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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성옥 | 2015.04.21 10:12 | 조회 10501

    2015년 4월 19일 주일오전말씀
    말씀: 창33:12~17

     

    부담을 넘을 때 얻어지는 행복

     

    마음의 세계를 배우기 위한 기본은 ‘믿음’ 
    믿음을 배운다는 것은 인생의 그 어떤 것을 배우는 것보다도 중요합니다. 아이들이 처음에 태어나면 배워야할 것이 있습니다. 말을 배워야 하고 걸음마도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아이가 자라가면서 글도 배워야 합니다. 또한 계산하는 법도 배워야 합니다. 어른이 되면 운전하는 법도 배워야 하며 그 중에 마음의 세계도 배워야 합니다. 그렇게 마음을 나누고 마음을 꺾는 법도 배워야 합니다. 살아가면서 마음에 필요한 것이 믿음입니다. 마음을 꺾는 법, 마음의 세계에 관계된 것을 배우기 위해서 기본이 되는 것이 믿음입니다.

     

    아프리카의 환전상인들
    한국 사람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뛰어난 능력이 계산하는 능력입니다. 외국은 구구단을 외우지 않기에 계산하는 머리가 우리나라 사람보다 빨리 돌아가지 못합니다. 아프리카의 한 선교사님이 국경을 넘어가기 위해서 비자도 받고 그 나라의 돈으로 환전을 해야 했습니다. 저도 아프리카에서 살면서 느꼈던 것이 국경을 넘어 가는 장소에서 환전을 해 주는 환전 상인들이 너무 많습니다. 환전 상인들이 속이는 방법들이 다양한데 머리가 돌아가는 환전 상인을 보니까 버스 안에서 환전을 해 줍니다. 국경에 도착하기 전에 미리 버스를 타서 그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환전을 해 줍니다. 그러면 버스 안에 있는 손님은 자기 손님이 됩니다. 이 사람이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고 얼마 하면 환전을 바로 해 주는데 과연 잘 해줄까 싶었습니다. 환전하는 액수가 일정하면 바로 환전이 되는데 환전금액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대충 알아서 주면 받는 사람도 계산을 하지 못하기에 대충 그냥 받습니다. 일반 근로자들 일당이 5,000원 정도 하니까 우리 나라 돈으로 15,000원 되는 가장 큰 지폐를 가지고 물건을 사고 나서 꼭 거스름돈을 확인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거스름 돈을 작게 내어 줍니다. 그래서 이야기 하면 다시 더 주고, 버스에 타서 또 다시 확인해 보면 때론 맞는 금액보다 돈을 더 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환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적게 주었다고 이야기하면 더 얹어 가지고 줄 때도 있습니다. 반대로 세 장이 모자라다고 해서 세 장을 받았는데 나중에 보면 다섯 장이 더 모자란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중에 계산기를 가지고 정확히 환전을 해 주는 사람이 있어서 계산기 상으로는 정확히 맞았는데 적은 것 같아서 종이와 연필을 가지고 다시 계산해 보았습니다. 틀리기에 종이에 적은 것과 계산기와 차이가 있어서 말하니까 “너, 똑똑하네” 하고 돈을 더 주었습니다. 계산기가 정확한 것 같았어도 그 이유를 보니까 계산기의 자판 숫자 위치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 수법을 잘 사용하다가 유일하게 한국 선교사님에게 걸리게 되었습니다.

     

    믿음은 마음의 병을 이기게 하는 면역
    행복이라는 것은 마음에 담는 것이기에 믿음을 배우지 않으면 절대로 그 마음에 행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사람이 살면서 운동도 해 주어야 하고 잘 먹어야 하고 쉬어 주어여 하듯이, 마음에 믿음이 없는 사람은 평안이 없고 쉼이 없기에 늘 불안하고 답답하고 외로우며 고통스럽습니다. 믿음은 마치 마음의 면역과 같아서 모든 병을 다 이기고 쉴 수 있고 평안할 수 있습니다. 내게 찾아오는 어려움을 이겨 낼 수 있는 면역과 같습니다. 에이즈라는 것은 후천성 면역 결핍증인데 간혹 선천적으로 면역 결핍을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밖에 나가서 사람들과 접촉할 수 없고 활동 할 수 없이 마치 감옥과 같은 무균실에서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마음에 믿음이 없는 사람은 면역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마음에 어떤 문제가 오든 지간에 고통하고 염려하고 근심하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와도 극복이 되지 않고 조그마한 소리에도 그 마음이 쉽게 오해하고 마음을 닫고 염려하고 근심하며 살아갑니다. 마음에 믿음이 없으면 모든 병에 걸려들게 되어 있습니다.

