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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성옥 | 2015.05.07 11:00 | 조회 9227

    2015년 5월 3일 주일오전말씀
    말씀: 눅10:25~37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않으시는 주님
     
    필리핀 사람들을 위해 허락하신 마인드 교육
    이번 주 필리핀 교사들, 교육 관계자들을 위한 마인드 강사 훈련을 하면서 마인드 교육이 필리핀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이 허락하셨다는 마음이 들어 감사했습니다. 필리핀 현지에서 교사들만 18,000명, 그리고 한국에서 2주차에 걸쳐서 마인드 교육 연수를 했습니다. 작년에는 1차만 했는데 이번에는 2주차로 나누어서 해야 할 정도였습니다. 내년에는 더 많은 분들이 오실 것이라 생각이 되어 나름 걱정이 됩니다. 필리핀 한 대학에 가서 강의하셨던 필리핀 현지분으로 인해서 그 대학의 교수님, 학장, 부총장님이 오셔서 2주차에 마인드 교육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인드 교육을 하면서 높은 위치에 있는 분들에게 더욱 필요했습니다. 해외여행도 여러 번 해 보았던 분들인데 해외 관광을 다녀보면 좋은 것 보다 일정에 쫓겨 너무 피곤한데, 저희들은 아침 6시부터 시작해서 오전에 마인드 교육을 하고 오후에 관광을 하고 저녁에 다시 마인드 교육을 하는데 너무 좋다고 했습니다. 한 분은 얼마 전부터 교회를 다녔는데 풀어지지 않는, 마치 퍼즐의 한 조각이 맞지 않는 것처럼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여기에 와서 풀릴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고, 여기에서 풀어졌다고 했습니다. 그 마지막 한 조각, 복음이었습니다. 복음의 말씀을 들으면서 복음이 그 마음의 의문에서 풀어졌습니다.
     
    마인드 교육과 성경의 접목 
    마인드와 복음, 잘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데 마인드 교육만을 가지고 해야 할 때는 제 마음이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성경과 접목이 되어야만 해결될 것들이 있습니다. 마인드 교육과 성경을 접목해서 필리핀 분들에게 강의를 해 주었습니다. 옳음에 대해서, 자신감에 대해서 강의를 했습니다. 옳음 때문에 분쟁, 다툼이 일어납니다. 옳음이 불행을 가지고 옵니다. 믿음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만 사단은 그 믿음을 빼어 버리고 옳음으로 인해 불행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인간의 옳음을 버려야 하나님의 의를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인간의 의는 더러운 옷과 같아서 완전한 의가 없으며 그 옳음도 완전하지 않습니다. 옳음을 버릴 때 하나님의 의를 받아들일 수 있고 하나님과 교류할 수 있고 주변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습니다. 자신감에 대한 이야기, 세상에서는 긍정적인 마인드와 자신감을 가지라고 하지만 우리는 역설적으로 자신감을 버리라고 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자신감은 짧고 작은 성공을 가져다 주지만 자신감을 버리면 길고 큰 성공을 가져다 주게 됩니다. 인간이 불행해 진 것은 자기 생각과 판단을 믿었기에 불행해 졌습니다. 아담, 가인…, 하나같이 자신을 신뢰하는 마음 때문에 망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수 천년 전부터 자신감, 자신을 신뢰하는 마음 때문에 망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세상은 자신감을 가지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최근에 와서 기업을 예를 들어 자신감 때문에 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죽어서 제일 좋은 옷을 입히는 아프리카의 장례법
    이 성경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성경 어디에도 자신감을 가지라고 하는 곳은 없습니다. 할 수 없는 자가 되어 주를 의지하고 믿음을 가진 자가 되어 집니다. 인생이라는 근본 문제에 들어가보면 성경과 다른 마인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불행하고 고통 하는 삶을 살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육신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에 장례 절차가 굉장히 복잡하고 시간을 오래 끕니다. 우리는 보통 삼일장을 치릅니다. 아프리카는 그렇지 않습니다. 열흘이고 보름이고 한 달이고…, 그렇게 시간이 듭니다. 친지들, 가족들이 다 모이기까지 기다립니다. 먼저 온 손님들은 기다리고 있으면서 다른 손님, 친지들이 오기까지 먹고 자고 기다려야 합니다. 그렇기에 장례를 치르면 빚을 집니다. 게다가 죽은 사람에게 죽어서 제일 좋은 옷을 입혀 장례를 치릅니다. 늙어 줄을 때까지 갚을 수 없는 빚을 지기에 그 빚을 자식에게 대물림 합니다. 악순환의 연속, 죽은 육신을 위해서 아프리카 사람들은 빚을 져 가면서까지 육신을 위해 줍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이제는 내가 산산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내가 나를 위해 산다는 것이 마치 아프리카 사람들이 죽은 사람을 위해 잘 해주는 것과 같이 어리석고 미련한 삶입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지혜로운 것처럼 보여도 죽은 육신을 위해서 잘 해주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장례법과 같습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장례를 치르는데 애를 쓸 필요가 없는 것은 부활을 바라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죽은 자신을 꾸미고 고치느라 허비하는 세월
    에볼라가 퍼져 가는 것을 막기 어려운 이유, 장례식을 하면 관 뚜껑을 열고 죽은 시체에 입을 맞추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아프리카 장례식에 갔습니다. 오딩가 총리가 있을 때였는데, 그 집안의 장례식이었습니다. 큰 학교 운동장에서 장례식을 치르는데 이렇게 긴 장례식은 처음 보았습니다. 운동장 한 가운데 관이 놓여 있습니다. 얼굴 쪽 뚜껑이 열려져 있고 전부 다 와서 인사하고 가까운 일가친척 사람들이 한 마디씩 합니다. 어느 할머니는 부축을 받아서 겨우 걸어서 나오는데…, 아프리카 케냐 사람들은 말을 잘합니다. 월드 캠프를 할 때 연설을 하러 나오면 시간을 5분 주어도 20분씩 하곤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결혼식 혼주 대표 인사하라고 해도 안 하려고 그냥 넘어가는 분들이 많고, 하셔도 짧은 감사를 표합니다. 하지만 아프리카 케냐에서는 일장 연설, 꼭 원고 준비하듯이 나와서 장례식에서 이야기 하는데 할머니 한 분, 얼마나 일장 연설을 잘 하시는지…, 케냐 사람들은 할머니도 말을 잘합니다. 하루 종일 운동장에서 장례식을 치르는데 다행히 끝이 나서 마치고 집으로 가면서 보니까 시신을 집으로 모시고 가서 또 밤새도록 장례를 치른다고 합니다. 부자야 그나마 감당하지만 가난한 사람들, 악순환의 연속으로 빚을 지고 살아갑니다. 죽은 내 자신을 위해 산다는 것 또한 악순환의 연속입니다. 죽은 내 자신을 꾸미고 다듬고 고치느라고 많은 세월을 허비하고 많은 것을 허비하고 삽니다. 육신을 위해서 많은 시간과 많은 물질을 허비하다 보니까 가난을 대물림하고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처럼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미 십자가에 못 박혀 있는 육신을 위해서, 그 연약함과 부족함을 메우려고 애를 쓰며 허비하는 삶을 사는 것을 봅니다.
     
