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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성옥 | 2014.07.29 09:32 | 조회 12970

    2014727() 주일오전말씀

    말씀: 4:1~15

     

    참된 회개가 된 신앙

     

    창세기 4장에 나오는 가인의 모습은 사단이 만들기 원하는 형상이고, 사단이 원하는 인간의 표상입니다. 창세기 3장에서 사단이 아담과 화와를 속이고 타락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이후 아담과 화와의 열매가 가인입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에 가인과 같은 형상이 나타나면 사단이 나를 끌고 가서 사단이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기 원하며 이끌고 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 옳음을 주장하고 내 판단을 믿는 것이 아니라 사단이 원하는 형상으로 완성되어져 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거스리고 대적하도록, 그 마음을 꺾지 않는 인간으로 만들어 갑니다. 내 마음에 형성 되어져 있는 사상, 사고, 가치관, 생각, 기준들이 사단이 이끌어서 사단이 원하는 모양으로 형성되어져 있는지를 창세기 4장을 통해서 비추어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이끌어 가는 형상이 있습니다. 또한 마귀의 형상이 있습니다. 내가 아닌 모습이 정확히 보여 지면 사단의 계획에 속해서 사단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거기서 도망 나올 수 있고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계속해서 속으며 그 길을 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이치를 모르면 그러합니다. 어떻게 하면 속지 않고 정확하게 그 길을 발견하여 하나님이 원하는 형상과 모양대로 우리의 마음 안에 그 세계가 형성이 되겠습니까? 신앙이 어려우면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이고, 길을 모르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케냐에서 부사역자로 있었던 김요한 선교사, 독일의 오영신 선교사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어제 듣지 못하신 분들은 인생의 4분의 1이 아닌 4분의 4가 다 죽은 것과 같습니다. 그 간증을 열 번 만 계속해서 들어보면 우리 안에 해결되지 않을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수많은 문제들,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문제근본 해결책은 단 한가지입니다그것을 정확하게 터득하지 못하고 있고,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교만한 것은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이 복음을 가지고 사람들을 만나면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이 복음을 모르기에 이 복음 하나를 가지고 다 이길 수 있는 이유 때문입니다. 그 이후의 신앙의 중요한 부분을 배우지 못하고 터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혼의 구원이 있고 삶의 구원이 있다고 나누어서 설명하는 것입니다.

     

    영혼의 구원은 받았으나 삶의 구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 영혼의 구원처럼 삶의 구원도 회개와 믿음으로 됩니다. 회개가 정확하게 되어져야 정확한 믿음을 가집니다. 정확한 회개 없이 믿음을 가지려고 하니까 믿음을 가졌다고 해도 형편 앞에 무너져 버리고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지 못합니다. 신앙은 자라가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영적인 성장이 없는 것도 신앙의 잘못된 길을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많은 말씀이 깨달아지고, 보여집니다. 성경을 접해본 적이 없던 저에게도 구원을 받고 난 이후에 성경을 읽으면서 말씀에 줄을 쳐 나가다 보니까 죄사함에 관하여, 삶에 관하여, 믿음에 관하여 하나하나 알아가게 되고 연결이 되어져 갑니다. 회개가 무엇인지, 회개가 된 사람인지를 보아야 합니다.

     