     

    믿음 배우기를 쉽게 포기하는 사람들
    내 인생에 찾아오는 어려움과 문제에 대해서 극복할 수 없기 때문에 믿음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믿음을 배우려고 하다 안 되어지면 굉장히 쉽게 믿음을 포기해 버립니다. 믿음을 배우려고 하니까 잘 안 되더라 생각을 하며 뒤로 물러나 포기를 해 버립니다. 오늘 여러분의 마음 속에 믿음이라는 것은 3년, 5년이 걸리더라도 배워야 하는 것인데 잘 안된다고 포기해 버리면 평생 믿음 없이 살면서 갈등, 어려움, 형편, 그리고 내 속에 일어나는 문제들을 극복하지 못합니다. 제가 구원을 받고 난 이후에 굳이 믿음으로 살아야 되느냐, 신앙 생활을 해야 할 필요성을 잘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또 신앙 생활을 하면서 믿음을 배우려고 하니까 쉽지 않았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믿음의 삶을 배우지 못했다면 어찌할 뻔 했는가 싶습니다. 믿음의 삶은 정말 놀라운 삶입니다. 포기할 것이 아니라 믿음은 꼭 배워야 하며 믿음의 가치를 알아야 합니다. 외국에 가서 3년 안에 그 나라 말을 못 배우면 평생 못 배운다는 말이 있습니다. 3년을 살다보면 그 나라 말을 못 배워도 사는데 불편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나라 말을 배워야겠다는 답답함이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물러나지 말고 꼭 배워야 하는 믿음의 세계 
    우리 마음에 믿음에 대해서 포기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믿음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이제 와서 내가 믿음을 배울 수 있게나?’ ‘지금 믿음을 배운다고 되겠나?’ 하나님은 언제든지 내 마음에서 포기하지 않고 물러나지 않으면 믿음을 배울 수 있도록 해 놓았습니다. 말씀을 들으면 참 신기한 것이 종의 말씀을 들으며 느꼈던 것, 내 마음이 믿음에서 멀어져 있는 내 자신을 자주자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믿음으로 하지 않고 내 마음이 믿음이 아닌 곳에 가 있는 것을 보며 내 마음을 돌이키고 자주 옮겨야 했습니다. 이는 내 마음이 자주 믿음이 아닌 곳으로 흘러 떠내려 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내 마음에서 물러나야 할 것이 아니라 이 마음에 믿음의 세계를 꼭 배워야 합니다. 성경에서 모든 문제가, 모든 병들이 믿음 하나로 해결되는 것을 봅니다. 믿음 하나 있으니까 그 문제에서 금방 벗어나게 됩니다. 성경은 모든 것이 믿음으로 해결되는 것을 보여줍니다. 문제나 삶이나 형편 이전에 죄 문제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죄가 있든지, 어떤 문제가 있든지 믿음 하나 가지고 있을 때 믿음 하나로 해결되는 것처럼 믿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어집니다.

     

    믿음의 세계로 가기 위해 넘어야 하는 ‘부담’의 장벽 
    장벽, 옛날에 동독과 서독이 나누어져 있을 때, 동독에서 서독으로 가기 위해서는 베를린 장벽을 넘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장벽을 넘다가 희생되어져 죽은 자들의 묘가 있습니다. 믿음의 세계에 가려면 반드시 넘어야할 장벽이 있습니다. 육의 세계에서 영의 세계로 갈 때, 사단은 넘어가지 못하도록 장벽을 세워 놓았습니다. 그 장벽을 넘어야 영의 세계로 갈 수 있습니다. 그 장벽은 믿음의 세계로 갈 때에 가로 막고 있는, 부담이라는 장벽입니다. 믿음을 배워야 하며 믿음의 길을 가야 할 때, 그냥 가면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려고 하면 늘 부담이 있습니다. 아무 부담이 없이 믿음을 배우려고 하면 결코 믿음을 배울 수가 없습니다. 믿음을 배우기 위해서 부담 앞에 일어나는 갈등, 그 앞에서 물러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장학금도 받고 IYF 활동도 잘 하고   
    IYF 학생들과 상담을 하면, IYF 활동을 하려고 하면 공부를 못 하겠고 공부를 하려고 하면 IYF활동을 못하겠다는 학생, 하나 만 해야겠다며 갈등하는 학생들에게 둘 다 하라고 했습니다. 장학금을 타라고 하면 어리둥절해 합니다. 대학 같은 반 친구들 중에 대학에 들어와서 놀고 있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놀다가 공부를 하려고 하면 공부가 머리에 들어오지 않지만 IYF활동을 하면서 공부를 하면 공부가 되어지기에 함께 하면 둘 다 되어지는 것을 봅니다. 영적인 것을 줄이려고 하는 것보다 육신의 것을 줄이면 실제적으로 얻을 수 있는 시간이 많습니다. 시간이 없으니까 잠을 줄이고, 여유 있게 노는 시간을 줄이고, 점심 시간을 줄여서라도 영적 일을 하면 됩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잘 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방향을 잡아주면 장학금도 받고 IYF 활동도 잘 하는 것을 봅니다.

