지만 그 길은 너무 쉽습니다. 부산에 일이 있어서 아침 일찍 KTX를 타고 볼일을 보고 점심을 먹고 KTX 타고 인천에 올라와서 저녁을 먹는 일은 쉽습니다. 차를 의지하고 기차를 의지한다는 것은 내가 걸어서 도저히 못 가기에 기차를 의지합니다. 그렇게 의지할 것을 찾습니다. 고속버스는 너무 시간이 촉박하기에 그 보다 빠른 KTX를 찾든지, 김포 공항에서 비행기 편을 찾든지 합니다. 믿음은 도저히 안 될 것처럼 보이고 불가능할 것처럼 보일 때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내가 내 방법으로 도저히 안 되기에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첫 번째 관문, 안될 것처럼 보이는 그 길이 믿음의 첫 관문입니다. 믿음의 길을 그렇습니다. 될 것처럼 보여서 그 길을 가는 것이 아닙니다. 불 뱀에게 물렸는데 다른 길이 없습니다.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지만 놋 뱀을 쳐다보는 그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다른 길이 없기에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는 것입니다. 이 길이 믿음의 길입니다. 믿음의 길을 갈 때 ‘야,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하는 그 마음이 아니라 ‘이 일이 어떻게 돼?’ 하는 그 마음이 향하는 길로 가야 합니다.

     

    십자가의 의미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 십자가의 의미를 정확히 깨달았을 때 우리의 죄가 양털 같이, 흰 눈과 같이 깨끗하게 씻어졌습니다. 늘 죄 있는 나를 바라볼 때는 죄인이었지만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을 보았을 때 우리의 죄가 온전히 씻겨졌습니다. 죄가 없는 의인이 되고 하나님과 거룩하게 되는 것은 내가 볼 때 불가능해 보였지만 그 길이 믿음을 가지는 길이었습니다. 도저히 안 될 것 같은 문제와 형편 앞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예수님을 바라보는 삶이 믿음의 삶입니다. 첫 번째 십자가의 의미는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씻어 놓으셨다는 것이고 두 번째 십자가의 의미는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시겠다는 의미입니다. 그 십자가에서 내 허물도, 내 연약함도 덮여지고 덮여지는 곳입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겠느뇨”(롬8:31)

     

    성경은 ‘쳐다본즉 살더라’ 하시고 
    나 같은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은혜와 은사를 주시겠는가? 그 마음에 답문하는 사람, 사단이 넣어준 생각으로 불뱀에게 물려 죽어가는 사람과 같습니다. 육은 육신대로 살고, 생각은  육신을 용납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신앙을 포기하고 적당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경은 “쳐다본즉 살더라” 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에게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에 드려지고 쓰일 때 그것이 가장 행복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목적을 위해서 하나님을 쓰지 말고 거기에서 잘려져서 하나님의 목적에 자신을 드리시면 하나님은 그 삶을 가장 복되게 살아가게 하실 것입니다. 내 인생에 하나님이 자기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은사로 주신 축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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