    가인은 회개가 무엇인지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사단이 만들기 원하는 인간의 표상, 하나님 앞에서도 자기 옳음을 이야기 하고, 그 마음을 꺾지 않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신앙을 하면서 여러분 마음이 꺾어지지 않을 때, 그 옳음이 버려지지 않을 때, 창세기 4장의 가인의 모습을 보십시오. 사람 앞에서가 아닌, 하나님 앞에서도 자기의 옳음을 버리지 아니하고 꺾지 아니했습니다.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아니하셨던 하나님, 하나님의 뜻을 가인에게 나타내셨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마음에 이해가 가지 않음으로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 죄를 가리고 악을 행한 후에도 그 마음을 돌이키지 않습니다. 죄가 들어난 가인, 악한 것이 드러난 가인, 내 죄벌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죄를 짓고 나서, 악이 적발되고 나서 뉘우치고 돌이킨 것처럼 보여도 이는 참된 회개가 아닙니다. 아벨을 쳐 죽이고 나서, 내 죄벌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죄의 고통, 죄의 고백, 뉘우침이것은 가인의 회개가 아닙니다. 악한 것이 보여 지고 깨달아서 뉘우치고 있습니다. 그것이 보이지 않을 때 그 옳음을 주장하였던 가인은, 참된 회개는 내 생각을 버리고, 판단을 버리고 말씀의 판단에서 악하다 했기 때문에 말씀의 판단을 믿는 것입니다. 죄가 적발되었기에 토하였던 가인, 악을 깨닫고 뉘우쳐도 신앙은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가인이 죄를 깨닫고, 뉘우치고 돌이켰을 때, 가인이 그 이후에 신앙의 변화가 오지 않습니다. 잘못된 회개를 하였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쫓아내면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다는 가인의 말에 하나님의 그렇지 않다 하셨고 가인에게 표를 주셨습니다. 생각의 결과가 자신을 사망으로 이끌어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하나님은 가인에게 그렇지 않다라고 가르쳐 주시기 원하셨지만 가인의 말씀의 판단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는 나가서 자신을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서 성을 쌓았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장막에 거하였습니다. 그가 성을 쌓을 능력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318인을 그 아래 두었던 아브라함, 그러나 아브라함은 장막에 거하였습니다. 자기가 자신을 보호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가인도 그러했습니다.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울부짖었던 가인의 소리, 끝까지 자기 속에서 올라오는 생각을 믿고, 판단을 믿었습니다. 잘못된 행위를 뉘우치는 것을 보면서 회개한 것처럼 보였을지라도, 이는 참된 회개가 결코 아닙니다. 내가 보기에 그러하지 않고 잘못된 것이 없을 찌라도 말씀이 잘못되었다고 하면 그 말씀의 판단을 믿어야 그것이 참된 회개 입니다.

     

    사단이 패망케 하는 악의 구덩이입니다. 이런 삶으로 생을 마감하게 하려는 사단의 계획입니다. 그 목적지가 창세기 4장입니다. 자기 생각을 믿고, 판단을 믿고 살면서 사단의 쓰임을 받는 사람으로 끌고 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의 모양은 어떠합니까? 아벨은 양을 치는 자였습니다. 이 당시에 양고기를 먹지 않았습니다. 노아 홍수 이후에 고기를 먹도록 허락했기 때문입니다. 양을 치는 자, 양의 첫 새끼와 기름을 들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왜 그러했습니까? 한번도 해보지 않은 일, 드려본 적이 없는 양의 첫 새끼와 기름은 회개된 사람의 모습입니다. 아무리 보아도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양고기를 먹지 않을 때였기에, 양을 죽일 필요가 없습니다. 새끼 양을 죽였습니다. 그 기름은 내장에만 있기 때문에, 배를 갈라서 그 내장에서 기름을 취하였습니다. 굳이 이렇게 해야 할까? 자기 생각으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제사였고 자신의 마음에 맞지 아니합니다. 내 생각, 내 판단을 믿지 않고, 아담과 화와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어떻게 나아가야 할 지 알게 되었습니다.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한 생명이 피를 흘려야 죄가 사해지기 때문에 반드시 한 생명의 대가로 그 허물과 죄가 가려져야 합니다. 좋아 보이는 것이 하나도 없지만 말씀의 판단을 따라 아벨은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양의 첫 새끼와 기름, 이것이 참된 회개가 된 사람의 모습입니다.

    이해가 가지 않고, 납득이 가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잘못이 들어나야, 죄가 적발되어져야 그 때, 인정을 하고 뉘우칩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과 연결될 수 없습니다. 여전히 사단의 도구로 쓰임을 받을 뿐입니다. 여러분 신앙에 정확한 회개가 되지 않으면 가인처럼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옳고 그름을 논하고 가인처럼 그 생각을 따라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옳음을 내려놓지 못하는 사람, 가인과 같은 신앙의 길을 가고 있음을 봅니다. 그 마음을 꺾는 것이 너무 어렵습니다. 꺾었다고는 하지만 가인처럼 그 마음을 꺾기 때문에 그 다음에 또 사단이 옳음을 넣어 주고 함정에 빠트릴 때 또다시 그 속에서 허우적거립니다.

     

    강남에서 식사를 하는 데, 테리 목사님께 녹두 음식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적두, 흑두, 녹두가르쳐 주면서 자두는 무엇인지 아느냐고 물었을 때, ‘자두는 무슨 콩이지?’하고 그 말의 함정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단이 이끌어 가면서 함정을 파 놓으면 반드시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 생각과 그 판단을 믿는 사람, 가인처럼 살아가는 사람은 여전히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사망의 길, 망하는 길내 생각을 믿지 않고 정확한 회개가 되어져야 합니다. 내 속에 올라오는 생각의 결과가 나를 망하게 하는데 여전히 가인은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합한 마음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다라고 하셨던 그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그 길을 갑니다. 자기 마음을 믿기에 하나님과 합한 마음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특별한 표까지 주면서 누구에게서라도 그 죽임을 면하게 하였는데, 가인은 힘들게 고생해서 성을 쌓았습니다.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일 것 같다는 그 생각이 그 자신을 지키게 하였습니다. 그 이후 가인은 성경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가인의 인생을 불행하게 만들고, 사단의 도구가 되어졌습니다.