     

    야곱 생각 속에 있는 에서라는 장벽을 넘어야     
    뒤로 물러날 마음을 가지고 있기에 그러합니다. 내가 넘어야할 장벽이 있고 믿음의 길을 가려고 하면 그 앞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이 장벽을 넘지 않으면 단지 믿음을 못 배운다는 것이 아니고 내가 망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창세기 33장에서 정확히 이 부분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왜 믿음으로 살지 않으면 안 되는지, 왜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지..., 믿음으로 살지 않으면 내 인생에 어떤 문제가 닥치는지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이 형 에서를 만나는 장면입니다. 야곱은 형 에서를 만나야 하는데 만나기가 너무 부담스러웠습니다. 형 에서의 축복을 가로챔으로 인해서 형 에서는 야곱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야곱의 마음에 자기를 죽이려고 했기에 에서를 만나면 어떻게 될까 싶어 그가 기르던 가축과 식구를 나누고 얍복 강가에서 밤새도록 천사와 씨름을 합니다. 33장에서 막상 에서를 만나 보니까 자신이 생각하던 에서가 아니었습니다. 야곱의 마음 안에 있는 에서, 자기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아버지가 살아계신 동안에는 그대로 있지만 돌아가시면 자기에게 복수를 하려는 마음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33장의 에서는 말씀 안에 있는 에서였습니다.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라는 그 말씀처럼 에서가 야곱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어느 것이 실상입니까? 내가 보고 듣고 알고 있고 경험하고 있는 에서, 이는 거짓된 정보가 아니고 야곱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세월이 지나서 보니까 내가 알고 있는 에서는 거짓된 것이고 말씀 안의 에서가 실상이었습니다. 믿음은 내가 보고 듣기 느끼고 알고 있는 세계와 다른 것을 믿어야 합니다. 야곱의 마음, 야곱의 귀에 들려지는 소리, 야곱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은 형 에서가 자기를 죽이려고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말씀에서는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 장벽을 넘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지금은 아주 쉽게 믿고 있는 것을 옛날 사람들은 잘 믿지 못하였습니다. 지구가 태양을 돌고 있다는 지동설, 내 눈에 보기에 태양이 지구를 돌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지금은 너무 쉽게 믿고 있습니다. 실상은 말씀에서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고 했기에 그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말씀이 실상입니다. 실상은 에서가 야곱을 죽이려고 오는 것처럼 보여도 그를 섬기기 위함입니다.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는 말씀대로
    창 33:13-14 에서가 온 마음을 다해서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는 말씀대로 400인을 데리고 와서 호위를 해 주려고 합니다. 또한 그의 종자로 보호해 주려고 합니다. 철저하게 에서가 야곱을 섬기려고 합니다. 믿음을 가진다는 것은 내가 보기에, 내가 어떻게 알고 있었든지 믿을 가지는 것이며 말씀의 판단을 믿는 것입니다. 내 눈에 보이는대로, 내 느낌대로 믿으려고 하니까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말씀은 정 반대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원리를 알면 내 눈에 보이는 것을 부인하고 사실을 믿듯이 변화의 차이는 에서는 이미 변화가 되어 있는데 야곱의 마음에 있는 에서는 변화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보고 듣고 판단하기를, 변해야 변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평생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지 못합니다. 하나님 말씀의 판단이 진리입니다.