    십자가에 죽은 나를 장사지내고
    세례의 의미, 장례를 치르고 장사를 지내었다는 의미입니다. 예전의 십자가에 죽은 나를 장사 지내고 새로운 피조물, 내 안의 그리스도가 사신 것이기에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사신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삶, 나를 위하여 사는 삶의 차이, 나오미가 모압 지방으로 가서 나를 위하여 살아야 했습니다. 그 결과와 보아스를 믿는 믿음 안에서의 삶과의 차이…, 망하는 삶에서, 자기를 믿는 삶에서 떠나 보아스를 믿는 삶으로 돌아왔을 때 모든 것이 풍성하게 되었습니다.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는 보아스의 조건으로
    “시모가 그에게 이르되 오늘 어디서 주웠느냐 어디서 일을 하였느냐 너를 돌아본 자에게 복이 있기를 원하노라 룻이 누구에게서 일한 것을 시모에게 알게 하여 가로되 오늘 일하게 한 사람의 이름은 보아스니이다 나오미가 자부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복이 그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그가 생존한 자와 사망한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 나오미가 또 그에게 이르되 그 사람은 우리의 근족이니 우리 기업을 무를 자 중 하나이니라”(룻2:19~20)
     
     보아스와 연결 될 때부터 그가 복되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를 믿고 자기를 위한 삶을 살 때의 결과 다 망했지만 그 삶이 풍성케 되는 시작, 보아스의 은혜와 연결 되어질 때입니다. 내가 나를 위한 삶이 아닌, 보아스의 은혜 아래 들어갔을 때 모든 것이 회복되고 모든 것이 풍성케 되었습니다. 생존한 자와 사망한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는 보아스의 조건, 나오미를 풍성케 하고 룻을 풍성케 하였습니다.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는 주님, 내 부족함과 연약함을 메우고 꾸며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내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는 주님의 조건과 연결 되어질 때 비로서 풍성케 될 수 있습니다. 나오미가 잘하고 못하고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않는데, 나오미가 형편없고 아무리 부족하다 할 찌라도 문제는 이 은혜에서 떠났을 때가 문제가 됩니다.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는 예수님의 조건이 우리 앞에 있지만 사람들은 그 은혜에서 떠나가 버립니다.
     