     

    사단은 이미 여러분 속에 생각을 믿고 판단을 믿게 만들었습니다. 아벨이 간 신앙의 길, 내 생각에서는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이 너무 징그럽고 끔찍해 보일 수밖에 없는데 말씀의 판단에서 하나님이 원하시기에 그것을 들고 나아갔고 하나님은 그 제사를 열납 하셨습니다.

     

    말씀의 판단을 믿고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아도 받아들인 사람이 있습니다. 1:18-21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요셉은 어떻게 마리아를 데려올 수 있었습니까?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마리아에게서 잉태된 것이 나타났습니다. 다른 남자의 씨를 받아들였다고 믿었던 요셉, 가만히 끊고자 하였습니다. 주의 사자가 꿈에 나타나서 저에게 잉태된 것이 성령으로 된 것이라고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 소리, 요셉은 이해가 되어서 마리아를 데려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판단, 데려오라는 그 말씀을 따라 마리아를 데려왔습니다. 이것이 회개된 사람의 신앙의 모습입니다. 가인은 계속해서 하나님과 말다툼을 합니다. 하나님과의 실랑이, 하나님 앞에서도 마음이 꺾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자기 생각과 판단에서 이해가 되지 않지만 말씀의 판단을 믿고 마리아를 데리고 왔습니다. 요셉이 마리아를 끊으면 예수 그리스도 버리고 끊어 버리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할 수 있는 사람, 그 삶 속에 영의 인도를 받으면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보호를 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려 했을 때, 순간순간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며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며 약속을 이루는 역사에 동참을 합니다.

     

    가인과 요셉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드러난 악을 발견하고 뉘우친 가인, 악한 것이 보이지 않을 때 끝까지 자기의 옳음을 하나님 앞에서 주장을 합니다. 하나님의 뜻만 보여지면 비록 납득이 가지 않을지라도 말씀의 판단 앞에서 그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였던 요셉, 신앙은 쉽습니다. 운동을 잘하는 사람은 여러 가지 운동도 잘 합니다. 운동 신경이 떨어지는 사람은 무엇을 해도 잘 못합니다. 체력, 스피드기본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기본은 정확한 회개입니다. 그것이 된 사람은 신앙이 너무 쉽습니다. 자기 생각을 믿지 않고 말씀의 판단을 따라 마리아를 데려왔을 때, 그 일이 얼마나 귀한 일이었으며 복된 일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신앙에도 하나님이 큰 복을 주어도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이 없다면 우리의 생각과 판단으로 다 끊어 놓고 살기 때문입니다. 복을 주시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자기 판단으로 다 끊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범죄한 인간의 모양은 가장 거룩한 하나님 앞에, 불평하고 원망하고 비평하고 대적합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 그러합니다. 잘못되었기 때문에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분한 마음과 거스리는 마음, 하나님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범죄한 인간의 모습이요 그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러면서 늘 가인처럼 하나님이 잘못된 것처럼, 종을, 교회를 비판하고 삽니다. 나중에는 자기 자신을 향해서 판단을 합니다.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마을 안의 나무의 열매를 따서 소쿠리에 담아 멀리 동네 밖으로 버립니다. 열매가 익으면 고약한 냄새를 나는 나무, 아무 쓸모없는 열매였기에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열매를 매해 따서 버리는 동네의 관습, 선교사님이 도끼를 가져다가 나무를 찍어 버렸습니다. 우리 마음에 일어나는 시시비비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한번에 다 처리할 수 있는, 참된 회개가 분명히 우리 마음에서 깨달아져야 합니다. 내 생각을 믿는 것이 결국 저주임을 알아야 합니다. 가인의 회개, 악이 나오고 잘못된 것이 드러나 인정을 하는 것은 여전히 자기 판단을 믿는 것이지 하나님의 판단을 믿는 것은 아닙니다.