     

    숙곳에 머무르는 야곱의 마음  
    야곱이 에서의 호위를 거절하니까 야곱이 원하는대로 야곱을 섬겨 그대로 다 해 주었습니다. 큰 어려움, 큰 부담을 야곱이 넘었습니다. 믿음의 삶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 이렇습니다. 야곱이 에서라는 큰 부담을 넘고 나서 17절의 말씀으로 나아갑니다.

     

    “야곱은 숙곳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고 짐승을 위하여 우릿간을 지은고로 그 땅 이름을 숙곳이라 부르더라”(창33:17)

     

    부담을 하나 넘고 야곱은 분명히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했습니다. 말씀이 진리임을 알았고 말씀의 판단이 맞음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마음에 머물고 싶었습니다. 또 다시 부담을 넘어서 가는 것이 아니라 머물렀습니다. 믿음을 배우지 못하는 가장 큰 요인입니다. 뒤로 물러나는 것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했는데 여기에서 다시 뒤로 물러나 숙곳에 머무르고 안주해 버립니다. 믿음의 발을 내딛고 나아가지 못한 결과, 히브리서 10장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왜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가?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10:38~39)

     

    왜 믿음으로 살아야 하며 믿음의 발을 내딛어야 하느냐는 것입니까? 침륜에 빠진다는 것은 망한다는 말입니다. 죄사함으로 인해 지옥의 형벌은 벗어났지만 삶에 있어서 믿음으로 살지 않으면 그 삶이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뒤로 물러나니까 생각지 못했던 어려움과 문제가 일어납니다.

     

    야곱의 마음이 불러온 재앙

    창 34:1-2 레아가 야곱에게 낳은 딸 디나가 그 땅 여자를 보러 나갔더니 히위 족속 중 하몰의 아들 그 땅 추장 세겜이 그를 보고 끌어 들여 강간하여 욕되게 하고

     

    단지, 디나는 그 땅의 여자들을 보러 갔습니다. 그러나 추장 세겜을 만나 강간을 당하였고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야곱의 아들들이 그 땅의 남자들을 다 멸족을 시킵니다. 결국 숙곳에 머물러 있지 못하고 쫓겨 도망을 합니다.

     

    “칼로 하몰과 그 아들 세겜을 죽이고 디나를 세겜의 집에서 데려 오고 야곱의 여러 아들이 그 시체 있는 성으로 가서 노략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그 누이를 더럽힌 연고라 그들이 양과 소와 나귀와 그 성에 있는 것과 들에 있는 것과 그 모든 재물을 빼앗으며 그 자녀와 아내들을 사로잡고 집속의 물건을 다 노략한지라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이 땅 사람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냄새를 내게 하였도다 나는 수가 적은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리하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창34:26~30)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잔해하는 기계로다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찌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예하지 말찌어다 그들이 그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그 노염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가득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창49:5~7)

     

    에서가 떠나가고 자기를 칠자가 없어서 평안하고 좋은데, 왜 야곱에게 이런 재앙이 닥칩니까? 야곱의 마음에서 재앙을 불러왔습니다. 야곱의 마음 안에서 성경은 이야기 합니다. 뒤로 물러나면 침륜에 빠진다고 했습니다. 그 마음 하나가 자기 딸을 불행하게, 자기 아들들을 저주하게 만들었습니다. 내 마음 안에 믿음으로 살지 않은 것이 재앙을 불러 올 줄 알았다면 뒤로 물러나지 않고 부담 앞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갔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침륜에 빠지는 것을 원치 아니하시고 사랑하시기에 우리가 재앙을 만나는 것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오해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지만 내 원함으로 살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합니다. 하나님의 법에 귀속되어 그 법을 따라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재앙을 만나는 것을 기뻐하지 않기에 그 법칙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원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이 재앙을 내리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장 복된 길을 가고 행복하게 되는 것을 원하시기에 하나님은 재앙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나아가는 우리의 발걸음을 돌이키게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감으로 재앙을 피할 수 있기에
    야곱이 벧엘로 올라갔다면 이 재앙을 만나지 않았습니다. 딸의 불행, 아들들의 불행, 그 자신의 고통,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셨습니다. 야곱의 유익을 위하여 야곱이 벧엘로 올라가야만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아야 하는 이유도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시는 분이기에 그 분의 뜻이라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100% 나를 위한 것이며 나를 행복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법으로 그 분의 뜻에 끌려 다녀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그 길을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에, 숙곳에 머물면 재앙을 만나기에, 여기에서 빨리 떠나서 벧엘로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감으로 인하여서 재앙을 피하여 지나갈 수 있고 복된 길로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철저하게 나를 사랑함으로 나를 위함인데 우리는 우리의 장래를 모르기에 나를 위하여 숙곳에 머물려고 합니다.