    그리스도인의 삶 또한 듣고 믿음으로 되어지는 것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갈1:6)
     
    그리스도의 은혜에서 속히 떠나, 무엇을 이야기 합니까?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갈3:1~5)
     
     구원받은 첫 번째 믿음, 그리고 두 번째 믿음의 삶…, 성령을 받은 것은 듣고 믿음으로 되어진, 내 행위가 1%도 포함되지 아니한 100% 믿음으로 된 구원입니다. 은혜에서 속히 떠났다는 것은 5절의 말씀처럼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나타나는 삶 속에서의 역사입니다. 그 일 또한 율법의 행위입니까, 듣고 믿음입니까? 성령을 받은 일에 대해서, 그리고 그 삶에서도 듣고 믿음으로 된 것입니다. 듣고 믿음으로 되는 은혜에서 떠나 행위 가운데로 가 버린 복음의 변질, 사도 바울은 이를 바로 잡고 있습니다. 은혜에서 떠났다는 말은 믿음에서 떠났다는 말과 같습니다. 우리가 구원받고 난 이후에 내 죄의 문제를 내가 해결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만약 사람들이 자기가 생활 속에서 저지른 죄를 자신이 해결하려고 하고 있으면 그는 구원받은 것도, 믿음도 아니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내 연약함과 부족함 또한 역시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주님이 해결해야 할 문제이고 믿음을 가져야 할 문제인 것입니다. 무겁고 얽매이기 쉬운 죄, 온전케 하신 이인 예수를 바라봐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베푸심을 잊어버린 마음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아와께서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시로다”(사40:27~31)
     
     여호와를 앙망한다는 것,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바라보는 것을 신앙이라고 합니다. 자기 속에 매여 있고 내 부족함을 메우고 고치려고 하는 마음, 은혜에서 떠난 마음입니다.
     
     시 77:6-12 밤에 한 나의 노래를 기억하여 마음에 묵상하며 심령이 궁구하기를 주께서 영원히 버리실까,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실까 그 인자하심이 길이 다하였는가, 그 허락을 영구히 폐하셨는가, 하나님이 은혜 베푸심을 잊으셨는가, 노하심으로 그 긍휼을 막으셨는가 하였나이다(셀라) 또 내가 말하기를 이는 나의 연약함이라 지존자의 오른손의 해 곧 여호와의 옛적 기사를 기억하여 그 행하신 일을 진술하리이다. 또 주의 모든 일을 묵상하며 주의 행사를 깊이 생각하리이다.
     
     하나님의 은혜에서 떠난 마음, 하나님의 은혜 베푸심을 잊어 버린 것, 자신이 잊어버리며 잃어 버린 것…, 믿음이 없는 것이 문제이지 인간의 어떤 연약함도 부족함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 은혜에서 떠난 마음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마음을 연약하게 두신 것은 내가 해결하라고 그대로 두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거듭날 때, 완전하게 흠도 없고 점도 없게 만드실 수도 있지만 그대로 두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살기 위한 조건입니다. 나를 믿고 살라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고 살라고 연약함과 부족함을 두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 내리시는 것을 그치지 않으신 하나님
    나오미의 삶이 보아스로 말미암아 그 부족함이 덮여집니다.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한 자로 보아스를 알 때 비로서 그 삶이 풍족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때로 책망을 하고 노를 발한다 할 찌라도 그 긍휼과 은혜를 베푸는 것을 하나님은 막지 않으셨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에 대해서 노하시고 책망을 하시고 벌을 내리셨어도 만나 내리시는 것을 그치지 않으셨습니다. 매일 아침 만나를 거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노하심으로 긍휼을 막지 않으시고 은혜를 베푼다는 것입니다. 날마다 만나를 거두러 갈 때, 하나님이 진노하심으로 내일 과연 우리에게 만나를 주실까,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들에 나가면 그 날도 어김없이 만나를 거두게 되면서 눈에 보이는 만나만이 아니라 은혜를 함께 거두어 들입니다. “하나님, 우리는 이렇게 악을 저질렀는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그치지 않는 분이시네요.”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만나를 거두러 나가지 않고 집안에 혼자 남아 있으면 그 마음이 은혜에서 멀어지며 그 삶이 궁핍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스스로 그 은혜에서 멀어져 떠나면서 그 마음이 궁핍 가운데로 들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나오미가 발견한 것은 보아스는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않는 사람인 것을 발견하고 그 은혜 아래 들어왔을 때 그 삶이 풍성하여 졌습니다.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시는 주님과 연결되어졌을 때 여러분의 삶이 풍성해 질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눅10:3)
     
    이 사람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셨습니까? 사마리아인이 친히 찾아가서 은혜를 베풀고 긍휼을 베풀었습니다.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을 닫히지 아니하며 어느 누구도 막을 자가 없습니다. 그 어떤 연약함도, 부족함으로도 하나님의 은혜를 막을 수 없습니다. 스스로 멀어질 수는 있지만 실제 주님의 은혜를 막을 수 없습니다. 강도 만난 자, 사마리아인이 찾아 갔습니다.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가로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눅10:33~35)
     