     

    창세기 3장에서 사단이 해 놓은 일이 있습니다. 3:1-5. 이 말씀 속에서 사단이 인간에게 어떤 일을 해놓았는지를 알 수 가 있습니다. 마귀의 사상이 인간에게 들어갔습니다. 6절부터는 인간이 자기 생각을 믿고 자기 판단을 믿고 삶을 살아갑니다. 먹음직, 보암직,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웠던 열매, 생각을 따라 살아갑니다. 만일, 아담과 화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흉측스럽게 보이고 망할 것 같아 보였다면 따 먹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사단이 사상이 그 속에 들어갔기에 결국엔 100% 사단에게 속을 수밖에 없습니다.

     

    요압, 다윗과 함께 하면서 다윗의 마음과 합한 자가 아니었습니다. 자기 판단을 믿고 살았던 사람이었기에 압살롬을 보며 압살롬을 따르지 않고 쳐 죽였지만 결국 아도니야의 반역에 걸려들게 되었습니다. 지금 괜찮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망할 수밖에 없는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결국 그 삶이 망하는 길로, 저주의 길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위험한 신앙, 언젠가는 사단이 주는 미끼에 걸려 들 수밖에 없습니다. 구원받은 교회 안에서 주의 일을 하고 있어도 이 부분이 정확히 되지 않은 사람은 결국 자기를 믿는 마음으로 자신의 소리를 내고 살아갑니다. 마치 사울 왕과 같은 신앙, 좋은 것을 남겨두었던 것처럼, 내 옳음을 버리지 못하고 맞다고 생각하는 그 생각을 저버리지 못합니다. 좋은 것이든, 안 좋은 것이든 다 진멸해야만 합니다. 참된 믿음이 아닌 자를 골라내기 위해서, 교회를 정결케 하기 위해서 그 옳음에 걸려들어 교회를 판단하고, 가인과 같은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요셉은 100% 옳았습니다. 잉태한 마리아를 보면서도 그 생각을 버렸습니다. 이해가지 않는 소리 앞에 그 말씀의 판단을 믿고, 그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스도를 얻고 동행할 수 있으며 그리스도가 일하시는 역사를 볼 수 있고 참여할 수 있습니다. 생각과 동행하고 옳은 것과 동행하는 동안 사단이 원하는 형상대로 만들어져 가고 있습니다. 인천교회는 누구보다 더 잘 알 것입니다. 하나님께 쓰임을 받고 역사를 맛보았던 사람들이 교회를 대적하고 떠나갔습니다. 참된 회개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요압처럼, 결국 넘어지는 길로 가시겠습니까? 마귀의 종, 마귀의 도구가 되겠습니까?

     

    MBC 방송국의 스튜디오를 아프리카 귀빈들과 함께 관람을 하였습니다. 컴퓨터그래픽(CG), 가상현실을 만들어 완벽하게 사람의 눈을 속이도록 만듭니다. 어느 사극의 한 장면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작업을 하였는데 그 전과 후를 보여주었습니다. 똑같이 실상처럼 우리의 눈을 속일 수가 있습니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진짜로 믿습니다. 인간도 없는 장명을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서 있는 것처럼 보여주는데 사단은 더욱 그러하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옳아도, 그 마음을 남겨두면 가인처럼 마귀의 도구로 쓰임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나를 찍어 버리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입니다. 성경은 이미 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합니다. 나무를 찍어 버리듯이, 내 생각, 판단을 따라가면 저주이기 때문에 죄만 십자가에서 끝을 낸 것이 아니라 내 생각도, 내 판단도 이미 십자가에서 못 박아 끝을 내어 버렸습니다.

     

    죽은 자의 소리를 따라가면 귀신들렸다고 합니다. 내 생각을 따라가는 것도 이와 같고 마귀를 따라 사는 것입니다. 믿음은 100% 이해가 가지 않아도 말씀의 판단에서 무엇이라고 하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요셉이 말씀의 판단에서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말라는 그 말씀을 믿었습니다. 아벨, 자기가 보기에 좋은 것이 하나도 없었지만 그 생각과 판단을 믿지 않고 말씀의 판단을 믿고 나아갔습니다. 땅의 소산, 보기 좋아 보였던 그것이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였습니다. 가인처럼 하나님을 섬기고 사는 사람, 여름 내내 수고하고 땀을 흘려 땅의 소산을 기쁨으로 들였습니다. 그러나 자기 마음을 따라서, 자기 보기에 좋은 것으로 하나님을 섬기는하나님 앞에 버림을 받는 신앙입니다.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아벨의 길을 가고 있다고 믿지 마십시오. 기름 받은 왕이지만 사울 왕도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어 있는지, 우리 마음의 부족함이 문제가 아니라, 회개되지 않은 신앙이 나를 망하게 하지 않는지를 비춰 보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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