     

    부담이 싫어서 뒤로 물러나기 때문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속에 한두 번 믿음의 삶을 살고 부담을 넘다가 믿음으로 살지 못하는 이유,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음식을 만드는 것, 운전을 하는 것..., 익숙해지는 것이기에 부담이 점점 더 없어집니다. 운전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사람, 그 사람은 초보 운전자일 것입니다. 운전을 하다 보면 부담이 점점 없어집니다. 음식을 잘 못하는 사람이 귀한 손님이 오면 음식하는 것이 부담스럽지만 음식 실력이 늘어 가면 부담스러운 마음보다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영적인 일은 할 때마다 늘 부담스럽습니다. 이 부담이 싫어서 뒤로 물러나기 때문에 믿음을 배우지 못합니다. 야곱이 믿음을 넘고 뒤로 물러나는 것처럼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살아갑니다. 늘 뒤로 물러나는 방향으로 그 삶을 살았던 야곱, 믿음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새로운 부담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마음

    “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저희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행13:13)

     

    수종자 마가 요한, 바울과 바나바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였고 구원의 역사가 있었던 곳을 떠나 새로운 부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IYF 간사들을 책망을 했습니다. 작년 많은 핍박과 어려움을 통해서 부담을 넘어 계속해서 복음의 일 앞에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생명은 죽어가고 있는데 뒤로 물러나 있으면서 그 마음에 옳음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 마음에 야곱과 같은 마음으로 지난해 큰 싸움을 넘고 부담을 넘고 나서 물러나 있고 망하는 길로 가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믿음을 배우지 못하는 사람들은 야곱처럼 부담을 넘어 안주하고 싶고 새로운 길로 나아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종의 말씀을 받아서 성경 공부를 하게 되었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가정 집회를 하였습니다. 모든 부서에서 가정 집회를 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번에는 마인드 교육을 접해서 신앙에 관심이 없지만 마음의 세계에 대해서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마인드 교육으로 복음을 전하려고 계속해서 발전해 오고 있습니다. 머물면 망하고 뒤로 물러가면 침륜에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마가 요한을 용납한 후 복음에서 멀어지는 바나바

    “수일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 가 방문하자 하니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한가지로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 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수리아와 갈리기아로 다녀가며 교회들을 굳게 하니라”(행15:36~41)

     

    마가 요한의 마음을 용납하였기에 결국 바나바는 복음의 길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가 요한을 용납하지 않고 살아가야 합니다. 바나바도 믿음의 종이었고 충만한 사람이었지만 마가 요한을 용납하니까 그 삶에서 힘 있게 복음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마가 요한을 택해서 자신의 고향 구브로로 갔던 바나바, 실제 우리 선교회 안에서도 떠난 사람들이 이러했습니다. 더 복음을 위해서 살고, 그 한계를 넘기 위해서 저희 교회를 떠난 사람들이 하나도 없습니다. 마가 요한의 마음을 용납하고 야곱의 마음처럼 머물러 쉬고 싶어하기에 떠나갑니다. 그 마음의 중심을 숨기고 교회를 비난하고 종을 비방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편하고 좋다고 합니다. 이곳이 숙곳입니다.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고 짐승들을 위하여 우릿간을 짓는 것은 ‘나는 쉬고 싶어서 이곳에 왔습니다’ 하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영육 간에 망할 수밖에 없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에 생각지 못한 재앙을 만나게 됩니다. 자기 딸 디나가 강간을 당할 줄 누가 알았으며 그 아들들이 저주를 받을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 마음 하나가 우리를 망하게 합니다. 수많은 생명을 잃을 뿐만 아니라 나도 망하며 내 신앙도, 내 삶도 망하는 길을 가게 됩니다. 오늘 여러분의 마음속에 믿음 있었던 바나바의 삶 속에 마가 요한을 용납하니까 결국 망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부담을 넘어 가고 한계를 만나가는 삶, 마가 요한은 이를 싫어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마가 요한을 데리고 살지 않습니까? 그러면 결국 믿음의 삶을 배울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마가 요한을 거절했습니다.