    강도 만난 자를 돌보아 줄 능력을 받은 주막 주인

    강도 만난 자를 돌보아 줄 수 있는 능력이 주막 주인에게 있습니다. 그 능력이, 그 지혜가 사마리아인에게서부터 왔습니다. 주막 주인이 어떠한 사람이냐가 아니라 사마리아인이 누구에게 데나리온 둘을 주었느냐는 것입니다. 나를 돌보아 줄 수 있는 자가 주막 주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믿음이 없어서 자기 자신을 믿고 자기 판단을 따라 갑니다. 주막 주인도 나와 같은 사람이며, 단지 신세만 지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주막 주인에게 특별한 능력을 주었습니다. 하나님이 박목사님에게 마인드 교육을 하라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목사님이 어떻게 생각하고 계획하셨을까? 하나님이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주듯이 종에게 그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특별한 능력이 있고 지혜가 있습니다. 내 삶이 실패하지 않고 망하지 않고 갈 수 있는 길, 교회 안에 있습니다. 돌보심을 받으면서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나오미가 그것 하나 발견했습니다. 내가 나를 위한 삶은 다 망한 삶이었지만 그 마음에 보아스의 은혜와 연결이 되어져서 죽은 자와 산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않는 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가 잘할 때나 못할 때나 주님은 내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않는 분입니다. 내 모습이 어떠하든지, 이 분이 나를 돌보아 줍니다. 강도 만난 자의 연약함, 부족함…, 자신이 없애야 하는 것이 아니라 돌보심을 받을 조건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삶을 보면서 내가 부족한 것이, 어려운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며 내 형편이 어렵다면 그와 비례하여 주님의 돌보심을 받을 조건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않을 믿음만 있으면 내가 아무리 못나도 그 주님이 교회를 통해서, 종을 통해서 돌보아 주실 것입니다. 첫 번째 은혜를 베풀기를 그치지 않을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두 번째 주막 주인에게 돌보심을 받으라고 데나리온 둘을 주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 교회 안에, 종 안에 능력이 있고 지혜가 있습니다. 이 두 부분에 대해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아무리 부족해도, 아무리 연약해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늘 필리핀 사모님이 간증하시기를, 선교학교에서 가난하고 어려울 때의 간증을 했습니다. 선교의 시작은 늘 어렵고 힘들었지만 하나님이 복되고 풍성케 하셨습니다.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하신 하나님을 보며
    제 아내가 첫 임신을 했을 때, 산달이 다가오면서 교회가 작고 어려웠기에 해산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개척 교회고 가난한 시절이었기에 주변을 다 돌보아봐도 누구 하나 뒷바라지할 분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큰 누님이 가게를 오픈하였습니다. 유아용품 전문점, 아이 젖병부터 시작해서 필요한 모든 것이 다 있었습니다. 하나 밖에 없는 남동생, 시누가 아이를 낳는다고 필요한 모든 것을 박스에 담아서 보내어 주었습니다. 하나님이 희한한 길을 여셔서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않으셨습니다. 자연 분만을 시도하다가 안 되어서 제왕절개 수술을 받았습니다. 고생 고생…, 그렇게 두 번 고생해서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는 의사 선생님이 소개를 해준 산부인과 병원이었습니다. 자기 아내가 다니는 교회 사모님이 아이를 낳는다고 하니까 병원의 모든 것을 다 무료로 해 주었습니다. 병원 원장님 친척인 줄 그 병원 간호사들이 알고 있었습니다.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않는 분이기에 모든 것을 준비해 놓았는데 문제는 그 하나님을 떠나 있기 때문에 나를 위한 삶을 살아가며 고통 할 뿐입니다.
     
    내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교회 안에 두셨기에
    아이들이 자랐습니다. 유아용품이 필요가 없어질 때쯤, 누님이 아동 용품점을 시작했습니다. 대전 이남의 총판을 했기에 이월 상품을 풍성하게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저희 아이들뿐만 아니라 다른 사역자님들의 아이들까지 은혜를 입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베푸심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라면 결코 막히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진노하신 적이 있지만 만나는 끊어진 적이 없습니다. 내가 비록 잘못되어 책망한다 할 찌라도 또 다시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셨습니다. 나오미에게, 탕자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강도 만난 자처럼, 죽어가는 위치에 있다가 이 주막 안에 왔다 할찌라도 데나리온 둘을 주셨기에 내가 받은 은혜의 조건은 이 교회 안에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않는 분입니다. 내 삶의 필요한 모든 것을 이 교회 안에 두셨기에 이 교회 안에서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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