     

     “나는 50년 전부터 늘 부담스럽고 막막했다”
    어떤 목사님이 박목사님에게 “사역이 부담스럽고 막막하다”고 이야기하니까 “이제 그러하냐고, 나는 50년 전부터 그러했고 지금도 그래서 지금까지 하나님을 찾고 구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담 없는 길을 가기 때문에 믿음을 배우지 못합니다. 오래 전 선교학교에 있으면서 하나 터득한 것이 있습니다. 저희들이 선교학교에 있을 때 대덕 수양관을 지었습니다. 일주일 단위로 집회가 없으면 시간이 나는 대로 봉사를 하였습니다. 육체노동을 해 보니까1~2일은 굉장히 힘들었지만 3일쯤 지나면 편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달쯤 지나 또 하려고 하면 처음은 똑같이 힘들어지곤 합니다. 금식을 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하루 이틀이 제일 힘이 듭니다. 그 부담을 넘을 줄 알면 그것이 터득이 되는 것처럼 믿음도 그러합니다. 지난 번 부담을 넘었다고 해도 또 처음 하는 것과 같이 부담이 찾아옵니다. 또 핍박이 일어나고 싸움이 일어나도 계속해서 부담 앞에 나아가다보면 또한 평안이 찾아오게 됩니다. 뒤로 물러나 핍박도 없이 편안한 삶을 원하지만 그 삶의 뒤에 역사는 안 일어나고, 생명은 죽어가고 있는데 전부 다 옳음을 가지고 있고, 좀 더 지나면 싸우고, 좀 더 지나면 나뉘게 되어져 있고, 조금 더 지나면..., 그 방향에서 벗어나 믿음을 터득한 사람은 시작은 늘 부담스럽지만 이 부담을 넘어서 새롭게 발을 내딛어 나아가야 합니다. 넘어서 가는 것, 우리 마음에 선을 그어야 합니다. 야곱의 마음, 마가 요한의 마음에 선을 그어야 믿음을 삶을 살며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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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2 [인천교회]김재홍 목사 주일말씀(2015/5/31) 이성옥 2015.06.05 9166
    111 [인천교회]김재홍 목사 주일말씀(2015/5/24) 이성옥 2015.05.26 9341
    110 [인천교회]김재홍 목사 주일말씀(2015/5/10) 이성옥 2015.05.11 9418
    109 [인천교회]김재홍 목사 주일말씀(2015/5/3) 이성옥 2015.05.07 9228
    108 [인천교회]김재홍 목사 주일말씀(2015/4/26) 이성옥 2015.04.30 10296
    >> [인천교회]김재홍 목사 주일말씀(2015/4/19) 이성옥 2015.04.21 10502
    106 [인천교회]김재홍 목사 주일말씀(2015/4/12) 이성옥 2015.04.13 10059
    105 [인천교회]김재홍 목사 주일말씀(2015/3/29) 이성옥 2015.03.31 9787
    104 [인천교회]김재홍 목사 주일말씀(2015/3/22) 이성옥 2015.03.24 10024
    103 [인천교회]김재홍 목사 주일말씀(2015/3/15) 이성옥 2015.03.17 10286
    102 [인천교회]김재홍 목사 주일말씀(2015/3/8) 이성옥 2015.03.10 10153
    101 [인천교회]김재홍 목사 주일말씀(2015/02/22) 이성옥 2015.02.24 10555
    100 [인천교회]김재홍 목사 주일말씀(2015/02/15) 이성옥 2015.02.20 9660
    99 [인천교회]김재홍 목사 주일말씀(2015/02/08) 이성옥 2015.02.11 11246
    98 [인천교회]김재홍 목사 주일말씀(2015/2/1) 이성옥 2015.02.03 11052
    97 [인천교회]김재홍 목사 주일말씀(2015/01/25) 이성옥 2015.01.27 11386
    96 [인천교회]김재홍 목사 주일말씀(2015/01/18) 이성옥 2015.01.20 11738
    95 [인천교회]김재홍 목사 주일말씀(2015/1/11) 이성옥 2015.01.12 11324
    94 [인천교회]김재홍 목사 주일말씀(2015/1/4) 이성옥 2015.01.07 10899
    93 [인천교회]김재홍 목사 주일말씀(2014/12/28) 이성옥 2014.12.31 1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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